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悟
大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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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隊伍(大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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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生
| 900年
統一新羅國
光州
(現在 景氣도 光州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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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寂
| 975年
(享年 76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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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名
| 高彈文(高坦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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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家
| 91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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職業
| 高麗의 僧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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弟子
| 均如
(均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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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彈文
(高坦文,
900年
~
975年
)은
高麗
의 僧侶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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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俗姓(俗姓)은
고
氏(高氏), 어머니는
白氏
(白氏)로 法名은
大悟
(大悟)이며,
京畿道
光州
(或은 高峯(高峯, 京畿道
高陽
))에서 出生하였다.
元曉大師
가 살았던 香성산의 옛 절터에 庵子를 짓고 修道한 後, 葬儀師의
申嚴
에게서 《
華嚴經
》을 배웠다.
914年
15歲의 나이로
具足戒
(僧侶가 지켜야 할 戒律)를 받았다.
太祖
로부터 別和尙이란 稱號를 받았으며,
926年
王后가 妊娠을 하자 아들을 낳도록 祈禱드린 끝에
王子
를 낳게 되어 더욱 寵愛를 받았다. 그 後 구룡산社에서 《華嚴經》을 講論하여 別大德이 되었고,
942年
念珠·胚珠 地方에
메뚜기
로 因한 被害가 極甚瑕疵 《
大般若經
》을 읽어 이를 물리쳤다.
975年
光宗
때 國史에 任命되었다. 그해 3月 跏趺坐한 채 入寂하니 나이 76歲, 法臘 61歲였다. 諡號는 法人(法印), 塔號는 補乘(寶乘)이며, 忠淸南道 瑞山郡 운산면 용현리
普願寺지
에 彈文을 기리는
塔
과
塔碑
가 있다.
[1]
脚註 및 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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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彈文”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2017年 3月 14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