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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界한「남부군」 이우태氏]分斷悲劇 文學으로 昇華|東亞日報

[他界한「남부군」 이우태氏]分斷悲劇 文學으로 昇華

  • 入力 1997年 3月 7日 19時 56分


[권기태 記者] 6日 他界한 作家 이태(本名 李愚兌·이우태)氏는 分斷 悲劇의 산 記錄인 「남부군」의 著者다. 젊은 時節 新聞記者였던 그는 韓國戰爭이 터지자 北韓 中央通信의 一員이 됐으며 곧 빨치산 活動을 하게 됐다. 그는 「남부군」에 들어간 後 『人間스런 同志愛가 모든 이념적 葛藤을 뛰어넘는 光景을 지켜보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悲劇의 司令官 이현상」 等의 記錄物을 통해 北韓 權力에 依해 거세당하는 남로당의 悲運을 남기기도 했다. 李氏는 戰爭이 끝날 무렵 討伐軍에게 붙잡혔으나 中學同窓이었던 軍高位幹部를 만나 奇跡的으로 살아남았다. 南原收容所에서 나온 後 政治人 정해영(정해영)氏의 煉炭工場에서 煉炭을 받아 팔던 그는 鄭氏의 旅行記를 代筆해준 因緣으로 政街에 登場, 民政黨(민정당·後에 민중당) 全國區議員이 됐다. 뒷날 民主山岳會 山岳大將을 지냈으며 「民推協」에서 催淚가스를 마시며 軍事政權 反對運動을 벌이다 政治規制自家 되기도 했다. 「남부군」 發表 以後 「七旬의 文學靑年」으로 創作을 再開, 「戰爭史의 언덕」 「詩人은 어디로 갔는가」 等의 作品을 썼다. 그는 이들을 묶은 作品集 出刊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럽게 他界, 文人 親知들을 안타깝게 했다. 發靷 15日 午前9時半, 葬地 마석 모란공원墓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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