統一민주당 創黨 妨害 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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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一민주당 創黨 妨害 事件 (統一民主黨 創黨 妨害 事件) 또는 一名 용팔이 事件 統一民主黨 의 創黨大會를 暴力輩들이 妨害한 事件이다. 當時 事件 主動者 金勇男 의 別名 '용팔이'에서 由來되었다. 이 事件은 全斗煥 政權의 指示로 安企部 가 介入한 代表的인 政治工作의 하나이다.

軍事政權의 抑壓속에 大統領 直選制 改憲을 主張하는 雰圍氣가 높아졌지만, 宸翰민주당 李珉雨 總裁, 이철승 等은 當時 政府의 內閣制 改憲에 對해 支持意思를 밝혔다. 이에 反撥한 金永三 , 金大中 等은 70餘名의 議員들과 함께 신한민주당을 脫黨하여 統一民主黨 創黨을 推進하였다. 1987年 4月 20日 부터 4月 24日 까지 統一민주당의 20餘個 地區黨에 暴力輩들이 亂入하여 器物을 부수고 黨員들을 暴行하는등 亂動을 부렸으며, 이로 因해서 創黨大會는 隣近 食堂이나 길거리에서 略式으로 치러졌다. 統一民主黨側은 처음부터 이것은 政府가 介入한 卑劣한 政治工作이라 糾彈하고 嚴正한 搜査를 促求하였으나, 搜査는 제대로 進行되지 않았다. [1] [2] 結局 全斗煥 政權이 물러나고 서울 올림픽 이 한창인 1988年 9月이 되어서야 金勇男과 이선준 當時 신민당 靑年部長이 檢擧되었다. 檢察은 신민당의 이택희 , 이택돈 議員이 請負暴力을 指示했다고 結論을 내리고 서둘러 事件을 終結했다.

김영삼 大統領이 就任한 1993年 에 이 事件을 再調査했고, 結局 强力한 野黨 出現을 막기 위해 장세동 當時 安企部長이 이택희, 이택돈 議員에게 5億원을 提供한 事實이 드러났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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