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德島 斥和碑

加德島 斥和碑
(加德島 斥和碑)
대한민국 釜山廣域市 記念物
種目 記念物 第35號
( 1993年 2月 1日 指定)
面積 25m 2
數量 1期
位置
住所 釜山廣域市 江西區 城北洞 56-1番地
座標 北緯 35° 3′ 50″ 東京 128° 50′ 5″  /  北緯 35.06389° 東京 128.83472°  / 35.06389; 128.83472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加德島 斥和碑 (加德島 斥和碑)는 釜山廣域市 江西區 城北洞 56-1 天茄初等學校 에 있는 斥和碑이다. 1993年 2月 1日 釜山廣域市의 記念物 第35號 加德島斥和碑 로 指定되었다가, 2014年 9月 3日 加德島 斥和碑 로 名稱이 變更되었다. [1]

槪要 [ 編輯 ]

斥和碑 朝鮮 高宗 丙寅洋擾 辛未洋擾 를 勝利로 이끈 흥선大院君 이 百姓들에게 西洋 勢力에 對한 警戒心을 드높이고자 全國 곳곳에 세우도록 한 비이다. 이 비는 建築工事 途中 發見되어 船艙마을會議 所有地에 세웠 두었다가 1995年 天茄初等學校 校庭으로 옮긴 것이다.

비의 모습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非몸을 세운 簡單한 形態이다. 碑文에는 ‘西洋 오랑캐가 侵犯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은 곧 和親을 하자는 것이요, 和親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警告 섞인 內容의 글을 적고 있다.

斥和碑를 세운 時期는 高宗 8年(1871)으로, 後에 壬午軍亂 (1882)李 發生하고 大院君이 淸나라에 拉致되자 日本公使의 要求로 大部分 撤去되고, 現在는 이처럼 몇 基의 非들만 곳곳에 남아 있다.

現地 案內文 [ 編輯 ]

斥和碑는 朝鮮 末 高宗 때 攝政의 자리에 있었던 興宣大院君이 丙寅洋擾와 辛未洋擾를 겪은 뒤에 세운 碑石이다. [2]

大院君이 帝國主義의 侵略을 排擊하고 鎖國을 强化하기 위한 굳은 決意를 나타내고, 百姓들에게 西洋 列强의 侵略에 對한 覺醒을 促求하기 위해 辛未洋擾 直後인 1871年(高宗 8) 4月에 서울과 全國의 重要한 곳에 세운 碑石이다. [2]

碑文은 漢字로 12字가 새겨져 있으며, 才質은 花崗巖이다. 碑文을 解釋하면, '西洋 오랑캐가 侵犯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和議하는 것이요, 和議를 主張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 옆에 '우리들의 子孫萬代에 警告하노라, 丙寅年에 짓고 辛未年에 세우다'라고 작은 글씨가 적혀 있다. [2]

이 碑石은 江西區 성북동에서 建築工事 中 出土되어 1995年 12月 天茄初等學校 校庭으로 移轉 復元하였다. 斥和碑는 1882年(高宗 19) 壬午軍亂 때 大院君이 淸나라에 拉致되고, 우리 나라가 여러 나라와 通交하게 되자 日本 公使의 要求로 撤去되었다고 한다. 이 碑石은 開港 當時의 切迫한 事情을 보여주는 所重한 資料이다. [2]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釜山廣域市 告示 第2014-363號, 《釜山廣域市 指定文化財 및 文化財資料 指定名稱 變更 考試》, 釜山廣域市長, 2014-09-03
  2. 現地 案內文 認容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