陣式 (三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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陣式 (陳式, ? ~ ?)은 中國 後漢 말 ~ 三國 時代 蜀나라 의 武裝이다. 小說 三國志演義 》에서는 脚色이 많이 되었다.

生涯 [ 編輯 ]

劉備 를 섬겼다. 陣式 等 10餘 영(營)은 劉備의 命에 따라 韓中群 으로 통하는 馬鳴角度(馬鳴閣道)의 遮斷을 試圖했다가 棲遑 에게 격퇴당했다. 軍士들이 골짜기 에 뛰어내리는 等 죽은 者가 많았다. [1] 222年 ( 裝誣 2年), 劉備가 동오 를 攻擊했을 때 오반 과 함께 蜀漢 水軍 을 引率下祈禱 했다. [2] 229年 ( 建興 7年), 諸葛亮 의 命을 받아 無挑群 音評軍 (陰平郡)을 攻掠했다. 이에 위나라 翁主 自社 곽回 가 應戰하려 하였다. 諸葛亮도 몸소 健胃(建威)로 나아갔므로 곽膾가 물러났다. [3] 以外의 行跡과 家計는 記錄이 없어 알 수 없다.

三國志演義 [ 編輯 ]

司書가 아닌 小說 三國志演義 》에서는 史書에 基盤한 모습은 거의 없으며 제71회 定軍山 戰鬪(定軍山―)에서 蝗蟲 의 아장(牙將)으로 첫 登場한다. 하후上 下後燕 의 策略을 遂行해 蝗蟲을 誘引한다. 나서려는 蝗蟲을 진식이 自願해 代身했다가 下後燕에게 捕獲당한다. 이番엔 蝗蟲이 半客爲主(反客爲主)의 戰術을 써 하후賞을 生捕한다. 下後軟餌 蝗蟲에게 人質 交換을 提案한다. 陣式은 無事히 生還한 反面 下後상은 本陣 가까이 이르자 蝗蟲의 화살 을 등짝에 맞는다. 以後 蝗蟲이 下後燕을 戰死 시키고 진식과 같이 定軍山으로 쳐들어가 맞서 온 장합 을 물리친다.

第98回, 諸葛亮이 제3차 北伐에 나서 진창성(陳倉城)을 醉하고 記事(祁山)으로 進擊한다. 眞食道 有線 의 名으로 諸葛亮에 合流한다. 第100回, 作品 基準 第4次 北伐에 參與하여 위연 , 腸億 , 頭頸 , 진식이 2萬 名을 이끌고 技曲(箕谷)으로 向한다. 諸葛亮은 等地 를 보내 埋伏 을 警戒하며 함부로 進軍해서는 안 된다는 靈을 傳한다. 陣式은 위軍이 큰 비로 因해 急히 撤收했으니 도리어 재빨리 前進해야 한다고 主張한다. 게다가 家庭(街亭) 에서의 敗戰 을 들먹이며 諸葛亮을 비웃는다. 위연도 자오曲(子午谷) 計策이 採擇되지 않았던 일로 같이 비웃는다. 陣式은 等地의 挽留도 뿌리친 채 直屬의 5,000名만으로 續行한다. 몇 里를 못 가 四魔의 의 伏兵에 當해 四五百 名만이 남고 죽을 뻔하는데 위連이 救出해준다. 追擊하는 위軍은 두經過 장억이 沮止해준다. 戰後 處理에 있어 陣式은 위連이 시킨 일이라고 발뺌한다. 諸葛亮은 ‘위연은 오히려 진식을 區했는데도 陣式은 남 탓을 한다’며 命令 違反의 罪를 물어 斬首 하고 嚆矢 한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三國志 》17卷 魏書 第17 棲遑
  2. 《三國志》32卷 蜀黍 第2 船主 劉備
  3. 《三國志》35卷 蜀黍 第5 諸葛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