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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生
| 1886年 4月 4日
(
1886-04-04
)
朝鮮
平安南道
順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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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亡
| 1923年 4月 17日
(
1923-04-17
)
(37歲)
美國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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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歷
| 大韓民國 臨時政府 파리委員部 書記長
大韓民國 臨時政府 런던委員部 委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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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환
(黃紀煥, 1886年 4月 4日 ~ 1923年 4月 17日)은 韓國의
獨立運動家
이다.
生涯 및 活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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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4年
,
大韓帝國
에서
美國
으로 떠났다.
1917年
, 第1次 世界大戰에 美軍으로서 參戰해 유럽 戰線에서 重傷者 救護 活動을 했다.
1919年, 第1次 世界大戰의 終戰 後 프랑스 파리로 向한 그는 對한 臨時政府의 파리委員部 書記長으로서의 活動을 始作으로 獨立運動을 始作했다.
[1]
以後 프랑스와 英國, 뉴욕을 主로 돌아다니며 對한 臨時政府와 유럽 間의 外交 業務를 맡아 活動했다.
1923年, 美國 뉴욕에서 心臟痲痹로 死亡했다.
奉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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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年
, 황기환의 墓가
美國
뉴욕
의
퀸즈
메스페스에 있는 마운트 올리벳 共同墓地에서 發見되었다. 發見者는 장철우 文化財찾기 韓民族네트워크 뉴욕 支會長과 그 一行으로 '뉴욕韓人敎會 70年史'라는 冊에서 韓人敎會 草創期 무렵, 韓人 勞動者들이 마운트 올리벳 共同墓地에 묻혔다는 記錄을 보고 搜索에 나선 것이 契機였다.
[2]
國家報勳處
는 2013年부터 황기환의 遺骸를
韓國
으로 모셔와
顯忠院
에 安葬하기로 하였으나 오랫동안 進陟이 더디었다. 美國法에 遺骸를 海外로 移葬하기 위해서는 遺族의 同意가 必要하나 黃知事는 未婚으로 子孫을 남기지 않아 同意를 求할 遺族이 없으며 遺族의 情報가 不足했다. 때문에 遺族의 同意 代身 美國 法院의 奉還 許可를 받기 위해 韓國 政府는 美 政府와 長期間 法的 節次를 밟았다.
黃 支社의 逝去 100周忌가 되는 2023年, 遺骸 奉還 되었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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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主演의 모티브로서 再照明 받았다.
賞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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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年
,
建國訓長
愛國章을 追敍 받았다.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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