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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金 딴 우리 현수 家門의 榮光”|東亞日報

“첫 金 딴 우리 현수 家門의 榮光”

  • 入力 2008年 8月 26日 08時 45分


野球 김현수 母親 感激 마중 “高校卒業 指名 못받던 試鍊, 그때 마음苦生 다 잊었어요”

베이징올림픽 選手團이 錦衣還鄕한 25日 仁川國際空港. 한 손에 꽃다발을 든 이복자(56) 氏는 수많은 人波가 몰려든 C게이트 앞을 焦燥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李 氏가 出入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理由? 金메달리스트인 아들 김현수(20·두산·寫眞)를 1秒라도 빨리 보고싶어서였다. 李 氏의 자랑스러운 아들은 韓國 野球에 史上 첫 올림픽 金메달을 안긴 24名의 選手들 中 하나였다.

李 氏는 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대뜸 “현수는 只今까지 野球 問題 以外에는 속 한番 썩여본 적이 없는 아이”라고 했다. 김현수가 이 氏를 속상하게 한 건 單 한番 뿐. 신일고 時節 ‘李榮敏 打擊賞’을 받을 程度로 펄펄 날던 아들이 卒業하면서 프로 球團의 指名을 받지 못했던 때였다. “그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우리 현수가 野球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어릴 때부터 野球 아니면 다른 데는 關心도 없는 애였거든요.”

어깨가 축 처진 아들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이 氏도, 아버지 김준경(59)氏도, 김현수도 뜻이 같았다. 여기서 野球를 그만둘 수는 없다는 決心이었다. 父母는 홀로 외롭게 訓鍊하는 아들의 곁을 지켰다. 아들은 結局 6個月 後 두산에 申告選手로 入團했다. 그 다음 해에는 꾸준히 1群 舞臺에 섰다. 그리고 올해는 풀타임 主戰. 게다가 前半期 打擊 1位(0.344)다. 어머니는 “이제는 그 때의 마음苦生을 잊은 지 오래”라고 했다. 생각도 못했던 올림픽 金메달까지 목에 걸었으니 “현수는 우리 家門의 榮光”이라며 웃음을 멈추지 못할만도 하다.

平素에도 父母를 끔찍이 챙기는 김현수는 베이징에 가서도 아침·저녁으로 집에 電話를 걸었다. 그 날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優勝하던 날, 김현수는 가장 먼저 집으로 電話를 걸었다. “엄마! 나 金메달 땄어!” 아들의 喊聲에 어머니도 마음이 벅찼다.

和睦한 家族은 只今의 김현수를 만든 原動力이다. 그의 自信感과 樂天的인 性格도 家族의 無限한 愛情과 믿음에서 나왔다. “나는 잘 아프지도 않고 컨디션도 늘 좋다”고 싱글벙글하던 김현수의 體力도 家族이 물려준 것이다. 아버지 金 氏는 每日같이 아들을 野球場에 自動車로 데려다준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每日 紅蔘을 달인다. 李 氏가 아들에게 바라는 건 單 한가지 뿐. “健康하게, 아프지 말고, 幸福하게 지내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金메달리스트는 온 家族이 함께 만든다.

仁川國際空港=背泳은 記者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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