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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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楗 (許楗, 1907年 6月 12日 ~ 1987年 11月 5日 )은 大韓民國 東洋畫家 이다. 畫家와 書藝家로 宮中貨와 南宗畫의 代價이다. 全羅南道 珍島 出身으로 本貫은 陽川이며 號는 남농이다. 畫家 小癡 許維 의 孫子이자 畫家 허형 의 넷째 아들이다.

生涯 [ 編輯 ]

出生과 家計 [ 編輯 ]

許楗은 1907年 [1] 珍島郡 의신면 사천리에서 朝鮮 憲宗 때 宮中畫家였으며 詩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詩·西·火’ 삼정이라 불리던 化工 小癡 許維(또는 허련) 先生의 孫子이며 마찬가지로 畫家였던 米産 허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兄 허윤대, 동생 허림 亦是 畫家였다. 朝鮮 世祖 때의 文臣 忠情公 許從(許琮)의 15代孫으로 그의 先代는 代代로 火가 家門이었다. 아버지 虛型은 그가 畫家가 되겠다는 꿈을 挽留하였으나 그는 畫家가 되기를 固執하여 아버지도 그의 꿈을 꺾지는 못했다. 어깨너머로 四君子를 배웠다가 그림의 재주를 알아본 父親에게 話術을 傳受받았다.

日帝 强占期 活動 [ 編輯 ]

15歲때 康津의 세류普通學校에 入學했다가 집안이 木浦로 移徙하여 木浦北小學校로 轉學, 小學校 在學 中 全國少年展覽會에 作品을 出品 最高賞을 受賞했다. 1927年 木浦 商業傳授學院을 卒業하고 父親으로부터 익힌 그림이 제9회 宣傳(오늘날의 國展에 該當)에서부터 23回까지 連續 入選하고 1930年 朝鮮美術展覽會에 첫 出品하여 入選하였다. 1944年에는 朝鮮美術展覽會宣傳 및 總督賞을 受賞하였으나, 추운 겨울 畫室에서 作品活動을 하다가 凍傷에 걸렸으나 費用을 마련하지 못해 治療를 못하고 1943年 36歲 되던 해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

아버지 허형이 賣却한 운림산방을 兄 허윤대와 함께 돈을 모아 다시 買入하였고, 허윤대 死後 그가 운림산방을 管理하게 되었다.

光復 以後 活動 [ 編輯 ]

그러나 다리를 잃은 것에 屈하지 않고 活潑하게 活動하며 그림을 그렸다. 解放 後 1951年 大韓民國美術展覽會 推薦作家가 되고 [2] 1955年에는 國展 招待作家 및 審査委員이 되었다. 그의 이러한 藝術的 活動이 認定을 받아 全南文化上, 大韓民國 文化勳章 等 수많은 賞을 받았으며 大韓民國 藝術院活動이 認定을 받았다. 1946年 南宗畫를 硏究하는 南畫 硏究員을 開園했고, 1955年 國展의 招待 作家로 招聘되었으며 1957年 畫家들의 모임인 白楊會白陽會) 創立 멤버가 되었다. 1960年 桐 美術展覽會 審査委員으로 委囑되었다. [3]

以後 1975年 木浦 亂石灰의 창림에 參與하여 3代 亂石灰 會長을 歷任하고 禮銃 木浦支部長에도 選出되어 9年 동안을 禮銃 木浦支部長을 지냈고 自身이 가지고 있던 할아버지 所致, 아버지 美産을 中心으로 貴한 古美術品과 首席들을 아낌없이 木浦市에 寄贈하고 남농美術館(後에 남농記念館의 前身)을 지어 後輩들로 하여금 그의 藝術世界를 살펴보고 이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1976年 남농上(南農賞)을 制定하여 後輩 畫家와 書藝家들을 後援하였다. 1983年 대한민국예술원 元老會員에 選出되었다.

事後 [ 編輯 ]

1987年 서울大病院에서 十二指腸 手術을 받고 病勢가 惡化되어 回復이 어렵다는 通告를 받고 木浦의 집으로 내려가던 中 車안에서 死亡했다. 當時 그의 나이 81歲였다. 務安郡 三養面 왕산리에 安葬되었다.

賞勳 [ 編輯 ]

  • 1979年 木浦 成獄文化相(聲玉文化賞)
  • 1982年 銀冠文化勳章 (2等級)
  • 1982年 木浦市民上
  • 1985年 全羅南道 무등文化相

著書 [ 編輯 ]

  • 《南宗繪畫史》(1994)

家族 關係 [ 編輯 ]

아버지 虛型은 할아버지 許維의 넷째 아들이다. 그 亦是 그의 아버지 허형의 넷째 아들이었다.

  • 할아버지 : 小癡 허련
    • 伯父 : 허은(許殷, 畫家, 선미山)
    • 中部 : 虛略
    • 叔父 : 虛함
  • 아버지 : 米産 허형, 虛型은 小癡 許維의 넷째 아들이었다.
    • 兄 : 허윤대
      • 조카 : 허원만
        • 宗孫 : 허은(許垠, 畫家)
    • 兄 : 허용대
      • 조카 : 許願의
        • 宗孫 : 허청규, 畫家
    • 兄 : 虛送臺
    • 동생 : 허림 (1917~1942)
      • 조카 : 허문, 畫家
  • 否認 :
    • 아들 : 虛驚
      • 孫子 : 허진
    • 아들 : 허병
      • 孫子 : 許載
      • 孫子 : 許浚
    • 아들 : 허연
      • 孫女 : 허윤선
      • 孫女 : 허윤경
    • 딸: 허기숙

기타 [ 編輯 ]

아들의 病院費를 마련하려고 釜山 에서 먼길을 온 老婆에게 無料로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뒤에 老婆는 아들을 治療한 것에 對한 監査로 膳物을 보내왔으나 辭讓하였다. 또한 各種 慈善 事業에도 同參하여 基金을 마련하였으며, 孤兒와 不遇한 老人에게 寄託金을 喜捨하기도 하여 그에게는 木浦의 어른, 湖南의 어른이라는 別稱이 붙기도 했다.

1980年 5月 그의 作品 回顧展이 동아일보사 主催로 서울에서 열렸을 때 周圍에서 한番 다녀올것을 勸誘했으나 當時 光州에서 사람이 傷하는데 展覽會를 하고 있다는 것 自體가 죄스럽고 부끄럽다며 辭讓하였다.

各州 [ 編輯 ]

參考項目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

  • 許楗, 南宗繪畫史 (서문당,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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