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緣故 空洞化 政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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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緣故 空洞化 政策(緣故空洞化政策) 한국프로축구연맹 大韓民國 政府가 [1] 2002年 월드컵 誘致를 위해 서울보다 地方蹴球 活性化를 통한 [2] 全國的인 프로蹴球 熱氣 擴散과 서울의 蹴球專用球場 建設을 目標로 1996年 初에 施行했던 政策이다. [3] 1995年 末까지 서울에 專用球場 建立計劃 樹立이라는 現實的으로 實行하기 어려운 [4] 서울 殘溜 條件을 내건 이 政策에 따라 當時 서울特別市 를 緣故地로 하고 있었던 일화 천마 (現 城南 FC ), LG 치타스 (現 FC 서울 ), 유공 코끼리 (現 濟州 유나이티드 ) 等 3個 프로蹴球團들은 地方으로 移轉하였고 서울 緣故地는 空洞化(空洞化) 되었다. [5]

背景 [ 編輯 ]

2002年 FIFA 월드컵 誘致와 地方自治制度 擴大 公約을 내걸었던 金永三 政府가 1993年 2月 就任 後 월드컵 誘致를 積極 推進하라고 內閣에 指示하였으며 1993年 6月 1日 대한축구협회 主導로 大會 誘致 活動이 進行 中이었다. [6]

1993年 11月 1日 金永三 大統領은 民間 主導의 월드컵 誘致 活動에 對한 政府의 支援을 約束하였으며 [7] , 文化體育部 長官이 월드컵 誘致를 위해서는 國內蹴球 活性化가 무엇보다 重要하다며 國內 프로蹴球 活性化를 위해 프로축구팀 創團을 비롯한 政府 主導로 蹴球發展計劃을 세우겠다고 發表했다. [8]

그리하여 대한축구협회 는 1993年 末부터 大企業인 三星그룹 錦湖그룹 에 各各 慶北 湖南 을 緣故地로 하는 프로蹴球團 創團을 積極 勸誘하는 等 多角的으로 努力하기 始作하였다. [9]

그리고 旣存 廣域地域軟膏劑 를 補完하기 위해 1990시즌부터는 한 球團이 單一 都市만을 緣故地로 定하고 密着하는 都市地域軟膏劑가 公式 導入되었고, 1990年 럭키금성 황소, 1991年 유공 코끼리가 各各 서울로 移轉하여 서울 3個 球團 時代가 開幕하였다. 그後 各 球團들이 緣故地에서 積極的인 地域緣故定着 活動을 施行하였다. [10] 그 後 LG 치타스 가 自體的으로 實施한 設問調査에서는 서울 地域에서 地域軟膏劑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評價되었다. [11]

또한 當時 서울을 緣故地로 하던 일화 천마 , LG 치타스 , 유공 코끼리 는 팬確保를 위해 다양한 팬서비스와 [12] 景品 提供 等을 하며 [13] 서울에서 緣故地 定着을 위해 努力하고 있던 狀況이었다.

  • 1995 시즌 當時 K리그 參加 球團과 緣故地 現況
地域 緣故地 球團
首都圈
서울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
嶺南圈
浦項
浦項 아톰즈
釜山
大宇 로얄즈
蔚山
현대 虎狼이
湖南圈
全北
全北 다이노스
全南
全南 드래곤즈

施行 [ 編輯 ]

地域 緣故 再調整 論議 始作 [ 編輯 ]

1994年 美國 월드컵 以後 1994年 7月 13日 文化體育部가 直接 프로蹴球의 地域軟膏劑 改善에 參與하기로 決定하였고 [14] 이에 발맞추어 大韓蹴球協會는 서울 緣故地 再調整을 發表하며 旣存 推進中이던 空洞化 方案과 서울 緣故 3個 球團들을 서울 地域內에서 江南과 江北으로 分割하는 두 가지 方案을 多角的으로 檢討한다. [15]

한국프로축구연맹 出帆과 緣故地 調整 調律 [ 編輯 ]

1994年 7月 20日 프로蹴球만 을 專擔하는 새로운 行政機構인 한국프로축구연맹 이 公式 出帆을 하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은 政府의 支援計劃에 따라 國內 프로팀 數를 늘리고 J리그를 5年안에 追越한다는 目標아래 緣故地의 再調整, 서울 緣故 3個 球團을 各 市, 道路 分散시키는 것을 積極 推進하겠다고 發表하였다. [16]

이어 1994年 12月 16日 한국프로축구연맹 은 地域軟膏劑 施行을 發表하며, 12月 20日 한국프로축구연맹 理事會에서 서울 緣故 3個 球團이 서울을 包含한 軟膏 都市를 選擇하지 못 할 境遇 强制로 軟膏都市를 配定하고 球團의 意思와 關係없이 1995 시즌을 施行할 計劃을 밝혔다. [17]

그러나 實際 12月 20日 열린 한국프로축구연맹 理事會에서는 LG, 有功, 逸話가 몰려있는 서울 地域의 緣故地 再配置는 現行대로 共同區域으로 하자는 眼科 地域的으로 3等分하자는 안이 나와 追後 한국프로축구연맹 理事會에서 論議키로 하면서, 强制로 軟膏都市가 配定되지는 않고 緣故地 調整이 뒤로 미루어졌다. [18] 프로蹴球聯盟은 1994年 12月 20日 理事會 以後 다음 理事會 때 都市 配定을 確定짓기 위해 努力하였는데, LG 치타스 의 境遇에는 決定을 내리지 않고 時間을 끌었다. [19] 以後 1995年 2月 , 김기복 한국프로축구연맹 事務總長은 서울 緣故 3個 球團의 協議가 圓滿히 이루어지지 않을 境遇, 投票를 통해 決定할 計劃이라고 밝혔다. [20]

한국프로축구연맹의 政策 決議 [ 編輯 ]

1995年 2月 13日 한국프로축구연맹 理事會는 2002年 FIFA 월드컵 誘致를 위한 全國的인 蹴球 熱氣 擴散과 地方 蹴球 活性化라는 大義名分을 내세워, 1995年 末까지 서울에 蹴球專用球場 建立計劃을 樹立하는 球團에 對해서는 서울 殘留를 許容하고, 그렇지 않은 球團은 1996年 1月 1日附로 緣故地를 移轉하기로 決意했다. [21] [22] 以後 이를 서울 緣故 3個 球團과의 合意했다. [23] 한便 緣故地 以前 以後에도 서울에 蹴球專用球場 建立을 約束하면 서울 緣故 復歸時 優先權을 준다는 但書 條項을 만들어 當時 蹴球界 宿願인 서울의 蹴球專用球場 建設을 推進하기로 했다. 그러나 1996年 6月 1日 2002年 FIFA 월드컵 誘致 確定에도 不拘하고 蹴球專用球場 建設에 對해서는 대한축구협회 鄭夢準 會長조차 地方에서는 建設이 活性化 되겠지만 서울에서는 現實的으로 어려울 것으로 展望하였다. [4]

3個 球團의 合意飜覆과 强制施行 [ 編輯 ]

하지만 서울 緣故地를 固守하려는 旣存 球團들과 摩擦을 겪었다. 特히 1995年 10月 理事會에서 有功 團長은 서울을 떠나게 된다면 된다면 蹴球團 運營 抛棄를 할 수 있다고 强勁한 立場을 보이는 等 [24] 蹴球界 內部的으로 解決될 幾微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따라 聯盟은 1995年 年末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을 境遇 1996시즌부터 리그 參與를 禁止시키는 內部 方針을 定하고 1995年 11月初 各 球團에 서울 移轉 計劃書를 提出하라는 公文을 發送하는 [25] 한便 靑瓦臺 에서 다시 한番 프로蹴球聯盟을 통해 이들 3個 球團에 緣故地 以前 指針을 내렸다. [26] [23] 이와 關聯하여 蹴球 關係者들은 靑瓦臺 가 直接 介入하여 緣故地 以前 指針을 내린 理由에 對해 球團들이 서울을 비울 수 없다고 反對하자 當時 2002 FIFA 월드컵 誘致를 위해 政府와 자주 交流하던 蹴球界에서‘압력을 넣어달라고 政府에 要請하지 않았겠느냐’라고 推論하고 있다. [27]

그리하여 年末까지 各 球團은 서울 緣故地를 固守하기 위해 聯盟의 政策에 抵抗하고 [28] 팬들의 反對 示威도 있었지만 [29] 結局 서울 緣故 3個 球團들은 다른 地方으로 移轉하여 서울 緣故 空洞化 政策의 强制施行이 完了되었다. [30]

유공 코끼리의 移轉 [ 編輯 ]

1996年 1月 4日, 球團 解體까지 不辭하겠다던 [24] 유공 코끼리는 富川 으로의 緣故地 以前 方針을 發表했다. 이와 함께 유공 코끼리는 富川 新市街地 2萬坪 터에 5百 50億원의 建築 費用으로 2萬石 規模의 主競技場과 2個의 練習球場을 가진 專用球場 建立 計劃을 밝혔다. [31] 또한 클럽 名稱을 유공 코끼리에서 富川 有功 으로 變更했다. [21]

일화 천마의 移轉 [ 編輯 ]

同年 3月 30日, 일화 天馬는 天安으로의 緣故地 以前을 發表했는데 선문대 [32] (天安 牙山), 일화 청원工場 [33] 統一敎 가 어느 程度 基盤을 다져놓은 地域이었으며 한때 大邱 에서 오퍼가 왔으나 統一敎 가 大邱에 제대로 緣故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宗敎世가 弱한 地域이어도 모자를 板에 大邱는 傳統的으로 佛敎稅가 엄청나게 剛한 地域이라 [34] 挫折됐다. 천안시와 일화의 發表에 따르면, 천안시가 總 事業費 12億원을 投入해 오룡競技場 蹴球專用球場 으로 轉換하고, 백석동 一帶 12萬坪 敷地에 2001年까지 國際 規模의 綜合運動場 을 마련하기로 하여 移轉이 決定되었다. [35] 이에 따라 클럽 名稱을 일화 天馬에서 天安 일화 천마 로 變更했다. [21]

LG 치타스의 移轉 [ 編輯 ]

그리고 4月 27日, 그동안 서울 緣故地 固守를 强力히 希望해 오던 LG 치타스는, 그때까지 새 緣故地로 저울질해 오던 安養 , 大田 , 昌原 中 蹴球熱氣와 地域的 特性 等을 勘案해 安養 으로 새 緣故地를 決定했다. [36] 이에 따라 클럽 名稱을 安養 LG 치타스 로 變更했다. [21]

主要 事件 日誌 [ 編輯 ]

一時 事件
1994年 4月 대한축구협회 서울 緣故 3個 球團의 緣故權 分散 推進 中 [37]
1994年 5月 30日 대한축구협회 鄭夢準 會長 서울 緣故 3個 球團 地方 分散 推進 言及 [38]
1994年 7月 4日 文化體育部 의 프로蹴球 地域軟膏劑 改善 計劃 發表 [14]
1994年 7月 15日 대한축구협회, 서울 緣故 3個 球團을 各 市,道에 分配하는 方案과 서울 地域內에서 分割하는
두 가지 方案 多角的 檢討 計劃 發表 [15]
1994年 7月 20日 한국프로축구연맹 公式 出帆과 함께 J리그 를 5年안에 追越한다는 目標아래 緣故地 再調整 및
逸話, 有功, LG를 各 市道로 分散시키겠다는 計劃을 發表 [16]
1994年 12月 16日 聯盟 理事會 4日前 서울 緣故 3個 球團들이 軟膏 都市를 選擇하지 못 할 境遇
强制로 軟膏都市 配定 計劃 發表 [17]
1994年 12月 20日 聯盟 理事會:
서울 地域 내 分割 方式이 代案으로 提示되어 軟膏 都市 決定이 미루어짐 [18]
1995年 1月 12日 聯盟 理事會:
逸話, 유공 蹴球團 - 서울 地域을 空洞化(空洞化)하는 原則이 定해지면 이동함
LG 蹴球團은 次期 理事會에서 論議함 [39]
1995年 1月 13日 서울 緣故 3個 球團 軟膏 都市 選擇 不透明 [19]
1995年 2月 13日 聯盟 理事會:
條件附 서울 空洞化를 決定 發表 [40]
1995年 2月?10月 사이
(正確한 合意 時期는 未詳)
서울 3個 球團, 聯盟 理事會 決定에 合意 [23]
1995年 10月 20日 聯盟 理事會:
유공 團長 서울 殘留 失敗時 蹴球團 運營 抛棄 擧論하며 合意 飜覆 [24]
1995年 11月 初 靑瓦臺 軟膏移轉 移轉指針 프로蹴球聯盟에 下達 [26] [23]
1995年 11月 初 3個 球團 空洞化 不履行時 聯盟 리그參加 不許 公知 發表 [25]
1995年 12月 서울 地域 3個 球團, 緣故地 以前 準備도 하지만 如前히 殘留 摸索 [28]
1996年 1月 4日 유공 코끼리 富川으로 緣故地 移轉 確定 [31]
1996年 3月 29日 일화 천마 天安으로 緣故地 移轉 確定 [35]
1996年 4月 26日 LG 치타스 安養으로 緣故地 移轉 確定 [36]
2017年 9月 1日 FC 서울 球團 1995年 서울 空洞化 決議에 關한 한국프로축구연맹 理事會 文件 公開 [41] [42]

撤廢 [ 編輯 ]

政策 施行 直後 [ 編輯 ]

1996年 政策 施行 以後 東亞日報 를 비롯한 言論에서 서울을 비롯 大都市 爲主로 프로蹴球 緣故地를 再編해야 한다는 意見들이 나왔다. [43] [44] [45] 또한 1998年 11月에 있었던 聯盟 主催의 公聽會에서도 서울에서 프로蹴球 活性化를 爲한 對策樹立에 對한 意見이 提示되었으며 이에 對해 聯盟에서는 1999年부터 서울 緣故地에서 中立競技를 擴大하겠다는 答辯을 하였고 [46] 1999年 시즌 5競技를 東大門球場에서 開催하기로 했다. [47]

1999年 10月 聯盟 은 다시 서울 緣故 球團을 만들기로 決定하였으며 [48] 이듬해 2000年 5月 12日, 한국프로축구연맹 第4次 理事會에서 創團李든 以前이든 2個의 서울 緣故 球團이 必要하다는 데 合意하여, 서울 緣故 球團에게는 創團加入金 10億원과 發展基金 242億원 以上을 받기로 했다. [49] 다만 이 決定은 ‘先 新生팀 創團, 後 旣存球團 移轉’原則이었다. [50]

이런 聯盟의 空洞化 政策 撤廢 움직임과 함께 過去 서울 緣故 3個 球團들이 서울 復歸에 關心을 나타내는 一連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城南 일화 천마 의 緣故地 事態와 關聯된 KBS 追跡 60分 2001年 3月 25日 放送分에서 城南市 蹴球協會長에게 1999年 9月 當時 富川 SK 團長으로부터 電話가 와서 安養 LG가 앞으로 상암구장 使用을 申請하니 우리 富川 SK도 서울 상암구장 使用 申請을 안 할 수가 없다는 發言을 하였으며 [51] 2000年 6月 當時 安養 LG 치타스 團長은 聯盟에서 旣存 球團의 서울 入城을 原則的으로 反對하지 않으니 서울 緣故地 復歸를 可能性을 두고 推進하겠다고 發表하였다. [52]

서울市 프로蹴球團 創團 論議 [ 編輯 ]

2002年 FIFA 월드컵 이 끝난 後, 서울월드컵경기장 活用 方案을 찾던 서울特別市 대한축구협회 와 함께 서울市 프로蹴球球團 創團을 論議했다. [53] 當時 서울월드컵경기장 建設費 2千億원 中 250億원 假量을 서울特別市 에게 내야 하는 대한축구협회 는 이 金額을 2-3個의 프로蹴球球團을 誘致하여 解決하려고 했다. [54]

2003年, 國民銀行 [55] KT [56] 가 蹴球團 創團을 檢討하였으나, 蹴球發展基金과 聯盟加入金 等으로 250億원을 包含한 創團 費用이 負擔되어 쉽게 創團을 決定하지 못했다. [57]

그러자 대한축구협회 는 서울 프로蹴球團 創團에 걸림돌이 되는 分擔金 250億원을 서울市에 蕩減을 要請했지만, 서울市는 創團 計劃을 먼저 提出하면 蕩減을 論議해 보겠다는 反應을 보였다. [58]

또한 대한축구협회 는 旣存 K리그 팀들 中에서도 分擔金이 100億원 程度로 줄어든다면 緣故地 移轉을 하겠다는 팀들이 있다고 밝혔다. [59]

이에 서울市는 2003年 9月 3日, 서울 緣故 프로축구팀을 創團하는 企業에 1百億원을 出捐하는‘축구발전 支援計劃’을 發表했다. [60] 이에 錦湖그룹 이 創團을 檢討했으나, 10月 13日 創團 計劃 白紙化를 發表했다. [61]

안양시의 인프라 構築 約束 未履行과 安養 LG의 移轉 宣言 [ 編輯 ]

蹴球專用球場을 지어주고 訓鍊場과 宿所 敷地를 提供하겠다는 안양시의 約束이 1996年 LG 치타스를 誘致했던 이석용 安養市長 이 물러나고 此日彼日 미루어졌다. [62] 그 後 2003 시즌이 끝나고 안양시와 施設擴充을 위해 協議하였지만 安養 LG 치타스는 期待했던 答辯을 듣지 못 하였다. [63]

結局 2003年 12月 16日, 安養 LG 치타스 가 累積 赤字를 解決하고 黑字經營으로 蹴球發展을 圖謀하기 위해 緣故地를 서울로 移轉을 推進하기로 決定했다고 發表했다. 球團에 따르면 서울市와 原則的인 移轉 合意도 끝냈고, 서울市도 移轉을 歡迎하는 立場이었으나 프로蹴球聯盟 은 "旣存 팀의 以前은 언제든지 可能하다" [64] 며 新生팀 創團 優先 原則을 내세웠다. [65]

서울市의 決定 [ 編輯 ]

서울市는 2004年 1月 14日, 同月 26日부터 28日까지 新生球團 創團 公募를 받고, 萬若 創團 推進 企業이 없을 境遇 旣存 K리그 球團의 軟膏移轉을 推進한다고 發表했다. [66]

그리고 1月 29日, 서울市는 30大 大企業에 別途의 公文을 보내 創團을 勸誘했지만 創團意向書를 提出한 企業이 없어 [67] , 1月 30日 公開 募集公告를 낸 後 2月 11日까지 旣存 K리그 球團들에게 軟膏移轉 意向書를 받고 審査를 거쳐 軟膏以前 球團을 選定하겠다고 밝혔다. [68]

'先 新生팀 創團' 原則 廢止 [ 編輯 ]

그동안 서울 緣故의 新生팀 創團에 무게를 두어왔던 프로蹴球聯盟은, 經濟與件 等으로 事實上 創團이 힘들고 [69] 이렇게 新生팀 創團이 어려운 狀況에서 創團만을 固執하기 보다는 旣存 팀이라도 들어와 서울市長을 開拓, 活性化시키는 것이 重要하다는데 意見을 모으고 [70] 2004年 2月 6日 理事會에서 旣存 球團의 서울 入城을 滿場一致로 決意하여 '先 新生팀 創團, 後 旣存球團 移轉' 原則을 廢止했다. [71] [72] 이미 서울로의 緣故地 以前을 宣言한 安養 LG 치타스 를 包含, 光州 常務 蹴球團 을 除外한 當時 K리그 12個 球團에게 同等한 機會를 주기로 했다. [73]

釜山 아이콘스의 移轉 宣言 [ 編輯 ]

2004年 2月 11日, 釜山 아이콘스 度 서울로의 緣故地 以前을 宣言한다. 理由는 安養 LG 치타스 와 마찬가지로 赤字運營을 打開하기 위함이었다. [74]

安養 LG 치타스의 서울 入城 [ 編輯 ]

2004年 3月 10日, 釜山 아이콘스 가 緣故地 以前 申請을 撤回했다. [75] 이에 따라 다음捺印 11日 프로蹴球聯盟 은 緊急 理事會에 理事 16名 中 14名이 參加한 가운데 唯一한 軟膏移轉 申請 球團으로 남은 安養 LG 치타스 의 서울 入城을 滿場一致로 承認한다. [76]

批判 [ 編輯 ]

政策 施行 完了 以後 나온 一部 言論 記事와 冊에서는 이 政策을 서울 緣故 3個 球團을 强制的으로 以前시킨 强壓的인 政策으로 規定하기도 하며 [77] [30] [78] [79] 아래 같은 批判들이 提起되고 있다.

한 프로蹴球團 關係者는 韓國經濟 와의 인터뷰에서 當時 서울 人口는 1041萬餘名, 緣故地 移轉을 한 富川, 安養, 天安 人口는 다 合쳐도 173萬餘名으로, 世界的으로 볼 때 緣故地는 더 큰 市場으로 移轉하는 것이 常識인데 이를 뒤집고 結局 政府의 規制로 競爭 스포츠인 프로野球가 最大 市場 서울을 無血 占領하는 結果를 가져왔다며 批判하였다. [80] 스포츠동아 의 스포츠 2部 部長은, 國內 프로스포츠 最大 市場인 서울 緣故地를 제대로 活用하지 못했던 것은 當時 서울 緣故地가 空洞化(空洞化)되었기 때문으로 한심스럽고 愚昧한 決定이었다고 批判하였다. [81]

풋볼리스트 記者는 프로蹴球 復興을 위한다는 名分으로 施行되었지만 結局 프로蹴球의 成長을 가로막아 廢止되었다고 批判하였으며 [82] 韓國日報 記者 亦是 사람과 돈이 몰린, 프로스포츠 立場에서는 가장 積極的으로 덤벼들어야 할 市場을 다 같이 비워놓자는 稀罕한 發想이었으며 프로蹴球 發展을 沮害한 代表 事例로 대한축구협회가 나서서 밀어붙였다고 批判하였다. [83]

스포츠서울 記者는, 서울 緣故 3個 球團을 밀어낼때 그 때 中小都市人 安養, 富川, 天安 보다는 좀 더 規模가 크면서, 월드컵 競技場을 誘致한 廣域市로 移動하게 하였으면 더 效果가 컸을 것이라고 批判하기도 하였다. [84]

許丁茂 한국프로축구연맹 副總裁는 2018年 11月 言論과의 인터뷰에서 서울 緣故 空洞化 政策은 서울 緣故 球團이 地方으로 移轉하는 異常한 現象을 만들어냈는데 政府指針이긴 하지만 프로蹴球 發展을 위해 當時에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던 政策이라고 批判하였다. [85]

기타 [ 編輯 ]

서울 緣故 空洞化 政策과 관계된 FC 서울 FC 安養 은 2017年 FA컵 , 그리고 濟州 유나이티드 富川 FC 1995 는 2020年 K리그2 에서 各各 맞對決을 펼친 적이 있는데 이 競技를 言論 等에서 "軟膏移轉 더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

各州 [ 編輯 ]

  1. “프로蹴球, 地域軟膏劑 定着의 해로” . 오마이뉴스. 2003年 1月 18日.  
  2. “서울 軟膏 이랜드프로蹴球團 出帆…FC서울과 '투톱 ' . 韓國經濟新聞. 2014年 5月 2日.  
  3. “韓國프로蹴球 30年史-307페이지” . 한국프로축구연맹. 2013年 6月 14日.  
  4. “<월드컵> 정몽준 會長 인터뷰” . 聯合뉴스. 1996年 6月 1日.  
  5. “레니 이랜드 新任 監督 “특별한 팀 만들 것…서울의 라이벌이 되겠다”” . 일간스포츠. 2014年 9月 11日. 2017年 2月 26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7年 2月 25日에 確認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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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김영삼 大統領 1993年 年譜” . 김영삼 民主센터. 2014年 11月 7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4年 11月 7日에 確認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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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湖南, 慶北에 프로축구팀 創團” . 京鄕新聞. 1993年 11月 4日.  
  10. “팬없는 競技는 싫다. 6個球團 弘報戰爭 宣言” . 東亞日報. 1991年 3月 2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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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프로蹴球 LG치타스, 各種 팬서비스 實施” . 聯合뉴스. 1992年 5月 29日.  
  13. “프로蹴球單身-LG,팬 2千名에 無線呼出機 支給” . 聯合뉴스. 1995年 9月 25日.  
  14. “李文體, "프로蹴球팀 10個팀으로 늘리겠다 " . 聯合뉴스. 1994年 7月 4日.  
  15. “文體部, 協會 活性化 對策 國民熱望 업고 政策支援 잰걸음” . 한겨레. 1994年 7月 15日.  
  16. “프로蹴球聯,30日 出帆” . 聯合뉴스. 1994年 7月 3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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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95 프로蹴球 코리안리그, 5月 6日 開幕” . 聯合뉴스. 1994年 12月 2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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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地域緣故地 매듭짓겠다” . 스포츠서울. 1995年 2月 13日.  
  21. (寺)한국프로축구연맹 (2013年 6月 14日). 《韓國프로蹴球 30年》 . 유니크플러스. 178쪽 . 2017年 3月 15日에 確認함 .  
  22. “<프로蹴球>-서울緣故 3個球團,來年 地方移轉” . 2017年 3月 27日에 確認함 .  
  23. ' 서울 한지붕 세家族' 逸話, LG, 有功 來年엔 모두 서울 떠난다” . 스포츠서울 . 1995年 11月 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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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프로蹴球 서울팀을 없애라” 靑瓦臺가 介入했을까” . 韓國日報. 2017年 4月 20日.  
  84. ' 밑바닥 까는' 特別市-廣域市 緣故 球團…K리그 클래식 '異色 現象 ' . 스포츠서울. 2015年 6月 2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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