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硏究員의 목숨과 맞바꾼 碎氷船.’
12月 8日 南極 세종기지 硏究所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事故 消息과 以後 政府의 事態 收拾 過程을 지켜보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디젊은 전재규 硏究院이 酷寒의 南極에서 遭難死韓 이番 事件은 모처럼 現場에서 일하는 硏究開發者들의 現住所를 되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事故 以後 들려오는 消息들에 따르면 韓國의 세종기지는 周邊 다른 나라 基地들에 비해 施設이 가장 劣惡했다고 한다. 보다 나은 設備와 災難救護冊이 있었더라면 狀況은 달랐을 수 있을 것이다.
事後藥方文 格이지만 政府는 이제야 極止 硏究에 매우 重要한 碎氷船(碎氷船)을 ‘于先 確保’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긴 하지만 우리 科學者들이 그 꽃다운 生命을 내놓고서야 硏究에 緊要한 裝備들을 얻을 수 있는 現實이 안타까울 뿐이다.
外國과 比較할 必要도 없이 韓國 理工系의 現實은 대단히 劣惡하다. 지난 몇 年間 政府 次元에서 硏究開發費는 相當히 올려줬지만 정작 硏究 開發에 從事할 人力의 安全이나 生計 保障에는 如前히 無神經하다. 資本과 施設에 投資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뿐 硏究 開發 成果가 人材로부터 나온다는 事實을 모르기 때문이다.
最近 政府가 理工系 空洞化(空洞化) 問題를 解決한다고 이런저런 方案을 내놓는데도 現場의 反應이 冷笑的인 理由 亦是 爲政者들이 基本的으로 人材를 輕視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 아닐까.
이番 세종기지 사고도 根本的으로 이런 人材 輕視 風土에서 생겨났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전재규 硏究院이 大學院 在學 中 契約職 硏究員으로 南極基地에 간 理由 中의 하나가 生活苦 때문이었다는 事實을 指摘하고 싶다. 硏究員들이 産災保險을 除外하고는 保險에 全혀 들어있지 않았는데 그 理由가 ‘極止 等 危險地域 勤務者’는 一般保險에 加入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라는 說明 앞에서는 氣가 막힐 따름이다.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힘은 政爭에 汨沒하는 政治나 消費産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가장 힘들고 춥고 먼 곳에서 韓國의 ‘파이’를 키워 나가는 이들이 待接받지 못한다면 韓國의 未來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맹성렬 韓國電子通信硏究院 先任硏究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