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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明은 아웃사이더·포퓰리스트·實用主義者 結節點에 선 問題的 異端兒|新東亞

李在明은 아웃사이더·포퓰리스트·實用主義者 結節點에 선 問題的 異端兒

[In-Depth Story] 巨野 黨首 李在明은 都大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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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2-10-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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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保守건 進步건 그놈이 그놈이지요”

    • SNS 통한 直接 呼訴와 被包위意識

    • 切迫한 過去에서 비롯한 顔面沒收 話法

    • “6·1 補闕選擧 當選 뒤 金鍾仁에게 電話”

    • 城南라인 重用, 如前한 아웃사이더 氣質

    • 7湮晦 김영진과 멀어져? “뗄 수 없는 關係”

    • “必要하다 생각하면 薛勳에게도 손 내밀 것”

    • “親文, 李在明 司法 리스크 落馬 기다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代表가 9月 5日 서울 汝矣島 國會에서 열린 最高委員會議에 參席해 모두發言을 하고 있다. [寫眞共同取材團]

    그에게는 慣性이 없다. 남들의 豫想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李在明 黨代表’ 時代의 開幕이 必然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았다. 但, 그 時期가 大選이 치러진 害가 되리라고 내다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그 누구도 점치기 어려웠던 未來다.

    8·28 더불어民主黨 全黨大會에서 李在明(59) 候補는 77.77%라는 壓倒的 得票率로 黨代表에 當選됐다. 2位를 한 朴用鎭(51) 候補는 22.23%를 얻는 데 그쳤다. 李 代表는 大選 敗北 85日 만에 仁川 桂陽乙 補闕選擧에 出馬해 國會議員에 當選됐고, 173日 만에 169席 巨野(巨野)의 司令塔이 됐다. 任期는 2024年 8月까지다. 代表職을 繼續 維持할 수 있다면 같은 해 4月 열리는 22代 總選 公薦權도 行使한다.

    아직 이르지만 野圈의 次期 大權 레이스에서도 獨走 體制를 갖췄다. 넥스트리서치가 SBS 依賴로 9月 8~9日 全國 滿 18歲 以上 男女 1004名을 對象으로 有·無線 電話面接調査를 通해 ‘次期 大選走者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물은 結果 汎野圈에선 李 代表가 33.6%로 가장 높은 支持率을 記錄했다. 이어 李洛淵 前 民主黨 代表 15%, 金東兗 京畿知事 5%, 朴用鎭 民主黨 議員 3.3% 順이었다.

    民主黨 支持層으로 좁히면 李 代表는 69.7%로 10.7%에 그친 李洛淵 前 代表를 7倍 가까운 隔差로 앞섰다. 性別, 年齡別 基準 等 모든 有權者 層에서 가장 많은 支持를 받았다.(응답률은 14.8%. 標本誤差는 95% 信賴 水準에 ±3.1%포인트. 仔細한 內容은 中央選擧輿論調査審議委員會 홈페이지 參考) 只今은 尹錫悅의 時間이기도 하지만 李在明의 時間이기도 하다.

    汝矣島에는 두 種類의 사람이 共存한다. 스스로 主流라 생각하는 사람, 自身이 主流에 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 韓國의 有權者는 大槪 後者에게 홀린다. 輿論은 逼迫받는 者의 便이다. 華麗한 고(高)스펙을 가진 이들이 大權 門턱에서 番番이 고꾸라진 건 그런 雰圍氣 탓이다. 尹錫悅 大統領 以前까지 韓國 學閥의 頂點인 서울大 法大 出身 大統領은 1名도 없었다. 保守政黨 歷史上 가장 强力한 指導力을 發揮한 이회창 前 한나라당 總裁도 大權 9部 稜線에서 무너졌다. ‘貴族 李會昌 vs 庶民 盧武鉉’은 어떤 式으로도 이회창이 이기기 어려운 構圖다. 主流 中 主流인 尹 大統領은 權力과 對立角을 세우며 政治的 에너지를 獲得한 뒤에야 大權走者 班列에 올랐다.



    두 種類의 政治人

    그런 意味에서 李在明은 韓國人의 마음을 사로잡을 要素를 고루 갖춘 사람이다. 널리 알려진 드라마틱한 成長談을 몇 덩어리로 要約하면 이렇다. 가난 탓에 中·高等學校를 나오지 않았다. 少年 勞動者로 일했다. 法的으로 勞動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假名을 썼다. 産業災害로 障礙人 6級 判定을 받아 兵役이 免除됐다. 檢定考試를 거쳐 중앙대 法大에 奬學生으로 入學했다. 卒業과 同時에 司法試驗에 合格했다.

    李在明은 숱한 危機를 거쳐 只今의 자리까지 내달려 온 神話的 人物이다. ‘李在明 스토리’는 大衆에게 카타르시스를 提供한다. 그는 ‘신동아’ 2020年 7月號 인터뷰에서 ‘少年공이 政治家를 꿈꾼 理由는 무엇인가’라는 質問에 이렇게 答했다.

    “政治家를 꿈꾼 적은 없다. 大學을 가기 前까지는 工場에서 勞動者 生活을 했다. 産災度 當하고, 障礙人도 되고, 暴力도 많이 當하고, 돈도 많이 떼였다. 그게 제 運命인 줄 알았다. 그러다 大學生이 되고 나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理由가 個人의 運命이거나 本人이 不足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不公正의 産物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좀 바른 世上, 공정한 世上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人權辯護士가 됐고, 市民運動도 했고, 道知事가 됐다.”

    約 半年 뒤 進行된 ‘신동아’ 2021年 3月號 인터뷰에서는 ‘어려서 겪은 不公正에 對한 생각을 只今도 갖고 있는 理由는 무엇인가’라는 質問에 이런 答辯을 내놨다.

    “머리로 배운 知識의 結果物이라기보다 삶의 體驗에서 나온 것이라 公正한 社會에 對한 熱望이 컸던 것 같다. 저 스스로 또는 저의 家族들과 이웃이 現場에서 實際로 겪었던 일, 只今도 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일들에 對한 公正性을 높이기 위해 政策을 만들거나 특별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2020년 6월 12일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가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그는 스스로를 “조직, 정치적 유산, 학연, 지연, 혈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혈혈단신”이라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2020年 6月 12日 當時 李在明 京畿知事가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그는 스스로를 “組織, 政治的 遺産, 學緣, 地緣, 血緣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孑孑單身”이라고 말했다. [박해윤 記者]

    李在明의 世界觀을 떠받치는 기둥은 半(反)旣得權이다. 그 水面 아래 있는 情緖는 抑鬱함에 對한 憤怒다. 그는 스스로 “組織, 政治的 遺産, 學緣, 地緣, 血緣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孑孑單身”(신동아 2020年 7月號)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辯護士로 일하다 40代 中盤부터 職業 政治에 뛰어든 自身도 主流에 屬한다는 認識은 없어 보인다. 1998年부터 분당의 ‘大將株’ 아파트라는 수내동 양지마을 1團地 금호아파트 164.25㎡(50坪型)에 살아왔는데도 그 以前의 貧困 經驗에서만 政治的 滋養分을 찾는다. 60年 가까운 人生에서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보다는 龍으로 살아온 人生이 分明 길진대, 여태 가붕개의 網탈리테(mentalite·정신구조)를 誇示한다.

    그러니 그가 가진 認識의 磁場 안에서 對蹠點에 놓인 건 組織과 政治的 遺産, 各種 緣줄로 얽힌 ‘主流’ 勢力이다. 故로 李在明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世上을 主流와 非主流의 阿修羅場으로만 볼 수는 없을 텐데, 一旦은 自身이 上層部라고 規定한 勢力과 싸우는 걸 疏明이라고 여긴다.

    私席에서의 李在明

    李在明은 言論이 없는 자리에서 어떻게 말할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그의 側近이나 親分이 두터운 人士들이 꺼내 놓는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이런 逸話들을 통해서도 李在明의 眞面目을 알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不足하다. 李在明과 만난 經驗이 있되 適正한 距離를 두고 있는 人物에게서 들을 말도 있을 것이다.

    그즈음 떠올린 人物이 경북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를 지낸 申平 辯護士다. 2年餘 前쯤 申 辯護士가 記者와 만난 자리에서 過去 李在明 城南市長과 있었던 일화를 말한 記憶이 났기 때문이다. 申 辯護士는 司法硏修院 13期로 18基인 李在明의 5期數 先輩다. 過去 言論 기고 等을 통해 “旣得權者의 貪慾에 依한 社會構造의 歪曲을 是正하기 위해 自身의 政治 人生을 걸었다. 이런 李在明이야말로 말 그대로의 純粹한 進步”라고 表現한 바 있다.

    申 辯護士는 지난 大選에서는 尹錫悅 候補를 公開 支持했다. 只今은 李在明과의 接觸面이 없는 터라 比較的 均衡 잡힌 視角으로 自身이 겪은 逸話를 紹介할 수 있다고 봤다. 그와 나눈 問答이다.

    過去 李在明 城南市長의 面貌를 알 수 있는 逸話를 紹介한 記憶이 나는데.

    “李鍾培 司法試驗存置를 위한 考試生모임 代表(現 國民의힘 所屬 서울市議員)가 2017年 (서울 楊花大橋에서) 高空示威를 한 적이 있다. 司試 存置를 主張하면서 (다리에)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 내가 어쨌든 사람 목숨은 살려야 하지 않겠나 싶어 李鍾培 代表를 說得할 만한 사람을 物色했다. 아무래도 李在明 市場이 가장 낫겠다 싶어서 急히 文字메시지를 보냈다. 가서 說得을 좀 해달라고.”

    그랬더니 뭐라던가.

    “急히 處理할 일이 있었던지 밤 9時나 10時쯤 돼서야 내 文字를 읽은 模樣이더라. 그리고 ‘只今 바로 가겠다’는 答狀이 왔다. 이 市場이 出發하려는 刹那에 마침 籠城이 풀렸다고 해서 내가 다시 ‘가시지 않아도 되겠다’고 連絡했다. 如何튼 한 사람의 生命을 救하기 위해 그 바쁜 渦中에도 성남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가겠다고 한 모습을 보고 깊은 印象을 받았다. 아주 훌륭하게 봤다. 그가 가진 이 社會의 不條理에 對한 憤怒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고.”

    城南市長室에서도 만난 적이 있지 않나.

    “文在寅 政府 初期였는데, 市長室로 가서 이 市場과 잠깐 歡談을 했다. 이 市長을 만난 김에 ‘우리가 촛불革命이라고 했는데,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社會 改革 意志도 없이 (時間이) 지나가는 걸 보니 답답하다. 촛불革命으로 政權이 交替됐는데 왜 우리 社會에는 變化가 없을까’라고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이 市長에게서 ‘그놈이 그놈이지요. 保守건 進步건 번갈아가면서 다 해먹은 게 現實 아닙니까’라는 말이 速射砲처럼 튀어나왔다. 그 말은 準備해서 꺼낸 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그대로 나온 거다. 그때 이 사람이 旣得權에 對한 憤怒와 市政 意志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後 京畿知事도 됐고 大統領도 될 뻔했다. 只今은 野黨 代表다. 身分이 바뀌었는데 旣得權에 對한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身分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勿論 ‘親日 勢力들이 美 占領軍과 合作해 支配體制를 維持했다’든지, ‘駐韓美軍이 撤收해도 充分히 自主國防 할 수 있다’든지, ‘돈이 不足하면 얼마든지 찍어내서 풀 수 있다’든지 하는 式의 主張을 보면 못마땅한 點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이 代表가 가진 旣得權에 對한 反感과 社會改革 意志를 조금도 疑心하지는 않는다.”

    時代 潮流와 맞아떨어진 포지셔닝 戰略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 개발 특혜 의혹이 제기된 경기 성남시 대장동 아파트 단지. [동아DB]

    李在明 城南市長 時節 開發 特惠 疑惑이 提起된 京畿 城南市 大庄洞 아파트 團地. [東亞DB]

    이 같은 傳言대로라면 自身이 主流에 맞서고 있다는 李在明의 確信은 날것 그대로다. 權力者이면서도 스스로를 ‘鬪士’로 여긴다. 汝矣島의 복판에 자리를 마련했으나 自身의 正體性을 如前히 局外者로 규정짓는다. 그가 자주 쓰는 表現을 빌리자면 李在明은 ‘邊方將帥’다. 價値中立的으로 보면 아웃사이더 氣質이고, 삐딱하게 보면 逼迫받는 少數를 自處하는 被害意識의 發露다.

    그는 9月 14日 黨 最高委員會議에서 尹錫悅 大統領을 겨냥해 “政爭 또는 野黨 彈壓, 政敵 除去에 너무 國家 力量을 消耗하지 말고 國民의 삶을 改善하는 데 더 努力해야 한다”고 批判했다. 여기서의 靜寂은 스스로를 指稱한 單語로 풀이된다. 그가 自身을 겨냥한 檢·警 搜査에 對해 公開席上에서 批判的 發言을 내놓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自身이 市場일 當時 벌어진 大庄洞 開發 特惠 疑惑에 對해서도 “우리 社會 保守言論과 國民의힘이 聯合해 賊反荷杖으로 連日 假짜뉴스를 濫發하며 ‘李在明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2021년 9月 26日)는 論理를 폈다. 두 달餘 뒤인 같은 해 11月 6日에는 여기에 한 集團을 追加해 “國民의힘, 腐敗 土建勢力, 保守言論이 三位一體로 ‘李在明 죽이기’에 올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그의 支持者들에게도 ‘旣得權에 맞서야 한다’는 시그널로 作動한다. 그가 보이는 特有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直接 疏通’도 온라인上에서 ‘아웃사이더 鬪士들’을 만드는 通路다. 그는 全黨大會 期間 中 온라인 플랫폼을 열어 “(黨員들이) 辱하고 싶은 議員을 非難할 수 있게 하자”고 主張했다. 論難이 일었지만 “言論이 게이트 役割을 해 自己들이 必要한 것만 통과시키다 보니, 國民들이 黨과 疏通할 수 없다”며 다시 한番 直接 疏通을 主張했다.

    아웃사이더 李在明과 아웃사이더 透寫들인 그의 팬덤을 結束하는 고리는 被包위意識(Siege mentality)이다. 敵對 勢力에 包圍돼 있다는 認識을 共有하는 셈이다. 피包圍儀式을 갖춘 사람 사이에는 內部 結束力이 剛해질 수밖에 없다. 外部의 敵으로부터 攻擊받는다는 共通의 情緖가 ‘우리 便’을 지켜야 한다는 結論으로 이어지는 거다.

    이것은 時代 潮流와 잘 맞아떨어진 포지셔닝 戰略이다. 朴聖敏 政治컨설팅 ‘閔’ 代表는 “政黨 一體感이라는 게 意味가 없어졌다. 2016年 도널드 트럼프나 버니 샌더스가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正體性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서 “2022年 尹錫悅이나 李在明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傳統的인 政黨에서 成長한 사람들이 政治를 하는 時代가 아니다. 아웃사이더나 포퓰리스트가 脚光받게 된 데는 世界的으로 兩極化가 심해진 탓이 크다”고 말했다.

    朴 代表의 말대로라면 오늘날은 主流에 對한 反感을 刺戟하는 政治人이 커가기 좋은 土壤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李在明은 트럼프가 그렇듯 兩極化 時代가 만들어낸 産物이다.

    進步性向 知識人이 본 李

    이와 關聯해 李在明이 아직은 民主黨 內 2~3位圈 大權走者이던 時節 發表된 論文이 한 篇 있다. 채진원 慶熙大 公共거버넌스硏究所 敎授가 2019年에 쓴 ‘포퓰리즘의 理解와 李在明 現象에 對한 時論的 論議’(社會科學論集 第50卷 第1號)다. 采 敎授는 過去 民主勞動黨 議政政策室長을 지낸 進步性向 知識人이다. 그에 따르면 포퓰리스트는 政黨政治의 危機 解決 能力 不足 等을 背景으로 登場한다. 그러면서 旣存 엘리트와 旣得權을 攻擊하고 ‘人民’에 直接 呼訴하는 方式으로 民意를 實現하겠다고 主張한다. 이를 爲해 國民들의 直接 參與를 理想化한다.

    采 敎授가 보기에 李在明은 左派 포퓰리스트다. ①敵과 우리의 二分法으로서 法 위의 社會主義 性向의 急進 政策을 追求해 왔다는 點 ②代議政治와 政黨보다는 國民直接政治와 SNS 媒介로 人民 呼訴를 追求해 왔다는 點 ③熟議와 討論보다는 煽動을 통한 單純化를 追求해 왔다는 點 ④主流 政治에 反對해 온 아웃사이더 氣質과 카리스마的 性向이 있다는 點이 根據다. 采 敎授와 追加로 通話해 나눈 問答이다.

    李 代表가 代議政治와 政黨보다는 國民直接政治와 SNS 媒介로 人民 呼訴를 追求해 왔다고 썼는데, 只今은 黨代表가 됐으니 달라지지 않았을까.

    “政黨 代表라 해도 黨의 節次보다는 自身의 支持者들과 가신(家臣)들을 中心으로 일處理하는 方式은 똑같은 것 같다. 政治家보다는 行政家 스타일이다. 自手成家型이라 自己 哲學도 分明하다. 自身과 다른 사람들의 意見을 듣기보다는 親衛隊(親衛隊)를 動員해 일을 一絲不亂하게 執行한다. ‘김건희 特檢法’도 一絲不亂하게 밀어붙였다. 또 自己 系派와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支持者가 鐵桶 防禦를 펴나가는 模樣새다. 그런 모습을 보면 城南市長과 京畿知事로 일할 때와 똑같다.”

    巨大 野黨 代表가 돼서도 아웃사이더 氣質이 나타나는….

    “그렇다. 아웃사이더 氣質과 카리스마的 性向, 自手成家型 리더십이 섞인 것이다. 自身이 經驗하고 또 믿는 것에 對해서는 自己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認定하지 못한다.”

    論文에서 社會主義 性向의 急進 政策을 追求하는 點을 들어 左派 포퓰리스트라 規定했던데.

    “(李 代表가 主張하는) 基本所得이나 財閥 解體는 民主的 基本 秩序에서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自己가 하면 可能하다고 恒常 主張한다. 現行 秩序, 特히 汝矣島 政黨政治 秩序를 認定하면 敢히 그런 얘기를 못 한다. 李 代表는 國民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國民도 있지만 政黨도 있어야 하고 國民을 代表하는 國會議員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旣存 政黨政治에 對해서는 懷疑的이고, 旣得權이라고 表現한다.”

    韓國 政治에서 稀貴한 事例이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類型으로 보겠다.

    “그렇다. 過去에는 카리스마로 武裝한 類似한 스타일이 있기는 했지만 有意味한 大權候補가 됐다거나 黨代表 자리에까지 간 적은 없다.”

    ‘邊方將帥’와 ‘城南라인’

    采 敎授의 말에서 注目할 만한 키워드는 ‘家臣’과 ‘親衛隊’다. 먼저 家臣 그룹. 李 代表에게는 오랜 時節 손발을 맞춰온 少數의 側近들이 있다. 이들은 흔히 ‘城南라인’으로 불리는데, 最近 잇달아 主要 補職에 全面 配置됐다. 李在明의 政治 人生은 國會議員 經歷 없이 基礎團體長부터 始作했다. 그 탓에 周邊 人士들 亦是 ‘非主流’ 出身이 많다. 只今은 主流 中에서도 要職에 起用할 만한 人材풀을 確保했으나, ‘邊方將帥’ 時節부터 同苦同樂한 側近들을 繼續해서 重用한다. 이것도 아웃사이더 氣質의 表出이다.

    議員室 4級 補佐官으로는 김남준·김현지 補佐官이 일하고 있다. 言論社 記者 出身인 김남준 補佐官은 이 代表가 城南市長日 때 言論祕書官을 지냈다. 大選과 補闕選擧 때 이 代表 캠프의 代辯人으로 活動했다. 김현지 補佐官은 이 代表와 市民運動을 하던 時節부터 交遊했다. 이 中 9月 8日 김남준 補佐官에게 電話도 걸고 “李 代表 人物探究 記事를 쓰면서 몇 가지 여쭙고 싶다”고 文字도 남겼지만 一週日이 넘도록 應答은 오지 않았다.

    黨代表 祕書室 政務調整室長에는 정진상 前 京畿道廳 政策室長이 任命됐다. 鄭 室長은 이 代表가 城南市長과 京畿知事 在任 當時 성남시와 京畿道廳 政策室長으로 일했다. 大選 때는 中央選擧對策委員會 候補 祕書室 副室長을 맡았다. 鄭 室長은 大庄洞 開發事業 特惠 疑惑과 關聯한 搜査線上에 올라 이른바 ‘大庄洞 키맨’으로 불린다. 大庄洞 認許可 關聯 決裁 文書에도 그의 이름이 登場한다. 檢察은 올해 1月 鄭 室長을 非公開 召喚해 大庄洞 開發事業의 背任 嫌疑에 加擔했는지 等을 調査한 바 있다. 그런데도 鄭 室長을 要職에 起用하자 민주당 안팎에서도 憂慮의 목소리가 적잖게 나왔다.

    그의 親衛隊 格인 7湮晦(鄭成湖·김영진·김병욱·임종성·문진석·金南局 議員과 李圭閔 前 議員) 亦是 이런저런 私的 因緣으로 묶여 있다. 이 中 金泳鎭·문진석·金南局 議員이 李在明과 같은 中央大 出身이다. 중앙대 總學生會長을 지낸 김영진 議員의 境遇 이 代表의 桂陽乙 出馬와 全黨大會 挑戰에 反對해 距離가 멀어졌다는 얘기가 돌았다. 다만 民主黨 關係者는 “金 議員이 李 代表의 出馬에 反對한 건 맞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에도 둘 사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關係다. 比喩하자면 親姻戚 關係와 類似하다. 普通 그런 사이에서 내 생각과 다른 길을 가면 쓴소리를 할 수는 있어도 아예 緣을 끊지는 않지 않나. 아직 끈끈한 關係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7湮晦 中 相對的으로 미디어에 露出되지 않는 人物들이 正말로 이 代表와 가까운데, 문진석 議員이 代表的이다.”

    이 關係者의 말에서는 두 가지가 느껴진다. 하나는 李在明이 한番 맺은 側近과의 因緣은 쉽게 끊지 않는다는 點이다. 다른 하나는 미디어 露出도가 높은 사람보다는 默默히 일하는 스타일의 人物을 選好한다는 點이다. 공교롭게도 家臣 그룹에 屬하는 정진상·김남준·김현지 中 代辯人 業務를 했던 김남준 補佐官 빼고는 對外 接觸 頻度가 매우 낮은 便이다.

    生存主義者의 德目

    아웃사이더 氣質이 剛한 사람은 生存에 死活을 건다. 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行動하고 누구의 손도 잡아야 한다고 여긴다. 흔히 李在明에 對해 論할 때 擧論되는 單語인 ‘瞬發力’과 ‘實用主義’도 結局 아웃사이더 氣質에서 孕胎한 것이다.

    李在明이 城南市長과 京畿知事를 하면서 注目받은 데는 速度戰이라고 불릴 만큼 빠른 그의 執行 能力이 있다. 애當初 大選 슬로건도 “李在明은 합니다”가 아니었던가. 非文界이자 非명系로 分類되는 민주당 重鎭은 “文在寅 前 大統領과 李在明 代表는 正反對 類型이다. 文 前 大統領에게 뭘 얘기하면 한 時間 後에 答이 오는데, 李 代表는 誇張하자면 0.1秒 만에 答이 온다”면서 “政治權에서 가장 反應이 빠르고 瞬發力 좋은 사람이 李在明”이라고 말했다.

    大槪 瞬發力이 좋은 사람은 價値나 名分을 따지는 데 時間을 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自然스레 實用主義者의 面貌를 띠게 된다. 밑바닥 삶의 記憶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갈 燃料를 찾는 사람은 觀念性의 捕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事業家에게는 엄청난 長點으로 作用하겠으나, 公職者에게는 長點이 될 수도 있고 短點도 될 만한 德目이다.

    進步政治學者인 안병진 慶熙大 未來文明원 敎授는 ‘신동아’ 2022年 2月號 인터뷰에서 이 代表를 “理想的인 民主化의 價値를 생각하기엔 너무나 배고픈 사람이었다. 1980年代 以後 進步 陣營에서 이런 캐릭터는 例外的”이라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具體的 問題를 具體的으로 解決해 왔다”고 評했다. 安 敎授의 말대로라면 李在明의 實用主義는 生存主義로부터 벼려진 것이다.

    다만 安 敎授는 “價値가 弱한 實用主義는 그의 限界”라고 前提를 달았다. 많은 言論이 指摘했듯이 이 限界로 인해 나타나는 行態가 ‘말 바꾸기’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李在明 말 바꾸기’라고 檢索하면 言論社 性向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記事와 칼럼이 登場한다. 강준만 전북대 新聞放送學科 名譽敎授는 이를 ‘顔面沒收 話法’이라 불렀다. 이 亦是 李在明이 가진 切迫하고 悽絶했던 過去의 버릇에서 비롯했다는 게 姜 敎授의 判斷이다.

    實用主義者가 政治的 關係를 맺는 데서 悠然한 態度를 보이는 것도 살기 위해서다. 勢力이 없이 生存하려면 사람과 壁을 치지 않아야 한다. 앞선 민주당 重鎭은 “李 代表는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實用的”이라면서 “必要하다고 생각하면 (李 代表를 强力히 批判하는) 설훈 議員에게도 손을 내밀 것”이라고 했다. 實際로 李 代表는 親文 核心인 홍영표 議員에게는 國民統合委員會 委員長을, 文在寅 政府에서 長官을 지낸 黃熙 議員에게는 國際委員會 委員長을 맡겼다.

    2016년 8월 15일 당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하기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2016年 8月 15日 當時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非常對策委員會 代表와 李在明 城南市長이 서울의 한 映畫館에서 映畫 ‘德惠翁主’를 觀覽하기 앞서 對話를 나누고 있다. [東亞DB]

    이와 關聯해 記者는 6·1 國會議員 補闕選擧 以後 김종인 前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과 가까운 人士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李 代表가 桂陽乙에서 當選된 뒤 金 前 委員長에게 電話해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趣旨의 이야기를 했다. 與圈에서 當選된 사람들보다도 먼저 電話한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政治人이 當選 直後 感謝 人事를 남기는 것이야 日常的인 일이다. 한데 그 對象이 金 前 委員長이라는 點이 흥미롭다.

    李在明은 지난 大選을 한 달餘 앞둔 2月 6日에도 金 前 委員長의 個人 事務室을 찾아 約 1時間 20分間 會同한 바 있다. 그로부터 約 3週 뒤에는 金 前 委員長에게 選對委 共同 國家비전委員長을 提案했다. 보기에 따라 機敏한 政務 感覺으로 보일 만한 行步다.

    그렇다 해서 그가 蕩平 人事를 하고 있다고 보면 困難하다. 仔細히 보면 그의 人事에는 어떤 秩序가 보인다. 實務 權限이 있는 補職에는 家臣과 親衛隊 그룹을 앉히고, 對外用 補職 人事에서는 多樣性을 꾀한다. 믿을 만한 사람만 쓴다는 原則은 絶對 毁損하지 않는다. ‘李在明 代表 體制’의 첫 黨職人選이 發表된 直後 黨 안팎에서는 “親政 體制”라든지 “일해 본 사람만 재기용한다”는 批判이 나왔다.

    “親名當?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가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신임 당대표가 최고위원 당선자들과 함께 손을 들며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박찬대·고민정 의원, 이 대표, 정청래·서영교 의원. [사진공동취재단]

    8月 28日 서울 송파구 올림픽公園 體操競技場에서 열린 全黨大會가 끝난 뒤 더불어民主黨 李在明 新任 黨代表가 最高委員 當選者들과 함께 손을 들며 人事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朴贊大·高旼廷 議員, 李 代表, 鄭淸來·서영교 議員. [寫眞共同取材團]

    돌고 돌아 남는 궁금症은 두 가지다. ①李在明은 드디어 민주당의 核心部를 掌握했는가. ② 李在明은 次期 大統領이 될 수 있는가. 두 質問은 서로 촘촘하게 連結돼 있다.

    模樣새만 놓고 보면 민주당은 ‘李在明當’李 된 것처럼 보인다. 8·28 全黨大會를 통해 選出職 最高委員 5名 中 4名을 親명系가 차지했다. 李 代表가 指名職 最高委員에 各各 任命한 임선숙 辯護士와 서은숙 釜山市黨 委員長도 親명系다. 親명系 金炳基 議員이 首席事務副總長을 맡았고, 亦是 親명系로 꼽히는 김성환 議員이 政策委議長에 留任됐다. 7湮晦 中에서도 金炳旭 議員은 政策委員會 首席副議長, 金南局 議員은 政策委員會 未來事務副總長, 문진석 議員은 戰略企劃委員長으로 있다.

    ‘主流 交替’가 完成됐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大庄洞 開發 特惠 疑惑이나 城南FC 後援金 疑惑 等에 對한 搜査가 本格化하면서 黨이 똘똘 뭉친 모습이 演出됐지만, 親명系 內에는 또렷한 共通 價値가 없어 보인다. 只今이야 尹錫悅 政府에 맞서야 해서 單一隊伍를 形成하고 있을 뿐, 狀況과 條件이 주어지면 系派 葛藤의 戰線이 곳곳에서 드러나리라는 分析도 있다. 무엇보다도 ‘黨代表 李在明’李 直面한 司法 리스크는 汝矣島의 巨大한 火藥庫다.

    朴聖敏 政治컨설팅 ‘閔’ 代表 亦是 世間에 널리 퍼진 ‘민주당 主流 交替’라는 分析에 線을 긋는다. 그와 나눈 問答이다.

    李 代表의 大權街道는 어떻게 될까.

    “大選에서 아깝게 敗한 候補가 黨代表로 復歸한 事例가 몇 番 있다. 只今 (李 代表의 行步는) 大選 敗北 後 8個月 만에 復歸한 이회창 前 總裁의 그것과 類似하다. 文在寅 前 大統領의 境遇 大選에서 敗한 뒤 全黨大會 出馬까지 若干의 텀을 뒀으니 다른 事例다. 그런데 이회창과 文在寅은 大選 出馬 前부터 黨內 主流였다. 主流가 아닌데 黨을 바꾼 人物은 盧武鉉 前 大統領이다. 그 境遇는 旣存 새千年民主黨 代身 열린우리당을 創黨하는 式이었다. 그리고 大統領이 됐기에 可能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질 수 있는 質問은 ‘元來 主流도 아니고 大統領도 아니고 大統領도 못 된 사람이 黨을 自己 糖으로 바꿀 수 있느냐’다. 나는 어렵다고 본다.”

    全黨大會를 통해 李 代表뿐 아니라 親명系가 最高委員團을 차지하지 않았나.

    “只今 親文在寅界는 이 代表의 司法處理가 現實化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기다리는 거지. 於此彼 (大選까지)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李 代表가 민주당을 ‘親名當’으로 바꾸려면 司法 리스크를 다 넘어야 하는데, 한두 件이 아니다. 하나씩 起訴가 이뤄지고 있고 來年이면 1審 裁判 結果가 나오는 事件도 있을 텐데, 公職選擧法 違反 嫌疑로 罰金 100萬 원 以上이 나오면 다음 大選에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고 李在明이라는 분이 金大中이나 노무현처럼 價値나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親文界는 이 代表가 무너지면 文在寅 前 大統領까지 간다고 보기 때문에 共同運命體로 司法 리스크에 對應할 뿐이지, 民主黨이 갑자기 親明堂이 됐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親文은 사라지고 親名이 大勢가 됐다는 主張은 事實과 符合하지 않는다?

    “그렇다. 民主黨의 한쪽에는 김대중 精神을 이어받은 湖南 勢力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노무현-文在寅으로 이어지는 親盧?親文 勢力이 있다. 두 勢力 外에 現實的으로 (민주당에는) 勢力이 없다.”

    그렇다면 全黨大會 當時 湖南 投票率이 낮았던 現象도 說明이 된다.

    “나는 湖南이 사보타주(sabotage·意圖的 怠業 行爲)를 하고 있다고 본다. 또 親文은 이 代表가 허들을 넘기 힘들다고 보는 게 아닌가 싶다. 城南FC 疑惑에 對應하는 민주당 側 論理도 異常하잖나. 李 代表가 돈 한 푼이라도 받은 게 있느냐고 하는데, 미르財團에서 최순실이 받은 돈도 朴槿惠 前 大統領에게 第3者 賂物供與가 適用됐다. 過去에 어느 公職者가 自己가 다니는 査察에 10億 원을 施主하게 한 것도 有罪 宣告를 받았다.”

    申平 辯護士 亦是 “李 代表가 司法 리스크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 보인다”면서 “大選 出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永遠히 虎狼이를 타고 달리다

    ‘起訴된 黨代表’의 存在가 向後 政局에 미칠 波長은 焦眉의 關心事다. 劇的으로 裁判의 門턱을 넘는다 해도 바로 꽃길이 열리는 건 아니다. 民主黨이 22代 總選에서 지면 任期와 相關없이 그는 代表職을 내려놔야 한다. 大權 行步는 그 자리에서 멈추게 된다. ‘某 아니면 度’일 수밖에 없는 勝負가 연이어 이어진다.

    李在明은 ‘신동아’ 2021年 3月號 인터뷰에서 “우리가 언젠가 到達할 最終 目標가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結論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目標에 到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努力하는 것이 삶이고, 社會인 것이지 窮極的인 最終 終着地는 없다”고 했다. ‘고쳐야 할 것이 왜 이렇게 많은가’라는 質問에 對한 答이었으나, 어쩌면 自身의 삶에 對한 反芻(反芻)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虎狼이를 타고 달리는 途中에는 내릴 수 없는 人生. 이것이 李在明이 堪當해야 할 運命인지도 모른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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