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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責任은 穩全히 나의 것입니다”[정미경의 이런英語 저런美國]|東亞日報

“모든 責任은 穩全히 나의 것입니다”[정미경의 이런英語 저런美國]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11月 12日 12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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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機의 瞬間에 빛나는 ‘戰爭 英雄’ 大統領
率先垂範 리더십·끈끈한 同僚愛 國民에 龜鑑

美國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英語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鄭美京의 이런 英語 저런 美國’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關心事인 示唆 뉴스와 英語 工夫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同時에 충족시킬 수 있는 空間입니다. 아래 링크로 購讀 申請을 해주시면 記事보다 한 株 빠른 月曜日 아침 7時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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梨泰院 핼러윈 慘事 後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은 哀悼 聲明을 發表했다. 寫眞은 5月 메모리얼 데이(顯忠日) 때 알링턴 國立墓地 無名勇士 墓에 獻花하는 바이든 大統領. 白堊館 홈페이지
“Jill and I send our deepest condolences to the families who lost loved ones in Seoul.”
(質과 나는 서울의 遺家族들에게 매우 깊은 哀悼를 표한다)

梨泰院 핼러윈 慘事에 對한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의 聲明입니다. 遺家族에 對한 哀悼, 韓美關係의 굳건함 等이 담겨 있습니다. “the United States stands with the Republic of Korea during this tragic time”(美國은 이 悲劇的인 時期에 韓國과 함께 하겠다)이라는 文章으로 끝을 맺습니다. 다른 나라 指導者들이 보낸 弔意文度 거의 비슷한 內容입니다. 悲劇的인 事件事故 後 보내는 慰勞에는 ‘send deep condolence’(깊은 哀悼를 보낸다)라는 文句가 들어갑니다.

이番 事故 現場에는 義人(義人)들이 있었습니다. 心肺蘇生術(CPR) 等을 도우며 救助 活動에 힘쓴 이들은 自身의 善行을 내세우기 보다 더 많은 生命을 救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眞正한 ‘市民 英雄’입니다.

美國에는 戰爭이라는 危機의 瞬間에 빛나는 리더십과 同僚愛로 國民에 龜鑑이 된 大統領이 여러 名 있습니다. 美國人들의 사랑을 받는 ‘war hero president’(戰爭 英雄 大統領)에 對해 알아봤습니다.


1943년 솔로몬제도에 정박한 어뢰정 PT-109호 앞에서 부대원들과 존 F 케네디 중위(오른쪽 끝)
1943年 솔로몬諸島에 碇泊한 魚雷艇 PT-109號 앞에서 部隊員들과 존 F 케네디 中尉(오른쪽 끝)
“It was involuntary. They sank my boat.”
(本意 아니게 그렇게 됐다. 敵들이 내 배를 沈沒시켰거든)

軍人 時節의 존 F 케네디 大統領을 有名하게 만든 逸話는 ‘솔로몬諸島 事件’입니다. 1941年 海軍에 入隊해 2年 뒤 太平洋 戰線에 投入된 케네디 中尉는 PT-109, PT-59 等 두 隻의 魚雷艇을 指揮하는 任務를 맡았습니다. 1943年 8月 日本 驅逐艦의 攻擊으로 케네디 中尉와 20餘名의 美軍이 乘船한 PT-109號가 솔로몬諸島 隣近에서 破壞됐습니다.

케네디 中尉는 가라앉은 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狀況에서 어떻게 對處해야 하는지 敎科書에 나와 있지 않다. 여러분들은 집에 家族과 아이들이 있다. 어떻게 하기를 願하는가. 나는 잃을 것이 없다.”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은 日本軍에게 降伏하지 않겠다는 自身의 意志를 밝힌 것입니다. 하지만 獨斷的인 決定을 避하기 위해 部下들의 意見을 물었습니다.

部下들도 降伏을 願치 않았습니다. 케네디와 部下들은 5km 떨어진 無人島까지 헤엄쳐 가기로 했습니다. 先頭에 있던 케네디 中尉는 負傷을 입은 한 部下가 자꾸 뒤쳐지는 것을 봤습니다. 自身도 負傷을 입었지만 그는 部下의 救命조끼 끈을 이빨로 물고 15時間을 無人島로 헤엄쳐 갔습니다.

케네디 大統領은 이 功勳으로 美 海軍·海兵隊 英雄勳章, 戰鬪 中 負傷을 입은 軍人에게 주어지는 ‘Purple Hearts’(퍼플 하츠) 勳章 等을 받았습니다. 大統領이 된 뒤 白堊館을 찾은 어린이 訪問客들로부터 “어떻게 戰爭 英雄이 될 수 있었느냐”는 質問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내가 願한 건 아니었어. 敵들이 내 배를 두 동강을 내버렸거든”이라는 謙遜한 弄談으로 答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군시설 파괴 임무로 출격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오른쪽)이 전투기 추락으로 표류하다가 미군 잠수함에 의해 구조되는 모습(오른쪽). 조지 H W 부시 도서관 홈페이지
第2次 世界大戰 때 日本 軍施設 破壞 任務로 출격한 조지 H W 부시 大統領(오른쪽)李 戰鬪機 墜落으로 漂流하다가 美軍 潛水艦에 依해 救助되는 모습(오른쪽). 조지 H W 부시 圖書館 홈페이지
“That has plagued me.”
(그것이 나를 괴롭혀왔다)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 W 부시 大統領은 1941年 眞珠灣 攻襲 때 名門 私立高校 필립스 아카데미에 다니던 17歲 少年이었습니다. 그는 18番째 生日에 入隊했습니다. 18歲 以上이 돼야만 入隊 資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받아놓은 예일大 入學 許可도 延期했습니다. 그는 19歲 最年少 나이에 海軍 戰鬪機 操縱士가 됐습니다.

1943年 그는 美軍 戰爭捕虜들이 收容된 日本 지치지마 섬의 通信施設을 破壞하라는 任務를 받았습니다. 部下 2名을 태우고 出擊했습니다. 目標 地點이 가까워오자 日本軍의 攻擊으로 부시 一行이 탄 爆擊機의 操縱席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럼에도 任務를 完遂한 그는 墜落하는 飛行機를 가까스로 바다 한가운데까지 몰고 나왔습니다. 部下들에게 뛰어내리라는 命令을 내린 뒤 自身도 뛰어내렸습니다.

부시 大統領은 목숨을 건졌지만 部下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部下 1名은 落下傘이 펴지지 않았고, 다른 1名은 미처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고무보트에 依支한 채 몇 時間을 바다 위에 떠 있던 그의 눈앞에 巨大한 潛水艦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美軍 潛水艦 USS 핀白虎에 依해 救助됐습니다. 當時 20歲의 깡마른 靑年 부시 大統領이 救助되는 瞬間은 핀白虎 船員들에 依해 撮影된 映像으로 只今까지 남아있습니다.

부시 大統領은 이 功勳으로 飛行十字勳章(DFC), 大統領部隊表彰(PUC) 等 많은 賞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自身의 功勞보다 숨진 同僚들에 對한 未安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言論 인터뷰에서 “왜 다른 親舊들의 落下傘은 펴지지 않았을까. 왜 나만 祝福을 받은 것일까”라고 反問했습니다. “그 생각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다”고 告白했습니다.

‘plague’(플래그)는 中世時代 黑死病(페스트)에서 由來한 傳染病을 가리킵니다. 現代에는 ‘傳染病’이라는 意味보다 ‘나쁜 덩어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韓國人들이 ‘프라그’라고 부르는 ‘齒石’은 ‘dental plaque’(덴틀 플래그)라고 합니다. 부시 大統領이 쓴 것처럼 ‘괴롭히다’ ‘아프게 하다’라는 뜻의 凍死로도 많이 活用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날 작전에 투입되는 병사들과 얘기를 나누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왼쪽).
노르망디 上陸作戰 前날 作戰에 投入되는 兵士들과 얘기를 나누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聯合軍 總司令官(왼쪽).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날 쓴 ‘실패의 경우 편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도서관 홈페이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聯合軍 總司令官이 노르망디 上陸作戰 前날 쓴 ‘失敗의 境遇 便紙.’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圖書館 홈페이지
“If any blame or fault attaches to the attempt it is mine alone.”
(萬若 누군가 이番 試圖의 責任을 져야 한다면 穩全히 나 혼자만의 것이다)

1944年 6月 6日 第2次 世界大戰의 版圖를 바꿔놓은 프랑스 노르망디 上陸作戰이 展開됐습니다. 美國 英國 캐나다 等에서 16萬 名의 聯合軍이 參加한 人類 最大의 作戰이었습니다. 聯合軍 總司令官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將軍은 作戰 前날 戰鬪에 參加하는 部隊들을 一一이 訪問해 士氣를 鼓吹시켰습니다. 그가 만난 軍人들은 아직 少年티가 가시지도 않은 젊은 靑年들이었습니다. 이들을 거친 波濤와 銃알을 뚫고 敵陣으로 보내야 하는 아이젠하워 將軍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兵營으로 復歸하는 車 안에서 運轉手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I hope to God I’m right.”(神에게 바라건대 내 決定이 옳아야 하는데)

그는 이날 저녁 메모紙를 꺼내 便紙를 썼습니다. ‘In Case of Failure Letter’(失敗의 境遇 便紙)라고 불리는 이 便紙는 作戰이 失敗로 끝났을 境遇를 假定해 쓴 것입니다. ‘나의 攻擊 決定은 最上의 情報를 根據로 내린 것이지만 失敗했다. 陸海共 軍人들은 모든 勇氣와 獻身을 보여줬다. 萬若 責任을 져야 한다면 그것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라는 內容입니다.

손便紙이기 때문에 고친 痕跡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元來 ‘This particular operation’(이番 作戰)이라고 썼다가 自身에게 모든 責任이 있다는 意味로 ‘My decision to attack’(나의 攻擊 決定)이라고 고쳤습니다. 마지막 두 글字인 ‘mine alone’(나 혼자만의 것이다)을 强調하기 위해 밑줄을 그었습니다. 緊張한 나머지 作成 날짜를 ‘June 5’(6月 5日)가 아닌 ‘July 5’(7月 5日)라고 잘못 썼습니다.

66個 單語로 이뤄진 이 便紙는 美 歷史上 가장 偉大한 名門 中의 하나로 꼽힙니다. 華麗한 美辭麗句가 登場해서 아니라 힘든 決定을 내리고, 그 決定에 責任을 지는 리더의 모습이 군더더기 없이 表現됐기 때문입니다. 失敗에 對한 구구절절한 辨明은 없습니다. 政治 經歷이 全無했던 아이젠하워 將軍이 1952年 壓倒的인 支持로 大統領에 當選된 理由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이젠하워 將軍은 便紙를 紙匣에 保管했습니다. 作戰이 失敗하면 라디오 演說을 통해 읽을 豫定이었습니다. 作戰이 成功으로 끝나면서 便紙는 永永 빛을 보지 못할 뻔 했습니다. 나중에 便紙를 發見한 아이젠하워 將軍은 구겨 버리려고 했지만 그 內容을 본 補佐官이 感動을 받아서 保管했다는 逸話가 傳해집니다.
名言의 品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결했던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하고 있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 공화당전국위원회(RNC) 홈페이지
버락 오바마 大統領과 對決했던 2008年 大選에서 공화당 候補 指名 受諾 演說을 하고 있는 존 매케인 上院議員. 공화당全國委員會(RNC) 홈페이지
美國은 戰爭 英雄 出身 大統領을 좋아합니다. 戰爭에서 功을 세우면 大統領이 되는데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傳統은 獨立戰爭, 南北戰爭, 第1, 2次 世界大戰, 韓國戰爭 때까지 繼續됐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戰爭에서 끝났습니다.

베트남戰에는 오히려 參加하지 않은 것이 政治人에게 利得이 됐습니다. 베트남戰에 對한 反對 氣流 때문입니다. 빌 클린턴 大統領은 베트남戰을 忌避하고 反戰運動을 벌였다고 公開的으로 밝혔지만 大選에서 勝利했습니다. ‘아들 부시’인 조지 W 부시 大統領도 徵集 對象이었지만 國內에서 服務하는 便法으로 戰爭을 避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大統領은 令狀을 다섯 次例나 演技해 軍隊에 가지 않은 事實을 자랑스럽게 公開했습니다.

反面 베트남戰에 參戰했던 政治人들은 이런 事實을 애써 公開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에 反旗를 든 것이 고(故) 존 매케인 上院議員입니다. 2000年, 2008年 等 두 次例 大選에 出馬한 그는 “敗한 戰爭에 參加한 것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周邊의 挽留에도 不拘하고 堂堂하게 베트남戰 經驗을 公開했습니다.

“I fell in love with my country when I was a prisoner in someone else‘s. I loved it because it was not just a place but an idea, a cause worth fighting for.”
(나는 다른 나라의 戰爭에 捕虜로 잡혀 있으면서 내 나라를 사랑하게 됐다. 曺國은 但只 場所가 아니라 싸워 지킬만한 價値가 있는 理念이고 名分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매케인 議員의 2008年 共和黨 大選 候補 指名 受諾 演說입니다. 베트남戰에서 5年間 捕虜로 잡혀 拷問을 當하는 苦楚를 겪으면서 祖國을 사랑하는 法을 배웠다는 內容입니다. 愛國心에 弱한 美國人들로부터 熱烈한 拍手를 받았습니다. 베트남 參戰勇士 出身 政治人 中에서 英雄 待接을 받는 것은 매케인 議員이 唯一합니다.
實戰 보케 360
最近 미시건에서 열린 中間選擧 支援遊說에서 演說하는 버락 오바마 大統領. 白堊館 홈페이지
實生活에서 많이 쓰는 쉬운 單語를 活用해 英語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요즘 버락 오바마 大統領이 演說家로 人氣가 높습니다. 中間選擧에 出馬한 민주당 候補들이 人氣 없는 바이든 大統領 代身 오바마 大統領에게 支援遊說 演說을 해달라고 要請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操心’을 해야 하는 現職 大統領의 負擔이 없는 오바마 大統領은 화끈한 演說로 雰圍氣를 달아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最近 미시건 遊說에서 選擧 詐欺 主張을 굽히지 않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大統領을 正照準했습니다.

“I took my lumps.”(나는 苦痛을 甘受했다)

오바마 大統領은 트럼프 大統領을 批判하기 위해 自身의 選擧 敗北 經驗을 召喚했습니다. 그는 2000年 下院議員에 挑戰했다가 민주당 競選 過程에서 敗한 적이 있습니다. 政治 入門 初期에 겪은 쓰라린 經驗이었습니다. 오바마 大統領은 當時 經驗을 얘기하며 “나는 苦痛을 달게 받았다”고 했습니다. 敗北를 認定하지 않고 投票 士氣를 主張하며 워싱턴 議事堂 亂入 事態까지 招來한 트럼프 大統領이 卑怯하다는 意味입니다

‘lump’(럼프)는 ‘덩어리’라는 뜻으로 ‘苦痛’ ‘恥辱’ 等을 의미합니다. ‘take lumps’는 ‘덩어리를 삼키다,’ 卽 ‘苦痛을 堪耐하다’는 意味입니다. ‘lump’는 쓰이는 곳이 많습니다. “How many lumps do you like?” 美國人들이 커피나 茶를 待接할 때 자주 쓰는 말입니다. “角雪糖을 몇 個 넣어줄까”라는 뜻입니다. ‘혹덩어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女性이 걱정스러운 表情으로 “I feel a lump in my breast”라고 하면 “가슴에 혹이 만져진다”라는 뜻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紙面을 통해 長期 連載된 ‘鄭美京 記者의 이런 英語 저런 美國’ 칼럼 中에서 核心 아이템을 選定해 그 內容 그대로 傳해드리는 코너입니다. 2018年 8月 7日에 紹介된 6·25戰爭 英雄에 對한 內容입니다.

美國 워싱턴 내셔널몰에 있는 韓國戰 參戰勇士 記念碑. 韓國 指導級 人士들이 워싱턴을 訪問했을 때 꼭 들르는 곳이다. 韓國戰 參戰勇士 記念碑 財團
▶2018年 8月 7日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80807/91401742/1

北韓으로부터 引受 받은 6·25戰爭 參戰 美軍 戰死者 遺骸 奉還式이 하와이에서 열렸습니다. 아 자리에서 마이크 펜스 副統領은 美軍 戰死者들을 “英雄”이라고 부르며 最高의 敬意를 표했습니다. 펜스 副統領의 아버지도 韓國戰 參戰勇士였습니다. 펜스 副統領 演說의 重要 部分을 整理했습니다.

“Some have called the Korean War the ‘forgotten war’. But today, we prove these heroes were never forgotten.”
(누군가는 韓國戰爭을 ‘잊혀진 戰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英雄들이 決코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證明해 보였습니다)

펜스 副統領은 演說 初盤에 ‘forgotten war’(잊혀진 戰爭)에 對해 言及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大統領도 ‘잊혀진 戰爭’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美國에서는 政治的 性向을 超越해 韓國戰爭을 ‘unforgotten war’(잊혀지지 않는 戰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共感帶가 形成돼 있습니다.

워싱턴 特派員 時節 많은 韓國戰 參戰勇士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記念碑 設立 等 다양한 方式으로 韓國戰爭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80, 90代 나이의 할아버지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왠지 안쓰러웠습니다. 參戰勇士들에 따르면 韓國戰을 알리는 일에는 많은 障礙要素가 있습니다. 美國이 參戰했던 다른 戰爭들과 衡平性을 가지려면 韓國戰만 튀어서는 안 된다는 主張이 豫想外로 强力하다고 합니다. 美國에서 韓國戰의 位相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韓國이 해줄 일은 없는지 苦悶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Today our boys are coming home.”
(오늘 우리 勇士들이 돌아옵니다)

워싱턴에서는 每年 10餘 個의 韓國戰 記念行事가 열립니다. 美軍 參戰勇士 大部分은 擧動이 不便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를 타고 워싱턴에 集結합니다. 參戰勇士들의 손에는 앨범이 한 卷씩 들려 있습니다. 앨범 속에는 언제 砲彈이 떨어질지 모르는 恐怖 속에서도 웃고 있는 靑年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한 할아버지 앨범에서 젊은 韓國 女人의 寫眞도 봤습니다. 駐屯했던 마을에서 좋아했던 女人이라고 합니다.

參戰勇士들은 戰後 韓國의 놀라운 發展相에 감격스러워합니다. 그들의 얘기는 大部分 武勇談으로 始作해 아쉬움으로 끝납니다. 戰爭터에 남겨두고 온 同僚에 對한 未安함에 우는 할아버지들도 있습니다. 펜스 副統領이 演說 마지막 部分에서 한 말입니다. “Our boys are coming home.”(우리 勇士들이 돌아온다) 參戰勇士 家族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 것입니다.

鄭美京記者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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