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하
(
本名
:
최도식,
1981年
6月 23日
~
2011年
5月 27日
)는
大韓民國
의 歌手이자 뮤지컬 俳優다. 男性 보컬 그룹
SG 워너비
와 옴므 듀엣의 前 멤버다. 2011年 5月 26日, 29歲에 極端的 選擇으로 世上을 떠났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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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時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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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年
6月 23日
에
서울特別市
강서구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父母님의 離婚으로 經濟的으로 힘든 어린 時節을 보냈다. 先天性 心臟病인
心室中隔缺損
으로 6歲에 心臟 手術을 받았고, 이 事由로 軍服務 免除 判定을 받았다.
[1]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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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年 12月, 作曲家
김형석
에게 拔擢되어 約 2年의 練習 期間을 거친 뒤, 2002年 11月, 데뷔 앨범 《Nature》를 發表하며 데뷔했다.
[2]
발라드《Gloomy Sunday》로 活動하며, 哀切한 唱法과 허스키한 音色이
조성모
와
朴孝信
을 섞어 놓은 듯하다는 評價를 받았다.
[2]
SG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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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以後 큰 注目을 받지 못하다가, 當時 所屬社
지패밀리엔터테인먼트
가 不渡가 나면서 GM企劃 (現
코어콘텐츠미디어
)로 移籍하고,
金容俊
,
김진호
와 함께 3人組 男性 보컬 그룹
SG 워너비
를 結成, 팀의 리더이자 서브보컬로 活動했다.
2004年 1月 20日, 데뷔 앨범 《WANNA BE+》을 發表하고 當時 流行하던 ‘얼굴 없는 歌手’로 活動했다. 데뷔 앨범 收錄曲〈Timeless〉와 〈죽을 만큼 사랑했어요〉를 히트시키고, 같은 해 6月 첫 單獨 콘서트를 여는 等, 데뷔 첫 해부터 큰 成功을 거두었다.
[3]
以後 2輯 《살다가》와 4輯 《아리랑》으로 2005年과 2007年
골든디스크
大賞을 受賞하기도 하며 全盛期를 맞았다.
2007年 10月, 뮤지컬 《풋루스》에 主人公 ‘렌’ 役으로 出演하며 뮤지컬 俳優의 꿈을 이뤘다.
[4]
2006年부터 女性 3人組 그룹
씨야
의
이보람
과 交際하다가, 2008年 4月 訣別했다.
[5]
SG 워너비 脫退 後, 솔로 活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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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 워너비
가 絶頂의 人氣를 누리던 2008年 3月, 突然 脫退 意思를 밝히고
엠넷미디어
와의 契約이 滿了된 2008年 5月 그룹을 脫退하였다. 脫退 理由에 對해, 所屬社는 “俳優에 挑戰하려는 意見을 尊重해 준 것”이라며 不和說을 否認했지만,
[6]
채동하 本人은 “지난 4年間 나는 작은 點이었다”, “그間 우리(멤버) 세 名은 熾烈하게 지내왔다. 세 名의 人格體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飮食을 좋아할 순 없다”,
[7]
“나의 個人的인 생각 때문에 많은 분들의 마음을 아프게했다……많은 분들의 생각이 맞다. SG워너비의 노래의 메인보컬은 진호君이었다. 完成된 노래를 會社의 要求로 다시 錄音을 한 적이 있었다. 저도 용준이度 진호도 마음이 아팠다”며 音樂的 問題로 인한 內部 葛藤이 脫退 理由였음을 밝혔다.
[8]
脫退 後, 當時 新生 企劃社였던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와 專屬 契約을 맺고, 드라마 OST와 뮤지컬 等으로 솔로 活動을 始作했다.
2008年 6月, 脫退 後 첫 活動으로 SBS 드라마 《
달콤한 나의 都市
》의 OST 앨범에 參與, 발라드 〈殉愛보〉를 불렀다. 같은 해 9月, 뮤지컬 《안녕, 프란체스카》에 뱀파이어 ‘켠’ 役으로 出演했다.
[9]
11月에는 《
달콤한 나의 都市
》의 日本 프로모션 콘서트 舞臺에 섰고, 映畫俳優
소지섭
의 싱글 앨범 〈미련한 사랑〉에 피쳐링으로 參與했다. 2009年 5月에는 SBS 드라마 《
시티홀
》의 OST에 參與하여 〈웃어봐〉라는 曲을 내놓았다.
2009年 9月 1日, 솔로 2輯 앨범을 發表할 豫定이었으나 練習 中 甚한 목
디스크
가 생기면서 日程을 延期, 같은 해 11月 10日 2輯 《ESSAY》를 發表했다. 《ESSAY》는 데뷔 때부터 팀 脫退 後 空白期까지의 아픈 時間을 淡淡히 告白하는 日記 形式의 글과 40쪽이 넘는 畫報를 담았으며, 타이틀曲 〈어떻게 잊겠습니까〉는
SG 워너비
時節 같이 作業한 作曲家
조영수
와 作詞家
강은경
이
李承哲
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의 後續曲으로 만든 曲이다.
[1]
하지만 목 디스크로 活動을 거의 하지 못했고 音盤 販賣도 期待에 미치지 못했다.
以後
더블유에스엔터테인먼트
와 契約하고, 2010年 9月 16日 全曲을 直接 作詞한 미니 앨범 《D day》을 發表했다. 自作曲 〈Vanilla Sky〉와 〈하루가 미치고〉를 더블 타이틀曲으로 내세워 컴백했고, 2輯 때와 달리 活潑하게 放送 活動을 했다.
2011年 1月,
V.O.S
를 脫退한
박지헌
과 ‘옴므듀엣’을 結成하고 디지털 싱글 <어제 같은데>를 發表했다. 2011年부터 日本 活動 比重을 늘여
오사카
와
고베
等을 오가며 公演 活動을 했다.
死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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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年
5月 27日
午前, 서울
恩平區
불광동
自宅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 숨진 채 發見되었다.
[10]
집안에 빈 洋酒甁과 藥封紙가 있었고 遺書는 發見되지 않았다. 他殺을 疑心할 만한 情況은 없었지만 어머니의 要求로
5月 28日
剖檢을 實施했다. 매니저 崔 某 氏는 채동하가 6個月 前부터 憂鬱症을 앓아 通院 治療를 받아왔다고 陳述했고, 채동하를 治療한 醫師는 5月 23日 不安感과 不眠症을 呼訴하여 8日치 藥을 處方했다고 陳述했다.
[11]
서울 大學路
서울대학교 病院
葬禮式場에서 葬禮를 치르고 5月 29日 發靷했다.
SG 워너비
멤버들이 運柩에 參與했고, 故人이 어릴 적 살던 한남동 옛 집터에 들렀다가 京畿道 辟除
서울市立昇華원
에서 化粧했다. 遺骨은 競技도
光州市
스카이캐슬 追慕公園
에 安置되었다.
[12]
채동하 死亡 以後, 周邊 知人들의 夭折이 注目을 받았다.
2005年
5月
KBS
《
윤도현의 러브레터
》에 出演하여 理想型에 對한 質問을 받고 “2年 前 眞心으로 사랑했던 女子親舊”가 理想型이라며 “理想型을 물어보면 꼭 그 親舊가 생각난다. 오늘이 그 親舊의 忌日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13]
또, 2009年 7月 親兄처럼 따르던 매니저 張 某 氏가 自殺하자 “心臟의 折半이 날아간 듯하다”하며 哀痛해했다.
[14]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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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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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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