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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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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 (李慶胤, 1545年 6月 10日 ~ ?)은 朝鮮 중기의 王族 出身 畫家 이다. 者는 수길, 號는 낙파, 封號(封號)는 學林定(鶴林正) 또는 學林공(鶴林公) [1] , 本貫은 全州이다.

生涯 [ 編輯 ]

朝鮮 仁祖 때의 庶出 王族이었다. [1] 朝鮮 成宗 의 일곱째 庶子 익양군 이회의 曾孫子로, 청성군 이걸(靑城君 李傑)의 아들이다. 이중윤 (李仲胤), 이영윤 (李英胤)의 兄이다.

그림에 專念하여 山水畫 를 비롯하여 人物 ·蘇·말 等의 그림에 뛰어났으며, 色感과 情趣가 뚜렷하였다.

朝鮮에서 流行했던 화풍 中의 하나가 浙江省(浙江省) 出身의 戴震 (戴進)을 中心으로 이룩된 折破 (浙派) 畫風이다. 이는 大經山水人物畫(大景山水人物畵)와 소경山水人物畫(小景山水人物畵)가 特徵인데, 이경윤이 朝鮮 中期의 折破畫風을 代表하는 畫家이다. [1]

그동안 李慶胤의 作品은 호림博物館 所長의 〈施主도(詩酒圖)〉만 眞品으로 여겨졌으며, 燕巖 朴趾源 의 《熱河日記》 熱相畫報(洌上畵譜)에는 〈石箱墳香徒(石上焚香圖)〉란 李慶胤의 作品 이름이 나오지만 實物은 傳하지 않는다. [1] 그밖에 〈手足도〉, 〈枯死濯足도〉, 〈관폭도〉, 〈山水圖〉 等이 있다. 또한 日帝의 初代 朝鮮總督 데라우치 마사打케 (寺內正毅 , 1852~1919)가 가져갔던 作品 中 이경윤 畫帖집 《 낙파필희 (駱坡筆戱)》가 있다. [1]

家族關係 [ 編輯 ]

  • 아버지 : 청성군 이걸(靑城君 李傑, 1525-1593)
  • 어머니 : 郡夫人 여산 宋氏(1523-1587)
  • 동생 : 이영윤 (李英胤, 1561-1611)
  • 아들 : 이숙(李肅, 1566 - 1637)
  • 아들 (庶子) : 李澄 (李澄, 1581- 1674)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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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 編輯 ]

  1. 王族 畫家 이경윤 Archived 2016年 5月 13日 - 웨이백 머신 朝鮮日報 200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