機動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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騎馬兵

機動戰 (機動?, Maneuver warfare )은 陣地戰 과 反對로 兵力을 빠른 速度로 움직임으로써 戰爭에서의 選擇權을 쥐는 戰術이다. 機動戰이 새삼 浮刻된 것은 第1次 世界 大戰 塹壕戰 에서 겪은 慘酷한 現實 때문이었는데, 機動戰은 事實 古代 以來 軍隊의 基本 戰術이다. 現代戰에서는 機械化部隊, 헬리콥터 步兵, 海兵隊 等에 依해 遂行된다.

機動戰의 槪念 [1] [ 編輯 ]

戰爭에 關한 두 가지 理論에서 消耗戰 理論과 相反되는 機動戰 理論은 國家別 狀況과 戰略司商家의 理論에 따라 몇 가지 類似한 名稱으로 定義되어 오고 있다. 卽, 機動戰은 마비전, 電擊戰 , 間接接近 戰略理論 및 速度戰 等 여러 가지 名稱으로 알려져 있다.

機動戰 [ 編輯 ]

敵의 軍事力을 物理的으로 破壞하기 보다는 起動을 통하여 心理的 痲痹를 追求함으로써 最小의 戰鬪로 決定的 勝利를 達成하게 하는 戰爭遂行 方式. [2] 이 機動戰이란 말속의 機動의 意味는 單純히 敵보다 良好한 位置上의 利點을 確保하기 위한 移動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敵보다 優勢한 템포로써 보다 빨리 움직여 敵을 擊破하는 모든 戰爭樣相을 意味한다. 戰爭이 位置보다는 '時間에 對하여 敵과 競爭하는 것'이라고 理論的으로 理解되기 始作한 것은 不過 約 30年 前부터였다. 그러나 事實은 이러한 理論의 發展보다 먼저 獨逸軍이 20世紀에 들어 템포에 根據한 戰爭을 遂行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機動戰'이라 부르는 戰爭形態이다. 結局 機動戰은 敵보다 優勢한 機動性 [3] [4] 을 手段으로 使用하여, 敵을 物理的으로 破壞하기 보다는 心理的 痲痹를 통하여 敵의 意志를 굴복시키는 戰爭의 形態이다.

「孫子」의 不戰勝(不戰勝) 兵法(兵法) [ 編輯 ]

「孫子」는 中國의 古代 春秋戰國時代(春秋戰國時代) 의 끊임없는 戰爭을 통하여 國家의 興亡과 百姓들의 生死와 苦難을 보면서 無意味한 殺傷과 破壞를 恣行하는 消耗的인 戰爭보다는 戰爭에서의 人間의 道德을 回復하기 위한 戰爭遂行方法을 提示하였다.

1) 不戰勝(不戰勝)의 兵法 提示

"敵國을 穩全하게 둔 채로 이기는 것이 上策이요 敵國을 擊破함은 車線이며, 敵의 野戰軍을 穩全히 둔 채로 이기는 것이 上策이요 敵의 野戰軍을 殲滅함은 車線이며, 敵의 旅團을 穩全히 둔 채로 이기는 것이 上策이요 敵의 旅團을 殲滅함은 車線이며······이런 緣由로 百 番 싸워 百 番 이기는 것이 잘 싸우는 것이다(凡用兵之法,全國?上,破國次之;全軍?上,破軍次之;全旅?上······是故百戰百勝,非善之善者也;不戰而屈人之兵,善之善者也)."

孫子는 戰略的·作戰的·戰術的 水準의 모든 祭臺의 指揮官은 直接的인 衝突에 依한 流血戰鬪를 避하고, 꾀와 其他 方法을 使用함으로써 殺戮과 破壞로 얼룩진 慘酷한 戰爭을 避하여 戰爭의 道德的, 倫理的인 面을 回復하고자 하였다.

2) 短期戰(短期戰) 隨行 主張

戰爭이 오래 持續될 境遇 나라가 疲弊해지고 百姓이 가난해져서 苦痛을 받게 된다고 하여 短期間에 戰爭을 끝내야 한다고 하였다. 戰爭을 하더라도 短期間에 終結되면 經濟的인 戰爭이 되며, 戰爭 以後 後遺症을 最少化할 수 있는 것이다.

3) 劣勢群(劣勢軍)李 優勢軍(優勢軍)을 이길 戰法(戰法) 提示

孫子는 그의 兵法書 全篇에 걸쳐 戰爭에서 勝利하는 데에는 自願 (兵力, 武器 및 裝備, 物資 等)의 數보다 뛰어난 用兵術 이 더욱 支配的인 要素임을 一貫되게 强調하고 있다.

"越나라의 兵力이 비록 많아도 어찌 勝敗에 도움이 되겠느냐? 故로 曰, 勝利는 主管(主管)李 可能하다. [5] 비록 敵의 兵力數가 많더라도 戰鬪에는 參加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以吾度之,越人之兵雖多,亦奚益於勝敗哉!故曰:勝可擅也。敵雖衆,可使無鬪)."

孫子는 特히 싸우지 않고 이기는 謀略과 外交戰 그리고 心理戰 等을 훌륭하게 遂行하였을 때에는 얼마든지 劣勢群으로도 優勢君을 相對로 勝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마비전(痲痺戰, Paralysis Warfare) [ 編輯 ]

痲痹展에 對한 明確한 定義는 發見하기 어렵다. 그러나 英國의 戰略思想가인 '풀러'가 "組織을 破壞하는 方法에는 敵 戰鬪力을 '닳아 없어지게 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作用하지 못하게 하는' 2가지 方法이 있는데, 後者인 作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곧 마비시키는 方法으로서 마비전(痲痺戰)" [6] 이라고 하고 있다.

"머리를 貫通하는 한 발의 銃알과 比喩할 수 있다. 萬若 우리가 奇襲的으로 廣大한 獨逸軍 電線으로부터 이 頭腦들을 除去할 수 있다면, 또 但只 가벼운 衝擊만을 加하더라도 그들이 統制하고 있는 兵力의 崩壞를 가져오는 것은 但只 時間問題일 것이다. 現在 理論이 '人員(personnel)'을 擊破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새로운 理論은 '指揮(command)'를 擊破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敵이 혼란된 後가 아니라 攻擊받기 前이어야 한다. 그래서 攻擊받았을 때 完全한 無秩序의 狀態가 形成되어야만 한다." [6]

이에 따라 마비전이란 槍이나 칼로 재빠르게 敵의 中樞神經을 찔러 敵의 組織을 瓦解(disorganization)시키고, 抵抗力을 剝奪하여 無力化(demoralization)된 敵의 兵力을 最終的으로 捕獲하는 것과 같은 戰爭 樣式 [7] 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풀러는 "戰略의 目的은 말 代身 힘에 依하여 政治的 論爭을 매듭짓자는 데 있다. 이것은 通例的으로 戰鬪에 依하여 達成된다. 그러나 戰鬪의 참된 目的은 物質的 破壞가 아니라 敵側의 精神的 屈服人 것이다" [8] 라고 하여 機動戰은 敵을 物理的으로 破壞하기 보다는 精神的으로 굴복시키는 方法을 適用 하여야 한다고 主張한다.

電擊戰(電擊戰, Blitzkrieg)의 槪念 [ 編輯 ]

機動戰을 부르는 또 다른 獨逸 名稱은 《電擊戰》 [9] 이다. 電擊戰의 正義와 槪念에 對한 明確한 根據는 없으나, 戰爭이 進行되는 동안 發刊된 獨逸의 軍事評論들을 살펴보면, 電擊戰의 槪念은 純全히 軍事的이고 作戰術-戰術的 觀點에서 使用되었음을 確認할 수 있다.

"'電擊戰'이란 機甲部隊와 空中 全力을 集中 運用하여 敵의 豫想을 깨고 迅速하게 敵陣 깊숙히 치고 들어가 敵을 混亂에 빠뜨리고 包圍하는 作戰이다. 그 窮極的인 目的은 바로 單 한 番의 決定的인 作戰으로 早期에 敵을 擊滅하는 것이다." [10]

이 電擊戰의 槪念은 이미 第 1次 世界大戰 때 發展된 '후티어(Hutier) 戰術'에서 始作되었다. 當時 獨逸軍은 '突破部隊 戰術'을 통해 陣地戰 膠着狀態 를 克服해 戰爭樣相을 다시금 機動戰으로 바꾸어 놓으려 했다. 이 때 '후티어(Oscar von Hutier) 將軍'李 施行한 成功的인 突破戰術이 脚光을 받았으나, 機動性 있는 豫備隊의 不足과 前方推進 火力의 不足으로 끝내 失敗하였다. 獨逸軍은 이 戰術의 失敗原因을 敎訓으로 分析하고, 이를 當時에 새롭게 開發된 航空機와 電車를 結合하여 새로운 戰爭遂行槪念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제 電擊戰의 遂行過程을 알아보자.

  1. 敵의 後方에서 5熱活動을 展開하여 情報를 蒐集하고 民心을 攪亂하여 적 國民의 싸우고자 하는 意志를 약화시킨다.
  2. 空軍은 奇襲的 一擊으로···제공권을 掌握하고, 아울러 敵 後方의 都市, 部隊 集結地, 指揮所, 그리고 通信施設 및 交通施設 等을 爆擊하여 指揮組織과 豫備力 動員體制를 痲痹시키고, 同時에 心理的 衝擊을 加한다.
  3. 한便 戰車, 自走砲, 車輛化된 步兵, 工兵 및 兵站支援部隊가 하나의 팀을 이루어 敵의 防禦가 弱한 電線의 좁은 正面에 對해 奇襲的으로 集中 攻擊함으로써 突破口를 形成한다. 이때 突破를 擔當하는 것은 步兵···이다.
  4. 機甲部隊가 이 突破口로 迅速하고도 깊숙히 浸透하여 敵의 主力을 遮斷·包圍함으로써 敵으로 하여금 再編成할 時間的 餘裕를 주지 않는다. 이 때 急降下 爆擊機가 火力增員을 擔當한다.
  5. 步兵이 機甲部隊에 接續 前進하여 遮斷·包圍된 敵을 掃蕩한다." [11]

間接接近(間接接近, Indirect Approach) 戰略理論 [ 編輯 ]

英國의 戰略思想가인 '리델하트'는 間接接近 戰略理論을 提示하였다. 이 理論은 名稱만 다를 뿐이지 事實上 機動戰 理論과 다를 바가 없다. 그는 戰略의 目的이 抵抗의 可能性을 消滅하는 것이며, 가장 유리한 狀況에서 戰鬪를 遂行하게 하고, 또한 戰鬪를 減少시켜 最小限에 그치게 하려고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手段은 機動이라고 말한다. 그는 機動으로 抵抗의 可能性을 消滅하고 戰鬪를 最少化하기 위하여 敵을 攪亂시켜야 한다고 主張한다. 卽, 그는 "攪亂(攪亂:dislocation)李 戰略의 目的이다. 攪亂의 結果로써 敵이 崩壞되거나 또는 戰鬪에서 敵의 破碎가 容易해질 것이다" [12] 라고 하면서 戰略的 水準에서 物理的 攪亂과 心理的 攪亂을 區分하여 說明하고 있다.

物理的 攪亂은 敵으로 하여금 急히 正面變更을 하도록 配備(配備)를 혼란시키고, 敵 兵力을 分離하며, 敵의 普及을 危機에 빠뜨리고, 敵을 撤收하게 하거나 敵의 本國 내 戰略基地와의 作戰線에 威脅을 加하는 戰略的 起動을 敢行함으로써 達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心理的 攪亂은 物理的 攪亂의 效果가 敵의 司令官의 마음에 影響을 미친 結果로서 發生한다고 한다. 卽 心理的 攪亂은 基本的으로 敵의 司令官이 陷穽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이에 對抗할 手段과 方法을 쉽게 찾지 못할 때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心理的 攪亂은 敵의 背後에 對한 物理的 行動을 加한 後에 자주 發生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敵 戰線의 側面을 迂廻하여 背後로 向하는 機動은 '最小抵抗線'을 取하는 것이다. 心理分野에 있어서 이와 同等한 것은 '최소예機船'이다···양자를 結合시킨 境遇에서만, 戰略은 敵의 均衡을 攪亂시키기 위하여 計算된 眞正한 '間接的 接近(Indirect Approach)'이 되는 것" [13] 이라고 하여 物理的 側面의 最小抵抗線과 心理的 側面의 최소예機先을 竝行하는 作戰線을 따라 戰略的 起動을 實施함으로써 敵을 攪亂하여 抵抗의 可能性을 消滅할 수 있다고 主張하고 있다.

機動戰의 特徵 [14] [ 編輯 ]

相對에 對한 精神的인 敗北 追求 [ 編輯 ]

이것은 機動의 本質을 說明하여 주는 것이다. 機動戰에서는 敵軍 兵士 한名, 한名을 殺傷하거나 敵의 戰車나 裝甲車 等 裝備를 直接的으로 破壞하여 이의 累進的 結果로 敵이 敗北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敵에게 精神的인 敗北感을 주어 無力化(incapacity)시켜 패배시키는 것이다. 리델 하트(Liddell Hart)는 “놀란 兵士는 銃을 떨어뜨린다”라고 하면서 "正面으로의 攻擊은 敵으로 하여금 더욱 緊張하게 하고, 我軍의 戰意를 鼓吹시킨다"고 함으로써 起動을 통하여 敵을 心理的으로 패배시키는 것이 機動戰의 本質임을 提示하고 있다.

作戰目標는 敵의 中樞府 [ 編輯 ]

이것은 機動戰의 作戰的 特性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機動戰에서는 敵의 中樞府 卽, 敵의 C4I , 兵站基地, 港灣 , 飛行場 等 敵의 힘의 根源이 되는 部分이 目標가 된다는 것이다. 機械化展 理論의 創設者인 풀러(J.F.C. Fuller)는 그의 論文 『Plan 1919』에서 人間의 頭腦에 該當되는 敵의 野戰軍級 司令部와 兵站施設을 側 · 後方에서 戰車와 航空機를 利用해 奇襲的으로 先制攻擊을 實施하여 戰略的인 痲痹를 達成, 敵이 미처 對應하기 以前에 戰爭을 終結한다는 아이디어를 1918年에 發表 한 바 있다. 이 理論은 그 後 機動戰에서 作戰의 목표를선정하는 理論의 根據가 되었다. 痲痹理論으로 通稱된 풀러의 이러한 構想은 第2次 世界大戰 時 電擊戰의 指導指針으로 獨逸軍에 依하여 實用化되었으며, 第3, 4次 中東戰 걸프戰 , 이라크戰 에서 美軍의 作戰도 이러한 機動戰 理論에 依해 遂行되었다.

非線型의 戰線 形成 [ 編輯 ]

이것은 機動戰의 戰場樣相에 對하여 말하는 것이다. 機動戰視全長은 피 · 아가 婚材되고, 戰線이 隨時로 變更되며 前後方의 區分이 잘 안되는 樣相을 나타낸다. 마치 蹴球와 같이 電線이 形成되는 것으로 이러한 戰爭樣相下에서는 部隊의 分權化 統制가 重要하며 以心傳心으로 上級部隊長의 意圖를 戰場에서 統合的으로 具現할 수 있는 融通性 있는 指揮統制 組織이 重要하다.

短期 속決戰 追求 [ 編輯 ]

이것은 機動戰의 作戰進行 速度(Tempo)를 말하는 것이다. 機動戰은 非線型의 戰場이 形成되고 心理的 痲痹를 追求하기 때문에 成功的인 機動戰이 되었을 때는 早期에 戰爭을 終結시킬 수 있다. 第1次 世界大戰 詩에는 毒· 불間에 4年의 戰爭이 持續되었으나, 機動戰 樣相을 보였던 第2次 世界大戰 時 毒 · 불은 不過 10 餘 日 만에 大勢가 판가름 났으며 第3次 中東戰 은 6日 만에 終了되었다. 현대戰 걸프戰 이라크戰 에서 美國은 地上軍 作戰開始 10 餘日 만에 卽, 短期間에 戰爭을 終結시켰다. 이는 獨逸 , 이스라엘 , 美國 軍이 敵에게 兵力과 裝備의 破壞보다는 精神的인 敗北를 追求한 機動戰을 實施한 結果였다.

消耗戰과의 差異點 [ 編輯 ]

消耗戰(消耗戰) 은 交戰 中에 人力과 物質이 持續的으로 消耗되어 쉽게 勝負가 나지 않는 戰爭을 가리킨다. 이러한 戰爭은 勝利를 위해 一般的으로 많은 資源이 隨伴된다.

機動戰이 消耗戰과 다른 點은, 敵보다 優勢한 資源을 使用하여 流血戰鬪를 手段으로 하는 消耗戰에 비하여 機動戰은 相對的으로 優勢한 機動性을 手段으로 使用한다는 點과, 敵의 資源을 繼續的으로 消耗시켜 累積된 消耗로 인하여 더 以上 戰爭을 遂行할 수 없도록 하여 敵의 意志를 굴복시키는 消耗戰의 方法에 비하여 機動戰은 機動性을 利用하여 敵을 心理的으로 마비시킴으로써 敵의 意志를 굴복시키는 方法을 使用한다는 點이다. [1]

이처럼 消耗戰은 殲滅戰 과, 機動戰은 痲痹錢과 關聯되어 있는 槪念이다. 武力에 依한 決戰으로 短期間에 勝負를 결정짓느냐 아니냐를 基準으로 殲滅戰과 消耗戰을 重要한 戰爭形態로 對比시키기도 하지만, 이 둘은 破壞의 規模와 持續期間의 差異일 뿐 軍事力의 破壞라는 基本方向은 同一하다. 殲滅戰은 敵 軍事力을 주된 對象으로 하여 이의 除去에 集中하는 用語인 反面에 消耗戰은 敵 軍事力뿐만 아니라 敵의 모든 資源을 對象으로 하고, 長期間에 걸쳐 被害를 조금씩 累積해가는 槪念이다. 또한 痲痹轉移 機動戰의 한 形態일 수도 있고, 反對로 機動戰이 痲痹前의 한 形態일 수도 있다. 다만, 마비전은 敵 指揮體制의 崩壞라는 結果에 重點을 두는 反面에, 機動戰은 戰鬪力을 動的으로 運用하는 過程에 重點을 둔 用語이다. 따라서 殲滅戰과 痲痹前에 比해서, 消耗戰과 機動戰은 方法的인 側面에 焦點을 맞춘 分類라고 할 수 있다.

消耗戰에서는 接觸하고 있는 雙方의 戰線을 中心으로 하여 모든 領域에 걸處 다양한 活動들을 展開한다. 全 領域에 걸친 持續的인 戰鬪와 消耗를 통하여 結局은 相對方의 軍事力, 國力, 意志를 消盡시킴으로써 屈服을 얻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戰略的이거나 作戰술的인 策略이 適用되는 素地가 적고, 部分的인 成果가 持續的으로 累積되어서 最終的인 結果를 決定한다. 勝敗가 今方 決定되지 않을 境遇 大部分의 戰爭은 消耗戰이라고 할 수 있다. 消耗戰은 長期間에 걸쳐 相當한 努力을 必要로 하는 非效率的인 方法일 수도 있지만, 單純하면서도 確實한 成果를 保障해 준다는 點에서 全體的인 軍事力과 國力이 强한 國家의 境遇에는 유리한 方法이다. 弱者의 立場에서는 自身의 被害를 줄이면서 消耗戰의 期間을 延長시켜 强者를 疲困하게 하는 形態로 消耗戰을 遂行할 수 있고, 이것을 持久戰이라고 表現한다.

機動戰은 固定된 戰線에 執着하지 않고, 部隊를 끊임없이 機動시켜 우리가 願하는 場所와 時間에 우리의 意志대로 戰場을 形成한다. 特히 部隊의 機動을 통하여 集中과 奇襲을 達成함으로써 戰鬪力의 效率性을 極大化하고, 우리의 計劃에 依하여 戰鬪를 遂行함으로써 主導權을 掌握할 수 있다. 그러나 戰爭의 場所, 時間, 方法을 隨時로 변화시키고 決定해야하기 때문에 卓越한 智謀를 具備한 軍事指揮官의 存在가 必須的이고, 戰略的 및 作戰술的인 策略이 必要하며, 迅速한 機動을 支援할 수 있도록 訓鍊 및 兵站 分野에서 相當한 準備와 訓鍊이 이루어져야 한다. 成果가 累積되는 程度가 弱하기 때문에 數次例에 걸쳐 成功을 거두더라도 한番의 失敗로 全體的인 結果를 霧散시킬 수 있다.

通常的으로 全體的인 軍事力과 國力이 强한 國家들은 萬全之計(萬全之計) 次元에서 時間的 餘裕를 갖고 危險負擔을 最少化하는 戰爭을 遂行하고자 하는 까닭에 消耗戰的인 戰爭을 追求하면서 機動戰의 要素를 活用하게 되고, 全體的인 國力이나 戰鬪力이 弱한 國家는 消耗戰的인 遂行이 不可能하기 때문에 어떤 形態로든 機動戰을 追求하게 된다. 全體的인 軍事力이나 國力이 劣勢韓 國家의 境遇에는 機動戰이 唯一한 勝利의 方法일 境遇도 적지 않다. [15]

機動戰의 事例 [ 編輯 ]

第 2次 世界大戰 및 中東戰爭 [ 編輯 ]

프랑스 全域 [ 編輯 ]

하인츠 舊데리안 將軍

1940年 5月 10日 子正부터 새벽까지 獨逸軍은 無差別 爆擊後 地上軍을 投入하기 始作하였다. 住公을 擔當한 A 集團軍 클라이스트 將軍의 機甲集團軍을 先頭로 하여 아르덴느 地域으로 迅速히 進擊하고 있었다. 先頭를 擔當한 舊데리안 將軍의 機甲群團은 프랑스 騎兵隊의 抵抗을 물리치면서 5月 13日 뫼즈강 [16] 에 到達하였으며, 세당 附近에서 卽時 渡河를 敢行하였다. 舊데리안 將軍은 急降下 爆擊機와 戰車 및 自走砲의 支援下에 敵陣에서 浮橋를 架設하고 夜間을 틈타 渡河를 敢行함으로써 14日 새벽까지전 群團이 渡河를 完了하였던 것이다. 또한, 롬멜將軍의 第7機甲 師團은 13日 저녁 무렵에 디낭 [16] 附近에서 뫼地江 도하에 成功하여, 獨逸의 A集團軍은 프랑스 2軍과 9軍 사이에 約 50마일의 間隔을 形成함으로써 突破에 成功하였다. 이로 인하여 英國遠征君의 兵站線은 遮斷되었으며 프랑스 亦是 南北으로 동강나고 말았다. 덩케르크가 陷落된 當日인 6月 5日 獨逸軍은 第2段階 作戰을 開始하였다. 第1段階作戰에 依하여 兵力의 折半을 喪失한 半身不隨의 프랑스를 쓰러뜨리기 爲한 것이었다. 朝貢部隊인 보크 將軍의 B 集團軍이 솜 河口와 아미앵 附近 [16] 에서 도하攻擊을 開始한 지, 4日 後인 6月 9日 主攻部隊人 A 集團軍은 파리 東方 렝스부근에서 구데吏案의 機甲部隊를 先頭로 攻勢를 展開하기 始作하였다. 12日에는 決定的인 打擊을 加하고 突破에 成功함으로써 臺 追擊戰을 敢行하였으며, 6月 14日 파리가 無血占領되었고, 15日이 되자 獨逸軍이 프랑스 全域을 席卷할 것이 明白하게 되었다. 舊데리안 郡은 6月 17日에 스위스 國境에 到達하여 프랑스軍을 東西로 兩分하고 마지노 요새 안에 500,000名에 達하는 프랑스軍을 가두고 말았다. 獨逸軍이 이와 같이 驚異的인 勝利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奇襲 達成을 可能하게한 優秀한 計劃, 電擊戰을 實施할 수 있도록 잘 編成되고 裝備된 攻擊部隊의 保有, 有能한 指揮官의 果敢한 作戰遂行에 起因한다고 할 수 있다. 電車를 프랑스는 步兵의 補助物로 認識하여 分散 運用한 反面에 獨逸은 戰車를 師團級 乃至는 群團級의 大規模 獨立部隊로 集中 運用하여 威力을 發揮하였다. 獨逸軍 落下傘 部隊는 主要 橋梁이나 飛行場 等 要衝地를 奇襲的으로 先占하여 大部隊 作戰을 效果的으로 遂行하였다. 그리고 急降下 爆擊機를 運用하여 前進하는 機械化 部隊를 適時에 支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론적으로 프랑스 全域에 있어서 勝敗의 原因은 兩國 間의 差異는 數量과 質의 問題라기보다는 “現代戰의 遂行方式에 對한 槪念”의 差異라고 볼 수 있겠다. [17]

第3次 中東戰爭(6日戰爭) [ 編輯 ]

1967年 6月 5日 07時 45分 이스라엘 空軍은 아랍軍에 對한 先制 奇襲攻擊을 敢行하였다. 戰爭 勃發 時 시나이 半島 가자地區 에는 이집트軍 7個 師團과 1,000餘臺의 戰車와 數百問議 苞가 있었다. 이스라엘 脫(Tal) 將軍이 指揮하는 社團은 라파 附近, 샤론將軍 師團은 中央軸을 防禦하는 움 街타프 (Umm Gataf)와 아부 아게日羅에서, 요페(Yoffe) 將軍 師團은 이집트軍이 到底히 通過하지 못하리라 判斷한 모래벌판을 通過하였다. 突破는 24時間 休息 없이 實施되어 이틀째 脫(Tal) 將軍은 部隊를 兩分하여 엘 아리쉬 空港을 占領케 하고, 다른 部隊는 西쪽으로 進擊시켰다. [18] 그後 요페(Yoffe) 師團의 一部는 南部로 進擊 시나이 半島를 完全히 包圍 封鎖하였다. 特히 샤름 엘 쉐이크 (Sharm el Shaykh)에는 空輸部隊를 投下시키고 다시 헬리콥터로서 엘 투르(El Tur)까지 移動하여 北進시켰다. 또한, 움 街타프(Umm Gataf) 戰鬪는 헬기戰力에 依하여 敵陣을 뛰어 넘는 機動의 可能性을 最初로 보여 주었다. [19] 이 戰爭 結果 이스라엘은 3.5倍나 되는 領土를 獲得하고 800餘 臺의 電車와 數 千 臺의 車輛을 鹵獲하였다.

이스라엘 地上軍은 이집트 前方師團의 3中 防禦線을 突破하고 縱深으로의 起動을 敢行하여 開戰 3日 만에 240km에 達하는 半島를 貫通하여 이집트군의 退路를 遮斷하고, 側 · 後方으로 迂廻와 浸透를 試圖하여, 敵을 心理的으로 마비시키기 위해 縱深깊게 突進했다. 脫 (Tal) 師團의 1個 電車大隊는 8時間 만에 70km를 起動하는 速度를 發揮하여, 敵의 對應을 不可能하게 하였는데 이는 現代化된 立體高速機動戰의 縮小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電擊戰을 敢行하였던 獨逸 機甲部隊의 作戰을 現代的 槪念에 잘 조화시켜 戰車部隊와 空軍의 近接支援, 헬기에 依한 立體的 公知合同作戰을 驅使하여 이집트군의 機甲部隊를 蹂躪하고 防禦線을 突破, 迅速한 縱深作戰으로 敵을 壓倒하였다. [20]

걸프戰爭 [ 編輯 ]

AH-64D 아파치 헬기

沙漠의 暴風作戰은 1991年 1月 17日 02:40分에 第101公衆强襲師團 아파치 헬기 8臺가 이라크의 西部 깊숙이 攻擊하여 헬파이어 미사일 로 이라크의 早期警報 레이더 基地를 破壞하였다. 곧 이어 美 空軍 스텔스 戰鬪機들은 이라크 南部地域에 所在한 地下房공 統制센터를 破壞하였다. 이어서 바그다드 市內에 位置한 이라크 軍部와 政府의 通信施設, 指揮統制施設, 保安情報機關에 精密誘導爆彈을 投下하였다. [21] 그 後 全 戰線에서 地上軍의 攻擊이 始作되었고, 2月 23日 地上作戰의 突破口를 마련하기 위한 空挺作戰이 實施되었다. 第101公衆强襲師團은 이라크軍의 退路를 遮斷하기 위해 블랙호크 헬기에 搭乘하여 이라크 領土 70마일 地點에 깊숙이 空輸 投下되어 바그다드 바스라港 을 連結하는 8番 高速道路를 占領하고 待機하는 作戰을 實施하였다. 多國籍 地上軍의 全面攻擊은 2月 24日 04時에 開始되었고, 주공인 7軍團과 第18公正群團 이 이라크의 後方地域으로 大規模 迂廻機動을 實施하여, 2月 26日 全 戰線에서 이라크軍의 主力部隊들이 多國籍軍에 依해 包圍된 채 急速히 瓦解되기 始作하였다. 西北쪽에서 迂廻한 第18公正軍團과 第7軍團이 이라크 軍의 退路를 遮斷하며 包圍網을 壓縮해 들어갔으며, 美海兵 第1, 2師團은 쿠웨이트 에 近接한 高地帶를 占領하여 最終目的을 達成하였다. 2月 28日 43日間에 걸친 걸프戰爭은 終了되었다. [22] 第18公正群團 隸下의 第101公衆强襲師團은 地上戰 開始와 同時에 空中機動으로 나시리아 方向으로 攻擊, 유프라테스江 一帶를 確保하여 敵의 退路 및 增員을 遮斷하였다. 全體的으로 볼 때 걸프戰은 蘇聯軍의 作戰機動軍 敎理에 對應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機動戰을 實行에 옮긴 公知戰鬪 敎理의 試驗場이었다. 美國은 걸프戰을 契機로 公知戰鬪 敎理에서 空地作戰 槪念으로 발전시키게 되었고, 이는 未來戰의 樣相을 考慮하여 空軍作戰 및 地上作戰의 有機的인 統合과 헬기에 依한 起動이 發展의 核心으로 戰鬪에서의 勝利가 아닌 作戰에서의 勝利를 追求하고 있다는 點이다. [23]

이라크 戰爭 [ 編輯 ]

이라크 戰爭

이라크 自由化作戰(OIF)은 空中과 地上에서 實施하는 2個의 大規模 軍事作戰을 基本으로 하고 있다. 空中에서 實施하는 軍事作戰은 航空機와 順航 미사일에 依한 사담 후세인 政權 및 軍事中樞에 對한 同時集中 爆擊으로 이라크軍의 組織的인 作戰遂行能力을 마비시키려고 爆擊하는 效果基盤作戰에 바탕을 두었다. 地上에서의 軍事作戰은 航空支援을 받으며 陸軍과 海兵隊가 實施한 바그다드 攻掠作戰이다. 南部地域의 주공인 第3步兵師團은 쿠웨이트 이라크 國境을 突破한후, 署側의 沙漠地帶를 高速起動하여 바그다드를 攻擊한다. 第101公衆强襲師團은 第3步兵師團을 後續支援하고 한便 北部에서는 第3機甲連帶의 先導 下에 第4步兵師團이 이라크 北部의 最大都市인 모술을 거쳐 티그리트를 向해 攻擊한 後 바그다드를 挾攻하면서 제173공정여단은 第4步兵師團을 後續支援하는 作戰이다. [24]

이 바그다드 攻擊計劃의 核心은 ‘어떻게 바그다드까지의 長距離를 迅速하고 安全하게 進擊하면서, 同時에 補給路를 確保하느냐’였다. 前方補給基地에서 바그다드까지의 距離는 300km가 넘는다는 것이다. 第101公衆强襲師團의 空中機動力을 活用해 「개구리 뛰기(lead frog)」式의 作戰을 하는 것이었다. 卽 350代의 헬기를 保有한 第101公衆强襲師團이 公衆强襲作戰을 連續的으로 實施하여 地上機動을 實施하는 機甲部隊의 前方基地를 事前에 準備하고, 同時에 進擊路의 重要地域을 確保하는 것이었다. [25] 바그다드 進擊作戰은 3月 20日부터 25日까지 5日間에 400km를 進擊하여 바그다드 南方 80km까지 進出하여 1日 平均 80km의 迅速한 機動作戰으로 史上 類例를 찾아보기 어려운 電擊性을 보여주었다. 美軍은 迅速한 起動 및 빠른 作戰 템포의 奇襲作戰으로 敵의 對應能力을 瓦解시켰다. 한 달도 안 된 4月 15日에 勝利를 宣言함으로써 이라크 自由化作戰은 終了되었다. [26] 結果的으로 美軍은 空中攻擊과 地上作戰을 同時竝行的으로 實施하여 衝擊效果를 倍加시켰으며 前方作戰基地와 바그다드까지 400km의 長距離를 헬기에 依한 機動作戰으로 成功할 수 있었다.

機動戰 理論의 現代的 發展 [ 編輯 ]

투하체프스키의 縱深戰鬪理論 [ 編輯 ]

1930年代 러시아에 定着된 縱深戰鬪 理論의 核心은 러시아軍 縱深戰鬪 理論의 아버지 투하체프스키 에서 비롯된다. 폰 젝트와 그의 同僚들이 電擊戰을 窮理하기 始作하던 時期에, 투하체프스키는 敵軍(赤軍) 創設의 衝擊과 內戰의 騷亂에서 精神的으로 超越하여 自身의 經驗을 바탕으로 未來를 위한 敎訓들을 具體化하기 始作했다. 그에게는 機動의 傳統, 特히 迂廻移動을 利用할 能力이 있었다. 칭기즈 칸 의 戰爭 方式으로부터,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孫子에서 由來 되었던 것이다. 러시아판 『 孫子兵法 』이 存在했다는 事實은 重要한 意味를 갖는다. 中國의 代價가 主張한 淨甁(正兵)과 起兵(奇兵)을 表現하기 위해 努力한 수많은 解釋 中에서 物理的인 解釋은 淨甁(敵과 交戰하는 部隊)를 牽制部隊, 起兵(全勝을 達成하는 部隊)를 機動部隊와 同一視하는 것이다. 孫子가 말한 病形象수(兵形象水) 卽, 軍隊의 形勢는 물과 같다는 表現은 機動理論의 力動性이라 말할 수 있다. 투하체프스키 思想의 焦點은 제병協同戰鬪와 同時性이다. 接觸은 正面에서 이루어진다. 成功하기 위해서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敵을 묶어 놓아야 하고, 重要한 時間과 場所에서 決定的인 優勢를 確保하기 위해서는 充分한 豫備隊를 保有해야 한다. 그 다음에 敵을 묶어 놓고 選定된 地點에서 突破하면 空中 및 機械化 部隊의 支援을 받아 間隔을 통해 騎兵으로 攻擊할 수 있다. 투하체프스키는 同時性에 對한 接近에 大變革을 일으켰다. 다시 말해서 투하체프스키는 2段階 槪念으로 自身의 最大 接觸地域 原則은 保存하면서 匡正면에서 縱深戰鬪로 完全히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縱深作戰 理論의 첫 段階인 투하체프스키의 縱深戰鬪 槪念은 1932年 무렵에 분명한 形態를 갖추게 되었다. 새로운 接近은 赤軍(Red Army)의 機械化 軍團 編成을 着手시켰으며 1936年 판 野戰 勤務規定 “Pu-36”으로 完結되었다. [27]

투하체프스키는 “縱深戰鬪는 敵을 完全히 包圍 擊滅할 것을 目標로 하여 敵 戰鬪隊形 前 縱深에 同時的인 打擊을 加할 새로운 起動 및 衝擊君을 集中的으로 利用한 攻擊을 말한다. 縱深戰鬪의 새로운 手段과 戰術은 奇襲의 重要性을 증가시킨다” 라고 定義하고 그 特徵을 “防禦 前 縱深에 對한 航空力과 砲兵에 依한 同時攻擊, 廣範圍한 戰車部隊 攻擊으로 戰術的 防禦縱深 突破, 完全한 包圍攻擊을 目標로 戰術的 成功을 作戰的 成功으로 迅速하게 發展시키는 것이며 主要役割은 步兵을 中心으로 한 제병協同部隊의 相互支援에 依하여 이루어진다”라고 主張하였다. 이를 좀 더 細密하게 살펴보면 縱深戰鬪理論은 手段 面에서는 機械化 部隊 및 航空機를 利用하며, 方法 面에서는 同時打擊과 浸透方法을 使用하고, 適用되는 主要原則은 奇襲, 集中, 機動 等 임을 알 수 있다. [28]

투하체프스키는 풀러의 著書 『戰爭의 改革』에서 “풀러의 偉大한 點은 過去 經驗만을 硏究한 것이 아니라, 技術的인 進步에 발맞추어 未來 戰爭에서 效率的으로 運用된 地上軍 構造와 裝備의 方向을 提示한데 있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풀러의 自身과 그의 弟子 리델 하트(Liddell Hart)에 依하여 發展된 進步的인 思想에 關心을 가지고 採擇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투하체프스키는 풀러의 理論을 直接受容하였다. 풀러, 리델하트 等의 機械化展 理論은 蘇聯軍의 縱深戰鬪 敎理에 理論的인 바탕을 提示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풀러로부터 敵의 主力이 配置된 電線을 正面으로 攻擊하는 것 보다 敵의 頭腦와 兵站線을 從心 깊게 打擊하는 것이 더 낫다는 理論을 받아들여 電車에 對한 새로운 運用 敎理에 잘 結合시켰다. 또한, 舊데리안 의 機械化展 理論이 1920?1930年 大러시아의 縱深戰鬪 敎理 形成에 强力한 影響을 주었다. [29] 1920年代 末부터는 縱深戰鬪 理論으로 發展되기 始作하였다. 縱深戰鬪理論은 트리안多筆로프에 依하여 始作되어 투하체프스키에 이르러 具體化된다. 투하체프스키의 縱深戰鬪理論은 2段階로 發展된다. 1段階는 1932年 縱深戰鬪(deep battle) 槪念을 完成한 段階이고, 2段階는 機械化軍團 創設과 1936年 야전요무령에 理論이 正式 敎理로 採擇된 段階이다. [30]

러시아의 作戰機動軍(OMG) [ 編輯 ]

作戰機動軍(OMG) 出現 背景 [ 編輯 ]

딕(C.J. Dick)은 作戰機動軍의 出現背景을 두 가지로 說明하고 있다.

첫째로, 蘇聯의 戰略이 核 爲主에서 純粹한 在來式前으로 轉換해 가는 데 있다는 것이다. 蘇聯軍은 1970年代 末 오가르코프가 總參謀長 이 된 以後부터 在來式 戰爭을 생각하게 되었다. 卽 그들은 純粹한 在來式 武器 單獨에 依한 戰爭, 또는 最小限 戰略核이 使用되는 段階까지의 發展 以前에 在來式戰으로 勝利하는 可能性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두 番째는 蘇聯軍의 戰鬪隊形을 變更해야 할 만큼 武器體系 및 裝備들의 技術的인 能力들이 大幅的으로 改善되어 왔다는 것이다. 蘇聯軍 자군에서 이러한 技術的인 能力向上을 利用함은 勿論이고, 敵의 技術 適用能力을 拒否할 必要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要因은 必然的으로 縱深戰鬪의 새로운 모델로서 作戰機動軍 槪念을 出現하게 한 것이다. 이 作戰機動軍 槪念은 地上, 空中, 海上作戰이 統合된 戰略的 全域作戰의 一部로서 地上作戰 方法으로 運用되고 있다. [31]

戰略的 全域作戰 槪念의 形成 [ 編輯 ]

오가르코프 總參謀長은 1981年 現代戰은 事實上 전선군 規模를 벗어나고 있다고 認識하였다. 오늘날 戰爭에서 主要作戰은 전선군 規模 보다 큰 形態의 軍事作戰을 考慮해야 한다. 卽 全域에서의 戰略的 作戰이 그것이다. 作戰單位의 範圍는 科學 · 技術의 革命에 依하여 向上된 各種 武器의 射距離와 威力으로 從前의 電線君의 責任地域을 훨씬 벗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전선군보다 上位의 作戰構造가 이런 向上된 武器들을 統合 運用하여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必要에 依해 形成된 全域作戰은 航空作戰, 防空作戰, 空挺作戰, 上陸作戰, 海軍作戰, 作戰機動軍 作戰으로 이루어지는 戰略的 水準의 攻勢作戰이다. 結局 作戰機動軍 槪念은 全域의 戰略的 攻勢作戰의 一部分으로서 地上軍을 運用하는 作戰 方法임을 알 수가 있다. [32]

作戰機動軍(OMG)의 槪念 [ 編輯 ]

OMG는 Operational Maneuver Group의 略字로서 作戰機動軍(作戰機動軍) 으로 解釋된다. 이는 部隊의 編成이 아니라, 部隊의 運用槪念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用語는 蘇聯軍이 公式的으로 使用한 것이 아니라 最初로 1981年 폴란드軍 大領 원트루키(Wontruki)의 論文에서 나타났으며, 同時에 蘇聯軍 將星 그린케비치에 依해 이 論文을 뒷받침할 報告書가 作成되었다. 그 後 1983年 나토軍 司令官의 演說에서 作戰機動軍의 存在가 公式化 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1982?1983年 Military Balance에 作戰機動軍이 言及되었다. 그러므로 留意할 것은 作戰機動軍은 蘇聯軍의 公式的인 軍事述語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西方側의 學者들이 1970年代 末의 蘇聯軍의 變化를 分析하여 類推한 것이라는 點이다. [33]

美國의 公知戰鬪敎理 [ 編輯 ]

美軍은 1970年代 末부터 蘇聯 바르샤바群 의 地上軍 威脅에 對處하는 方案으로 公知戰鬪 敎理를 開發 發展시켰다. 公知戰鬪 敎理는 美軍과 나토 君의 質的優位를 利用, 蘇聯軍과 바르샤바君의 量的優位를 相殺하고 戰鬪에서 勝利를 追求하겠다는 積極的인 敎理인 것이다. 또한, 只今까지 美軍이 堅持한 火力爲主의 消極的 軍事敎理에서 火力과 起動을 均衡있게 統合한 機動戰 敎理로서 一大 轉換을 의미하는 것이다.

ALB(Airland Battle) [ 編輯 ]

ALB 敎理는 1970年代 末 蘇聯軍의 壓倒的인 機甲 및 機械化部隊에 對應하기 위한 方案으로 發展되기 始作하였다. 이 積極的 防禦敎理의 核心은 防禦部隊의 主力을 事前에 配置하지 않고 集結 保有하고 있다가 敵의 主力이 志向하는 軸線을 早期에 發見, 그 軸線에 迅速히 戰鬪力을 集中하여 戰鬪力을 擊滅시킴으로써 防禦에서의 勝利를 保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敎理는 防禦의 成功에 不過한 것이기 때문에 數的으로 劣勢에 있는 美軍과 나토軍에게 窮極的인 勝利를 保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토軍의 相對的으로 얕은 縱深을 補强하고 戰場을 敵地로 擴大하여 火力과 起動을 統合, 敵의 後續力量(第2祭臺)을 事前에 擊滅하여 戰線에서는 弱化된 敵과 交戰하도록 誘導함으로서 戰鬪에서 勝利를 保障하여 窮極的으로 戰爭에서의 勝利를 追求하는 敎理이다. 이 敎理의 特徵은 火力과 起動을 統合한 攻勢的 機動戰을 追求하는 積極的인 敎理라는 點이다. 다시 말해서 只今까지의 防禦는 火力만을 核心으로 생각하였으나, ALB에서는 火力과 機動으로의 防禦가 아니라 機動戰으로 勝利를 追求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ALB 敎理는 1982年에 採擇되었으며 1986年에는 ALB 遂行을 위한 部隊改編이 完成되었다. [34]

ALBF(Airland Battle Future) [ 編輯 ]

ALBF는 ALB 槪念이 1段階 發展된 것이다. 1980年代 末의 軍事的 狀況은 많은 變化가 있었다. 世界 各國은 東西和解, 冷戰體制 의 崩壞, 軍事强國 蘇聯의 弱化로 戰爭의 直接的인 威脅이 大幅 減少되었다. 美國은 1990年 後半까지 地上軍 兵力을 1/4 以上 減縮하여 兵力을 維持하려 하고 있으며, 英國軍도 地上兵力을 4萬 名 以上 減縮할 計劃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戰場의 變化에 對應하여 ALB 敎理는 그 遂行節次를 발전시키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ALBF 敎理의 核心內容이다. 一旦 戰鬪에 突入되었을 때는 機會를 捕捉하고 迅速히 起動하여 敵을 擊滅한 後 戰鬪가 終了되면 敵에게 露出을 避하여 迅速히 分散, 次期作戰을 準備하여야 한다. 1990年 末 ALBF 遂行節次를 4段階로 發展시켰다. 探索 및 準備段階는 集結地에서 戰鬪力 保存과 적 祈禱 探索, 方策樹立이 主眼이다. 決定的 作戰은 强力한 機動과 火力을 統合한 機動戰을 驅使하여 敵을 痲痹 · 瓦解시키는 段階이며 再編成은 戰鬪後 此後作戰을 爲한 準備段階이다. ALB 敎理가 火力과 起動을 均衡된 手段으로 보았다면, ALBF는 起動을 더 重視하고 火力도 機動 槪念化하여 作戰的 縱深에서의 火力運用을 重視하게 되었다. [35]

ALO(Airland Operation) [ 編輯 ]

걸프戰 은 ALB 및 ALBF 敎理의 效用性을 立證하여 주었다. 걸프戰 結果 첫째, 空軍作戰과 張師政 砲兵, 토마호크 等 作戰的 火力의 運用과 效用性이 立證되었고, 戰爭의 樣相變化는 ALBF 敎理를 ALO 敎理 槪念으로 발전시키게 하였다. ALO(空地作戰)槪念은 ALBF의 發展槪念으로 火力의 作戰的 運營과 空軍作戰과 地上作戰의 有機的 統合 그리고 헬기에 依한 機動手段의 確信이 發展의 核心이 될 것이며, 戰鬪에서의 勝利가 아니라, 作戰에서의 勝利를 追求하는 槪念으로 發展된 것이다. [36]

機動戰의 未來 [ 編輯 ]

未來戰의 變化는 科學技術의 發達 卽 情報 · 技術, 武器體系의 發達이 主導할 것이다. 이러한 武器體系의 發達로 打擊手段이 多樣해지고, 射距離와 正確性이 增大되었다. 이러한 變化로 인하여 敵地戰場 擴大 및 縱深戰鬪, 高速立體機動展, 合同作戰 및 다양한 作戰要素의 統合作戰, 情報 및 科學技術前이 될 것이다. 따라서 未來戰 樣相은 戰場機能의 多樣化, 戰鬪地域의 廣域化, 速度戰, 非線型 機動戰으로 豫想되며, 헬기電力과 連繫하여 살펴보면

첫째, 精密誘導武器의 役割이 增大될 것이다. 電子技術의 革新的인 發展은 모든 精密 誘導武器의 機能을 强化할 것이다. 特히 對戰車武器의 劃期的인 發展을 圖謀하여 機甲部隊의 機動을 決定的으로 制限하게 될 것이다.

둘째, 回轉翼航空機 에 依한 機動役割이 增大될 것이다. 只今까지 戰車 를 中心으로 한 機動部隊 槪念을 헬기戰力에 依한 機動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卽 對戰車 武器 의 發達과 急激한 都市化 는 機甲部隊의 機動性을 決定的으로 制限하기 때문에 나는 步兵 또는 나는 戰車 槪念의 回轉翼 役割이 增大된다는 것이다.

셋째, 地上 機動部隊의 機械化가 加速化 될 것이다. 地上 地動部隊는 機械化의 速度가 더욱 增加할 것이다. 이는 張差戰에서는 機動部隊와 牽制部隊의 區分이 더욱 模糊해지고 그 結果 戰場이 流動的이 될 것이다.

넷째, 電子戰 能力은 劃期的으로 發達되어 戰場은 視覺化될 것이며 力動的이고 流動的이 될 것이다. 또한, 未來戰에 있어서 韓半島의 戰場環境은 作戰술的인 側面에서 높은 山脈과 河川은 地上機動을 制限하는 反面에 適切한 防禦縱深을 提供할 것이다. 平地와 道路網은 良好한 機動空間을 提供하지만, 密集型 都市空間은 機甲 및 機械化部隊 機動에 相對的인 制限을 줄 것이다.

따라서 回轉翼을 利用한 機動이 要求되며, 浸透, 奇襲, 迂廻機動에 效果가 增大될 것이다. 따라서 韓半島 戰場의 地形的 特性으로 볼 때, 戰略的縱深이 짧기 때문에 적지종심爲主의 機動戰 遂行이 要求된다. 西部地域을 除外한 中·동부 地域의 險峻한 山岳地域은 機甲 및 機械化部隊에 醫한기동展에 制限을 줄 것이다. 地形的인 與件을 效率的으로 克服하여 적지종심機同意뛰어 넘는 機動戰의 構想이 必要하다. 따라서 山岳地形 克服이 유리하고 從心 깊은작전이 可能한 回轉翼 起動이 要求된다 하겠다. [37]

各州 [ 編輯 ]

  1. 前意識(2011). 『機動戰 遂行의 原理에 關한 硏究』. 한성대學校 國際大學院. pp.5-11.
  2. 空軍本部(2009). 《作戰用語辭典》. 大戰 : 空軍本部. 66쪽.  
  3. 機動性(mobility) : 軍部隊가 固有의 任務를 完遂할 能力을 保有한 채 한 場所로부터 다른 場所로 移動하는 能力 또는 特性을 말함.
  4. 金光石(1993). 《用兵術語硏究》. 서울 : 병학사. 457쪽.  
  5. 勝利하는 것은 敵에게 달렸고 敗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손자병법 第四篇 軍形). 勝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나에게 있고 이어서 勝利의 때를 기다리는 것도 나에게있다.
  6. 노양규(1989), "마비전 戰略思想의 現代的 考察(?)", 『軍事評論 第 277號』, 大戰 : 陸軍大學, pp.38-39.
  7. 노양규(1989), "마비전 戰略思想의 現代的 考察(?)", 『軍事評論 第 277號』, 大戰 : 陸軍大學, p.43.
  8. 강창구(1995), 『電擊戰의 基礎理論』, 서울 : 병학사, p.96.
  9. 「電擊戰」의 用語가 獨逸軍 敎理의 名稱이 아니라 나치 宣傳家들이 西部戰線의 勝利를 過大 宣傳하기 위해 使用한 用語였다고 한다.(진중근(2007), 『電擊戰의 傳說』, 서울 : 일조각, p.36.)
  10. 진중근(2007), 『電擊戰의 傳說』, 서울 : 일조각, p.39.
  11. 陸軍士官學校(1982). 《世界戰爭史》. 서울 : 일신사. 306-307쪽.  
  12. 강창구(1978). 《戰略論》. 서울 : 병학사. 357쪽.  
  13. 강창구(1978). 《戰略論》. 서울 : 병학사. 359쪽.  
  14. 배명헌(2015). 《未來戰에서 헬기電力 主導의 機動戰 硏究》. 74쪽.  
  15. 박휘락(2005). 《戰爭, 戰略, 軍事 入門》. 법문사. 30-31쪽.  
  16. 류한수 譯, 『2次世界大戰社』 (서울: 청어람미디어, 2014), p.83
  17. 정하명 外 11名, 『世界戰爭史』 (서울: 圖書出版 黃金알, 2012), pp.295-300.
  18. 정하명 外 11名, 『世界戰爭史』 (서울: 圖書出版 黃金알, 2012), pp.478-480.
  19. 김희상, 『中東戰爭』 (서울: 일신사, 1978), p.307.
  20. 최완규, “痲痹理論의 現代的 考察과 未來戰 適用性 硏究,” 경기대학교博士學位論文(2010), p.75.
  21. 정하명 外 11名, 『世界戰爭史』 (서울: 圖書出版 黃金알, 2012), p.537.
  22. 정하명 外 11名, 『世界戰爭史』 (서울: 圖書出版 黃金알, 2012), p.541.
  23. 최완규, “痲痹理論의 現代的 考察과 未來戰 適用性 硏究,” 경기대학교博士學位論文(2010), p.82.
  24. 오정석, 『이라크戰爭』 (서울: 燕京文化史, 2014), pp.171-173.
  25. 오정석, 『이라크戰爭』 (서울: 燕京文化史, 2014), p.167.
  26. 최완규, “痲痹理論의 現代的 考察과 未來戰 適用性 硏究,” 경기대학교博士學位論文(2010), p.90.
  27. Richard E. Simpkin 저, 연제욱 譯, 『機動戰(Race to the Swift : 未來戰爭에 對한 思考)』 (서울: 冊世上, 1999), pp.108?111.
  28. 박기련(1988), 『機動戰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p.145.
  29. 박기련(1988), 『機動戰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p.152-153.
  30. 박기련(1988), 『機動戰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p.166.
  31. 박기련(1988), 『機動戰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pp.200-201.
  32. 박기련(1988), 『機動戰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pp.201-202.
  33. 박기련(1988), 『機動戰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p.206.
  34. 박기련(1988), 『機動戰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p.113.
  35. 박기련(1988), 『機動戰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p.114.
  36. 박기련(1988), 『機動戰이란 무엇인가?』 서울: 일조각, p.115.
  37. 배명헌(2015). 《未來戰에서 헬기電力 主導의 機動戰 硏究》. 96-97쪽.  

參考 文獻 [ 編輯 ]

  1. 강창구(1995), 『電擊戰의 基礎理論』, 서울 : 병학사
  2. 空軍本部(2009). 《作戰用語辭典》. 大戰 : 空軍本部.
  3. 金光石(1993). 《用兵術語硏究》. 서울 : 병학사.
  4. 前意識(2011). 『機動戰 遂行의 原理에 關한 硏究』. 한성대學校 國際大學院.
  5. 노양규(1989), "마비전 戰略思想의 現代的 考察(?)", 『軍事評論 第 277號』, 大戰 : 陸軍大學
  6. 진중근(2007), 『電擊戰의 傳說』, 서울 : 일조각
  7. 陸軍士官學校(1982). 《世界戰爭史》. 서울 : 일신사.
  8. 강창구(1978). 《戰略論》. 서울 : 병학사.
  9. 배명헌(2015). 《未來戰에서 헬기電力 主導의 機動戰 硏究》.
  10. 박휘락(2005). 《戰爭, 戰略, 軍事 入門》. 법문사.
  11. 류한수 譯, 『2次世界大戰社』 (서울: 청어람미디어, 2014).
  12. 정하명 外 11名, 『世界戰爭史』 (서울: 圖書出版 黃金알, 2012).
  13. 김희상, 『中東戰爭』 (서울: 일신사, 1978).
  14. 최완규, “痲痹理論의 現代的 考察과 未來戰 適用性 硏究,” 경기대학교博士學位論文(2010).
  15. 오정석, 『이라크戰爭』 (서울: 燕京文化史, 2014).
  16. Richard E. Simpkin 저, 연제욱 譯, 『機動戰(Race to the Swift : 未來戰爭에 對한 思考)』 (서울: 冊世上,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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