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희
(
1953年
7月 13日
~)는
大韓民國
隱退한 女子
테니스
選手이다.
1970年代
와
1980年代
에 活躍하였다. 大韓民國 最初의 프로 테니스 選手이다.
選手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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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는 1972年 12月
濠洲 오픈
本選에 滿 19歲의 나이로 參加해 大韓民國 選手로는 最初로
그랜드 슬램
大會 本選에 出戰했다. 그女는 첫 競技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의
팸 휘트크로스
에게 6-4, 7-5로 勝利하며 2回戰에 進出, 大韓民國 選手로는 最初로 메이저 大會 本選 승리도 記錄했다.
1974年
테헤란 아시안 게임
에서는
양정순
과 함께 團體 金메달을 獲得했다. 國際 舞臺에서 本格的으로 活躍하기 始作한 것은
1979年
美國
으로 건너가 大韓民國 테니스 歷史上 最初로 프로 選手로 登錄하면서부터이다. 그女는 이때부터
WTA 투어
活動을 始作했다.
이덕희는 1980年
프랑스 오픈
1回戰에서
獨逸
의
클라우디아 코데 킬쉬
를 相對로 두 番째 메이저 大會 本選 勝利를 記錄하였다. 또한 이 해에 大韓民國 選手로는 最初로 4大 메이저 大會에 모두 出戰하였다.
1981年
US 오픈
에서 이덕희는 1回戰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의
수잔 리오
, 2回戰에서
美國
의
수잔 매스커린
을 相對로 勝利를 거둔 뒤, 3回戰에서 1978年 프랑스 오픈 優勝者인
루마니아
의
비르지니아 루지치
마저 꺾는 波瀾을 일으키며 4回戰에 進出했다. 16强이 겨루는 4回戰에서 그女는
체코슬로바키아
의
하나 만들리코바
에게 完敗했는데, 萬들理코바는 以後 繼續 勝利를 거듭하여 結局 大會 優勝者가 되었다.
1982年 1月 美國의 포트 마이어(Fort Myer)에서 열린 大會 決勝에 進出,
南아메리카 共和國
의
이본 버마크
를 6-0, 6-3으로 꺾고 大韓民國 史上 最初로 투어 大會 優勝을 거뒀다. 이 해 힐튼헤드 大會에서도
英國
의
버지니아 웨이드
, 루마니아의 비르지니아 루지치 等 世界的인 水準의 選手들을 꺾으며 16强에 올랐고,
獨逸 오픈
에서는
全 世界 랭킹 1位
였던
빌리 진 킹
을 꺾으며 8强까지 올랐다. 이 해 US 오픈에서는 3回戰에 進出하였다. 1982年 이덕희는 繼續 좋은 成跡을 記錄하여 當時 大韓民國 테니스 選手로는 歷代 最高 랭킹人 世界 랭킹 30位에 올랐다.
이덕희는 1983年 滿 30歲의 나이로 隱退했다. 그女는 그랜드 슬램 大會에 總 14回 出戰하여 그 가운데 11回는 2回戰 以上 進出하였다.
隱退 以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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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女는 現在
美國
로스앤젤레스
에 居住하고 있다. 大韓民國 幼少年 테니스의 發展을 위해 私財를 털어 每年 大韓民國 唯一의 國際 주니어 大會인
이덕희倍 테니스 大會
를 開催하고 있다.
大韓民國 테니스社에서의 位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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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의 메이저 大會 16强 進出은 男子 프로 투어인
ATP 투어
에서
이형택
이
2000年
US 오픈 16講을 記錄할 때까지 大韓民國 테니스 史上 唯一한 記錄이었다. 이덕희의 투어 大會 優勝 亦是 이형택이
2003年
시드니 大會에서 優勝할 때까지 唯一한 記錄이었다. 하지만 정현이 2018年 濠洲오픈에서 4强에 進出하면서 깨졌다.
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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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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