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林寺 (漆谷郡)

松林寺
松林寺 五層甎塔
宗派 大韓佛敎 曹溪宗
建立年代 三國時代 544年 ( 新羅 진흥왕 5年)
創建者 名官(明觀)
文化財 松林寺 五層甎塔 等
位置
칠곡 송림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칠곡 송림사
漆谷 松林寺
漆谷 松林寺 (大韓民國)
所在地 慶尙北道 漆谷郡 동명면 松林길 73
座標 北緯 35° 58′ 55″ 東京 128° 34′ 37″  /  北緯 35.98194° 東京 128.57694°  / 35.98194; 128.57694

松林寺 ( 松林寺 )는 八公山 에 位置한 佛敎 寺刹이다. 行政區域上의 位置는 慶尙北道 漆谷郡 동명면 구덕리 91-6番地이며, 曹溪宗 에 屬한다.

寺刹 境內에 位置한 5層의 電塔(塼塔)은 韓國에서 몇 點 되지 않는 電塔 가운데 하나이다.

沿革 [ 編輯 ]

三國時代 [ 編輯 ]

  • 544年 (新羅 진흥왕 5年) : 中國 (晉)에서 歸國한 僧侶 名官(明觀)李 (晉)에서 가져온 佛舍利를 奉安하기 위해 절을 創建하였다. 境內의 甎塔度 이때 세웠다.

後三國時代 [ 編輯 ]

  • 909年 (新羅 孝恭王 13年) : 최치원 의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를 썼다. 여기에 登場하는 「마정繫辭(摩頂溪寺)」는 바로 松林寺를 가리키는 것으로 比定된다.

高麗時代 [ 編輯 ]

朝鮮時代 [ 編輯 ]

大韓民國 [ 編輯 ]

  • 1950年 移轉 : 松林寺에는 大雄殿과 冥府殿 그리고 甎塔이 全部였고, 大雄殿 앞에는 소가 매여있었다.(사찰 近處에 살았던 現地 老人들의 證言)
  • 1970年  : 황수영 博士가 松林寺에서 나온 個人 所藏(現在는 所在地 未詳)의 靑銅 香爐 (높이 24.1cm)의 名門을 調査한 結果 『指定 2年( 1342年 )名 松林麝香(至正二年銘 松林寺香)』이라고 되어 있어 高麗 時代에 奉安된 것임을 推定할 수 있었다고 한다.
  • 2013年  : 大雄殿의 全面 解體 保守, 先烈黨 保守, 설법전 丹靑工事 等의 作業이 完了되었다.

主要 볼거리 [ 編輯 ]

松林寺의 建物에 關한 記錄은 孝宗 8年(1657年) 中搜 當時에 作成된 《팔공산송림사대웅전불상조성이필봉안기》(八空山松林寺大雄殿佛像造成已畢奉安記)와 英祖 51年(1775年)의 《大雄殿重修機》, 哲宗 1年( 1850年 )에 製作된 《칠곡松林寺大雄殿重修上樑文》(漆谷松林寺大雄殿重修上梁文) 等에 있다. 이 記錄을 따르기로 한다.

大雄殿 [ 編輯 ]

大雄殿

宣祖 30年( 1597年 )에 消失된 것을 1657年 重唱하였고, 그 後 1755年 1850年 에 重修하였다.

17世紀 中後半의 韓國 佛敎建築에서 맞배지붕 에 多包式 主불展 建物이 一般化되었는데, 松林寺 大雄殿은 이에 屬하는 代表的인 建物 가운데 하나이다.(면적 139.44m 2 )

大雄殿 안에 奉安된 木造釋迦三尊佛坐像(木造釋迦三尊佛坐像)은 孝宗 8年에 造成된 것으로 2009年 3月 5日 寶物 第1605號로 昇格되었다. 大雄殿의 懸板은 肅宗 의 어필로 알려져 있다.

三千佛展 [ 編輯 ]

三千佛展에 奉安된 石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은 2009年 에 寶物 第1606號로 指定되었다. 服裝 發願文을 通해 孝宗 6年(1655年) 조각勝 도우가 造成한 佛像임이 確認되었다.

2012年 12月 17日 새벽 三千佛展에 怪漢이 들어왔다. 佛殿에 奉安된 石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가운데 阿彌陀如來賞 옆에 있던 地藏菩薩商과 觀音菩薩像을 故意로 넘어뜨렸다. 佛像의 鍍金이 벗겨지고 觀音菩薩像의 花冠이 毁損되어버렸다.

CCTV 分析과 指紋 對照 作業을 통해 犯行 하루 만에 檢擧되었다. 犯人은 43歲의 男性으로 豫備僧侶였다.

松林寺 五層甎塔 [ 編輯 ]

寶物 第189戶이다. 9世紀 新羅 의 建築物로 全高 16.13m, 기단 幅 7.3m의 前 및 花崗石으로 照映된 塔이다. 韓國에서는 보기 드물게 相輪部까지 穩全히 保全되어 있다는 點에서 價値가 높게 評價되고 있다.

本來 甎塔의 規模는 現存하는 規模보다 더 작았다는 記錄이 남아있는데, 境內에 있는 《八公山 松林寺 遺跡費》에는 1959年 松林寺 甎塔의 解體 復元 當時 現在보다 훨씬 좁은 幅 4.5m 程度의 基壇 石築이 發見되어 여러 次例의 解體復元 過程에서 外形이 많이 變貌되었음을 推定할 수 있다.

眞身舍利 4課가 靑琉璃甁에 奉安되어 있었고, 蓮꽃무늬를 새기고 純金을 象嵌한 眞身舍利감(龕)과 靑瓷 로 만든 眞身舍利감, 玉지금엽菩提樹, 沈香 9個, 銀귀걸이 17個, 나무 구슬 1個, 靑玉, 白玉, 水晶, 琉璃(琉璃), 等 玉구슬 26個가 나왔다.

遺物은 現在 寶物 第325號로 指定되었으며 國立大邱博物館 에 保管되어 있다. 하지만, 함께 나온 發願文은 햇빛을 보는 瞬間 炭酸(炭散)되어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合室 안에는 朝鮮 時代 作品인 本不過 破損 石佛, 桐불이 各各 2具 있었다고 하며 2層의 屋蓋에는 金銅方形 舍利器를 비롯하여 有利倍, 水木型 금구, 옥류 等 燦爛한 遺物이 發見되었다.

相輪部 電塔 內에는 華麗한 高麗靑瓷 合資가 發見되는 等 時代를 달리하는 遺物이 各 層에서 發見되어, 적어도 高麗 時代에 相輪部가 解體된 것으로 判明되었다. 出土 遺物 가운데 목不過 眞身舍利 4課는 塔에 다시 奉安되었다.

羅漢殿(응진전) [ 編輯 ]

冥府殿 [ 編輯 ]

旣成大使비각(第1不渡前)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