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승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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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승손(杜承孫) , 生沒年度未詳 ~,옥구현 )은 朝鮮前期 群山 地域[옛 옥구현]에 世居한 두릉 杜氏 입향조이다. 朝鮮時代 兵馬虞侯를 지낸 無冠이다.

開設 [ 編輯 ]

두승손(杜承孫)은 朝鮮 時代 群山 地域[옛 옥구현]에 世居한 두릉 杜氏 입향조이다. 두승손이 만경에서 옥구로 入居한 以後 그의 後孫들이 朝鮮 時代 옥구현에 世居하면서 大姓을 이루었다.

家計 [ 編輯 ]

斗升손은 두릉 杜氏 時調 頭頸令(杜慶寧)의 11世孫이고, 高麗 武臣 執權期 兵馬使를 지낸 두경승(杜景升)의 6世孫이다. 高祖할아버지는 兵馬 節制使를 지낸 두영(杜瑛)이고, 曾祖할아버지는 寶文閣(寶文閣) 眞사(進士)를 지낸 두성림(杜成林)이며, 할아버지는 兵馬 節度使를 지낸 두無知(杜茂枝)이고, 아버지는 寶文閣 進士를 지낸 蠹政(杜楨)이다. 外할아버지는 興德 張氏이고, 丈人은 양홍점(梁鴻漸)[本館 南原]이다. 正確한 生沒 年代는 알 수 없다.


活動 事項 [ 編輯 ]

斗升손은 朝鮮 時代 옥구에 世居한 두릉 杜氏(杜陵杜氏)의 입향조이다. 太宗 兆에 官職이 兵馬 虞侯(兵馬虞候)에 이르렀다. 두승손이 15世紀에 만경(萬頃)에서 옥구로 入居한 以後 斗升손의 後孫들이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와 옥산면 당북리 및 금성리에 集姓村을 이루며 世居하여왔으며, 群山 地域에서 큰 姓氏가 되었다. 아들 두세준(杜世俊)은 世宗 條에 孝行으로 世上에 이름이 알려지자 朝廷에서 靜慮(旌閭)를 세워주었으며, 曾孫子 두사순(杜思順)은 淸白吏로 有名하며, 玄孫[曾孫子의 아들] 두정란(杜廷蘭)은 壬辰倭亂 때 錦山(錦山) 戰鬪에서 殉節한 忠臣이다.

斗升손의 墓가 군산시 회현면 고사리 尺童 마을 周邊 野山에 있는데, 尺童 마을을 둘러 싼 周邊의 野山에는 現在 두릉 杜氏 옥구 입향조 斗升손의 墓所 外에도 南原 양氏(南原梁氏) 옥구 입향조 양의생(梁宜生)의 墓所, 晉州 姜氏 옥구 입향조 강원전(姜元鐫)의 墓所, 潭陽 全氏(潭陽田氏) 옥구 입향조 전윤평(田允平)의 墓所, 광산 金氏(光山金氏) 經歷公派(經歷公派)의 입향조 김덕양(金德良)의 墓所와 各各의 祭閣이 있다.


墓所 [ 編輯 ]

斗升손의 墓는 全羅北道 군산시 회현면 고사리 尺童 마을 野山에 있다.


參考 文獻 [ 編輯 ]

『新增東國輿地勝覽』

『옥구 郡誌』(옥구 鄕校, 1924)

『옥구 郡誌』(옥구 郡誌 編纂 委員會, 1990)

『全羅 文化의 맥과 全北 人物』(全北 大學校 全羅 文化 硏究所, 1990)

『群山市史』 群山時事編纂委員會, 群山市 2000.12

『群山地域家門과 人物Ⅰ』, 김두헌, 群山文化院 2018>

『杜陵杜氏 世譜』 1898年(戊戌)

『杜陵杜氏 世譜』 1986年(丙寅)

『두릉 杜氏 世譜』(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