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經 (東녕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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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經 (鄭經, 1642年 10月 25日 ~ 1681年 3月 17日 , 在位 1662年 ~ 1681年 )은 鄭成功 (鄭成功)의 맏아들이자 東녕國 의 2代 王이다. 諡號는 延坪文王(延平文王), 아버지 鄭成功 영력제 로부터 親王級 作位인 竈王(潮王)職을 下賜받았으므로 그는 生前에 自身을 竈王이라고도 稱했다. 아버지 精誠공이 中國 大陸에서 버티기 어렵게 되자 새로운 根據地를 마련하기 위해 臺灣으로 떠났을 때, 情景은 陸地에 남아서 鄭成功의 陸上 據點인 下問(廈門)과 金門 (金門)을 지켰다.

政經
鄭經
延坪王
在位 1662年 11月 ~ 1681年 3月 17日
卽位式 1662年
前任 鄭成功
後任 정극상
이름
시호 延坪文王(延平文王)
身上情報
出生日 1642年 10月 25日 ( 1642-10-25 )
出生地 明나라 千主婦 남안현
死亡日 1681年 3月 17日 ( 1681-03-17 ) (38歲)
死亡地 東녕國 昇天部
(現在의 中華民國 타이난視 )
家門 鄭成功가
父親 鄭成功
母親 동우
配偶者 黨王后
子女 正劇場
정극상

1662年 부터 1681年 까지 東녕國 王으로 在位하는 동안 1662年 부터 1679年 까지 親政을 하였고 1679年 부터 1681年 崩御할 때까지 서자(庶子) 正劇場 (鄭克藏)李 代理淸淨 (代理聽政)을 맡았다.

王位 繼承 [ 編輯 ]

鄭成功은 臺灣을 占領한 지 1年餘 만에 世上을 떠났는데(1662년), 臺灣에서는 情景이 如前히 下問에 駐屯하고 있는 것을 틈타 황소(黃昭)와 小孔津(蕭拱辰)李 鄭成功의 동생 정습(鄭襲)을 王으로 推戴하려 하였다. 이를 눈치챈 情景은 臺灣으로 건너와 두 사람을 목베는 等 정습 支持派를 制壓하고 自身이 延坪君王(延平郡王)의 자리를 물려받아 鄭氏王國의 2代 王이 되었다.

淸나라 는 精誠공이 죽은 直後 降伏을 勸誘하는 使者를 보냈는데, 情景은 朝鮮 (朝鮮)의 境遇를 例로 들면서 辮髮을 하지 않고 臣下로 稱하여 朝貢을 바치는 線에서 마무리지으려 했으나 淸나라가 끝까지 辮髮할 것을 固執하여 協商이 決裂되었다. 1663年 淸나라는 臺灣 喪失로 인해 鄭氏王國에 怨恨을 품고 있던 네덜란드 勢力과 聯合하여 下問과 今文을 攻擊해왔다. 大陸 領土를 지키기 위해 以前부터 下問으로 건너왔던 情景은 必死的으로 抵抗했으나 두 據點을 모두 잃고 1664年 臺灣으로 撤收했다.

삼번의 亂 과 鄭氏王國의 軍事活動 [ 編輯 ]

明나라 의 賣國奴 出身으로 藩王(藩王)의 爵位를 받아 半獨立 狀態를 維持하고 있던 雲南地域의 평서王(平西王) 吳三桂 (吳三桂), 廣東地域의 평남왕(平南王) 尙之信 (尙之信), 幅巾地域의 正南王(靖南王) 경중명 (耿仲明)李 1673年 淸나라에 對抗해 一齊히 叛亂을 일으켰다. 이를 삼번(三藩)의 亂이라 한다. 二重 경정충은 臺灣으로 使者를 보내어 天主(泉州)와 莊周(?州) 두 部(府)를 나누어줄 것을 提案하면서 自身들의 叛亂에 協力할 것을 要請해 왔다. 경중명의 提案에 솔깃한 情景은 當時 스페인 의 植民地였던 필리핀 을 攻擊하려던 計劃을 접고 삼번의 勢力과 聯合하였다. 그러나 三番 勢力이 初期에 順調롭게 勢力을 擴大해 나가자 경정충은 一方的으로 政經과의 約束을 破棄했다. 이에 激忿한 情景은 경중명의 領域인 福建省의 沿岸地帶를 武力으로 攻擊하여 한때는 福建省 南部地域의 大部分을 占領할 程度로 威勢를 떨쳤다.

그러나 삼번의 中心勢力인 吳三桂의 軍隊가 淸나라 軍隊에 밀리기 始作하자 경정충은 재빨리 淸나라 調整에 降伏했으며, 自身이 淸나라에 忠誠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立證하기 위해 情景의 臺灣軍을 攻擊해 왔다. 여기에 靑軍까지 加勢하여 情景은 애써 占領한 땅들을 모두 잃었다.

末年과 죽음 [ 編輯 ]

1678年 情景은 局面의 轉換을 위해 有國憲 (劉國軒)으로 하여금 해징(海澄)을 占領하게 했다. 그러자 淸나라는 1680年 大軍을 이끌고 하문, 金文과 해징을 攻擊했다. 이 싸움에서 鄭氏王國의 水軍은 淸軍을 相對로 勝利했으나 淸나라의 事前 計略으로 하문 地域의 民心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 理想 內陸地域의 據點을 維持하는 것이 不可能하다고 본 情景은 3月 27日 臺灣으로 撤收했다.

鄭氏王國의 內陸 據點들을 모두 차지한 淸나라는 다시 鄭氏王國과의 交涉을 試圖하였다. 이 過程에서 情景은 淸나라에게 빼앗긴 해징을 淸나라와 鄭氏王國의 交易場所로 삼을 것을 要求했으나 淸나라는 이 提案을 拒否했다. 옛 明나라의 땅을 回復할 希望이 稀薄해지자 情景은 失意에 빠져 政事를 멀리하다가 1681年 病으로 죽었다.

둘러보기 [ 編輯 ]

前任
鄭成功
(在位 1661 - 1662)
第2代 鄭氏王國 國王
1662年 - 1681年
後任
정극상
(在位 1681 - 1683)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