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 (朝鮮 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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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 영릉 前景 (2020年, 文化財廳)

영릉 (英陵)은 朝鮮 第4代 世宗 과 그 비 소헌왕후 (昭憲王后)의 同封이失合章陵이다. 朝鮮王陵 最初의 合掌陵이다. 驪州市 孝宗 영릉 과 함께 英녕陵 이라는 이름으로 私的 195號에 指定되어 있다.

歷史 [ 編輯 ]

光州 (廣州, 現 서울 瑞草區 內谷洞) 獻陵 (憲陵)에 있던 것을 1469年 ( 睿宗 1年)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1977年 陵域 聖域化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構成 [ 編輯 ]

陵寢 (2020年, 文化財廳)

王陵은 朝鮮王朝의 菱堤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陵의 하나로서 合掌陵임을 알 수 있는 두 個의 魂遊石이 있고 封墳 둘레에 돌欄干을 둘렀으며 12個의 석주에는 12干支를 文字로 새겨놓았다. [1]

地勢는 層層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鳳凰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形局이라, 最高의 明堂자리라고 한다. 正門으로 들어서면 齋室과 世宗大王 銅像이 오른쪽에 서 있고, 왼쪽에는 世宗大王 記念館인 世宗前이 있다. 세종전 안에는 集賢殿 學士度를 비롯한 여러 遺物들이 大王의 業績을 기리며 模作 或은 眞品으로 陳列되어 있고, 세종전 밖의 잔디밭엔 해時計 · 自擊漏 · 關賤待 等이 展示돼 있다. 그 앞에 八角으로 다듬어진 長明燈과 陵 앞으로 石像·石馬·文人石·武人石을 配置했다. 丁字閣은 合掌 封墳에 軸이 맞추어진 配置이나, 紅살門의 位置가 틀어져 있어 참도는 꺾인 軸型이 되었다. 現在의 紅살門은 後代에 옮겨진 듯하며 元來의 位置에 礎石이 남아 있다. 또한 收復房과 水剌間의 位置가 丁字閣 바로 옆까지 올라간 특수한 例에 屬한다. [2]

陵의 正中央에 八角의 長明燈이 있으며 周圍에 潟湖·夕陽·石馬·文人石·武人石·望柱石을 配置했고 陵뒤에는 나즈막한 曲담을 둘렀다. 능밑에는 祭祀를 지내는 丁字閣과 祭祀때 飮食을 準備하던 水剌間, 陵을 지키는 官吏가 살던 收復房이 있고 丁字閣 東便에 陵碑와 비을 세웠다. 正門을 들어서면 左側에 해時計 自擊漏, 關賤待, 測雨器,渾天儀 等 各種 科學器具를 復元해 놓았으며 세종전에는 大王의 業績과 關聯되어 여러 가지 遺物과 資料들이 展示되어 學術의 場으로 活用되고 있다. [1]

해마다 이곳에서 한글날을 전후하여 各種 行事가 열리며, 平素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每年 5月 15日(陽曆)에 世宗大王陵 丁字閣 一圓에서 세종대왕誕辰 崇慕祭典(崇慕祭奠;誕辰日을 記念하여 올리는 祭祀)을 奉行하고 다양한 行事를 開催하고 있다.

갤러리 [ 編輯 ]

各州 [ 編輯 ]

  1. 驪州視聽. “영릉(英陵, 世宗大王)” . 《驪州市 文化觀光》.  
  2. 글로벌 世界대백과사전 》, 〈영릉〉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