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代 시드머스 自作 헨리 애딩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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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年 肖像畫

第1代 시드머스 自作 헨리 애딩턴 ( 英語 : Henry Addington, 1st Viscount Sidmouth , 1757年 5月 30日 ~ 1844年 2月 15日 )은 英國 政治人 이다.

애딩턴의 아버지는 臺 피트 집안의 江汀醫師였으므로 어려서부터 소 피트 와 親交를 맺었는데, 1783年 下院 議員이 되자 그의 協力者가 되었다. 1789年~1801年 下院議長을 지냈고, 1801年 總理가 되어 1802年 아미앵 條約 을 締結했다. 1804年 소 피트와의 對立으로 辭任, 시드머스 自作 으로 敍品되었다. 그 後 피트와 和解하고 1812年 토리당 을 指揮, 다시 立脚하여 內務長官이 되어 大衆運動 및 言論을 彈壓했다. 1817年의 '强制法'은 以後의 피털루 虐殺 의 導火線이 되었고 彈壓法人 '六法'은 國民의 非難 對象이 되어 1821年 內務長官을 辭任했으나, 1824年까지 內閣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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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國 시드머드 自作
1805年 - 1844年
後任
윌리엄 레너드 애딩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