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형
(金錫亨
1915年
~
1996年
11月 26日
)은
日帝强占期
大邱에서 태어나
1946年
越北한
金日成綜合大學
敎授이다.
1963年
日本의
任那日本府
설에 맞서
三韓
의 住民들이 日本에 移住하여 分局을 세웠다는 學說을 主張한 歷史學者이다.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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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年
경성제국대학
卒業
- 1955年 11月
金日成綜合大學
敎授
- 1955年 11月 社會科學院 歷史硏究所 所長
- 1958年 社會科學院 元士(院士)
- 1961年 5月
祖國平和統一委員會
中央委員
- 1962年
最高人民會議
代議員
- 1962年 마르크스·레닌主義放送大學 副總長
- 1972年 12月
最高人民會議
代議員
- 1973年
金日成綜合大學
總長
- 1982年 2月
最高人民會議
代議員
- 1983年 社會科學院 歷史硏究所 所長
- 1988年`社會科學院 歷史硏究所 顧問
- 1992年 7月 社會科學院 院長
김석형은 1963年 칠지도의 名門을 根據로
任那日本府說
을 否定하고 古代 三國이 日本(當時 왜)에 植民地 國家인 分局을 세웠다는 이른바
三韓 三國 分局설
을 主張했다.
김석형은 1963年에 發表한 〈삼한 三國의 日本列島 內 分局에 對하여〉라는 論文과 이 論文을 補完하여 1966年에 發表한 《初期조日關係史》라는 著書에서 칠지도가 백제 王이 日本 天皇에게 바쳤다는 日本 學者들의 主張을 否定하고 오히려 백제 王이 日本 天皇에게 하사했다고 主張했다. 김석형의 三國分局說은 現在 많은 部分이 修正되거나 破棄되었지만, 백제 王이 칠지도를 하사한 것이라는 學說은 南北 歷史學者들의 支持를 받고 있다. 當時 遺物의 象嵌 技法 等으로 製作 連帶가 6世紀로 推定되며 가지가 實際로는 7個가 아닌 6個라는 等 칠지도를 《
日本書紀
》의 內容에 맞추는 것은 問題가 있다는 指摘이 있다.
賞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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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勳章
(歷史硏究에 對한 功勞,1992年 4月)
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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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封建時代 農民의 階級構成》(1958)
- 《封建支配階級을 反對한 朝鮮農民들의 鬪爭(前4卷)》(1960)
- 《初期조日關係史》(1966)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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