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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마지막 한 臺가 달릴 때까지… 사랑해, 엘란|東亞日報

[Narrative Report]마지막 한 臺가 달릴 때까지… 사랑해, 엘란

  • 東亞日報
  • 入力 2012年 6月 21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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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年前 斷種된 悲運의 스포츠카 ‘엘란’을 타는 사람들

경기 여주군에서 전기차업체 ‘세경이브이’를 운영하는 서광모 대표가 자신의 애마인 ‘엘란’을 타고있다. 직원들이 부품을 모아 그를 위해 조립해준 차다. 한때 엘란 수리 전문업체를 차렸던 서 대표는 전기스포츠카 개발을 통해 엘란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여주=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京畿 驪州郡에서 電氣車業體 ‘세경이브이’를 運營하는 서광모 代表가 自身의 愛馬인 ‘엘란’을 타고있다. 職員들이 部品을 모아 그를 위해 組立해준 차다. 한때 엘란 水利 專門業體를 차렸던 徐 代表는 前期스포츠카 開發을 통해 엘란의 復活을 꿈꾸고 있다. 驪州=김재명 記者 base@donga.com
《 “韓國 最初의 正統 스포츠카를 紹介합니다!” 1996年 7月 16日. 서울 江南區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의 新車發表會場에서 날렵한 빨간色 스포츠카가 눈부신 照明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이 茶는 어떻게 開發했습니까?” “몇 臺나 팔 건가요?” 行事場에 몰린 400餘 名의 取材陣과 外部 人士는 起亞自動車 사람들을 붙잡고 쉴 새 없이 質問을 퍼부었다. 김선홍 기아그룹 會長은 得意揚揚한 微笑를 지었다. 》
平素 입버릇처럼 “1年에 茶 100萬 臺를 만드는 會社가 스포츠카 하나 없는 게 말이 되느냐”며 周圍를 다그치던 그였다. 스포츠카 提携生産을 위해 日本 마쓰다에 찾아갔다가 門前薄待를 當한 일, ‘赤字가 뻔하다’던 會社 內部의 反對 等 엘란을 世上에 내놓기까지의 온갖 어려움이 머리에 스쳤다.

開發費 1100億 원. 英國 로터스의 技術과 生産設備를 引受해 1996年 出市. 不過 3年 만인 1999年 生産 中斷. 累積 生産臺數 1055代라는 商業的 失敗. 그리고 起亞車의 不渡…. 起亞車 最初의 正統 컨버터블(지붕 改廢型) 스포츠카 ‘엘란’. 그 끝없는 迂餘曲折의 始作이었다.

○ 自動車와 사랑에 빠지다

‘우와. 저건 무슨 차지? 페라리인가?’

1996年度 大入試驗을 갓 마치고 餘裕를 滿喫하던 열여덟 살 高等學生 한웅수 氏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모델하우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에 놓인 매끈한 빨간色 스포츠카를 보는 瞬間 가슴이 요동쳤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PC通信 ‘千里眼’에 接續해 精神없이 揭示板을 뒤졌다. ‘엘란’. 자나 깨나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大學生이 된 1997年 3月. 韓 氏는 千里眼 同好會 ‘엘란마니아’ 定期모임에 나갔다. 봄날의 京畿 高陽市 一山 湖水公園에는 5代의 엘란이 모였다. 起亞車의 최윤수 엘란 開發팀 課長이 先頭車輛을 타고 行列을 指揮했다. 韓 氏는 그해 엘란을 샀다. 쏘나타 2代 값인 2750萬 원. 서울예대에 다니던 中 助演으로 出演한 映畫 德分에 돈을 마련했다. 俳優 정우성 박신양 이미연 等과 함께 찍은 映畫 ‘모텔 仙人掌’은 釜山國際映畫祭 最優秀 아시아新人監督賞, 스위스 프리보그映畫祭 審査委員賞을 받으며 히트를 쳤다.

엘란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한웅수 씨. 그가 13년째 타고 있는 엘란은 1999년 단종되기 전 마지막으로 조립된 차다. 하남=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엘란의 運轉대를 잡고 있는 한웅수 氏. 그가 13年째 타고 있는 엘란은 1999年 斷種되기 前 마지막으로 組立된 차다. 河南=이진석 記者 gene@donga.com
쏟아지는 빗속에서 韓 氏는 노란色 엘란을 처음 만났다. 쿵쾅거리는 心臟을 가라앉히며 車를 끌고 나섰다. 하지만 아뿔싸. 서투른 運轉 탓에 車를 壁에 긁었다. 엘란을 타기 위해 오토 免許를 1種 手動으로 바꿔 딴 지 이틀 만이었다. 手動 運轉에 익숙지 않아 方向을 제대로 못 틀고 直進만 하다가 낯선 시골洞네까지 가버렸다.

그날 以後 韓 氏는 엘란과 사랑에 빠졌다. 하루도 쉬지 않고 車를 끌고 다녔다. 運轉 實力은 漸次 늘었다. 起亞車는 엘란 購買者들을 忠南 아산시 試驗走行長으로 불러 專門 드라이빙 敎育을 해줬다.

自信感이 지나쳤을까. 1999年, 漢 氏의 엘란은 八堂댐 앞 코너에서 미끄러져 높이 30m의 溪谷 아래로 7바퀴 半을 굴러 떨어졌다. 茶는 元來의 形體를 알아볼 수 없을 程度로 悽慘하게 부서졌다.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奇跡이었다. 主人 代身 差가 죽은 셈이다. 몸보다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든 다시 엘란을 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 次對番號 1056番, 마지막 엘란


“뉴스를 말씀드립니다. 기아그룹이 不渡 危機에 處했습니다. 뚜렷한 大株主가 없던 기아는 强性 勞組와 社內 非理로 內訌을 겪어왔으며….”

漢 氏가 새 車를 다시 求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外換危機로 휘청거리던 기아그룹은 1997年 法定管理에 들어갔고 現代車에 引受됐다. 組立工程 大部分이 數製作(手製作)이고 販賣量도 밑바닥을 기던 애物단지 엘란은 버려야 할 짐이었다.

1999年 10月 31日. 韓 氏는 安山市 基아모텍 工場을 찾았다. 飢餓毛텍은 엘란 生産을 도맡던 기아그룹의 系列社였다. 엘란 專擔修理班의 서광모 班長은 엘란을 다시 타고 싶어 하는 한 氏에게 車를 組立해 주기 위해 倉庫에 있던 車體 뼈대를 꺼냈다. 次對番號 1056番. 엘란의 公式的인 生産臺數는 1055代. 서 班長이 한 氏에게 非公式的으로 組立해준 車가 마지막 엘란이었다. 飢餓毛텍은 이 車의 出庫를 끝으로 工場 門을 닫았다. 退陣 壓迫에 시달리던 김선홍 會長은 辭表를 냈다.

엘란 開發팀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在庫物量은 30%를 割引해 ‘떨이’로 팔았다. 飢餓毛텍은 2000年 이름을 모텍코리아로 바꾸고 再起를 試圖했지만 이듬해 不渡가 났다. 엘란 工場은 2002年 法院 競賣에 올랐다. 鑑定價 369億 원. 엘란 開發費의 3分의 1에 不過했다. 工場은 用紙, 設備 等으로 뿔뿔이 나뉘어 팔렸다. 전형석 엘란 開發팀長은 工場의 設備 一部를 引受하고 再起를 위해 中國으로 떠났다. 開發陣의 땀과 눈물로 얼룩진 設計 圖面은 前 氏의 평촌 事務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 “나는 아직 달릴 수 있어요”

“班長님, 車 좀 어떻게 해주세요. 자꾸 비가 새잖아요.”

工場은 멈춰 섰지만 서 班長은 한동안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整備所를 찾아와 이런저런 注文을 늘어놓는 同好會 ‘클럽 엘란’ 會員들 때문이었다.

서 班長은 2000年 飢餓毛텍에서 退社해 自動車 修理(AS) 業體를 차렸다. 이름은 ‘카메딕’. 自動車(Car)와 衛生兵(Medic)을 합친 이름이다. 起亞車는 京畿 始興 整備所에 엘란 專擔班을 만들어주고 서 班長에게 일을 맡겼다.

서 班長은 輸出物量을 除外하고 國內에서 販賣된 엘란 800餘 臺를 모두 만져봤다. 엘란을 타며 自動車 專門 知識을 쌓은 클럽 엘란 會員들의 修理 要求條件이 만만치 않았다. 起亞車는 더以上 求할 수 없는 部品을 대주기 위해 數億 원을 들여 새 設備를 만들어야 했다.

業體 職員과 顧客으로 만난 사이는 時間이 흐르며 ‘兄님, 아우’로 바뀌었다. 엘란의 主人들은 故障 問題를 놓고 티격태격하다가도 이튿날이면 飮料水를 들고 찾아왔다. 변변한 冷房 設備도 없는 整備工場에 扇風機를 놓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엘란 主人들의 발길은 漸次 뜸해졌다. 서 班長은 일이 없을 때는 職員들과 함께 엘란 部品들을 만지작거리며 時間을 보냈다. 가끔은 기름때가 덕지덕지한 部品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나는 아직 달릴 수 있어요”라고.

그리움이 더해갔다. 서 班長은 中國으로 떠났던 전형석 엘란 開發팀長을 찾았다. 마음이 통했던 걸까. 前 팀長도 엘란을 되살리려 하고 있었다. 스포츠카를 製作하기 위해 2003年 ‘東風기연’이라는 會社를 設立했다. 엘란에 靑春을 바친 두 사람은 엘란을 再生産해보자고 意氣投合했다. 하지만 現實은 碌碌지 않았다. 投資者를 찾아서 百方을 뛰어다녔지만 別 成果가 없었다.

○ 안녕, 엘란

“저… 이 車, 얼마나 받을 수 있겠습니까?”

2008年 서 班長은 愛之重之하던 自身의 엘란을 팔았다. 職員들에게 밀린 月給을 줘야 했기 때문이다. 2005年 電氣車 會社인 ‘세경이브이’를 차렸지만 事業이 쉽지 않았다.

그는 엘란의 빈 자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뻥 뚫린 듯했다.

뒤늦게 社長의 車가 사라진 걸 알게 된 職員들은 廢車場에서 部品을 모아다가 서 班長에게 새 엘란을 組立해 주었다. 自動車 專門家들이라 可能한 일이었다. 서 班長은 기운을 차렸다. 반가운 消息도 들렸다. 電氣車業體인 CT&T가 東風奇緣을 引受해 시티스퀘어라는 會社를 設立하고 엘란을 高速 電氣車로 開發한다는 것이었다.

2010年 1月. 美國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엘란 電氣車의 試製品이 登場했다. 感慨無量한 復活인가 싶었다. 엘란을 만들었던 ‘어제의 勇士들’은 다시 뭉쳤다. 신바람이 나서 開發에 매달렸다.

하지만 엘란에 詛呪라도 걸린 걸까. 至毒한 不運이 다시 찾아왔다. 엘란 電氣車 出市를 準備하던 CT&T가 다른 電氣車의 販賣 不振으로 2012年 5月 株式市場 上場廢止가 決定된 것이다. 또 이보다 한 달 앞선 4月, 카메딕의 엘란 專擔修理 契約도 끝났다. 쓰던 裝備와 技術은 새로 엘란 修理를 맡은 大成功業社에 넘겼다. 그 모질던 命脈, 이제는 正말로 끝이었다.

○ 마지막 한 臺가 달릴 때까지

“이걸 어떻게 돈으로 따지겠어요. 내 몸의 一部인데….”

19日 京畿 하남시 망월동. 高等學校 때 엘란에 반했던 한웅수 氏(34)는 이제 自動車 튜닝業體 플랜非모터스의 代表가 되어 있었다. 엘란을 만나 알게 된 自動車의 즐거움, 部品 하나하나를 바꿔가며 새 生命을 얻어가는 車를 볼 때의 기쁨을 알리고 싶어 이 事業을 始作했다. 韓 氏는 이제 數十 臺의 車를 갖고 있다. 엘란은 1年에 한두 番쯤 타는 程度다. 그래도 가끔 옛 생각에 사로잡힌다. 同好會員들이 數十 臺의 엘란을 타고 떠난 MT(修鍊會), 따로 約束을 잡지 않아도 밤마다 同好會員들이 三三五五 모여들던 서울 청담道路公園….

京畿 驪州郡에서 電氣車 會社인 ‘세경이브이’를 運營하는 서 班長도 가끔 엘란에 對한 ‘鄕愁’에 젖는다. 엘란을 修理해주며 미운 情 고운 情이 든 同好會 ‘클럽 엘란’ 사람들도 그립다.

엘란의 生産臺數 1055代 가운데 獨逸과 日本에 各各 100臺가 輸出됐고 나머지는 韓國에서 팔렸다. 아직까지도 300餘 臺가 道路 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推定된다.

올해 5月 20日. 京畿 光州市 昆池岩리조트에서는 클럽 엘란의 年例 定期모임人 ‘엘란 데이’ 10回째가 열렸다. 100餘 臺의 엘란과 同好會員 및 家族 150餘 名이 한자리에 모였다. 會員들은 10周年을 自祝하며 車輛 100餘 대로 ‘로마字 10(Ⅹ)’을 만들었다. 이들은 ‘마지막 한 臺가 남을 때까지’ 모임을 이어갈 計劃이다.

河南·驪州=이진석 記者 gene@donga.com
#엘란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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