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 (指揮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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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
基本 情報
出生 1941年 12月 11日 ( 1941-12-11 ) (82歲)
日帝强占期 慶尙南道 馬山
性別 男性
居住地 大韓民國 大邱廣域市
職業 클래식 交響樂 指揮者
장르 西洋 古典 音樂
活動 時期 1957年 ~ 現在
樂器 트럼펫
配偶者 이데(1981年 結婚-)

곽승 (郭昇, 1941年 12月 11日 ~)은 釜山市立交響樂團 , 서울市立交響樂團 , 大邱市立交響樂團 의 音樂監督 및 常任指揮者 等을 歷任한, 트럼펫 演奏者 出身의 大韓民國의 交響樂 指揮者 兼 西洋 클래식 音樂 가이子 계명대학교 特任敎授이기도 하다.

生涯 [ 編輯 ]

日帝 時代 末期 慶尙南道 馬山 에서 태어났으며 本貫은 玄風 이다. 열여섯 살(1957年 12月)에 高等學生 身分으로 서울市立交響樂團 最年少 트럼펫 奏者로 活動한 바 있으며, 美國 으로 留學해 뉴욕 메네스 音大 (Mannes School of Music) 首席 卒業을 거쳐 한스 스바로프스키 의 指揮法을 受學하고, 뉴욕 링컨센터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 組프리 발레 오케스트라 의 指揮者를 歷任(1970~1977)하였다. 以後 1977年 美國의 巨匠 로버트 쇼 (1940年代부터 토스카니니 副指揮者)에게 拔擢되어 애틀랜타 交響樂團 의 副指揮者로 活動하면서 쇼의 正統 指揮法을 傳授받았으며, 1980年 巨匠 로린 마젤 이 이끄는 世界的인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交響樂團 의 副指揮者로 選拔되어 韓國의 矜持와 자랑이 되기도 했다. 1983年 텍사스의 오스틴 심포니 常任指揮者로 14年間 在職하면서 美國의 수많은 오케스트라 가운데 最高 水準의 交響樂團으로 養成하였다. 또한 1983年부터 10年間 오레곤의 先리버 뮤직 페스티벌의 藝術 監督을 맡은 바 있다. 國內에서는 釜山市立交響樂團 首席指揮者]](1996~2003), 서울市立交響樂團 音樂顧問 및 音樂監督(2002~2003), KBS交響樂團 首席 客員 指揮者(2004~2006) 等을 歷任하였다. 2008年 10月부터 大邱市立交響樂團 의 音樂監督 兼 常任指揮者로 在職하고 있는 그는 한 音도 疏忽히 하지 않는 嚴格하고 堅固하며, 均衡 잡힌 演奏를 통해 作品性을 眞摯하게 파고드는 指揮者로 定評이 나 있다.

곽승 은 시카고, 피치버그, 샌프란시스코, 휴스턴, 댈러스, 애틀랜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D.C. 等 美國의 수많은 主要 交響樂團을 客員 指揮하여 熱烈한 喝采를 받았다. 그 外 러시아, 캐나다, 獨逸, 오스트리아, 中國,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日本, 프랑스, 스페인, 멕시코 等 世界 有數의 交響樂團에 招請받고 있으며 많은 巡廻 演奏를 成功的으로 이끌어 오고 있다. 1995年 베네수엘라의 사이몬 볼리바 交響樂團 과 유네스코 50周年 記念으로 파리에서 연주했으며, 1993年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 와 國內 巡廻 演奏를 가졌다. 그리고 KBS交響樂團의 日本 5個 都市(1986)와 東南아시아 5個國(1984) 巡廻 演奏, KBS交響樂團의 前身인 국립교향악단의 美國 23個 都市(1978) 巡廻 演奏를 이끌기도 했다. 特히 1997年 釜山市立交響樂團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D.C., 뉴욕 카네기 홀 等 美國 4個 都市 巡廻 演奏를 가져 現地 言論의 好評을 이끌어 낸 것은 韓國의 交響樂 水準을 世界에 알린 快擧라 할 수 있다.

1964年 故國을 떠난 그는 1978年 世宗文化會館 開館 記念 公演을 위해 처음으로 歸國, 김동진 作曲의 “沈淸傳”을 初演하였으며, 以後 KBS交響樂團 定期演奏會 指揮者로 年間 1~2次例 持續的인 招請을 받아왔다. 또한 1987年 서울올림픽主競技場 開館記念 演奏會에서 KBS交響樂團과 서울시향 聯合 오케스트라 및 千餘 名의 合唱團을 指揮하여 올림픽 개최국의 矜持를 불러일으켰으며, 1990年 平壤에서 열린 犯 韓國 統一 特別 演奏會 의 指揮를 맡아 世界를 舞臺로 活動하고 있는 韓國 音樂人들과 함께 平和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特히 1996年 7月에는 그가 指揮한 KBS交響樂團의 祝賀 演奏로 韓國의 衛星放送이 그 壯大한 幕을 올렸다. 國內 創作 오페라에도 關心을 기울인 그는 1998年 民族 오페라 “聖雄 李舜臣”을 全國 各地에서 指揮하였으며, 2000年 8月에는 韓半島 分斷 50年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南北 交響樂團 合同 演奏會”를 指揮하여 [1] 南과 北이 하나로 어우러진 感激的인 하모니를 이끌어 내어 全 國民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2002年 1月, 서울市立交響樂團 音樂顧問에 就任했다. 事實上 音樂監督 役割이지만 當時 釜山 市立 交響樂團 音樂監督(2001年 8月)을 맡고 있어서 音樂顧問이라는 職責을 附與받았다. [2] 2003年 3月에 音樂監督 兼 常任指揮者 職責을 附與받았으나, 같은 2003年 12月, 世宗文化會館 으로부터 常勤日數 不履行 等의 事由로 委囑契約 解止를 通報받았다. [3] 反面 곽승은 “釜山市響 首席指揮者를 겸한 데다 잦은 海外 演奏活動을 펼쳐왔기에 契約 當時부터 180日 常勤 日數規定은 形式的으로만 包含시킨 것”이라며 “常勤日數 不履行은 解任을 위한 口實일 뿐”이라며 反撥했다. 2002年 10月 就任한 世宗文化會館 김신환 社長이 이명박 서울市長이 選擧當時 公約으로 내세운 ‘서울시향 世界 一流 育成’ 課題를 推進하는 過程에서 불거진 葛藤이라는 評價가 있다. [3] 以後 訴訟 前으로 이어졌으나 結局 合意로 訴訟을 마무리하고 2004年 4月 30日 告別公演을 가졌다. [4]

KBS交響樂團 首席 客員 指揮者(2004~2006)를 거쳐 2008年 10月 大邱市立交響樂團 의 音樂監督 兼 常任指揮者로 就任하였다. 大邱市香을 이끌고 參加한 2009年 交響樂祝祭 에 이어 2010年 開幕公演 및 2011年 交響樂祝祭에서도 많은 音樂評論家들로부터 好評을 받았다. 또한 2011年 世界 陸上 選手權 大會 (大邱) 弘報를 위해 2010年 3月에 日本 도쿄 오사카 에서 開催한 첫 海外演奏會를 成功的으로 이끌었으며, 2011年 10月에는 日本 도쿄 에서 열린 '아시아오케스트라위크2011' 開幕公演에 韓國 代表로 公式 招請받아 [5] 大韓民國 클래식 音樂의 位相을 드높이는 同時에 큰 感動을 膳賜하였다.

大邱市香을 한 段階 업그레이드 시켜 飛躍的인 發展을 일궈냈다는 評價를 받은 곽승은 2013年 9月 末로 任期가 滿了되었으나 大邱市民會館 開館 記念 아시아오케스트라페스티벌의 演奏를 위해 任期를 6個月 延長 契約해 2014年 3月 31日 任期 滿了 되었고 大邱市香 新年音樂會를 끝으로 大邱市響에 公式的인 指揮 日程을 마감했다.

指揮者로서의 活動 外에도 젊은 音樂人의 養成에도 關心을 보이고 있는 그는 美國 텍사스 大學 , 뉴욕 메네스 音大 (Mannes School of Music), 뉴욕 市立 大學校 퀸즈 칼리지 의 敎授로 在職하기도 했다. 또한 1992年부터 엘 시스테마 創始者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博士의 招待로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에 參與해 베네주엘라 學生들을 가르쳤다. 特히 2002年에 나중에 世界的인 指揮者가 된 구스打步 두多멜 을 가르친 經歷도 있다. 이런 因緣으로 2008年 구스打步 두다멜의 來韓 公演때 再會하여 구스打步 두다멜이 곽승에 고마움을 표하여 言論의 耳目을 끌기도 했다. [6]

2016年 2月 계명대학에서 名譽 音樂博士學位를 授與했다. [7]

現在 2015年 8月 以後부터 계명대학교 特任敎授로 在職 中이다.

各州 [ 編輯 ]


前任
마르크 에름레르

2000-2002

서울 市立 交響樂團 常任 指揮者
2003-2005
後任
정명훈

2006-2015

前任
이현세

2005-2008

大邱 市立 交響樂團 音樂監督 兼 常任 指揮者
2008-2014
後任
줄리안 코바體프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