陰陽五行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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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陽五行 의 相生相剋

陰陽五行說 (陰陽五行說)은 陰陽(陰陽)설과 五行(五行)說을 함께 묶어 부르는 말이다.

原理 [ 編輯 ]

陰陽五行說은 宇宙나 人間의 分離된 모든 現象이 陰(陰)과 孃(陽)의 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아래-위, 낮고-높음, 男子-女子). 해-달). 이들은 對立的이지만 서로 相補的이다. 陰(陰)과 孃(陽)李 擴張하고 收縮함에 따라 宇宙의 運行이 決定된다는 것이며, 陰과 量이 네가지 기운 (生, 노, 病, 社)에 따라 擴張-收縮 함으로써 다섯가지 五行이 나타난다는 것이 五行說이다. 五行說은 金(金), 수(水), 木(木), 火(火), 土(土)의 다섯 가지가 陰陽의 原理에 따라 行함으로써 宇宙의 萬物이 生成하고 消滅하게 된다는 것이다.

構成 [ 編輯 ]

陰陽 [ 編輯 ]

음(陰)이라는 글字는 언덕(丘)과 구름(雲)의 象形(象形)을 包含하고 있으며, 兩(陽)이라는 글字는 모든 빛의 源泉인 하늘을 象徵하고 있듯이 陰陽은 元來 山의 그림자(음)와 햇볕(陽)으로 區別되어 집안으로 들어와 마침내 한ㆍ亂의 뜻으로 利用되며 基(氣)의 自然哲學과 結付되어서 1年 氣候의 推移를 支配하는 것으로서 陰陽의 2期가 考慮되었다. 이어서 陰陽은 氣(氣)의 主要한 것으로서, 萬物을 生成케하는 2代 要素라고 보고, 『譯』의 十翼(十翼)에 이르러서 陰陽哲學으로서 止揚되었다. 이 以後 日記(一氣)의 2上으로서의 陰陽은 모든 對立하고 循環하는 것의 二元的 原理가 되며, 東洋人의 思顧法으로 形成되었다. 20世紀에 들어와 컴퓨터가 開發되면서 2進法에도 原理가 活用되고 있다.

五行 [ 編輯 ]

五行이라는 것은 목·火·土·金·數의 誤元素를 말하는데, 文獻上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上書(尙書)》〈洪範(洪範)〉이다. 거기에서는 五行으로서 數·火·목·金·토가 이 巡으로 列擧되며, 各各의 性質이나 맛이 記憶되고 있다. 洪範에서는 五行 또한 停止하고 있는데, 全國旣의 陰陽家 鄒衍은 이를 歷史의 章에 適用해서 王朝의 敎大에 對해서 理論을 세웠는데, 모든 五德(五行의 힘) 始終(醇化의 뜻)說이다. 그에 依하면 各 王朝는 各各 五行中 하나가 附與되며, 命運이 다 되면 新王朝로 바뀌는데 그 交代는 必然的인 理法에 따라서 順序가 定해진다. 이 循環은 불에 이기는 것은 물, 물에 이기는 것은 흙의 順序이므로, 이를 五行相剋이라고 한다.

歷史 [ 編輯 ]

陰陽論과 五行說의 起源에 對해서는 殷代(殷代)의 信仰과 關聯해서 거의 同時에 成立되었다는 說도 있고 通說에서는 兩者는 發生 基盤을 달리하여 中國 戰國 時代 에 流行한 陰陽 五行 이 합쳐진 말이다.

後漢 때 蔡邕이 쓴 <獨斷>에서 " 天子는 동이족이 使用하던 呼稱 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까닭 에 天子라 부른다."라고 했던 點에서 千자란 하늘에서 온 아버지 桓因, 桓雄과 大地의 어머니인 熊女 사이에서 나온 天子, 檀君을 의미하는 것은 텡그리즘에도 同一하게 나타나는 것이며, 高句麗 古墳 壁畫에서 太陽神과 달의 女神이 나타내는 陰陽의 特徵을 보여준다.

그 밖에 《☆ 三國史記 ☆》 ‘高句麗本紀’의 悟性(五星)에 關한 記事나 高句麗의 誤副題(五部制) 等을 통해서도 陰陽五行을 確認할 수 있다. 讖緯說과 風水地理說의 展開過程도 陰陽五行과 密接하게 連結되어 있다.

三國史記 》 ‘백제본기’에 “百濟東月輪 新羅여월新(百濟同月輪 新羅如月新)”이라는 參究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讖緯說을 믿었던 것으로 推測되며, 以後 統一新羅 末期에 이르면 讖緯說과 風水地理說이 結合된 圖讖說(圖讖說)李 크게 流行하게 된다.

當時 僧侶였던 度線(道詵)은 地理쇠왕說(地理衰旺說)·山川順逆설(山川順逆說) 및 비보설(裨補說)을 主唱함으로써 圖讖思想을 크게 流行시켰다. 그 要旨는 地理에는 곳에 따라 쇠왕이 있고 順逆이 있으므로 왕처(旺處)와 순처(順處)를 擇하여 居住해야 하며, 쇠處(衰處)와 逆처(逆處)는 人爲的으로 悲報해야 한다는 것이다.

高麗時代에는 이러한 圖讖思想이 크게 流行하였으며, 高麗 太祖 王建(王建)의 <訓要十條 訓要十條>와 妙淸(妙淸)의 양경지德쇠왕說(兩京地德衰旺說)에서도 確認되고 있다.

朝鮮時代에도 朝鮮의 建立을 正當化하고 遷都問題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影響을 미쳤고, 宣祖 때 일어난 정여립(鄭汝立)의 亂 때에는 “李氏는 亡하고 鄭氏가 일어난다(木子亡, 奠邑興).”는 讒舌이 流布되기도 하였다.

後日 《 鄭鑑錄 》(鄭鑑錄)이라는 祕記書에는 이러한 思想이 集大成되어 있으며, 絶對 安全地帶라는 十勝之地史上(十勝之地思想), 易姓革命館에 立脚한 末世思想 等도 모두 陰陽五行說에 뿌리를 두고 있다. [1]

影響 [ 編輯 ]

東洋 三國 卽, 韓國   · 中國   · 日本 의 思想과 理論에 中心이 되었으며 現在까지 生活의 여러곳에 影響을 주고 있다. 特히 朝鮮 末期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民衆들의 心性을 支配하면서 洪景來의 亂 等 숱한 民亂과 蜂起의 思想的 原動力이 되어온 이러한 思想은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影響을 미치고 있다. 風水地理說 이나 讖緯說뿐만 아니라 性理學의 世界觀에도 陰陽五行說은 相當한 影響力을 行使하고 있다.

같이 보기 [ 編輯 ]

脚註 및 參考 文獻 [ 編輯 ]

  1. 《宗敎學大辭典》,陰陽五行說, 韓國事前硏究士(1998年版) 參照
  • 《陰陽五行說과 朱子學 》 김기 저, 문사철(2013年)
  • 《陰陽五行說 》 육창수 저, 신일상社(2004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