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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當한 지 1年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美國|新東亞

바다에서 當한 지 1年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美國

EC121 偵察機 擊墜事件

  • 오세영│歷史作家, ‘베니스의 開城商人’ 著者│

    入力 2010-10-05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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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番엔 空中이다!” 美軍 偵察함 푸에블로호를 拉致해 벼랑 끝 戰術의 단맛을 본 北韓이 이番엔 하늘로 視線을 돌렸다. 1969年 4月15日 31名의 美軍을 태운 最新銳 EC121을 東海上에서 擊墜한 것. 美國의 衛星 監視를 避해 미그21 2臺를 分解한 뒤 列車로 옮겨 再組立, 發進시킨 奇想天外의 作戰이었다. 베트남戰에 시달리던 美國은 이番에도 北韓의 電擊挑發 앞에 無氣力했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美 海軍 情報機 EC121.

    1969年 3月 初.

    EC121 워닝스타(Warning Star) 偵察機는 强力한 3400馬力 라이트 R-3350 엔진 4基를 稼動시키며 東海 上空을 飛行하고 있었다. 日本 도쿄 隣近의 아쓰기 海軍基地에서 發進한 美 海軍 第1偵察隊 所屬의 電子偵察機 EC121의 任務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北上해서 蘇聯 太平洋艦隊의 動態를 探知한 後 東海를 따라 南下하면서 北韓 沿岸을 偵探하고 歸還하는 것.

    레이더를 들여다보던 電探 擔當 下士는 따분한 듯 하품을 했다. 基地를 離陸한 지 7時間이 지난 只今 偵察機는 北韓의 港口都市 淸津 上空을 날고 있었다. 發進에서 歸還까지는 通商 10時間假量 所要되는데, 비좁은 空間에서 30名 넘는 人員이 뒤섞여 지내려니 苦役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대로 南下를 繼續해 北緯 40度에서 方向을 틀고 日本 基地로 歸還하면 任務는 끝인데 이때쯤이면 슬슬 緊張이 풀리게 마련이다.

    그 瞬間 레이더에 輝點이 번쩍거렸다. 레이더가 뭔가를 感知한 것이다. 偵察機에 搭載된 APS-95 레이더는 半徑 400㎞를 샅샅이 훑는 最新型 레이더다. 電探士는 얼른 偵察機의 位置를 살폈다. 偵察機는 現在 淸津 앞바다 150㎞ 地點 上空을 飛行하고 있었다. 明確히 公海上이고 接近하고 있는 正體不明 飛行體度 그다지 威脅的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電探官에게 報告하는 게 좋을 것이다. 電探士는 고개를 돌려 前貪官을 찾았다.

    “未確認 飛行體가 接近 中입니다.”



    “어랑에서 출격한 미그15 같군. 50㎞ 以內로 接近하거든 報告해.”

    電探觀이 레이더를 살피더니 크게 憂慮할 일이 아니라는 듯 繼續 監視할 것만을 指示했다. 北韓 空軍의 미그기들이 출격해서 東海上을 偵察飛行하는 EC121을 邀擊하는 일은 그동안 몇 次例 있었지만 큰 威脅은 아니었다. EC121의 高性能 레이더는 東海岸은 勿論 北韓 全域의 軍事基地를 샅샅이 훑고 있기에 離陸하는 미그기를 卽時 捕捉했고, 미그기가 邀擊 位置에 到達하기 前에 充分히 待避할 餘裕가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北韓은 매우 好戰的인 나라다. 지난해(1968年) 海軍 情報艦 푸에블로호가 被拉 된 바 있고, 또 1965年 4月28日에는 東海上을 偵察飛行 中이던 美 空軍 RB47 스트라토 偵察機가 北韓 空軍 미그17의 攻擊을 받고 滿身瘡痍가 되어 艱辛히 요코다 基地로 歸還하기도 했다. 그 事件 以後로 美軍은 偵察機를 高性能 레이더를 搭載한 新型 EC121로 交替했고, 偵察飛行 路線도 沿岸으로부터 80㎞ 空域에서 150㎞ 共譯으로 후퇴시켰다. 그렇게 되면서 미그기의 邀擊은 크게 念慮하지 않아도 됐다.

    輝點은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다. 亦是 威脅飛行이었다. 偵察機 EC121은 아쓰기 基地를 向해 機首를 돌렸다.

    美, ‘韓國은 1日 作戰權’ 警告

    1969年은 무엇보다도 人類가 最初로 달에 발을 디딘 해로 記憶될 것이다. 美國의 誘引 宇宙船 아폴로 11號는 1969年 7月 달에 無事히 着陸했고 宇宙人 암스트롱이 달 表面에 첫발을 디디면서 人類는 새로운 歷史를 向해 힘찬 出發을 했다.

    그렇게 人類가 歷史의 새로운 里程標를 세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동안에도 아시아에서는 危機가 繼續 高調되고 있었다. 韓半島엔 언제 戰爭이 터질지 모르는 一觸卽發의 緊迫한 狀況이 持續되고 있었고, 베트남은 끝을 期約할 수 없는 지루한 戰爭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韓半島에서 푸에블로호 事件을 겪고 베트남에서 舊正攻勢를 當하면서 美國의 反戰 雰圍氣는 最高潮에 達했다. 존슨 大統領은 結局 再出馬를 抛棄했고, 아시아에서 撤收를 公言한 共和黨의 리처드 닉슨이 大統領에 當選됐다.

    美國은 正말로 아시아에서 손을 뗄 것인가. 그것은 南과 北 모두에 至大한 關心事였다. 軍事力은 北韓이 韓國보다 優勢하다. 그러니 美軍의 撤收는 곧 韓半島의 赤化統一을 의미했다.

    그러나 韓國은 美國이 그리 簡單하게 抛棄할 對象이 아니었다. 韓半島가 共産化하면 日本의 安保도 威脅을 받게 되면서 美國의 太平洋 戰略은 큰 蹉跌을 빚게 될 것이다. 어느 한 國家가 共産化하면 아시아 大陸 全體가 共産化할 것이라는 도미노 理論이 不變의 鐵則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美國은 ‘벼랑 끝 戰術’로 재미를 본 北韓에 警告의 메시지를 보낼 必要를 느꼈고, 그 結果 1969年 3月 포커스레티나 訓鍊이 大大的으로 펼쳐졌다. 포커스레티나 訓鍊은 完全武裝한 空挺隊員 2500餘 名이 美 本土에서 C141 大型 輸送機로 31時間 만에 韓半島로 緊急 공수되는 史上 最大 規模의 空輸訓鍊이었다. 美國은 韓國이 美 本土에서 1日 作戰權에 들어 있음을 誇示함으로써 北韓에 섣부른 誤判을 하지 말 것을 强力하게 警告한 것이다. 美國은 地上軍이 一部 撤收하더라도 韓美相互防衛條約을 徹底하게 遵守하겠다는 意志를 分明히 했다.

    烏山 美 空軍基地 駐機場에 F106A 델타다트 戰鬪機 編隊가 特有의 三角形 날개를 번쩍이며 줄지어 서 있었다. 美 本土에서 烏山基地로 緊急 移動한 第318邀擊戰鬪飛行團 所屬 戰鬪機들이다. 그리고 滑走路 건너便에는 오키나와 나하基地에서 날아온 82邀擊戰鬪飛行團 所屬 F102A 델타大擧 戰鬪機들이 當場이라도 날아오를 듯 威容을 誇示하고 있었다. 兩쪽 다 지난해 푸에블로호 被拉事件 以後 韓半島의 緊張이 高調되면서 緊急 前進配置된 戰鬪機들.

    空中挑發 타깃은 西海 5度?

    이즈음 韓國軍과 駐韓美軍 首腦部들은 한時도 警戒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北韓은 포커스레티나 訓鍊에 神經質的인 反應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1969年)는 北韓 김일성 首相의 回甲이다. 軍部에서 偉大하신 首領 同志에게 뭔가를 膳賜하려들 지 모른다. 挑發을 한다면 이番에는 空中日 것이다. 軍 首腦部는 그렇게 判斷하고 있었다. 北韓은 1·21事態와 푸에블로호 拉致를 通해서 地上과 海上 挑發에서 所期의 成果를 거둔 바 있다.

    空中 挑發을 敢行한다면 타깃은 어딜까. 서울은 休戰線에서 不過 40㎞밖에 떨어지지 않아 戰鬪機가 發進 數分 만에 到達할 수 있다. 하지만 軍 首腦部는 서울은 아니라고 判斷하고 있었다. 서울 攻襲은 곧 全面戰인데 北韓이 全面戰에 對備하고 있는 徵候는 捕捉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北韓 空軍은 어디를 노릴까.

    情報當局은 白翎島를 包含한 西海 5度를 有力한 候補地로 꼽고 있었다. 白翎島는 北韓의 甕津半島가 바로 건너다보이는 곳으로, 北韓이 奇襲 攻擊을 敢行하면 孤立될 危險이 있다. 北韓이 白翎島를 奇襲 占領해버리면 아시아에서 또 다른 戰爭을 願치 않는 워싱턴 當局은 擴戰 代身에 北韓의 西海 5度 占領을 現實로 認定할 可能性이 크다. 베트남戰爭을 통해 美軍은 아시아 戰爭에서 限界를 드러내고 있었다.

    如此하면 美國이 발을 뺄 것이란 所聞이 퍼지면 動搖가 걷잡지 못할 程度로 極甚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北韓이 노리는 바다. 奇襲侵攻에 脆弱한 西海 5度와 흔들리는 美國. 그야말로 局地戰의 效果를 極大로 끌어올릴 수 있는 最適의 條件이었다.

    軍 情報當局이 白翎島를 꼽은 데는 中國의 금문도 侵攻도 큰 參考가 됐다. 금문도는 中國 푸젠(福建)李 코앞에 건너다보이는 臺灣의 領土로 여러모로 韓國의 白翎島와 比肩되는 섬이다.

    中國은 금문도와 그 옆의 마조도를 奇襲占領하기 위해 戰鬪機를 出擊시켰다. 이에 對應해 臺灣 空軍이 邀擊에 나서면서 1958年 8月23日에 금문도 上空에서 大大的인 空中戰이 벌어졌다. 中國은 미그15와 미그17 戰鬪機를 出擊시켰고, 臺灣 空軍은 F86F 세이버 戰鬪機로 對抗했는데 空中戰 結果는 29代 0. 中國의 미그기가 29臺나 擊墜되는 동안에 臺灣 空軍機는 單 1代도 被擊되지 않았다. 臺灣 空軍은 空對空 미사일을 保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겨냥하고 發射하는 機關砲와 適期 꽁무니의 熱을 感知해서 追跡하는 미사일 間의 싸움은 처음부터 結果가 定해진 싸움이었다.

    電探觀이 悲鳴을 질렀다. 電探觀이 機長에게 報告를 하려는 瞬間 미그21이 스치듯 EC121을 가로지르는 게 窓門을 통해 똑똑히 보였는데 北韓 空軍을 象徵하는 붉은 별과 기수에 새겨진 機體番號 803이 前貪官의 눈에 鮮明하게 들어왔다. ‘피시베드’는 西方에서 미그21에 붙인 別稱이다.

    都大體 미그21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唐慌하던 前貪官은 베트남戰爭에서 미그21이 超低空으로 飛行하다 急上昇해서 치고 빠지는 一擊離脫 戰術로 쏠쏠한 戰果를 올리고 있다는 事實을 떠올렸다. 現在 位置는 淸津 東北方 152㎞ 上空으로 分明히 公海上이다. 그렇지만 安心할 수 없다. 北韓은 아주 好戰的인 國家고 EC121은 아무런 武裝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꼬리 내린 닉슨 行政府

    현기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美軍 偵察機가 視野에 들어온 것이다. 이제 남은 마지막 고비는 K13 미사일로 擊墜하는 것. 현기수는 擊墜는 요기에 맡기기로 하고 EC121의 앞을 가로질렀다. EC121이 急히 回避起動을 하는 것과 療飢에서 미사일이 發射된 것은 거의 同時였다.

    名中인가. 그러나 期待와 달리 미사일은 目標를 제대로 追跡하지 못하고 虛空 속으로 날아갔다. 燃料는 무서운 速度로 消耗되고 있었다. 현기수는 얼른 機體를 旋回했다.

    美軍 偵察機는 海面을 向해 急降下를 試圖했다. 反射波를 利用해서 미사일 追跡을 따돌릴 模樣이었다. 머뭇거리다가는 美軍 偵察機를 놓쳐버린다. 현기수는 悲壯한 覺悟로 두 番째 미사일을 發射했다. 이番에도 명중시키지 못하면 그대로 美軍 偵察機를 들이받을 覺悟였다.

    날개 끝에서 작은 振動이 傳해지면서 K13미사일이 美軍 偵察機를 向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回避起動을 하려는 美軍 偵察機를 놓치지 않고 正確하게 쫓아갔고 곧 後尾에서 번쩍하며 閃光이 일었다. 命中이었다. 命中을 確認한 현기수는 急히 機首를 틀었다.

    31名의 乘務員을 태운 美 海軍 偵察機 EC121은 불길에 휩싸인 채 東海上으로 墜落했다. 時計바늘은 1969年 4月15日 午後 3時55分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기수는 그 功勞로 共和國 英雄이 됐고 勞動黨 中央委員會 候補委員으로 推薦됐다.

    北韓은 領空을 侵入한 美軍 偵察機를 擊墜했다고 大大的으로 宣傳했다. 닉슨 行政府는 어떻게 對應할 것인가. 푸에블로호 때 존슨 行政府는 北韓에 事實上 屈服했다. 그리고 그 代價로 82名의 乘務員이 無事히 돌아왔다. 그런데 이番에는 돌아올 乘務員이 없다. 北韓은 잠자는 獅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인가. 아니면 美國은 亦是 종이虎狼이에 不過한 것인가. 大韓民國은 勿論 世界가 숨을 죽이고 事態를 지켜보았다.

    狀況은 前과 비슷하게 進行됐다. 美國은 軍事停戰委員會를 통해 北韓에 强力하게 抗議했고 東海에 航空母艦을 派遣해서 武力示威를 敢行했다. 北韓이 큰소리를 치는 것도 똑같았다.

    軍事停戰委員會 北韓 代表 이춘선은 美軍 偵察機의 所屬을 들먹이며 도리어 유엔 首席代表인 냅 美軍 空軍所長을 몰아붙였다. 美國을 直接 相對할 테니 유엔軍 代表는 빠지라는 것이었다. 이춘선은 氣勢騰騰했고 韓國은 아무 소리 못하고 事態를 지켜볼 뿐이었다.

    치킨 게임의 勝者는 이番에도 北韓이었다. 처음에는 펄펄 뛰며 大量報復을 豪言하던 닉슨 行政府는 조금씩 말꼬리를 내리더니 結局 어물쩍 넘어가는 쪽을 擇했다. ‘아시아에서의 戰爭은 아시아人들에게’를 標榜하며 當選된 닉슨에게 아시아에서의 또 다른 戰爭은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五 세 영

    1954年 忠南 洪城 出生

    慶熙大 史學科 卒業

    1993年 歷史小說 ‘베니스의 開城商人’으로 글쓰기 始作

    著書 : ‘萬波息笛’ ‘花郞西遊記’ ‘蒼空의 透寫’ ‘小說 玆山魚譜’ ‘구텐베르크의 朝鮮’ 外


    또 한 次例의 벼랑 끝 戰術이 成功하면서 北韓은 美國과 對等한 相對가 됐고 大韓民國은 南北問題에서 局外者로 轉落하고 말았다.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北韓과 속절없이 밀리는 大韓民國. 언제까지 이렇게 當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러나 아직은 經濟力도 軍事力도, 그리고 國際社會에서의 名分도 北에 밀리는 現實이었다.

    北韓은 종이虎狼이 美國을 韓半島에서 몰아내고 赤化統一을 達成할 것인가. 아니면 大韓民國이 이番에도 危機를 슬기롭게 克服하고 繁榮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如前히 짙은 구름이 韓半島 上空을 덮고 있는 가운데 1970年代로 접어들었다. 그러면서 南과 北은 永久執權과 世襲化라는 새로운 問題에 直面했다.

    視線은 東海 上空에 머물고…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9年 3月 포커스레티나 訓鍊에 參加한 美軍 空挺隊員들이 C141 輸送機를 타고 韓半島로 移動하고 있다.

    금문도 奇襲占領은 失敗로 돌아갔지만, 軍 首腦部는 白翎島는 境遇가 다르다고 判斷하고 있었다. 11年 前 臺灣 空軍이 完勝을 거둔 理由는 制空權을 掌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大韓民國의 現實은 그 反對였다. 北韓 空軍의 戰力이 優勢하다는 事實을 否認할 수 없었다. 大韓民國 空軍의 主力인 F5A로는 北韓 空軍의 新銳 미그21을 對敵하기 힘든 게 儼然한 事實. 거기에다 北韓 空軍은 韓國 空軍에는 없는 IL28 輕爆擊機를 保有하고 있는데, IL28 輕爆擊機는 西海 5度 奇襲戰에 매우 威脅的인 存在였다. 그러한 電力의 劣勢를 挽回하기 위해 美 空軍은 F102A 델타大擧와 F106A 델타다트 戰鬪機 分遣隊를 烏山基地에 急派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우리의 하늘을 美 空軍에 맡길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 그래서 朴正熙 大統領은 알土卵 같은 追加 軍援 1億달러를 空軍力 强化에 集中的으로 쏟아 부었고, 그 結果 피스 스펙테이터 프로그램(Peace Spectator Program)에 따라서 韓國 空軍은 最新銳 팬텀 戰爆機를 保有하게 됐다. 하지만 팬텀機가 實戰配置(1969年 8月) 되기 直前인 1969年 4月에 먹구름이 韓半島로 밀려오고 있었다.

    咸鏡北道 김책시 北韓 空軍大學. 東海岸의 港口都市 김책시는 日帝强占期까지 성진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默默히 地圖를 들여다보던 空軍大學腸 김기옥 所長은 천천히 窓가로 걸음을 옮겼다. 밤늦게 出漁를 하는 걸까, 有診斷 쪽에서 漁船의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김기옥은 6·25戰爭 때 美 空軍 最高의 에이스 操縱士였던 토머스 젤레스 大尉가 몰던 戰鬪機를 擊墜하면서 北韓 空軍 最初로 共和國 英雄이 된 人物이다. 그리고 1994年에 70回 生日을 맞았을 때 김정일로부터 直接 生日床을 받았을 만큼 北韓 空軍에선 獨步的인 存在였다.

    김기옥 所長은 입맛이 썼다. 뭔가 本때를 보여주고 싶은데 마땅한 方策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海軍은 푸에블로호 拉致로 首領 同志에게 큰 稱讚을 들었다. 空軍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데 어디가 좋을까. 다시 狀況板 앞으로 돌아온 김기옥은 西海에서 休戰線 全域을 거쳐서 東海上으로 次例로 視線을 옮겼다. 一旦 서울은 아니다. 全面戰은 考慮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기옥의 눈이 白翎島에 머물렀다. 亦是 저곳이 좋을까. 그러나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海岸砲로 砲擊하고 IL28 輕爆擊機로 爆擊한 다음 兵力을 上陸시키면 白翎島를 守備하는 韓國 海兵隊는 孤立될 것이다. 緊急發進限 南韓 空軍의 F5 戰鬪機는 태탄基地의 미그21이 遮斷할 수 있다. 그렇지만 駐韓美軍의 F102와 F106 戰鬪機들이 問題였다. 美 空軍과 空中戰을 벌이면 자칫 全面戰으로 번질 憂慮가 있다.

    김기옥은 視線을 東海 쪽으로 돌렸다. 地圖에 美軍 電子偵察機가 東海上을 飛行하는 經路가 詳細히 標示되어 있었다. 日本에서 發進하는 美軍 電子偵察機는 제집 드나들 듯 東海 上空을 飛行하며 北韓을 偵察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눈에 거슬리던 참인데 此際에 저걸…. 偵察機는 駐韓美軍 所屬이 아니니 全面戰으로 번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問題는 어떻게 擊墜하느냐는 것인데…. 暫時 생각하던 김기옥은 決心을 한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車를 대기시켜라. 平壤으로 가겠다.”

    김기옥이 急히 記號軍官을 불렀다.

    또다시 몰려오는 戰雲(戰雲)

    只今은 南과 北의 經濟 規模가 比較도 되지 않지만, 1960年代 後半까지만 해도 北韓이 軍事力은 勿論 經濟力에서도 南韓을 凌駕하고 있었다. 1956年에 始作된 ‘千里馬運動’은 나름대로 所期의 成果를 거뒀고 食糧도 刮目할 만큼 增産됐다. 그리고 配給制 實施로 1100萬名의 北韓 住民은 最小限 굶지는 않게 됐다. 굶주림 解決이 最大의 懸案이던 當時로서 굶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分明 내세울 만한 業績이었다.

    平壤은 戰爭의 傷痕을 完全히 復舊하고 번듯한 現代都市가 됐고 農村에도 電氣가 들어갔다. 北韓은 大躍進運動의 失敗에 이어서 文化大革命의 狂氣로 混亂을 겪고 있는 中國보다도 잘살았으며 當時 아시아에서 生活水準이 높은 나라에 屬했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0年 8月6日 金浦空港에서 一般에게 公開된 北韓의 미그15 제트機. 사흘 前 北韓 空軍 所屬 정낙현 小委가 타고 歸順한 것이다.

    勿論 大韓民國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經濟開發5個年計劃을 樹立하고 再建에 拍車를 加했다. 2800萬 國民은 우리도 한番 잘살아보자는 一念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經濟開發에 나섰다. 하지만 出發은 北韓만큼 순조롭지 못했다. 나라 살림은 外國 援助에 依存해야 하는 實情이었고 距離는 失業者로 넘쳐났다. 1人當 國民所得은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고 勞動者의 賃金은 日本의 8分의 1 水準에 不過한 가난한 나라였다. 美國은 필리핀 原木으로 만든 家具를 韓國에서 輸入했다. 필리핀에서 直接 輸入하는 것보다 原木을 韓國으로 가져가서 그곳에서 加工해 輸入하는 게 더 經濟的일 만큼 韓國 勞動者의 人件費가 쌌다.

    1965年을 ‘熱心히 일하는 해’로 定한 政府는 1966年을 다시 ‘또 熱心히 일하는 해’로 定하고 國民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當付했다. 오로지 죽어라 하고 일하는 것만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唯一한 길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다가 1·21事態 以後엔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日하세’로 標語가 바뀌었다. 일만 해서도 안 되는 狀況이었다.

    出發은 힘들었지만 타고난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大韓民國은 조금씩 經濟的 基盤을 마련해나갔다. 아직은 北韓보다 軍事力과 經濟力에서 뒤지지만 熱心히 努力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는 希望이 막 보이기 始作할 무렵에 韓半島에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大韓民國은 危機를 無事히 克服하고 繁榮의 길로 올라설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戰爭의 廢墟로 굴러 떨어질 것인가. 지난해(1968年)부터 始作된 危機는 해가 바뀌고도 繼續되었다.

    空軍 所長 오극렬을 中心으로 김기옥 所長과 照明錄 大佐가 深刻한 表情으로 마주앉아 있었다. 急히 平壤으로 달려온 김기옥은 空軍의 두 實力者와 祕密會同을 갖고 있었다. 南韓과 美國은 只今 포커스레티나 訓鍊을 大大的으로 實施하고 있다. 어떤 式으로든 對應할 必要가 있다. 그리고 首領 同志의 回甲 膳物도 準備해야 한다. 그래서 세 사람은 緊急 會同을 했고 空中奇襲을 敢行할 것에 意見一致를 본 것이다.

    “IL28을 出擊시켜 白翎島를 때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만하면 海軍 쪽보다 큰 膳物이 될 텐데.”

    김기옥-오극렬-照明錄 會同

    視線이 줄곧 白翎島에 머무르고 있었던 照明錄 大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南韓과 美國에서 反擊하기 前에 充分히 西海 5度를 武力으로 占領할 自身이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1977年부터 1995年까지 18年 동안 空軍司令官을 지내는 照明錄 對坐는 北核 危機 때 北韓 使節團으로 美國을 訪問해 클린턴 大統領을 面談한 바로 그 人物이다.

    “白翎島는 危險해. 자칫 全面戰으로 發展할 수도 있소.”

    김기옥이 反對를 했다. 事實 그는 김책시를 出發할 때 이미 腹案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全面戰이 벌어지면 대수입니까. 그까짓 南半部 軍隊야 우리 人民軍이 얼마든지 밀어붙일 수 있고 美軍들은 종이虎狼이 아닙니까. 戰爭이 나면 꽁무니를 뺄 겁니다. 베트남戰을 통해서도, 또 昨年의 푸에블로호 拉致를 통해서도 美國이 종이虎狼이라는 事實이 證明되지 않았습니까.”

    照明錄 大佐가 豪氣 있게 받았다.

    “首領 同志께 膳物을 드리자는 것이지 戰爭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오.”

    김기옥이 핀잔을 주었다.

    “白翎島를 치더라도 戰爭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南半部에서는 펄쩍 뛰겠지만 美國이 뒤를 잡고 늘어질 테니까요. 美國은 只今 戰爭을 벌일 形便이 아닙니다.”

    照明錄 對坐는 自己主張을 굽히지 않았다. 實際로 그는 나중에 空軍司令官 時節인 1981年과 1983年, 두 次例에 걸쳐 미그기와 IL28 輕爆擊機를 動員해서 白翎島를 威脅한다.

    “포커스레티나 作戰은 괜히 하는 게 아니오. 그것은 美國이 絶對로 南朝鮮을 抛棄하지 않겠다는 警告를 우리에게 보내는 것이오.”

    “그러면 김기옥 所長 同志는 무슨 좋은 腹案이라도 있소?”

    오극렬이 입을 열었다. 革命鬪士 집안으로 김정일 委員長과는 어릴 적에 같이 자란 사이인 오극렬은 나중에 空軍司令官과 人民軍 總參謀長을 歷任하는 人物이다.

    “내 計劃은….”

    김기옥이 指示棒으로 東海 上空을 가리키자 오극렬과 照明錄은 意外라는 表情을 지었다.

    “美軍 偵察機가 東海를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고 있소.”

    김기옥이 비로소 속내를 털어놓았다.

    ‘蘇聯軍도 不可能한 일’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오극렬과 照明錄(오른쪽).

    “그럼 美軍 偵察機를 擊墜하자는 겁니까? 美軍 偵察機는 陸地로부터 150㎞ 떨어져서 飛行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可能하겠습니까.”

    오극렬이 뜨악한 表情으로 물었다. 1931年生이니 이 자리에 모인 세 사람의 空軍 指揮官 中에서는 第一 軟하지만 그래도 黨 序列은 그가 가장 높다.

    “블라디보스토크의 蘇聯 海軍도 美軍 偵察機를 손보려 하고 있지만 마땅한 邀擊 手段이 없어서 참고 지내는 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재주로 美軍 偵察機를 擊墜하겠다는 겁니까.”

    照明錄度 理解할 수 없다는 表情이었다. 日本 아쓰기 基地에서 出擊하는 美 海軍偵察隊 所屬 EC121 電子偵察機는 北韓은 勿論 蘇聯에도 눈엣가시 같은 存在지만 現實的으로 마땅한 邀擊 手段이 없었다.

    “하늘을 나는 偵察機는 바다 위에 떠 있는 偵察艦과 境遇가 다르지 않소?”

    오극렬 所長은 別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偵察艦과 偵察機는 境遇가 다르다. 率直히 偵察함 拿捕는 배짱으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偵察機 擊墜는 高度의 手段이 없으면 不可能하다. 그리고 飛行機가 떨어지면 乘務員이 全部 죽을 테니 協商 手段도 마땅치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可能性도 稀薄하고 實利도 別로 없어 보이는 冒險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勿論 邀擊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全혀 不可能한 것도 아니오.”

    김기옥이 斷乎하게 말했다. 그는 이미 具體的인 計劃을 세워두고 있었다. 美軍 偵察機를 邀擊한 先例는 있다. 4年 前에 미그17이 緊急發進해서 北韓 沿岸으로부터 80㎞ 떨어진 公海上을 飛行하던 RB47 스트라토 美軍 偵察機를 攻擊했던 적이 있다. 美軍 偵察機는 被擊은 가까스로 免했지만 傷處투성이가 돼 歸還했다. 그 事件 以後 美軍은 偵察飛行 코스를 沿岸으로부터 150㎞ 公海上으로 바꾸었고 機種도 最新銳 EC121 워닝스타로 交替했다. 飛行코스가 70㎞나 더 멀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邀擊이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미그15는 最高速度가 時速 652마일에 達해서 最高速度가 時速 290마일에 不過한 EC121을 쫓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EC121에 搭載된 新型 APS-95 레이더는 半徑 400㎞를 샅샅이 훑으면서 北韓 空軍機의 出擊을 實時間으로 點檢하고 있기에 미그기가 接近하면 卽時 安全地帶로 避할 것이다. 無理해서 追擊하다가는 미그기의 燃料가 떨어져 바다에 墜落할 것이다. 沿岸으로부터 150㎞ 떨어져 飛行하는 敵軍 偵察機를 擊墜하는 것은 當時 蘇聯 空軍도 不可能한 것으로 看做되고 있었다.

    “미그21로 一擊離脫”

    그걸 모를 김기옥이 아니다. 그런데 왜 자꾸 邀擊을 固執하는 걸까. 오극렬과 照明錄은 好奇心 가득한 얼굴로 김기옥을 쳐다봤다. 김기옥은 絶對로 無謀한 計劃을 立案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동안 어랑基地에서 미그15를 緊急發進시키면서 美軍 偵察機의 對應을 綿密히 살피고 있었소.”

    두 사람은 잠자코 듣기로 했다.

    “그 結果 미그21이라면 美軍 偵察機를 擊墜할 수 있을 거란 結論을 얻었소.”

    김기옥이 確信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그21은 애初부터 蘇聯에서 美國의 B52 戰略爆擊機를 邀擊할 目的으로 開發된 戰鬪機다. 緊急發進해서 適期를 邀擊하고 迅速히 離脫하는 一擊離脫 性能은 베트남戰에서 充分히 立證된 바 있다.

    “미그21이라니…북창기지의 미그21을 말하는 겁니까?”

    照明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最新銳 미그21期는 平安南道 北窓機智에 配置돼 있다.

    “그렇소.”

    김기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照明錄은 如前히 理解가 되질 않았다. 新銳 미그21이 旣存의 미그15나 미그17에 比해서 뛰어난 性能을 지닌 것은 事實이지만 그래도 150㎞나 떨어져서 飛行하는, 그것도 高性能 레이더를 裝着한 偵察機를 擊墜하는 것은 無理였다. 그리고 미그21을 어랑機智로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美國의 偵察衛星이 北韓 全域을 훑어보고 있었다. 미그21이 北窓基地를 떠나 어랑機智로 移動을 하면 卽刻 偵察衛星에 捕捉될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소.”

    오극렬이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며 難色을 표했다. 어쩌면 只今 이 時間에 偵察衛星이 平壤을 撮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소. 그래서 偵察衛星의 監視를 避할 方法을 講究해냈소.”

    미그21을 出擊시켜 美 偵察機를 邀擊하는 것은 事實 다음 問題다. 急先務는 미그21을 어떻게 美國의 監視를 避해 어랑機智로 옮기느냐는 것이다. 김기옥은 첫 番째 課題에 對해서는 이미 解決策을 갖고 있었다.

    “美軍 偵察機가 基地를 離陸하는 時間을 正確히 알고 싶은데, 그 일은 아무래도 勞動黨 連絡部에 도움을 要請해야 할 것 같소.”

    김기옥은 벌써 두 番째 課題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리 自身을 하는데 더 反對할 수 없었다. 두 空軍 指揮官은 積極 도울 뜻을 비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運命의 離陸

    드넓은 驪州平野 訓鍊場에는 朴正熙 大統領과 本스틸 유엔軍 司令官을 爲始해서 國內外 VIP들이 觀覽臺에 자리를 잡고서 美 本土에서 緊急 空輸된 美 陸軍 102公正四端의 落下傘 降下訓鍊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의 空輸作戰과 이어서 浦項에서 벌어질 韓美 海兵隊의 聯合上陸訓鍊은 韓美合同 포커스레티나 訓鍊의 하이라이트다.

    드디어 美 本土에서 直接 날아온 C141 스타리프터 長距離 輸送機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를 따르는 C130 허큘리스 中距離 輸送機는 日本에서 發進한 것인데, 곧 美 陸軍의 空挺隊員들이 落下를 하면서 女主벌 하늘에는 하얀 꽃이 滿開할 것이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9年 포커스레티나 訓鍊 當時 驪州벌에 落下한 美軍 共政府隊員들.

    訓鍊은 蹉跌 없이 進行되고 있었다. 美國은 非常事態가 發生할 境遇 卽刻 韓國에 兵力을 派遣할 意思를 分明히 했고 또 그럴 能力도 있음을 誇示했다. 그런데도 空輸訓鍊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表情이 그리 밝지 못했다. 北韓은 繼續해서 포커스레티나 訓鍊을 非難하고 있었다. 訓鍊을 口實 삼아 또 다른 挑發을 劃策할 可能性이 없지 않았다. 푸에블로호 事件을 통해서 北韓은 벼랑 끝 戰術의 단맛을 톡톡히 보았다. 비슷한 狀況이 再演되면 닉슨의 공화당 政府는 어떻게 對應할까. 궁금하기는 北韓이나 韓國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쿄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쓰기 市는 便利한 交通과 秀麗한 周邊 環境을 갖춘 田園都市다. 4月의 이아야마벚꽃 祝祭와 8月의 隱語 祝祭가 有名한데 이때가 되면 隣近 도쿄와 요코하마는 勿論 全國에서 많은 사람이 이 都市로 몰려든다.

    市 外郭에 位置한 美 海軍航空隊 基地에서 中形 飛行機 한 臺가 轟音을 울리며 基地를 離陸하고 있었다. 긴 胴體에 特徵인 垂直꼬리날개 3個. 氣體 위로 높이 솟은 塔에는 高性能 偵察裝備들이 搭載돼 있다.

    쓰레기桶을 옮기던 淸掃夫는 離陸하려는 氣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길이는 38.6m, 너비는 35.4m, 그리고 높이가 8.23m에 무게는 65.8t이라고 敎育을 받았는데 눈어림으로 봐서 대충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飛行機가 電子偵察機 EC121이 틀림없을 것이다. 淸掃夫는 얼른 時計를 들여다보았다. 理由는 모르지만 朝總聯 支部에서 EC121이 離陸할 때마다 正確한 時刻을 報告하라는 指示를 받았기 때문이다. 視角을 確認한 淸掃夫는 미리 定해놓은 暗號를 想起하며 서둘러 公衆電話로 向했다.

    EC121M-一連番號 135749-워닝스타 偵察機가 滑走路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길고 지루한 任務지만 參考 歸隊하면 外出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31名의 乘務員은 가벼운 弄談을 건네며 各自가 擔當한 契機를 點檢하기 始作했다. 머지않아 그들에게 닥칠 運命을 全혀 豫感하지 못한 채.

    미그21 分解해 列車로 移送

    整備士들을 督勵하던 指導員이 김기옥 所長과 현기수 大尉를 보더니 遑急히 달려왔다.

    “떼어내는 것도 그렇게 어려웠는데 組立하는 건 더 힘들었습니다.”

    미그21期 2기가 分解돼 列車便으로 어랑機智로 移送됐다. 偵察衛星의 監視를 避하기 위해 김기옥 所長이 그 方法을 考案해낸 것이다. 다시 組立을 해야 하는데 좁은 天幕 안에서 作業을 하려니 整備士들의 苦生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답답하지만 美國 偵察衛星의 監視를 避하기 위해서 天幕 안에서 作業을 한 것이다.

    “수고 많았다. 이제 天幕을 걷어도 좋다.”

    天幕이 걷히자 두 臺의 미그21이 威容을 드러냈다. 美國의 偵察衛星 사모스가 까마득한 高空에서 北韓 全域을 샅샅이 훑고 있지만 이제 더 以上 숨을 必要가 없다. 1960年代에 開發된 사모스 偵察衛星은 只今의 키홀 衛星과 달리 同時間으로 情報를 電送하지 못하고 指定된 場所에 이르러 필름 박스를 投下하면 待機하고 있던 偵察機가 空中에서 박스를 收去해서 情報部隊에 引繼하는 方式을 쓰고 있었다. 필름 投下와 回收, 그리고 移送과 分析에 적지 않은 時間이 所要된다. 그러니 出擊이 臨迫한 마당에 偵察衛星은 더 以上 警戒의 對象이 아니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김기옥이 현기수에게 물었다. 김기옥은 偵察機 EC121을 擊墜하는 任務를 最高의 操縱士 현기수 大尉에게 맡겼다. 김기옥 所長이 北窓基地에서 가지고 온 飛行機는 미그21 中 개량형인 BIS型. BIS型은 推力 7500㎏의 투萬스키 R-25 엔진을 裝着해서 急上昇 能力을 크게 向上시킨 高空 邀擊用 專門 機種이다.

    一旦 組立은 마쳤지만 問題는 이제부터다. 當場 時急한 것은 發疹이다. 緊急發進이 特技인 미그21은 相對的으로 滑走距離가 짧은 便이지만 그래도 滑走路가 最小限 800m는 돼야 하는데 舊式 機種을 運用하는 어랑基地의 滑走路는 600m에 不過했다.

    “機關砲를 除去해서 무게를 最小限으로 줄이면 그럭저럭 離陸이 可能할 것 같습니다.”

    현기수가 機體를 꼼꼼히 살피더니 肯定的인 對答을 했다. 그러나 김기옥은 如前히 신중했다. 裝着된 GSH-23 機關砲를 除去하면 무게가 훨씬 가벼워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武器는 AA-8 空對空 미사일밖에 남지 않는다. 미사일은 命中率이 많이 떨어진다. 더구나 AA-8 미사일은 熱追跡 方式이어서 제트機보다 相對的으로 弱한 熱을 發하는 프로펠러 飛行機를 맞히는 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달리 方法이 없는 狀況이다. 김기옥은 機關砲를 除去하라고 指示했다.

    “無事히 離陸하더라도 接近이 쉽지 않을 겁니다.”

    山 넘어 山이다. 현기수와 함께 출격할 同僚 飛行士가 다음 問題를 提起했다. 最高速度가 마하 2.1에 達하는 미그21이 느린 偵察機를 쫓아가는 것은 別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高性能 레이더를 避해서 接近해야 하는 問題가 남아 있다.

    “勿論 쉬운 任務가 아니다. 동무들은 共和國 最高의 飛行士란 事實을 銘心하라.”

    김기옥이 두 操縱士를 激勵했다. 北窓基地에서 第一 優秀한 操縱士 둘을 選拔해온 터였다.

    “정 안 되면 들이받겠습니다”

    그 무렵 大韓民國은 4萬4000名에 達하는 地上軍 兵力을 베트남에 派兵하고 있었지만, 베트남에 戰鬪兵力을 派兵한 것은 南韓보다 北韓이 먼저였다. 北韓은 베트남에 空軍을 派兵했는데 北韓 空軍 203非行連帶 所屬의 戰鬪飛行士들은 北爆을 敢行하는 美國 戰鬪機들을 相對로 邀擊에 나서 最新銳 F105 선더치프와 F4 팬텀을 擊墜하는 戰果를 올리기도 했다. 當然히 北韓 空軍에는 實戰經驗이 豐富한 베테랑 操縱士가 여럿 있었다.

    “出擊일은 4月15日이다. 首領님 生日膳物로 이만한 게 없을 것이다.”

    150㎞ 떨어져 飛行하는 偵察機를 邀擊하는 것은 絶對로 쉬운 任務가 아니다. 갔다가 돌아오기도 벅찬 距離다. 하지만 正確한 飛行 스케줄을 안다면 危險負擔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쓰기 現地에서 偵察機의 出擊 時間을 綿密히 살핀 結果 김기옥은 出擊 日子를 4月15日로 定했다.

    두 操縱士는 말없이 狀況室로 向했다. 답답한 것은 豫行演習을 할 수 없다는 事實이다. 어랑機智에 미그 21이 配置돼 있다는 事實이 美國 偵察衛星에 捕捉되면 萬事가 水泡로 돌아갈 것이다.

    “飛行情報가 正確하다면 一旦 遭遇는 可能할 것 같습니다.”

    狀況板을 들여다보는 현기수의 얼굴에 悲壯한 覺悟가 흘렀다. 邀擊 豫想 地點은 淸津 東南方 152㎞ 海上. 그곳은 美軍 偵察機의 飛行코스 中에서 陸地와 가장 近接한 곳이며 어랑基地에서도 가까운 地點이다.

    현기수가 ‘一旦’이란 但書를 붙인 것은 離陸에 成功하더라도 如前히 問題가 남기 때문이다. 燃料를 가득 실으면 時間上으로는 邀擊이 可能하지만 그렇다고 問題가 없는 건 아니다. 미그21은 燃料탱크가 機體의 앞쪽에 偏重돼 있어 燃料가 消耗되면서 氣體의 무게中心이 뒤쪽으로 移動한다. 그래서 最小限 20%에 該當하는 150갤런은 남겨놓아야 安定的인 姿勢를 維持할 수 있고 空中機動에도 制約을 받지 않는다. 150갤런을 남겨놓아야 한다면 아무리 길게 봐도 邀擊 可能 時間은 5分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현기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5分이면 各 基에서 空對空 미사일을 겨우 1發씩 發射할 수 있는 時間밖에 안 된다. 첫 발에 명중시켜야 한다는 얘긴데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9年 9月 駐韓 美8軍 司令官職을 떠나는 찰스 本스틸 大將 夫婦가 朴正熙 大統領을 찾아 離任 人事를 하고 있다.

    “까짓거, 정 안 되면 그대로 들이받겠습니다.”

    요기(僚機) 操縱士가 悲感한 얼굴로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眩氣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美軍 偵察機에 近接한 다음의 일이다. 當場 時急한 것은 無事히 離陸해서 接近하는 것이다.

    “漸漸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1969年 4月15日. 어랑基地.

    두 臺의 미그21이 滑走路 끝에 整列했다. 管制塔에서 離陸을 지켜보는 김기옥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最善을 다했지만 成功 與否는 누구도 壯談할 수 없었다. 나머지는 天運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必要한 燃料 350갤런과 空對空 미사일 外에 不必要한 裝備는 모두 除去했다. 理論上으로는 離陸이 可能하지만 單 한 次例도 豫行 訓鍊을 實施해보지 못했다는 事實이 마음을 무겁게 억눌렀다.

    基地의 레이더는 벌써부터 美軍 偵察機의 飛行經路를 追跡하고 있었다. EC121 偵察機는 只今 블라디보스토크 蘇聯 海軍基地를 偵探하고서 南下 中이다. 곧 淸津을 지나서 京城, 어랑에 이를 것이다. 高度와 航路 모두 豫想 經路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미그21이 强烈한 엔진音을 吐해내며 滑走路를 疾走했다. 霎時間에 滑走路 끝에 다다른 미그21은 곧 機首를 쳐들었고 猛烈한 氣勢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김기옥은 悲感한 얼굴로 두 臺의 미그21基를 凝視했다.

    레이더 畵面을 들여다보던 電探士는 슬슬 지루함을 느꼈다. 아쓰기 基地를 떠난 지 벌써 7時間이 흘렀다. 緊張이 풀리면서 슬슬 싫症이 날 때다. EC121 電子偵察機의 乘務員은 모두 31名. 海兵隊 所屬 電探士 1名을 빼면 全部 海軍 所屬이다.

    “…!”

    電探士가 하품을 하려는데 레이더에 輝點이 번쩍였다. 또 北韓 어랑飛行場에서 미그기를 出擊시킨 것인가. 電探士는 얼른 位置를 確認했다. 北緯 129度41分, 東京 41度29分. 틀림없는 公海上이다. 심심하면 한 番씩 試圖하는 出擊으로 別 威脅은 못 됐지만 그래도 보고는 하는 게 좋을 것이다. 電探士는 椅子를 돌리며 前貪官을 찾았다.

    “뭐야?”

    “北韓 戰鬪機가 緊急發進을 한 것 같습니다.”

    “어랑基地의 미그 15겠지. 잘 지켜봐!”

    電探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對答을 하는데 갑자기 레이더에서 正體不明 飛行體의 抗敵이 사라졌다. 그새 機首를 돌렸나? 電探士는 더 以上 神經 쓰지 않기로 했다. 近距離 空中戰을 主任務로 하는 미그15는 航速距離度 짧은 데다 自體 레이더가 없어서 偵察機를 쫓아올 수 없다.

    바닷속으로 처박힐 듯 急降下를 試圖한 두 臺의 미그21은 水面에 닿을 듯 超低空으로 飛行했다. 無事히 離陸했으니 두 番째 고비를 넘긴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任務를 完遂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山이 더 있다. 어떻게 美軍 偵察機에 몰래 接近하느냐는 것과 制限된 時間에 擊墜해야 하는 일이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9年 開催된 軍事停戰委員會의 北韓 側 代表 이춘선.

    두 臺의 미그21期가 速度를 높이며 偵察機 EC121을 向해 接近을 試圖했다. 어랑基地 至上管制所와는 이미 交信이 끊겼다. 이제부터는 알아서 追跡해야 한다. 미그21에는 小型이지만 自體 레이더가 裝着돼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레이더를 作動시킬 때가 아니다. 出力 100kW짜리 I밴드 레이더를 作動시키는 瞬間 美軍 偵察機에 卽刻 捕捉될 것이다. 豫測이 正確하게 들어맞을까. 현기수는 모든 것을 天運에 맡기기로 하고 操縱杆을 움켜잡았다. 燃料價 빠르게 消耗되고 있었다. 空氣 抵抗이 甚한 水面 위를 飛行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淸津 南東쪽 150㎞ 海上에 이르렀다. 豫想대로라면 高度 1萬m 上空에서 美軍 偵察機가 飛行하고 있을 것이다. 현기수는 고개를 돌려 나란히 飛行하고 있는 同僚機의 位置를 確認하고는 操縱杆을 힘껏 당기며 急上昇을 試圖했다. 그리고 미그21의 高度가 3000m에 이른 것을 確認하고는 레이더를 作動시켰다.

    EC121의 電探士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난데없이 波長 990pps 電波가 偵察機를 向해 날아들고 있던 것이다. 茫茫大海 한복판에서 웬 探知파란 말인가. 出力이 弱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EC121 偵察機를 追跡하고 있었다. 電探士는 얼른 前貪官을 불렀다.

    “뭐야? 近處에 海軍 艦艇이라도 떠 있나?”

    電探官道 선뜻 狀況 判斷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海軍 艦艇에서 發射한 電波치고는 出力이 너무 弱했다. 그렇다면 正體不明의 飛行體가 近方에 나타났다는 얘긴데….

    “漸漸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畵面을 凝視하는 電探士의 表情에 緊張感이 서렸다. 未確認 飛行體는 빠른 速度로 接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機長에게 報告해야 할 것 같았다. 前貪官은 迅速히 인터콤을 들었다.

    숨막히는 追擊戰

    현기수 大尉는 레이더에 美軍 偵察機가 捕捉되는 것을 確認하며 快哉를 불렀다. 이것으로 세 番째 고비를 넘긴 셈이다. 현기수는 方向을 잡으며 레이더를 追跡用 모드로 轉換했다. 只今쯤 美軍 偵察機에서도 電波를 探知했겠지만 미그기의 位置는 쉽게 確認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高性能 레이더라고 해도 해面反射 때문에 바로 아래서 垂直上昇하는 機體는 追跡하기 힘들다.

    “사이클이 追跡用으로 바뀌었습니다!”

    電探士가 悲鳴을 질렀다. 正體不明 비행체에서 發射하는 電波의 사이클이 990pps에서 1800pps로 바뀐 것이다. 前貪官은 가슴이 철렁했다. 990pps짜리 搜索用 사이클과 1800pps짜리 追跡用 사이클을 使用하는 레이더라면 미그21에 裝着된 스핀 스캔 레이더인데…그렇다면 미그21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인가. 그럴 理가 없다. EC121 偵察機가 飛行하는 水域에는 미그21이 配置된 飛行場이 없다. 그리고 미그21이 移動配置됐다는 諜報도 없었다.

    “接近하는 氣體가 있는가?”

    “없습니다.”

    레이더 擔當 下士가 큰 소리로 報告했다. 前貪官은 遑急히 레이더를 살펴봤지만 이곳을 向해 接近하는 機體는 探知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前貪官은 도무지 判斷이 서질 않았다.

    “무슨 일인가?”

    인터콤에서 機長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그21의 追跡 레이더에 美軍 偵察機가 正確하게 잡혔다. 거리는 4㎞. 美軍 偵察機는 아직 狀況을 제대로 把握하지 못한 것 같았다. 西方에서 아톨 미사일이라고 부르는 K13 空對空 미사일의 有效射程距離는 5㎞지만 熱追跡方式인 만큼 프로펠러 飛行機를 擊墜하려면 더 接近해야 한다. 燃料 殘量을 確認한 현기수는 出力을 最大로 높였다. 時計를 힐끗 보니 바늘이 午後 2時를 가리키고 있었다.

    “웃! 피시베드(Fish 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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