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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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심 (吳光心, 1910年 3月 15日 - 1976年 4月 7日 )은 韓國 光復軍 에서 活躍한 韓國 獨立運動家 이다.

平安北道 宣川에서 태어난 그女는 中國 南滿洲로 移住해 成長하고 結婚을 했다. 離婚 後 同名學校 敎師로 在職하며 同僚 敎師와 再婚하고 朝鮮革命團에 加擔해 活動하다 滿洲事變 以後 男便이 轉勤을 간 사이 同名學校 校長 김학규 가 臨時政府로 가는 길에 合流해 專業 獨立運動家가 되었다. 1939年 에는 靑年工作臺를 組織했다. 이듬해에는 光復軍 創設에 關與했고, 以後 日本軍을 脫營 學徒兵 의 光復軍 加擔을 積極 推進했다. 1940年 9月 17日에 충칭에서 大韓民國 臨時政府의 韓國光復軍이 創設될 때 金正淑, 지복영等과 함께 參與하였다.

1945年 光復 後에 샹하이 主宰 韓國人들의 歸國을 도왔으며, 以後 同僚들이 歸國한 以後에도 셴양 等地에서 活動하다 1948年 김학규의 長男 김일현의 要請으로 4月에 歸國해 김학규 와 結婚했다.

死亡 後인 1977年 建國訓長 독립장이 追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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