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浩 (辯護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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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炳浩 ( 1926年 3月 17日 ~ 2016年 12月 18日 )는 大韓民國 의 辯護士이다.

生涯 [ 編輯 ]

1983年 4月 23日에 서울지방변호사회 定期總會에서 新任 會長으로 選出된 李炳浩는 辯護士들의 國民에 對한 서비스를 大幅 늘려 辯護士에 對한 社會的 信任을 되찾고 過多한 事件 受任料가 辯護士에 對한 不信의 素地가 있기 때문에 辯護士 報酬 規則을 制定해 受任料의 適正化를 圖謀하겠다"고 말했다. [1]

李炳浩는 리영희 敎授를 相對로 "原稿의 自敍傳인 <自由인>과 같은 題目의 著作物 製作 및 配布 禁止"를 要求하는 假處分 申請을 提起했으나 서울地方法院 西部支院 刑事1部(裁判長 노원욱)는 "두 冊의 內容이 全혀 다를 뿐만 아니라 申請人의 冊 題目이 不正競爭防止法에 規定된 널리 알려진 商品의 標識라고 보기 힘들다"는 理由로 "理由없다"며 棄却했다. [2]

美國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國際 아카데미 財團이 授與하는 아인슈타인 노벨平和賞을 받았다. [3]

大韓民國 第14代 大統領 選擧 에서 大韓正義黨 總裁 資格으로 政見을 發表하면서 "亞太辯護士會가 辯護士의 유엔이며 내가 會長으로서 辯護士의 大統領"이라고 말한 것과 關聯하여 大韓辯護士協會 는 國民을 欺瞞한 것으로 보고 辯護士의 品位 損傷을 理由로 調査했다. [4]

大選出馬 [ 編輯 ]

李炳浩 大韓民國 第14代 大統領 選擧 에 出馬하여 0.2%의 支持率을 얻고, 7名의 候補 中 7等을 차지하였다. 1997年 에는 民主國民聯合이라는 政黨을 創黨하여 大選出馬를 試圖하였으나, 結局 不出馬하였다. 1997年 8月 30日에 "放送 3社는 選擧運動 期間에만 TV演說과 宣傳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는 大統領 選擧法을 違反하여 討論會를 放送하고 있다"며 " 한국방송공사 等 空中波 放送 3社의 大統領 選擧 候補 討論會는 事前選擧運動에 該當하므로 放映을 禁止해야 한다"는 理由로 放送社들을 相對로 TV討論會 放映禁止 假處分 申請을 서울地方法院 南部支院에 提出했다. [5]

各州 [ 編輯 ]

  1. 京鄕新聞 1983年 4月 25日子
  2. 한겨레 1990年 9月 22日
  3. 每日經濟 1991年 8月 7日子
  4. 京鄕新聞 1993年 1月 9日子
  5. 京鄕新聞 1997年 8月 31日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