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治鍊
(尹致聯,
1877年
3月 26日
~ ?)은
朝鮮
의 武臣이며
大韓帝國
의 無關, 軍人이다.
[1]
日本
遊學,
게이오 義塾
을 卒業하고 陸軍豫備士官學校를 거쳐
日本陸軍士官學校
를 卒業하고 歸國, 大韓帝國 陸軍 騎兵으로 服務했다. 本貫은
해평
이다.
生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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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年
8月
日本
에 派遣되는 紳士遊覽團의 한사람이 되어
日本
도쿄
(東京)에 갔다. 그 뒤 日本으로 留學,
1895年
11月
게이오義塾
(慶應義塾) 特別科에 入學,
1896年
11月
에 卒業했다.
11月
歸國 後
大韓帝國
陸軍豫備學校(陸軍預備學校)에 入學,
1898年
11月
에 卒業하고 同年
12月
日本
陸軍士官學校
(陸軍士官學校)로 進學하여
1899年
11月
에 卒業했다. 同年
12月
基兵制1聯隊(騎兵第一聯隊) 見習士官에 任官되었다.
[1]
1900年
7月 15日
陸軍參尉(陸軍參尉)에 任官된 뒤 歸國했다.
1902年
4月
다시 日本으로 건너가 基兵制8聯隊(被騎兵第八聯隊) 見習士官이 되고,
1904年
2月
日本軍의 滿洲(滿洲) 征伐에 出廷했다가
1905年
1月
歸國했다.
[1]
1905年
2月 21日
大韓帝國 陸軍 騎兵隊 參尉(陸軍騎兵參尉)에 任官되高示威騎兵隊(侍衛騎兵隊)에 轉屬되었다. 3月19日 日本에 派遣되는 特派大使(特派大使) 隨行員으로 出國,
도쿄
에 訪問했다. 同月 日本으로부터 6等 욱일장(六等旭日章)을 授與받았다. 日本 滯留 中 3月 25日
大韓帝國
朝廷으로부터 騎兵隊 部位(騎兵副尉), 27日 6품으로 昇進 發令받은 뒤 4月 歸國했다.
[1]
10月11日
騎兵部位(騎兵正尉)로 昇進,
軍部
(軍部) 軍務局騎兵課員(軍務局騎兵課員),
12月 5日
陸軍騎兵中隊腸(騎兵中隊長)을 거쳐
1906年
1月 10日
日本
에 派遣되는
報聘大使
(報聘大使)의 水原(隨員)으로 다시 日本으로 건너갔다. 1月 日本의 4等서보장(勳四等瑞寶章)을 授與받고,
1月 13日
日本
現地 滯留 中 騎兵參領(騎兵參領)으로 昇進한 뒤
2月 15日
歸國했다.
7月 20日
軍部參謀局(軍部參謀局) 第1課長을 거쳐
10月 19日
基病部令(騎兵副領)으로 昇進했다.
[1]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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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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