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健熙 會長은 거짓말?辨明하는 사람을 第一 싫어했어요” [+映像]|新東亞

“李健熙 會長은 거짓말?辨明하는 사람을 第一 싫어했어요” [+映像]

[經濟思想家 李健熙 探究?] 李健熙 會長 別世 3年, 김인 前 三星SDS 社長 證言下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3-11-13 09:00:01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누가 만드는가’가 重要한 時代

    • ‘量的 國際化’는 限界 逢着, ‘質的 國際化’가 갈 길

    • 1人當 1億 원, 地域專門가 制度가 낳은 것

    • 三星 國際化 祕密 兵器 ‘未來戰略그룹’

    • 메이드 人이 아니라 ‘메이드 바이’

    [+映像] 김인 前 三星SDS 社長 "이건희 會長은 내게 스승이자 멘吐였다"



    [+映像] 半導體 戰爭 中인 只今은 '李健熙' 다시 읽을 때



    2005년 경북 구미시 휴대전화 공장 방문. [동아DB]

    2005年 慶北 龜尾市 携帶電話 工場 訪問. [東亞DB]

    ‘國際化, 現地化’는 ‘複合化’ 槪念과 함께 李健熙 會長이 新經營 宣言에서도 매우 强調한 槪念이다.

    當時 이 會長은 앞으로 三星뿐 아니라 國內 다른 業體들의 生産基地가 繼續 海外로 移轉하는 狀況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過程에서 가장 必要한 것이 國際化에 對한 理解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會長이 肉聲으로 남긴 말이다.

    “冷藏庫를 開發할 때에도 東南亞에도 같이 팔 수 있는 金型을 만든다면 金型 50萬 個 한 것을 나중에 東南亞로 옮겨 30萬 個 돌려도 된다.



    現地 外國人들에게도 三星 精神을 심어라, 情報 政治 動向 모두 모아라. 世界 모든 地點을 통해 業種別로 資料를 모아 피드백시켜라, 電子·重工業·電氣·專管·航空 等은 한 會社다. 서로 壁 치지 마라. 三星맨은 三星 아래 하나다. 이것이 國際化 時代에 必要한 意識이다.”

    2005년 태국 사업장 방문. [동아DB]

    2005年 泰國 事業場 訪問. [東亞DB]

    冊 ‘생각 좀 하며 世上을 보자’에 收錄된 ‘이제는 地球村 經營’이란 글에는 國際化, 世界化에 對한 이 會長의 哲學이 잘 담겨 있다.

    只今은 世界化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글로벌 分業體系가 흔들리는 世上이라 隔世之感이 느껴지지만 우리가 世界化를 막 始作하던 時點인 1990年 初盤 그의 눈에 보인 새로운 世上이 以後 그대로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새삼 그 洞察力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世上은 또 어떻게 펼쳐질까 質問을 갖게 된다. 그런 點에서 意味가 있어 보여 專門을 引用해본다.

    “過去 우리는 國産 製品의 競爭力을 높이는 것을 至上 課題로 알고 努力해 왔다. 우리 資本으로, 우리 손으로 우리나라 工場에서 生産한 國産品이 日帝, 미제와 競爭해 世界市場에 堂堂히 進入했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기뻐했다. 이는 經濟發展 初期 段階에 國內 生産 基盤을 確保하기 위해서는 當然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라別로 競爭力이 差別化되고 사람, 資本, 情報가 國境을 넘어 자유롭게 移動하면서 汎世界的인 分業이 一般化되고 있다. 例를 들어 GM의 이름으로 美國에서 販賣되고 있는 自動車들의 內容을 들여다보면 美國 商標가 붙어 있는 게 異常할 程度로 여러 나라가 關聯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엔진과 電子部品은 日本 會社에서 調達하고 디자인은 獨逸 會社가 맡는다. 其他 一般 部品은 臺灣 會社 製品이다. 마케팅은 英國 會社에 맡기고 마케팅 戰略은 GM과 뉴욕州 辯護士가 擔當한다. 美國 自動車 會社가 擔當하는 것은 一部 組立 生産뿐이다. 이 自動車는 果然 어느 나라 自動車일까.

    이제 製品 競爭은 國家 間 競爭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장 좋고 싸게 그리고 가장 많이 팔 수 萬 있다면 한 製品의 生産·販賣를 위해 여러 國家의 資源을 活用해야 한다.

    韓國 企業들도 賃金이 올라가는 等 國內 立地 條件이 限界를 나타내자 海外 生産의 利點을 찾아 나서기 始作했다. 中國·東南亞의 값싼 勞動力, 유럽聯合(EU)의 積極的인 政府 支援 等 더 나은 經營 與件을 찾아 쉴 새 없이 移動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 만드는가(made in)는 意味가 없어지고 누가 만드는가(made by)가 重要한 時代다. 예전에 國産 製品 만들기가 우리의 至上 課題였던 것처럼 이제는 世界 分業에 能動的으로 參與해 世界的인 競爭力을 갖추는 것이 새로운 時代의 課題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國際化도 ‘攘夷 아닌 質’로 勝負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無國籍 商品을 만들게 하는 經營 環境을 우리는 超國籍 企業의 繁昌에서 實感한다. 超國籍 經營은 企業의 國際化에서 進一步한 또 다른 形態의 企業 經營이라고 할 수 있다.

    企業에 있어서 只今까지의 國際化는 團地 海外市場에서 物件을 잘 팔기만 하면 되는 經濟的 理由에서 이루어져 왔다. 原價를 줄이기 위해 勞動費가 싼 地域에 現地 工場을 建設하고 物件이 팔리는 地域에 販賣 據點을 세우는 式이었다.

    그러나 ‘量的 國際化’는 어느 사이엔가 限界에 逢着하고 말았다. 그 나라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企業은 그 나라 消費者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다는 單純한 理由에서다. 世界 有數의 先進 企業들은 量的 國際化에서 한발 前進해 ‘質的 國際化’를 推進하고 있다. 바로 超國籍 經營이 質的 國際化의 實體라 하겠다.

    機關車, 發展 設備, 로봇을 만드는 中前(重電) 分野의 超一流 企業인 ABB는 世界 140餘 個國에 1300餘 個의 子會社를 갖고 있다. 本社는 취리히에 있지만 本社를 비롯한 모든 子會社가 英語를 公用語로 쓰고 있고, 子會社의 經營 活動은 現地人 經營者가 책임지고 決定한다. 우리도 모든 것을 國內에서 決定하겠다는 우물 안 개구리式의 發想을 버릴 때가 왔다.”

    삼성그룹 人事 達人의 證言

    삼성그룹에서 30年 넘게 人事管理를 해온 노인식 前 三星構造調整本部 人事팀長은 李 會長이 地域專門가 制度를 정착시키기 위해 얼마나 心血을 기울였는지 생생하게 記憶하고 있었다.

    “저는 會長님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地域專門가 制度라고 생각합니다. 1年間 業務에서 完全히 벗어나 海外市場(國家)을 硏究하도록 한 이 制度는 正말 破格的이었습니다. 會社 立場에서는 業務 空白까지 勘案하면 엄청난 投資였지요.

    “지역전문가 여성 비율을 30%로 늘려라” “5년, 10년 후를 내다보고 지역전문가를 전략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건희 회장. 2012년 4월 모습이다. 이 회장은 “지역전문가 제도에 대해 특별히 애착이 있다”며 “1987년 회장이 되자마자 추진한 것이 지역전문가와 탁아소 제도였는데 당시 반대가 많아 앞을 내다보지 않는 회사가 답답했다”고 말했다. [동아DB]

    “地域專門家 女性 比率을 30%로 늘려라” “5年, 10年 後를 내다보고 地域專門家를 戰略的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李健熙 會長. 2012年 4月 모습이다. 李 會長은 “地域專門가 制度에 對해 特別히 愛着이 있다”며 “1987年 會長이 되자마자 推進한 것이 地域專門家와 託兒所 制度였는데 當時 反對가 많아 앞을 내다보지 않는 會社가 답답했다”고 말했다. [東亞DB]

    會社 利益이 몇百億 程度 나던 時節인데 ‘1年에 1人當 1億 원을 投資하는 것은 費用이 너무 많이 듭니다’라고 말씀드리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惹端을 치셨어요. 地域도 草創期에 先進國 中心으로 보낸다고 혼난 적이 있어요. 未來에 三星이 進出할 第3世界 쪽으로 많이 보내라고 하시면서 말이죠.

    한番은 地域專門家로 派遣된 職員이 現地 高位層 子女와 結婚해서 歸國하지 않은 境遇가 있었습니다. 혼날 覺悟를 하고 보고 드렸더니 ‘그게 眞짜 地域專門家다. 다시 돌아오고 말고는 重要한 게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現地에서 韓國에 對해 좋게 말하게 돼 있다. 그러니 꼭 우리 會社에 있을 必要가 없다. 우리가 아직 國際化가 되어 있지 않으니 大韓民國을 위해서도 그런 사람들이 資産이 되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會長님은 이렇게 三星만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아주 細細한 部分까지 챙기셨습니다. 工夫를 마치고 돌아온 地域專門家들을 相對로 語學 테스트를 했다고 報告드렸더니 ‘아니, 그 나라 말만 잘하면 되지 筆記試驗까지 봐서 왜 士氣를 떨어 뜨리냐’는 叱責도 하셨죠.

    地域專門家로 養成된 人力들은 10年 後 駐在員 等으로 派遣돼 제대로 된 實力을 發揮했습니다. 그런 破格的인 人材 養成 制度가 結局 三星이 글로벌 超一流 企業으로 發展할 수 있었던 動因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三星의 前職 任員들이 評하는 地域專門가 制度는 大部分 肯定的이었다.

    “처음에 實施할 때는 너무 破格的이어서 反對도 있었지만 後날 現地에서 工夫한 사람들이 實力을 갈고닦아 法人長으로 나가 現地 文化에 녹아드는 業務를 잘해 善循環이 이뤄지는 體系로 자리 잡히는 데 寄與했다고 본다.”(손욱 前 院長)

    “처음 制度가 생길 때 半導體에서만 300名을 내보내라고 하시는데, 아니 사람이 없어 일을 못 해 죽겠는데 무슨 말씀인가 했었다. 하지만 結果的으로 그때 키워진 地域專門家들이 世界 各地의 삼성전자 ‘法人長’李 돼 實績을 내는 데 赫赫한 功을 세웠다.”(진대제 前 三星前者 社長)

    “내가 中國에 있을 때에는 많이 올 때 한 해 100名씩 왔다. 正말 想像도 못 할 程度로 어마어마했다. 後날 이 사람들이 中國 市場 開拓에 엄청난 힘이 됐다.”(박근희 前 三星生命 副會長·前 大韓通運 副會長)

    “敵을 알고 싸우는 것과 모르고 싸우는 것은 次元이 다르지 않나. 地域專門家를 거친 職員을 該當 國家로 다시 내보내면 本社와 海外 支社의 狀況을 두루 理解하고 現地에 實戰 投入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現地 適應 時間을 大幅 短縮하고 機會를 先占할 수 있었다.”(배동만 前 社長)

    한便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地域專門가 制度를 三星이 글로벌 企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戰略으로 꼽기도 했다.

    CEO 돕는 世界 最高 戰略 參謀

    記者는 最近에 地域專門가 制度의 또 다른 軸이었던 ‘글로벌 MBA’ 過程에서 始作해 法人腸이 돼 유럽에서 三星 브랜드 成功 神話를 이뤄낸 前職 三星맨의 體驗談을 接했다.

    英國과 프랑스 法人長, 유럽總括社長을 지낸 김석필 氏가 펴낸 冊 ‘三星, 유럽에서 어떻게 名品브랜드가 되었나’에서였다. 그가 걸어온 길은 앞서 배 前 社長이 말한 생생한 事例다. 冊 內容의 一部다.

    “1993年 新經營 實踐 戰略 가운데 하나가 國際化였다. 여러 國際化 課題 가운데 ‘地域專門家 프로그램’과 ‘글로벌 MBA 프로그램’이 있었다. ‘地域專門家 프로그램’은 代理나 課長級 職員을 海外로 내보내 1年間 現地에서 자유롭게 生活하도록 하면서 國際 經驗을 體得하게 하는 方式이었다.

    이에 비해 ‘글로벌 MBA 프로그램’은 中堅 幹部 中에서 未來 經營者로 養成할 人材를 選拔해 世界的인 MBA 敎育機關에서 敎育받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에 選拔되어 1996年 프랑스 파리 그랑제콜에 入學해 2年 課程을 마쳤다. 美國으로 간 사람들은 하버드나 스탠퍼드 같은 名門 大學에 갔다. 나는 大學에서 프랑스語를 專攻했기에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MBA를 履修하는 2年間 꽤 破格的인 惠澤이 주어졌다. 會社에서는 月給을 그대로 다 주었고 學費와 現地 住居費, 生活費까지 주었다. 나는 그저 工夫만 하면 되었다.

    내가 다닌 學校는 HEC(Ecole des hautes etudes commerciales de Paris)인데, 1881年에 設立된 經營大學院으로 프랑스 最高 名門 學校였다. 當時 글로벌 MBA 프로그램은 ‘소시오(Socio) MBA’와 ’테크노(Techno) MBA’로 나뉘었는데 理工系 出身은 테크노 MBA, 人文系 出身은 소시오 MBA로 區分해 選拔했다. 選拔 人員은 스무 名쯤이었고 나는 그 프로그램이 施行된 두 番째 해에 選拔되었다.”

    그는 MBA를 마치고 돌아와 1997年 그룹 內에 만들어지는 새 組織인 ‘未來戰略그룹’ 設立 構成員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三星에서 國際化를 위해 施行한 또 다른 組織의 하나로 ‘未來戰略그룹’이란 게 있었는데, 新聞 記事에는 ‘三星 國際化의 祕密 兵器’라고 言及되던 곳이다. 新經營 方針에 따라 그룹의 모든 經營者가 本格的으로 國際化를 實現해야 했지만 곧바로 할 수 있는 狀況은 아니었다.

    그래서 世界 最高 水準 MBA 出身들을 스카우트해서 CEO들의 戰略 參謀로 옆에 두는 方式을 計劃한 것이었다. 하지만 外國에서 온 人材들이 言語와 文化 差異 等으로 인해 孤立될 수도 있었다. 이 MBA 出身 外國人들을 한곳에 다 모아 組織化한 것이 바로 ‘未來戰略그룹’이었다. 그렇게 20~30名으로 構成된 ‘人 하우스 컨설팅’ 形態의 그룹이 만들어졌다.

    프랑스에서 MBA를 마친 나는 未來戰略그룹에서 電子 分野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그룹 祕書室에서 만든 組織이어서 나처럼 삼성전자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金融事業否認 삼성생명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나는 三星電子의 디지털 戰略이나 世界化 戰略 같은 未來型 프로젝트를 遂行했다.”

    여기서 5年間 일한 그는 2005年 1月 英國 法人長으로 發令받아 2006年까지 런던에서 일하고 2007年부터 2010年까지 프랑스 法人長으로 파리에서 일하면서 全 世界 三星 法人 가운데 最初로 프랑스에서 携帶電話 市場占有率 1位를 達成하는 成果를 냈다고 한다.

    이어 2011年부터 2013年까지 3年間 삼성전자 유럽總括을 맡아 ‘유럽 市場에서 가장 選好하는 브랜드 1位’와 삼성전자에서 最高 賣出 成長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以後 서울로 돌아와 삼성전자 마케팅 總責任者(Chief Marketing Officer·CMO)로 일했는데 外部 學者나 專門家가 하던 일을 內部 人士가 맡은 境遇는 異例的이었다고 한다.

    大韓民國 野球 歷史 傳說 쓴 김인

    이제 김인 前 社長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그는 祕書室 勤務를 마치고 1995年 三星SDI 獨逸 法人長(상무)으로 자리를 옮긴 뒤 營業本部長(全無), 디지털디스플레이 營業本部長(副社長)으로 7年間 일한다. 그러다 갑자기 서울 호텔新羅 總支配人(副社長) 發令을 받는다. 그때 李健熙 會長과 겪은 에피소드를 紹介했다.

    “SDI에서 일할 때 브라질 出張 中이었는데 SDI 社長님이 갑자기 ‘只今 빨리 좀 들어와야겠다’고 해서 急히 들어오니, ‘호텔신라 監査를 했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改革이 必要하다’는 結論이 나서 저더러 가라는 겁니다.

    허태학 社長 指揮 아래 제가 서울 總支配人, 그 밖에 海外 經驗이 있는 사람들로 해서 社員까지 그룹에서 總 13名이 들어갔어요. 12月에 들어가서 일이 始作됐죠.

    李健熙 會長님은 호텔新羅를 利益이라는 槪念보다는 그룹의 프레스티지, 다시 말해 品格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立場이셨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事實 호텔이라는 곳은 먹고, 자고, 生活하고, 會議하고, 運動하고, 손님도 만나고 하는 서비스의 모든 것이 모여 있는 空間 아닙니까.

    호텔新羅야말로 그런 點에서 ‘最高’라는 名聲과 品格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IMF外換危機를 거치면서 生存이 위협받다 보니 食資材에서부터 經費 節減을 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人力도 줄고 서비스 質은 漸漸 더 안 좋아지고 손님들로부터 클레임이 오는 惡循環이 생긴 거죠. 그래서 監査가 있었던 거고 改革을 위한 TF팀이 들어간 거였죠.

    會長님은 호텔新羅에 對한 愛情이 宏壯히 降下셨어요. 저희 팀이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直接 日本 願書를 50餘 卷 보내셨어요. ‘호텔經營’ ‘總 支配人의 役割’ ‘호텔의 F&B(Food & Beverage)’ 이런 冊들이었습니다.

    그걸 한 사람이 다 볼 순 없으니 팀員들이 各自 맡은 業務랑 第一 가까운 冊을 골라 나눴습니다. 저도 5卷을 割當받았어요.

    이걸 어떻게 읽을까 하다가 飜譯者를 求해 卷當 30페이지 程度로 要約을 했습니다. 다섯 卷 中에서 두 卷의 要約本을 받아 읽고 있는데 갑자기 會長님이 저희들을 宅으로 呼出하셨습니다. 그러면서 第一 먼저 물으시는 게 ‘冊 읽었느냐’였습니다.

    다들 ‘아직 다 못 읽었습니다’ 했습니다. 제 順序가 왔어요. 저는 ‘아직 다 읽지는 못하고 外部에 飜譯을 맡겨서 要約本으로 두 卷을 읽었습니다’ 했지요. 그랬더니 “內容이 뭔데?”라고 물으세요. 確認까지 하신 거죠.

    어떻든 그 자리에서 그렇게라도 冊을 읽은 사람은 저 혼자였던 것으로 記憶합니다.

    다들 會長님께서 冊을 보내놓고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설마 確認까지 하실 줄은 想像도 못 했는데 저는 적어도 會長님이 直接 冊을 보내셨을 때는 그냥 보내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日本에서 直接 救한 願書를 보내셨을 때는 깊은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다시 말해 ‘내가 이렇게 호텔新羅에 關心이 많으니 改革팀이라면 當然히 先進 호텔 서비스에 對해 工夫를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마음아니었을까 읽혀졌었습니다.

    저는 보내신 冊을 보고 그 熱情이 참으로 대단하시다, 이러니 내가 더 工夫해서 더 알아야 되겠다는 欲心이 생겼어요. 그래서 窮餘之策으로 要約本이라도 읽어보려 한 건데 그 자리에서 그나마 免避가 된 거죠(웃음).”

    그에게 “안 읽으신 분들은 魂이 많이 났나”고 물으니 微笑로만 答했다.

    말씀을 듣다 보면 成功한 月給쟁이의 態度는 어때야 하냐는 가르침을 듣는 것 같습니다. 日本 原書 에피소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指示한 商社의 立場에서 생각해 보는 習慣이 重要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묻고 싶은 質問이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月給쟁이를 했나요.

    “저는 일을 맡을 때 責任感, 미션, 使命이라는 單語를 떠올렸습니다. 熱心히 最善을 다하면 된다는 마음이었죠. 三星SDS 社長을 8年 하고 나서 ‘이제는 물러날 때’라고 생각했는데 三星라이온즈 社長 發令을 받았습니다. 野球 룰조차 제대로 몰랐는데 말이죠.”

    그런데도 社長 在職 時節 正規시리즈와 韓國시리즈 優勝을 합친 統合 優勝을 4年 連續 이끌어냈으니 大韓民國 野球社에서 커다란 奇跡을 이룬 건데요, 祕訣이 뭐였을까요.

    “遠征競技 包含해서 한 競技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選手들과 生活을 같이 했죠. 光州 釜山 大邱 다니느라 運轉技士가 苦生 많이 했습니다.”

    더 듣고 싶었는데 그는 손사래를 쳤다. 李健熙 會長에 對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謙遜함이 몸에 밴 듯했다.

    篤實한 가톨릭 信者로 只今도 每日 默珠를 들고 散策을 하거나 聖經을 읽는다는 그는 라이온즈 社長 時節에도 試合이 열리는 地域에 꼭 한 時間 前에 到着해 隣近 聖堂에서 祈禱했다고 한다.

    문득 李健熙 會長이 第一 싫어했던 職員은 어떤 部類였는지 궁금하네요.

    “거짓말하거나 辨明하는 사람을 第一 싫어하셨습니다. 사람이 야단맞다 보면 自己도 모르게 辨明이 나오잖아요. ‘잘못했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하면 되는데 ‘저만 잘못한 게 아니고요. 다른 競爭社도 마찬가지고요’ 하면서 辨明이 나옵니다. 그러면 아이고, 魂쭐이 났습니다.”

    그런데 누가 일부러 敢히 會長에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제가 여기서 말하는 거짓말은 다른 게 아니라 지키기 어려운 約束을 하거나 그 자리를 當場 謀免하기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누구를 그저 감싸는 말도 거짓말입니다.

    會長님한테는 있는 그대로를 말해야 해요. 左右間 會長님한테서는 어떤 境遇도 거짓말은 안 된다, 모르면 모른다고 야단맞는 게 낫지 괜히 아는 것처럼 行動하다가는 큰일 난다 이걸 배웠습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