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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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면 (默隱面), 陳畓面 (陳畓面) 或은 北面 (北面)은 朝鮮 時代 京畿道 양주목 楊州郡 北北西쪽에 있던 地域으로, 은현면 의 北쪽에 該當된다. 楊州郡 의 北쪽에 있다는 理由로 北面이 되었으며, 적성현 의 南쪽에 있어서 南面 이 된 隣近地域과는 相關이 없다. 楊州郡 北面이었다가 朝鮮 世宗 때 以後로 陳畓面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842年 (憲宗 8年) 묵은면으로 行政區域 名稱이 바뀌었다.

槪要 [ 編輯 ]

本來 北面이었는데 언제부터 北面이라는 이름을 썼는지는 正確하지는 않으나 1466年 世祖 12年에 洋酒軍이 양주목으로 昇格되면서 北面이라고 쓴 것으로부터 推定되고 있다. 朝鮮 世宗 때, 當時 그의 父王인 太宗 의 비 원경왕후 閔氏의 동생이자 世宗의 外三寸 민무질 (閔無疾)의 墓가 여기에 造成되고, 나중에 여흥閔氏 집안에게 墓地 周邊 地域을 賜牌地로 내려준 뒤 어느 누구도 農事를 짓지 못하고 遊休地가 되었다. 以後 遊休地라서 누구도 그 周邊에 農事를 짓지 않고, 물이 차 있어 질퍽한 論이라는 뜻에서 津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다가 陳畓理가 되고, 나중에는 面 全體에 진답면이라는 名稱이 붙었다.

陳畓面에는 일悖理, 이悖理, 三牌리, 眞답리 等이 있었는데 이는 하패리, 重悖理, 上悖理로 불리다가 1914年 의 軍면 統廢合 때 重悖理의 一部를 하패리와 賞悖理로 分割시켜 編入하였다. 陳畓理는 운암리에 吸收되었다.

1789年 (正祖 14年) 發刊한 호구총수에 記錄된 陳畓麵의 面里에 依하면 軍事 施設로 편제된 마을이라 하며, 1789年 當時 湖水는 263號에 人口는 1,856名으로 男子 936名, 女子 920名이었다 한다. 1842年 (憲宗 8年)에는 묵은면으로 地名이 바뀌었다. 1914年 朝鮮總督府 에 依해 南쪽의 현내면, 그리고 舊 석적면의 北쪽인 항동리, 行動리, 대야지리, 適性群 南面 의 한산리 一部, 이담面 의 축산리, 黃梅桐, 송라리, 안흥리 一部 等과 統合하여 은현면이 되었다. 석적면의 一部는 광석면과 합쳐져 광적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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