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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 KBO 事務總長이 말하는 ‘베이징 神話’& 野球 르네상스|新東亞

하일성 KBO 事務總長이 말하는 ‘베이징 神話’& 野球 르네상스

金메달 기운 받았나? “프로球團 5~6個 創團 極祕 進行 中!”

  • 理財局 스포츠동아 記者 keystone@donga.com

    入力 2008-10-02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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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9戰 全勝 豪言은 말뿐, 事實上 目標는 銅메달”
    • “金메달 터닝 포인트는 첫 競技 美國戰, ‘올인’ 했다”
    • “最小 2萬5000名 收容 最新 球場 가진 곳만 緣故權 줘야”
    • “WBC 對備 代表팀 監督 選任問題부터 解決, 常備軍 만들 터”
    • “현대球團 引受協商 過程 保安 失敗 認定, 責任回避 안 해”
    • 事務總長 就任 後 적지 않은 失手…“이렇게 많은 辱 먹은 건 처음”
    하일성  KBO 사무총장이 말하는 ‘베이징 신화’& 야구 르네상스
    “內平生에 처음 金메달도 따보고, 헹가래度 받아보고…. 周圍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 世上에서 내가 가장 幸福한 사람이라고. 아마 平生 잊지 못할 겁니다.”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野球代表팀 團長 格으로 選手團을 뒷바라지한 韓國野球委員會(KBO) 하일성(59) 事務總長. 아직도 韓國野球가 올림픽에서 金메달을 따냈다는 事實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表情이다. 野球選手로서, 解說家로서 數千 競技를 經驗한 그지만 “이番처럼 緊張되고, 짜릿하고, 興奮된 게임은 처음”이라고 했다.

    바야흐로 韓國野球의 르네상스다. 1905年 필립 질레트 宣敎師가 이 땅에 野球를 移植한 지 103年이 지난 只今, 韓國野球는 史上 첫 올림픽 金메달을 목에 걸고, 프로野球는 500萬 觀衆을 向해 줄달음치고 있다.

    어린이들은 欌籠 속에 처박혀 있던 글로브를 꺼내 들고 캐치볼을 하고 있고, 어른들은 野球얘기를 술按酒로 삼는다. 大統領은 이승엽이 膳物한 野球帽子를 쓰고 청계천을 돌고, 팬들은 野球유니폼을 걸치고 野球場을 찾는다. 1982年 프로野球가 出帆할 때 내건 ‘어린이에겐 꿈을, 國民들에겐 餘暇善用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되살아나는 雰圍氣다.

    서울 도곡동 野球會館에서 KBO 河 總長을 만났다. 그는 特有의 구수한 목소리로 베이징올림픽 金메달의 뒷얘기와 人氣 絶頂으로 치닫는 프로野球의 復活, 韓國野球의 宿題와 未來에 關한 생각들을 털어놨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김경문 監督이 이끈 野球代表팀은 豫選 7競技와 準決勝, 決勝까지 9競技를 모두 이기는 ‘9戰 全勝 퍼펙트 골드’를 記錄했다. 野球 宗主國 美國을 무너뜨리고, ‘宿敵’ 日本을 두 次例나 擊破했다. 1992年 野球가 올림픽 正式種目으로 導入된 뒤 세 次例나 優勝한 아마추어 最强 쿠바마저 擊沈시켰다. 選手들에게도, 國民에게도 꿈만 같은 結果다. 河 總長은 올림픽 金메달 얘기를 始作하자 그때의 戰慄이 되살아나는지 한숨부터 내쉬었다.

    하일성  KBO 사무총장이 말하는 ‘베이징 신화’& 야구 르네상스

    베이징올림픽에서 金메달을 딴 韓國野球代表팀. 뒷줄 中央에 하일성 總長이 보인다.

    피 말리는 하루, 꿈같은 金메달

    “네덜란드戰(10-0 8回 콜드게임勝) 外에는 한 게임도 便安하게 본 적이 없어요. (눈을 감으며) 야~. 眞짜 꿈만 같아요. 選手들이 어떻게 그런 緊迫한 狀況을 모두 克服했는지 모르겠어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 選手들이나 코칭스태프나.”

    그의 말대로 게임마다 드라마였고, 映畫였다. 9回末 3아웃이 되는 瞬間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 名勝負였다. 그리고 勝利는 結局 韓國의 몫이었다. 8月13日 豫選 첫 競技인 美國前부터 피 말리는 싸움이었다. 8回까지 6-3 리드. 意外로 쉽게 풀리는 듯하던 競技 樣相은 9回初 마무리 投手 한기주의 ‘불쇼’로 因해 6-7로 뒤집혔다. ‘다된 밥에 코 빠뜨린 格’이 됐다. 그러나 韓國은 뒷심을 發揮하며 9回末 奇跡처럼 8-7 재逆轉勝을 거뒀다.

    “事實 美國戰에서 그런 게임을 한 게 轉禍爲福이 됐어요. 그때 우리가 逆轉敗했으면 結果는 몰랐을 겁니다. 再逆轉에 成功하면서 選手들이 自信感을 갖게 됐고, 코칭스태프와 選手들이 渾然一體가 되는 契機가 됐다고 봅니다. 美國戰에 졌다면 日本顚倒 글쎄요. 아마 겨우 4强에 턱걸이하지 않았을까요? 그랬으면 우리에겐 最上의 結果가 銅메달이었겠죠.”

    그는 예전 마이크를 잡고 解說하던 時節로 돌아간 듯 美國戰을 술술 服朞했다. 그러더니 올림픽 參加 直前 韓國팀이 構想했던 戰略의 斷面圖 公開했다.

    “올림픽 가기 前에 모두들 9戰 全勝 하겠다고 했지만 事實 그냥 그렇게 말했던 거죠. 目標는 銅메달이었어요. 事實 戰略은 이랬죠. 中國이야 우리가 쉽게 이길 수 있다고 보고, 강팀으로 꼽히는 美國 日本 쿠바 3팀 中 하나는 반드시 잡아야 1次 目標인 4强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동안의 經驗上 거꾸로 臺灣 네덜란드 캐나다 3팀 中 어느 한 팀에는 물릴 수도 있다고 봤어요. 戰勝 優勝이라는 건 생각도 안 했죠. 實際로 美國戰에 先發投手 봉중근에 이어 류현진 김광현 다 스탠바이 돼 있었어요. 왜냐하면 우리 스케줄이 美國戰 다음날 中국殿이었잖아요. 그래서 첫날 美國戰에 無條件 다 간다, ‘올인한다’고 計劃했죠.”

    어쨌든 美國戰 勝利는 金메달로 가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러나 旅程은 險難했다. 內心 콜드게임 勝까지 생각했던 2次戰 中國戰에서 좀처럼 點數를 뽑지 못하며 0-0으로 進行되더니 6回末 先頭打者 이종욱 打席 때 結局 雨天으로 ‘서스펜디드(一時停止) 게임’으로 宣言되기에 이르렀다.

    “事實 그날 中國戰이 繼續 이어졌으면 狼狽를 當하는 일이 생겼을지 몰라요. 美國을 기껏 이겨놓고 中國한테 졌으면 오히려 被害가 더 클 뻔했죠. 우리가 恒常 中국殿에서는 古典해요. 釜山 아시안게임 때도 中國戰에서 7回까지 0-0으로 갔잖아요. 稀罕하더라고.”

    河 總長의 金메달 豫知夢

    決勝戰 相對는 쿠바였다. 豫選에서 7-4 勝利를 거두기는 했지만 以前까지 네 次例 열린 올림픽 野球에서 優勝만 3番, 準優勝 1番을 차지한 强豪였다. 河 總長은 쿠바와의 決勝戰을 앞두고 꿈을 꿨다고 했다.

    “稀罕한 꿈이었어요. 죽은 姨從四寸이 나타나는 거예요. 저는 初等學校 5學年 때 父母님이 離婚하면서 혼자 自炊生活을 하면서 컸어요. 姨從四寸은 나하고 處地가 비슷하게 자란 同甲내기였는데 일찍 죽었어요. 그런데 그 親舊가 그렇게 꿈에 鮮明하게 나타나기는 처음이었어요. 眞짜 이게 幸運이 오는 건지, 反對가 되는 건지…. 어쨌든 잠에서 깨는 瞬間에 氣分이 宏壯히 좋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일이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죠. 나랑 親한 親舊였으니까. 나에게 힘을 주려고 나타난 게 아닌가, 이거 큰일 내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豫知夢(豫知夢)이었을까. 韓國은 1回 初 始作하자마자 日本戰에서 홈런砲 感을 잡은 이승엽이 또다시 2點짜리 홈런砲를 쏘아 올렸다. 1回末 솔로홈런을 내줬지만 그 스코어는 그대로 이어졌다. 7回 初, 올림픽에서 單 1個의 安打도 때리지 못한 9番 打者 박진만이 2死後 安打를 치고 나갔다. 1番 打者 이종욱의 볼넷 以後 이용규의 右翼線上 2壘打가 터지며 3-1. 아쉬운 것은 ‘번개발’ 이종욱이 아웃카운트를 錯覺해 스타트가 늦어 홈에 들어오지 못하고 3壘에 멈춰선 일이었다. 河 總長은 이에 對해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김동주가 競技 前에 박진만한테 그랬대요. ‘너 安打 하나는 치고 韓國 가야 할 거 아니냐’고. 弄談 삼아 했던 말인데 實際로 박진만이 正말로 必要할 때 大會 첫 安打를 치면서 3點째를 뽑았잖아요. 어휴, 그 點數가 아니었으면…. 그리고 얼마나 緊張했으면 野球道士인 이종욱이가 아웃카운트를 錯覺했겠어요. 그 발빠른 이종욱이 홈에 못 들어왔잖아요. 그 한 點 때문에 延長까지 안 가나 싶기도 했죠. 나도 미치겠더라고요. 2아웃이면 無條件 打毬소리가 나면 뛰어야 하는데. 選手들이 얼마나 緊張했는지 알 만했죠.”

    하일성  KBO 사무총장이 말하는 ‘베이징 신화’& 야구 르네상스

    KBO 하일성 總長은 베이징올림픽 期間 내내 鬚髥을 깎지 않았다.

    競技마다 反轉에 反轉이 펼쳐졌는데 하물며 決勝戰. 競技는 亦是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9回末 1死 滿壘 危機에 몰렸다. 엎친 데 덮친 格으로 主審의 볼 判定에 抗議하던 捕手 강민호가 退場당했다. 3-2, 犧牲플라이面 同點, 安打 한 放이면 끝내기 逆轉敗를 當할 수도 있는 絶體絶命의 瞬間, 허벅지 筋肉痛으로 뛰지 못하던 진갑용이 代身 마스크를 썼고, 마운드에는 정대현이 올라왔다.

    相對 打者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눈毒 들인다는 구리엘. 그러나 遊擊手 正面 땅볼. 遊擊手 박진만~2壘手 고영민~1窶籔 이승엽으로 이어지는 더블플레이가 瞬息間에 이루어졌다. 金메달 確定. 韓國選手團은 모두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얼싸안고 울었다. 歷史의 現場인 禹커송 메인필드를 찾은 觀衆도 萬歲를 불렀고, 一面識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韓國人이라는 理由만으로 뜨겁게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날은 充分히 울어도 좋은 날이었다.

    “率直히 얘기하면요. 마지막 더블플레이 하는 場面을 저는 現場에서 못 봤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릴 때부터 혼자 살았고, 越南戰에도 參戰해 제가 宏壯히 독한 面이 있는 사람인데 그 瞬間만큼은 못 보겠더라고. 眞짜. 너무 焦燥해서 野球場에서 나와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瞬間 宏壯한 喊聲소리가 들리더라고요. 安打를 내줬나, 他者를 잡았나 싶어 뛰어올라가려는데 거기에 設置된 TV 畵面에 더블플레이 場面이 다시 나오더라고요. 저 亦是 제精神이 아니었죠.”

    쿠바戰 끝까지 못 본 까닭

    選手들은 손과 손에 太極旗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리고 김경문 監督, 大韓體育會 이연택 會長이 太極戰士들로부터 헹가래를 받았다. 團長인 河 總長도 빠질 수 없었다.

    “前 어릴 때부터 野球를 했지만 가는 팀마다 弱해 優勝하고는 因緣이 없었죠. 제가 只今까지 헹가래를 쳐본 일도 없고, 헹가래 받은 일도 없었죠. 正말 몸도 마음도 하늘을 날았어요. 좋아하는 일에 從事하면서 金메달도 따보고…. 아마 내 平生 잊지 못할 겁니다. 解說家로서 感激的인 瞬間 現場에도 많이 있어봤지만 이番만큼은 아니었어요. 제가 죽어서 墓 앞에 碑石이 세워진다면 2008年 올림픽 金메달을 땄을 때 團長이었다고 꼭 써달라고 할 거예요.”

    그는 올림픽 期間 내내 面刀를 하지 않았다. 하얀 鬚髥이 얼굴을 뒤덮었다. 周圍에서는 “바지 벗는 시늉만 하면 짝퉁 羅勳兒”라는 弄談을 하기도 했다. 平素와는 달리 그는 靑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代表팀 競技들을 지켜봤다.

    “60 平生 살아오면서 그렇게 하나의 일에 集中하고 올인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鬚髥 기른 건 事實 징크스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요. 징크스라면 이番에 解說을 맡은 김성근 監督이 壓卷이죠. 金 監督이 하루는 洋襪을 안 신고 解說했더니 韓國이 이겼다면서 繼續 맨발에 구두 신고 나와서 마이크를 잡았어요. 하기야 이기면 속옷도 안 갈아입는 兩班이니….”

    그렇다면 그는 왜 鬚髥을 길렀을까.

    “過去 해태가 優勝할 때 일인데요. 當時 해태 버스技士가 털보였어요. 제가 김응룡 監督한테 ‘그 親舊 鬚髥 좀 깎으라고 그러세요. 道士가 온 것도 아니고’라고 했더니 金 監督이 ‘야, 걔는 우리 優勝할 때까지 鬚髥 안 깎는다고 했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해태 選手들이 버스技士 말을 가슴속에 담아두진 않았겠지만 버스 타고 내릴 때 보면서 技士의 말이 생각났을 거 아니에요. 그런 雰圍氣가 優勝으로 몰고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도 鬚髥을 한番 길러봤죠. 우리 代表팀 選手들이 느꼈는지 안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버스 타고 내릴 때 總長을 보면서 ‘金메달을 딸 때까지 鬚髥 안 깎는다고 했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金메달 따고 宿所에 돌아가서 새벽에 깎았어요. 처음엔 깎기 싫더라고. 멋있다는 얘기도 있어서.(웃음) 그냥 이대로 韓國에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시원하게 밀었죠. 참 優勝이라는 것이 虛脫하더라고요. 喜悅은 그 瞬間인 것 같아요. 모두들 그라운드로 뛰어나갈 때 그 瞬間.”

    國內로 눈길을 돌리면 프로野球가 ‘第2의 全盛期’를 맞고 있다. 1982年 出帆한 프로野球는 1995年 歷代 最多觀衆 540萬名을 記錄하며 人氣 絶頂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올 시즌, 13年 만에 두 番째 500萬 觀衆 突破를 期待할 만하다. 지난해 記錄한 410萬名을 이미 뛰어넘었다. 그야말로 프로野球 烈風이다.

    KBO 內 企劃部 新設

    河 總長은 計劃했던 만큼 프로野球 붐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일까. 그는 “半半이다”는 말부터 꺼냈다.

    “一旦 目標價 500萬 觀衆인데, 어쨌든 目標인 500萬 觀衆 突破 可能性이 생겼다는 건 鼓舞的인 일이죠.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아파트 옆에 初等學校가 있는데 어린이들이 요즘 全部 野球를 하더라고. 예전에는 蹴球나 籠球를 하고 있었는데. 結局 野球 金메달로 造成된 이 雰圍氣를 持續的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關鍵이겠죠. 또 하나의 問題는 롯데 中心으로 500萬 觀衆이 突破되는 것 같아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特定팀 中心보다는 모든 팀의 觀衆이 느는 게 重要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가장 重要한 건 運動場 施設 改善입니다. 이番 올림픽 때 신상우 總裁님이나 저나, 8個 球團 社長님들이 觀衆席에서 競技를 봤거든요. 總裁님이 그러시더라고요. ‘3時間, 3時間 半, 4時間 半 椅子에 앉아 野球를 보는데 힘들더라’고. 좋은 經驗을 했습니다. 結局 팬들이 野球場에서 便安하게 野球를 즐길 수 있어야 600萬, 700萬 觀衆도 바라볼 수 있는 거죠. 프로野球의 發展을 위해선 制度上 여러 가지 고칠 點이 있지만 亦是 가장 時急한 게 運動場 施設改善 問題입니다. 제가 總長에 就任했을 때 돔球場을 지을 수 있도록 努力하겠다고 했는데 總長이 되고 보니 돔球場보다 더 重要한 게 現在 있는 球場이라도 便安한 施設로 빨리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의 말은 事實 10年 前에도 나온 얘기다. 그러나 實行되지 않고 있는 狀況이다. 野球人들은 “요즘 사람들은 食堂도 駐車場이 없는 곳에는 잘 안 간다”면서 落後된 野球場 施設을 改善해야 한다고 主張한다. 河 總長은 이에 對한 構想도 밝혔다.

    “KBO도 企劃 能力을 補强할 必要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金메달을 契機로 프로野球가 나아가야 할 5年 後, 10年 後를 빨리 對備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KBO 內에 別途의 組織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KBO라는 組織을 總長으로서 管理하다 보니 두 가지를 느꼈어요. 프로野球를 컨트롤하는 리그 運營 能力은 相當히 뛰어나다는 거죠. 그렇지만 企劃 能力이 조금 不足하지 않나 싶어요. 프로野球가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이냐, 우리나라 實情에 8個 팀이 좋으냐, 10個 팀 或은 12個 팀이 좋으냐 하는 큰 밑그림부터 完成해야 합니다. 또 앞으로 首都圈에 돔球場이 생겼을 때를 對備해야 합니다. 팀들이 緣故地 移轉을 願할 境遇 現在의 緣故地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KT가 발 뺀 理由

    그렇다면 KBO는 어떤 準備를 하고 있을까. 그는 “企劃部를 新設해 企劃 能力을 極大化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特段의 措置도 必要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性急한 面도 있지만 프로野球가 果敢한 決斷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理事會나 團長會議를 통해 決定해야 할 問題이기 때문에 어느 時點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最小 2萬5000名을 受容할 수 있는 새로운 區長이 新設되지 않으면 프랜차이즈를 옮길 수 있다는, 極端的인 決斷이 나와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只今 1萬名이 들어가는 球場으로는 限界가 있어요. 特히 地方區長은. 駐車 問題, 먹는 問題, 化粧室 問題…. 最小 2萬5000名, 3萬名 以上을 收容할 수 있는 最新施設을 갖춘 運動場이 없는 都市에서는 프로野球를 안 하도록 해야죠. 그 都市에는 野球 緣故權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勿論 時間的 餘裕는 줘야겠죠. 準備期間과 工事期間도 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球團이나 KBO가 決斷을 내려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量的 膨脹에 成功한 프로野球지만 質的 成長도 圖謀해야 하는 狀況이다. 프로野球는 올 시즌을 앞두고 큰 紅疫을 치렀다. 현대球團을 引受할 企業을 찾지 못해 彷徨했다. KBO는 農協, STX, KT 等 堅實한 企業과 현대球團 引受協商을 進行했으나 成事 一步直前에서 일이 틀御旨祈禱 했다. 結局 1月初 가까스로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를 끌어들여 우리 히어로즈 球團을 創團해 8個 球團 體制를 維持하는 데는 成功했지만 히어로즈는 加入金 納入 問題를 비롯해 갖가지 雜音을 내며 프로野球 판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 過程에서 KBO의 일處理 未熟에 對한 批判도 잇따랐다. 河 總長은 이런 批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勿論 프로는 過程이 重要한 게 아니라 結果가 重要하니까 우리 보고 失策이라고 하면 그 責任에 對해 回避는 안 하겠어요. 그렇지만 分明히 짚고 넘어갈 것은 현대球團 問題는 저하고 總裁님이 就任하기 前부터 불거진 問題였습니다. 6年 前부터 있던 問題인데 저희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니 답답하기도 하죠. 勿論 우리가 未熟한 面이 있었죠. 말이 앞섰고, 成事되기 前에 너무 일찍 暗示를 주기도 했으니까. STX 境遇는 제가 서툴렀어요. 協商을 하기 위해 直接 會社로 찾아갔으니까요. 當時 엘리베이터에 STX 職員들하고 같이 탔더니 대뜸 ‘우리 會社 野球해요?’라고 묻더라고요. 保安이 重要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했던 거죠. 그 다음부터는 協商하는 會社 近處에는 얼씬도 안 하게 됐어요. KT와 만날 때는 큰 호텔도 아니고, 자그마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고 그랬죠. STX는 創團하기로 해놓고 情報가 새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죠. KT는 團長 鄭在浩, 監督 김시진, 플로리다 轉地訓鍊 日程까지 다 잡아놨어요. 유니폼도 定하고. 그리고 KT에서도 直接 創團 發表를 했잖아요. KT가 발을 뺀 것에 對해 只今은 말 못해요. 眞實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입니다. 結果만 놓고 보면 할 말 없죠.”

    하일성  KBO 사무총장이 말하는 ‘베이징 신화’& 야구 르네상스

    베이징올림픽 當時 김경문 監督과 함께.

    그는 “프로野球 붐을 타고 現在 프로野球 創團과 關聯해 KBO에 問議를 하는 企業은 있다”고 밝혔다.

    “最近 經濟狀況이 어려워졌지만 關心을 갖는 데가 5~6個 있어요. 프로野球 創團 費用은 얼마나 드느냐, 緣故權은 어디를 줄 수 있느냐, 選手 需給은 어떻게 해줄 수 있느냐고 問議를 해오는데 어떻게 열매를 맺느냐가 重要하죠. 우리 能力이기도 하고. 우리도 失敗를 經驗해봤고, 腹案도 가지고 있어요. 쉽지는 않은 問題들이 버티고 있지만 풀자고 하면 쉽게 풀립니다. 極祕裡에 많은 部分이 進展되고 있어요. 內部的으로 움직이는 것도 있고. 保安이 重要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 밝히겠지만 우리도 熱心히 努力하고 있으니까 지켜봐주세요.”

    野球는 最近 世界化를 推進하고 있다. 그러면서 國際大會가 頻繁하게 벌어지고 있다. 2005年부터 韓國 日本 臺灣의 프로野球 優勝팀과 中國 代表팀이 參加하는 아시아시리즈가 開催되고 있고, 2006年에는 메이저리그 選手들이 모두 參加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李 열렸다. 來年 3月에는 第2回 WBC가 열린다. 韓國野球는 2006年 WBC 4强 神話와 이番 올림픽 金메달 獲得으로 世界의 注目을 받고 있다. 그동안 世界野球의 邊方에 머물러 있었으나 主流로 編入할 수 있는 絶好의 찬스를 맞은 셈이다. 河 總長은 韓國野球의 質的 水準은 이미 世界 頂上級으로 올라섰다고 診斷했다.

    “이렇게 봐야 될 거예요. 우리 野球水準을 오히려 우리가 낮게 보고 있지 않았느냐. 國內에서 評價하는 것보다 높은 水準이었는데. 韓國野球가 世界 水準으로 올라섰다는 徵候는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웬만한 外國人 選手는 이제 韓國프로野球에서 안 通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 失敗한 傭兵이 日本에서 成功하기도 하고, 日本에서 괜찮다는 評價를 들은 選手가 우리나라에서 失敗하고. 勿論 風土가 다르고 環境도 달라 適應問題라는 變數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롯데 제리 로이스터 監督이 그랬잖아요. 우리나라 올스타 程度면 메이저리그와 붙어볼 만하다고.

    WBC, 김경문 監督 또 指揮棒?

    1990年代 슈퍼게임만 해도 日本을 이긴다는 생각을 못했죠. 쿠바요? 三星 김응룡 社長이 그랬잖아요. 콜드게임牌만 안 當하면 잘한 거라고. 제 생각에는 韓國野球가 WBC보다 한 段階 업그레이드된 게 아닌가 싶어요. 잘 생각해보세요. 現在의 우리 國家代表 選手들로 한 팀을 構成하고, 8個 球團의 나머지 프로野球 選手 中 한 팀을 만들어 7次戰을 붙는다면 果然 누가 이긴다고 壯談할 수 있겠어요? 그만큼 우리 選手層度 두터워진 거라고 볼 수 있죠. 過去에는 國家代表 한 팀을 만들면 그 다음 팀은 못 만들었어요. 이제는 만들 수 있어요.”

    WBC 4强 神話에 이어 올림픽 優勝까지 차지하면서 韓國野球는 世界의 關心을 받는 同時에 牽制의 對象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또 다른 側面에서 본다면 이제는 世界頂上圈의 位置를 어떻게 지켜나가느냐 하는 宿題를 안게 됐다. 그만큼 負擔도 커진 狀況이다.

    “그런 質問을 많이 받는데 率直히 只今은 金메달 딴 것만 즐기고 싶어요. 以後는 생각하고 싶지 않죠.(웃음) 問題는 WBC를 어떻게 準備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實際로는 發表가 안 돼서 그렇지 準備하고 있어요. 어디서 묵고, 어디서 訓鍊할 것인지 다 決定해놨어요. 이제 選手構成만 하면 돼요. 第一 重要한 게 누구를 監督으로 選任하느냐 하는 問題죠. 代表팀 監督에 따라 코칭스태프와 選手構成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事實 올림픽 갔다 와서 김경문 監督하고 WBC 監督 問題에 對해서 딱 한 番 얘기를 하긴 했어요. 그런데 金 監督도 只今은 金메달만 즐기자고 하더라고요. 結論은 그렇게 하고 끝냈어요. 金 監督도 只今은 시즌 막바지라 所屬팀 神經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金 監督이 代表팀을 비롯해 監督을 다시 맡을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韓國시리즈까지 끝나면 監督 選任問題부터 빨리 解決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이番 올림픽의 成果 中 하나로 ‘世代交替’를 꼽았다. 2006年 WBC만 하더라도 구대성 이종범 等 旣存의 베테랑 選手들이 必要했지만 이番 올림픽에서 김광현 류현진 윤석민 等 마운드의 營建들이 猛活躍을 펼쳤고, 打線에서도 김현수 이용규 이종욱 정근우 이대호 강민호 等 젊은 打者들이 主軸勢力으로 浮上했다.

    하일성  KBO 사무총장이 말하는 ‘베이징 신화’& 야구 르네상스

    하일성 總長의 野球解說家 全盛期 때 모습.

    “解說 그만둘 때 白紙契約書 받아”

    “鼓舞的인 일이죠. 世代交替가 다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遊擊手에서 박진만을 代替할 選手가 아직 確實히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려요. 박진만의 守備는 次元이 다르잖아요. 欲心 같아서는 國家代表 常備軍을 繼續 維持하고 싶기도 하죠. 김현수 같은 選手도 常備軍에서 나왔으니까. WBC가 來年 3月에 열리는데 代表팀 練習競技 相對도 必要하고. 그러기 위해선 代表팀과 常備軍이 2月 中旬쯤 召集돼야 하는데 問題는 프로팀들이 한창 스프링캠프를 치를 時點이라 訓鍊에 蹉跌을 빚을 수 있다는 點이죠. 그래서 苦悶이에요.”

    1979年 동양방송에서 解說을 始作해 29年 동안 마이크를 잡은 그는 2006年 5月 任期 3年의 第11代 KBO 事務總長에 就任했다. 2年 半假量의 時間이 흘렀고 그동안 迂餘曲折도 많았다. ‘國民 解說家’로 立志傳的 神話를 쓴 그지만 韓國프로野球를 總括하는 事務總長 자리에 앉은 다음에는 輿論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저는요, KBS에서 解說 그만둘 때 放送局으로부터 白紙契約書라는 것도 받아봤어요. KBS에서 願하는 거 다 들어주겠다고. 解說家로서 幸福하게 살아온 거죠. 2002年 1月 心臟病으로 쓰러져 手術을 받았는데 4月에 다시 마이크를 잡았어요. 當時 放送 쪽에서 ‘저 사람 일을 시켜야 산다’면서 解說을 시켰는데 正말로 그게 다시 健康을 回復한 決定的인 契機가 됐어요. 그런데 當時 事務總長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친놈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解說을 그만뒀죠. 처음에는 意欲만 앞섰고, 計劃도 뒷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失手도 많았고. 지나고 보니 ‘이게 아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事實 살아오면서 이렇게 辱을 많이 먹은 적도 없죠. 自尊心도 自尊心이지만 家族들에게, 아는 사람들에게 하일성이가 어떻게 비칠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只今 와서 보니 辱 먹을 때는 ‘나의 말이나 行動이 그렇게 비칠 수도 있었겠구나’ 알겠더라고요.”

    그의 마지막 꿈은 무엇일까. 그는 事務總長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다시 ‘解說家 하일성’으로 살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解說할 일 다시 없다”

    “이젠 解說할 計劃은 없어요. 큰 大會 客員解說가나 스페셜게스트로 放送社의 要請이 온다면 한두 番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專門的으로 마이크를 잡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能力이 있다면 事務總長 그만두면 리틀野球 쪽에 關與해 일을 하고 싶어요. 꼭 하나 해놓고 나가고 싶은 건 있어요. 實業野球 復活입니다. 幼少年野球를 많이 얘기하는데, 幼少年野球 發展을 위해서라도 實業野球가 復活해야 합니다. 只今 實業팀이 없으니 프로팀 指名을 못 받은 選手들은 갈 데가 없죠. 社會人으로서 生活할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어린이들이 野球를 하지 않겠습니까. 實業野球 1~2팀이라도 만들어 聯盟의 틀을 잡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學生野球가 授業을 제대로 받고 野球를 하는 風土를 먼저 만들어야겠죠. 勿論 이것은 대한야구협회에서 할 일이지만, KBO와 대한야구협회度 密接한 關係가 있고 나도 野球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協力해서 이런 雰圍氣를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아요. 野球選手가 野球機械만 돼서는 안 됩니다. 野球選手 出身이 會社에서 일도 잘한다는 評判이 자꾸 나와야 實業野球팀이 繼續 생길 것 아니겠어요? 日本의 社會인 野球,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돼요. 그리고 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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