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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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식(安中植)
身上情報
別稱 心田(心田)·自黨(資堂)·心田(心筌)·脛部(耕夫)·警默禱인(耕墨道人)·용인(庸人)·경묵용자(耕墨傭者)·불이자(不二子)·불부옹(不不翁)
出生 1861年 8月 28日 ( 1861-08-28 )
朝鮮 漢城府 淸進洞
死亡 1919年 9月 10日 ( 1919-09-10 ) (58歲)
日帝 强占期 京城府
職業 畫家
思潮 南宗畫風 , 靑綠山水畫風(靑綠山水畵風), 南北種 折衷 畫風
父母 성균生員 안홍술(安鴻述), 密陽 朱氏(密陽朱氏)
主要 作品
「山水圖」(1909年), 「성재수肝도(聲在樹間圖)」(1911년), 「桃源문진도(桃源問津圖)」(1913年),「白堊春曉도(白岳春曉圖)」
影響
장승업
이상범 (1897年)

안중식 (安中植, 1861年 8月 28日 - 1919年 11 月 2日 )은 朝鮮 後期와 日帝强占期 의 畫家로, 本貫은 순흥, 號는 心田(心田)이다.

圖畫署 出身인 그는 陽川郡守와 통진군數를 지냈으며, 1881年 조석진 과 함께 官費生으로 中國 留學을 다녀왔다. 高宗 順從의 御眞을 그렸으며 以後 1911年 에 소림 趙錫晉과 함께 朝鮮書畫美術回 敎授로 活動하였으며, 1918年 書畫協會 를 組織하여 會長을 지냈다.

吾園 張承業에게 그림을 배운 그는 算數와 人物, 花鳥를 잘 그렸으며, 詩와 書藝에도 能했다. 그의 主要 作品으로 《山水圖》와 《軍作도》, 《 白堊春曉도 》, 《桃源문진도》, 《성재수肝도》, 《靈光風景》 等이 있다.

그의 弟子로는 韓國 最初의 西洋畫家라는 春谷 고희동, 韓國 最初로 1컷짜리 時事漫畫를 그렸던 管制 이도영, 韓國畫壇에 金基昶 장우성 李惟台 조중현 等 수많은 弟子를 養成한 以堂 金殷鎬, 손기정 選手의 가슴에서 日章旗를 지우고 동아일보에 揭載했던 靑田 李象範, 謙齋 鄭敾 以後 最高의 眞景山水畫家라는 所定 卞寬植, 스승인 心田心田의 雅號에서 心字를 下賜 받은 心山 盧壽鉉 等 書畫美術會에서 소림 趙錫晉과 함께 朝鮮時代에서 日帝强占期까지 韓國畫壇의 脈을 탄탄하게 이어준 核心的인 畫家이다.

33인 中의 葦滄 吳世昌과 友黨 권동진이 3月2日까지도 집에 놀러올 程度로 民族代表들과 가까이 지냈던 心田은 3.1 獨立萬歲運動 過程에서 日帝에 逮捕되어 함께 參與한 同僚 弟子들을 밝히라고 拷問을 받아 1919年 11月 2日(陰曆 9月 10日) 西大門 刑務所에서 病死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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