麗水出入國管理事務所 火災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麗水 外國人 保護所 火災事故 (麗水外國人保護所火災事故)는 2007年 2月 11日 全羅南道 麗水市 화장동 麗水出入國管理所의 外國人 保護施設에서 火災가 發生, 10名이 숨지고 18名의 負傷者가 發生한 事故이다. 國家가 直接 管理하는 外國人保護施設에서 大型火災가 發生했다는 點에서 國內外的으로 相當한 衝擊을 안겨주었다.

事件 槪要 [ 編輯 ]

2007年 2月 11日 03時 55分頃 3層 304號 保護室에서 火災가 發生했다. 이 火災로 當時 保護 中인 55名의 外國人 가운데 10名이 죽고 17名이 부상당해 總 27名의 死傷者가 생겨났다. 이 事件에서 發生한 死傷者는 强制退去(出國)措置를 命令받은 中國人 25名( 朝鮮族 包含), 우즈벡人 1名, 스리랑카人 1名이다.

警察 調査에 따르면, 火災 當時 勤務者는 職員 4名, 用役警備員 5名 等 總 9名이었다. 하지만 勤務日誌上에는 監視室에 職員이 勤務하게 되어 있으나 用役警備員만 勤務하고 있어 管理에 虛點이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1]

이 事故와 關聯하여, 事故 當日 保護室 勤務者 3名(公務員 2名, 警備用役원 1名)李 業務上過失致死傷 嫌疑로 拘束起訴되었다. 麗水出入國管理事務所 管理課長 等 公務員 3名은 業務上過失致死傷 嫌疑 및 消防敎育일지를 虛僞로 作成하여 行使한 嫌疑로 不拘束 起訴되었다.

法務部는 3月 8日 國家賠償 說明會를 開催하였고, 3月 13日 ~ 3月 29日까지 死傷者 家族 等과 6次例의 協議를 實施하였다. 그리하여 死亡者는 3月 24日에, 負傷者는 3月 30日에 賠償 節次에 對한 合意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協議가 妥結되자 死亡者에 對한 合同永訣式이 3月 30日 午前 10時 麗水 성심病院에서 치러졌다. [2]

法務部는 死亡者에 對하여는 年齡帶別로 1億에서 1億 1千 2百萬원의 賠償金을 支給하였고 負傷者에 對해 慰藉料 1,000萬원을 支給하였다. 賠償 處理가 마무리되자 4月 11日 國內에 滯留하던 負傷者와 그의 家族 32名(負傷者 16名, 家族 16名)이 全員 出國하였다.

事故 原因 [ 編輯 ]

事故의 原因은 朝鮮族容疑者 金某氏(當時 39歲, 中國國籍)가 몰래 숨겨들어온 라이타를 가지고 CCTV를 가리고 脫出을 試圖하기 위해 火災를 發生시켰다.

事件 疑惑 [ 編輯 ]

當時 經費를 擔當하던 職員들은 煙氣와 불길에 휩싸인 保護外國仁義 構造 切迫한 呼訴에도 不拘하고 逃走를 憂慮하여 二重 잠금裝置를 여는데 時間을 오래 遲滯하였다. 그 結果 9名의 保護外國人들이 우레탄 매트가 타면서 發生한 有毒가스와 煙氣에 窒息해 숨졌고 多數의 生存者들도 負傷과 後遺症을 얻게 되었다. 火災當時 스프링클러는 設置돼 있지 않았고, 火災警報器 等 消防施設이 제대로 作動하지 못한 虛點도 있다. [3]

死亡 및 負傷者 [ 編輯 ]

  • 死亡者 : 10名
  • 負傷者 : 17名
  • 國籍 : 以下 아래와 같음
    • 中國 : 25名 (朝鮮族 包含)
    • 우즈베키스탄 : 1名
    • 스리랑카 : 1名 [4]

事件의 經過 [ 編輯 ]

國家人權委員會는 麗水出入國管理事務所 保護室 火災死亡事故에 對하여 2007年 2月 27日 職權調査를 實施하기로 決定하고 調査에 着手하였다. 調査 結果, 火災 當時 麗水出入國管理事務所 保護室 3層에는 警備用役 2名만 勤務를 서고 있었으며, 保護室의 構造와 運營은 拘禁施設과 다름없었으며 出入門은 이中 裝置로 時건 되어 있었음이 確認되었다.

火災 事故 被害者中 最長期 保護外國人의 保護 期間은 1年 3個月로 大部分 賃金滯拂이 原因이었다. 勞動部 指針인 ‘先 措置 後 通報’의 原則 및 賃金滯拂 相談과 關聯해서도 光州地方勞動廳麗水支廳에서는 原則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與輸出入國管理事務所는 保護 外國人들에 對한 權利救濟 節次 案內를 제대로 履行하지 않았고, 火災 容疑者로 推定되는 金某氏(死亡者, 南, 39世)에 對해서도 苦衷處理 相談 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調査되었다.

職員들과 民間用役警備員들에 對한 安全管理 敎育도 形式的으로 實施하여 火災發生 時 初動對處가 未洽한 것으로 나타났다. 事故 後 收拾過程에서도 火災事故 直後 一部事故被害者들에 對하여 手匣을 시건韓 채로 病院 治療를 받게 하였으며, 事故被害者 22名을 出國시키는 過程에서도 權利救濟 節次에 對해 充分히 案內하지 않고 精神科的 診療도 없이 强制 出國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5]

各州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