飽和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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飽和 속으로
71 In to the Fire
國會 試寫會 때의 舞臺 人事
監督 이재한
出演 차승원 , 권상우 , 최승현 ,
김승우 , 박진희
製作社 太原엔터테인먼트
配給社 롯데엔터테인먼트
開封일
  • 2010年 6月 16日  ( 2010-06-16 )
時間 2時間
國家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言語 韓國語

" 飽和 속으로 "( 71 In to the Fire 세븐티원 인 투 더 파이어 [ * ] )는 韓國 戰爭 에서 큰 活躍을 한 學徒兵 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재한 監督의 2010年 戰爭 映畫 로, 1950年 8月 11日 浦項女子中學校 에서 있었던 戰鬪 를 바탕으로 製作되었다. 차승원 이 北韓軍 將校로, 빅뱅 의 멤버 최승현 이 戰爭에 내던져진 學徒兵 役割을 맡았고, 권상우 가 不良 靑少年에서 愛國者로 變身하는역할을 맡았다.

줄거리 [ 編輯 ]

1950年 6月 25日 새벽 4時에 北韓 의 갑작스러운 南侵으로 6.25 戰爭 始作된 後 강석대 大尉의 部隊는 盈德 에서 熾烈한 戰鬪를 벌이고 있었다. 學徒兵 오장범은 눈앞에서 國軍 將兵들이 北韓軍에 銃彈에 죽어나가자 큰 衝擊을 받게 된다. 結局 강석대 大尉의 部隊는 盈德까지 北韓軍들에게 점령당하고 後退한다. 結局 강석대 大尉의 部隊는 어쩔수 없이 71名의 學徒兵들을 浦項餘中學校에 놔두고 마지막 防禦線인 洛東江 戰線으로 向하게된다. 中隊長으로 決定된 오장범은 殺人未遂로少年院에 갈뻔했다 戰爭터를 選擇한 구갑조와 對立한다. 첫番째 戰鬪에서 學徒兵들은 自身의 손으로 北韓軍들을 죽여 괴로운 밤을 보내고 두番째 戰鬪에서 所重한 親舊들을 잃게된다. 乾達 學徒兵 구갑조는 戰爭은 장난이란것을 깨닫는다.그런데 두番째 戰鬪에서 길을 잃은 學徒兵 달영은 北韓軍들 한테 붙잡힌체 學徒兵들이 있는 浦項女中으로 向하고 달영을 끌고 온 北韓軍 766部隊 大將 박무랑이 桂陽臺 위에 白旗를 걸고 白旗를 걸고 降伏하면 살려준다고 警告하면 자리를 뜬다. 그時刻 강석대는 學徒兵들에게 支援要請을 해달라고 師團長 한테 要請하고 說得 끝에 新型 바주카砲를 가지고 學徒兵들에게 向한다. 박무랑이 意圖한 대로 學徒兵들한테는 內部 分裂이 생기기 始作했다. 달영을 怯쟁이라며 暴行하는 甲組를 막는 장범은 對立하게 되고 그時刻 龍涉疑 동생은 銃傷을 입고 죽어가고 있었고 龍涉疑 동생은 兄한테 너무 괴로우니 自身을 죽여달라 付託하고 結局 龍섭은 울음을 터트리고 結局 付託을 동생에 受諾해 동생을 죽이게 되고 그때 對立하던 장범과 甲組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정도로 몸싸움을 벌이다 甲組는 親舊와 함께 洛東江戰線으로 떠난다. 學徒兵들을 마음을 단단히먹고 武器를 챙겨 防禦線 構築하고 午前 12時가 되자 766部隊가 學徒兵들이 있는 浦項女中으로 進擊하고 學生들은 미리 準備한 迫擊砲 砲彈을 쏴 北韓軍들에게 被害를 입힌다. 갑작스러운 爆擊에 憤怒한 박무랑과 北韓軍들은 곧바로 突擊하고 學徒兵들한테 攻擊을 開始하려던 그때, 學徒兵들이 미리 運動場에 設置해둔 手榴彈 艦艇에 北韓軍들은 그대로 當하며 엄청난 打擊을 입게 되고 그때를 노린 學徒兵들은 攻擊하지만 北韓軍들에 엄청난 火力에 얼마 못 가 한名씩 北韓軍들이 쏜 銃彈에 죽어나간다. 그때 龍섭은 죽은 동생을 따라가기로 決心하고 손에 爆彈을 쥐고 미친 듯이 攻擊해오는 北韓軍 탱크에 뛰어들어 自殺攻擊 을 하게 된다. 結局 學徒兵들은 繼續되는 攻擊에 學校建物로 待避하는 瞬間, 甲組가 北韓軍 武器를 奪取해 浦項女中으로 돌아왔다. 甲組는 장범을 비롯한 武器들을 나눠주며 建物로 避身한다. 장범과 甲組는 和解하고 甲組는 事實 眞짜 學生이 아니고 少年院 代身 戰爭터에 나가는 걸 選擇했던 것이다. 장범은 너 學生 맞다고 甲組를 慰勞해주고 敎室이나 複道에서 抵抗하던 學徒兵들은 大部分 戰死하고 北韓軍들에 爆擊이 이어지며 學徒兵들은 전멸당한다. 장범과 甲組는 屋上에서 機關銃을 亂射하며 北韓軍들을 沒殺하고 둘다 銃傷을 입게된다. 다 끝난 줄 알았으나 그 瞬間 박무랑이 나타나 甲組한테 機關短銃을 亂射해 쓰러트리고 甲組를 拳銃으로 殺害한다. 그리고 박무랑이 장범까지 죽이려고 銃口를 겨누지만 장범은 박무랑이 放心했을 때 장범은 박무랑에게 銃을 쏘게 되고 同時에 銃을 쏜다. 장범도 허리에 銃을 맞는다. 그때 강석대度 登場해 薄霧랑도 完全히 죽이고 장범은 강석대 품에서 死亡한다.

캐스팅 [ 編輯 ]

製作 情報 [ 編輯 ]

映畫 情報 [ 編輯 ]

差異點 [ 編輯 ]

이 映畫는 實話를 바탕으로 製作되었음에도 事實과 다른 內容이 여러 次例 登場하였다. 該當 內容은 아래와 같다.

  1. 國軍 3師團이 洛東江 防禦線으로 移動하기 위해 浦項을 떠나는 것으로 描寫되어 있으나, 浦項電線 亦是 洛東江 防禦線의 一部로, 3師團은 浦項을 떠난 적이 없다. 浦項女中 戰鬪가 벌어질 當時 3師團 兵力은 盈德 隣近의 장사동 海岸에 包圍되어 있었으며, 北韓軍은 首都師團과 3師團의 戰鬪地境線을 파고들어 浦項에 侵入한 것이다. 以後로도 3師團은 浦項을 떠나지 않았다. [4] [5]
  2. 71名의 學徒兵 中에 "少年院 代身 入隊"를 選擇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 .
  3. 浦項을 통한 北韓軍의 釜山 進擊 試圖는 現場指揮官의 獨斷에 依한 것이 아니라 上部의 命令이었다 [5] .
  4. 浦項女中 戰鬪는 正午 가 아닌 새벽 4 ~ 5時 頃에 始作되었다.

參考 事項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金聖龍 (2010年 5月 28日). “6.25 映畫 '飽和 속으로' 美(美)에서 試寫會” . 聯合뉴스.  
  2. 池成浩 (2010年 6月 5日). “陜川에서 7日에 映畫 '砲火속으로' 住民 試寫會” . 聯合뉴스.  
  3. 이재원 (2010年 6月 1日). “映畫 '飽和 속으로' 日本海 論難 謝過” . 韓國日報.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4. 최영진 (2010年 6月 29日). ' 飽和 속으로' 71人 學徒兵의 虛와 실” . 서울뉴스. 2021年 9月 28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5. 《韓國戰爭史 - 陸軍 本部》. 陸軍敎育司令部. 2003年.  
  6. 고재완 (2009年 11月 17日). ' 工夫의 新' 차승원 出演 안한다…배두나 有力” . 아시아經濟 . 2021年 6月 4日에 確認함 .  
  7. 고재완 (2009年 11月 17日). ' 工夫의 新' 차승원 出演 안한다…배두나 有力” . 아시아經濟 . 2021年 6月 4日에 確認함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