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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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수
(張雲洙)
個人 情報
로마字 表記 Chang Woon-Soo
出生日 1928年 11月 19日 ( 1928-11-19 )
出生地 日帝强占期 朝鮮 平安北道
死亡日 1992年 12月 28日 ( 1992-12-28 ) (64歲)
포지션 미드필더
球團 記錄*
鳶島 球團 出戰 ( 得點 )
?
大韓民國 ?
指導者 記錄
1964
1968
?-1973
1974-1975
1976-1977
1978
1978-1980
1981-1983
1984
1984.06-1986
大韓民國 U-20 코치
大韓民國 U-20
更新高等學校 코치
계성高等學校 監督
안양공고 監督
大韓民國 킹스컵 代表팀 監督
延世大學校 코치
大宇 로얄즈
大宇 로얄즈 總監督
大宇 로얄즈 監督
* 球團의 出戰回數와 得點記錄은 正規 리그의 公式 리그 競技 記錄만 集計函.

장운수 (張雲洙, 1928年 11月 19日 ~ 1992年 12月 28日 )는 大韓民國 의 蹴球 監督으로, 平安北道 出身이다. 大宇 로얄즈 의 2代 監督이기도 하다. 1987年 大宇 로얄즈 의 團長職을 마지막으로 蹴球界에서 隱退하였으며 다음 해 4月부터 腦卒中으로 鬪病해 왔다가 [1] 1992年 作故하였다.

蹴球人 經歷 [ 編輯 ]

平安北道 出身으로 수많은 蹴球스타들을 育成했던 韓國 蹴球史에서 注目할 만한 監督이다. 그가 길러낸 選手들 中 有名한 選手만 꼽아봐도 車範根 , 이태호 , 장외룡 , 이장수 , 李春錫 , 정해원 , 조광래 , 유태목 , 정용환 , 김풍주 等이 있으며, 現在 蹴球界 任員으로 活躍中인 안종복 , 오세권 等도 장운수 監督의 弟子였다. 大宇 로얄즈 의 2代 監督이기도 하며, 84시즌 待遇를 K리그 優勝으로 이끌어 指導者 賞을 受賞한 바있다.

경신고 監督 時節(차범근 發掘) [ 編輯 ]

장운수 監督은 경신고 監督 時節 車範根 을 發掘해 蹴球 選手가 될 수 있도록 引導한 恩人으로 有名한데, 本來 中學校 때까지 하키 選手였던 車範根을, 當代 蹴球 名門이었던 更新中學校로 轉學시켜 축구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配慮해주었다. 차범근이 更新高等學校 在學 時節, 車範根을 蹴球界에 처음으로 紹介해 (月刊蹴球 71年 1月號, 이달의 有望 選手), 靑少年代表 拔擢으로 이끈 張本人도 亦是 장운수 監督이다. (車範根度 自身이 가장 고마움을 느끼는 스승 2名에 故 장운수 監督과 고 리뉘스 美헐스 監督을 꼽았다.)

後날, 차범근이 獨逸에서 成功街道를 달릴 무렵, 장운수 監督이 弟子를 찾아 獨逸을 訪問한 적이 있었는데, 車範根과 만난 時間이 저녁 8時였다고 한다. 오랜만에 恩人을 만난 차범근은 반가운 氣色을 감추지 않았으나, 제대로 얘기를 해볼 새도 없이 9時가 되자마자 "先生님, 來日 訓鍊 스케줄이 있어 먼저 자야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寢室로 들어가버렸다는 逸話가 傳해진다. 차범근의 徹底한 自己管理를 꼽을 때 으레 드는 에피소드 中 하나.

안양공고 時節 [ 編輯 ]

80年代 初中盤, 韓國 스트라이커의 次世代 期待株이자, 플레이메이커 資質까지 갖추고 있었던 정해원 을 안양공고 時節부터 大宇 로얄즈에 이르기까지 指導했던 이도 장운수 監督이었다. 70年代 當時 安養工高는, 오갈데 없는 孤兒들을 蹴球部에서 合宿시키며 蹴球를 시키기로 有名했는데, 普通의 高等學生보다 3~4살 位였던 안양공고 選手들 틈바귀에서 좋은 活躍을 펼쳤던 정해원과 李春錫 을 장운수 監督은, 自身이 안양공고 監督에서 연세대 코치로 옮기면서 이들을 延世大 로 進學시켜, 韓國 國家代表 攻擊陣에 次世代 에이스로 育成하게 된다. 연세대 時節 정해원은 50M 單獨 드리블에 이은 골로 世間의 注目을 받아, 以後 國家代表 붙박이 攻擊手가 되었으며, 李春錫 選手는 大宇로얄즈에서 타겟 스트라이커 役割을 훌륭히 遂行하며 박양하 選手의 파트너가 되어 活躍했다.

延世大 時節 [ 編輯 ]

장운수 監督이 延世大 코치로 在職할 當時, 연세대에는 GK 정성교 , DF 이장수 , 장외룡 , MF 유태목 , 왕선재 , FW 정해원 , 李春錫 等의 忠實한 멤버 構成을 자랑했다. 하이라이트는 80年 3月 大統領杯 全國蹴球大會 決勝戰이었는데, 延世大는 各級 實業팀을 모두 누르고 決勝戰에 進出, 當時 아마蹴球 最强者의 位置에 있었던 陸軍 忠의(상무의 前身) 팀과 맞붙게 되었을 때의 일인데, 當時 陸軍에는 조광래 , 최종덕 , 박성화 等 國家代表 選手들이 櫛比했고, 到底히 延世大는 相對가 안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前半 初盤 위에 言及했던 정해원 의 50M 單獨 드리블에 依한 거짓말 같은 골로 리드를 잡은 연세대는 後半 20分 유태목 의 쐐기골로 2:0 勝. 東 大會 優勝을 차지한다. 이때의 活躍으로 정해원 장외룡 왕선재 유태목 等은 모두 國家代表로 差出되었고, 장운수 코치는 大宇 로얄즈 監督으로 赴任하기에 이른다.

大宇 로얄즈 時節 [ 編輯 ]

K리그 監督 記錄 [ 編輯 ]

所屬팀 鳶島 리그 順位
大宇 로얄즈 1983 6 7 3 2位
大宇 로얄즈 1985 9 7 5 3位
大宇 로얄즈 1986 17 4 15 3位
通算 [2] - 32 18 23

參考 事項 [ 編輯 ]

  1. “사람 사람 사람들” . 東亞日報. 1991年 11月 22日 . 2022年 2月 1日에 確認함 .  
  2. 1984年 시즌은 記錄上으로는 조윤옥 監督으로 되어있으나, 시즌 中盤 조윤옥 監督이 事實上 更迭되고 장운수 監督 代行體制를 構成
前任
招待
第1代 釜山 아이파크 監督
1983
後任
조윤옥
前任
조윤옥
第3代 釜山 아이파크 監督
1984 - 1986
後任
이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