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응구
(林應九,
日本式 이름:
伊藤應九
이토 吳큐
,
1907年
9月 13日
~
1994年
)는
韓國
과
日本
의 西洋畫家이다. 本貫은
羅州
(羅州)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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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慶尙南道
부산부
(現
大韓民國
釜山廣域市
) 出身이다.어릴 때부터 자주 日本을 往來하며 美術을 工夫했다.
도쿄 美術學校
를 卒業
[1]
한 뒤, 日本 女性과 結婚하면서
1936年
日本에 歸化했다.
第13回
朝鮮美術展覽會
에 入選하여 正式으로 花壇에 等당하였고, 宣傳에 總 6回 入選하였으며 朝鮮總督府賞을 받기도 하였다. 첫 個人展은
1934年
부산일보사 展示場에서 가졌다. 임응구는 도쿄美術學校風의 傳統的이고 古典主義的인 西洋畫 具象畫를 그렸는데, 西洋式 머리를 한 新式 女性이 아들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그린 〈어머니와 아들〉(1939)은 植民地 體制가 要求하는 賢母良妻型 어머니像을 그대로 具現하고 있다는 評價도 있다.
[2]
1943年
韓國과 日本의 親日 美術人들이 結成한
單曠懷
에 加入하여 徵兵制 實施에 즈음한 管制 美術 作品을 單曠懷 會員들과 함께 共同 創作하여 發表했다.
1943年
完成된 單光會議 〈朝鮮徵兵制實施記念化〉는 製作에만 여러 달이 걸린 大作으로, 徵兵制 雰圍氣를 鼓吹하고자 巡廻 公演으로 展示되었으며
朝鮮軍司令部
에 寄贈되었다.
以後 日本에서 活動하며
日本帝國美術展
에 9次例 出品하고 特選을 한次例 했고, 百受賞(白壽賞)을 받았다. 問題全(文帝展)에서 總 12回 入選하였으며, 살롱 도톰(가을의 展覽會) 會員, 日戰會友(日展會友)를 지냈고 살롱商道 받았다.
2008年
民族問題硏究所
가 選定한
친일인명사전 收錄豫定者 名單
美術 部門에 包含되었다.
동생은 寫眞作家
임응식
이다.
[3]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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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間 關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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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응구
(林應九)의 아우인
寫眞作家
임응식
(林應植,
1912年
11月 11日
出生 ~
2001年
1月 18日
死亡)은 西洋
畫家
이봉상
(李鳳商,
1916年
7月 27日
出生 ~
1970年
8月 4日
死亡)과 오랜 親舊 關係를 맺기도 하였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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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參考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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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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