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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案 : 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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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케 (也窟)는 몽골 帝國 의 將帥로, 칭기즈 칸 의 동생 週値 카사르 의 長男이다.

高麗 에 侵攻할 當時, 皇帝였던 憲宗 몽케 칸 의 叔父로 1252年에 高麗 朝廷에서 出六環刀를 拒否하자 몽케 칸의 아우인 쏭주와 함께 軍事 10,000名을 거느리고 高麗의 北界로 들어갔다. 自身을 包含한 17名의 大王과 太子들이 各各 病魔를 거느리면서 몽골족, 漢族, 女眞族, 高麗人 等을 뽑아 男系, 北界 等에서 둔전했다. 1253年 5月 19日(6月 16日), 高麗 朝廷에 아도우(阿豆) 等 16名을 使節로 보냈으며, 영녕공 왕준이 몽케 칸으로부터 出六環刀를 說得하라는 命令을 받았다. 6月 初하루에 왕준을 통해 "왕준이 出六環刀를 說得하러 高麗로 갈 때 同時에 軍隊와 함께 出發하라."는 命令을 받아 軍士를 거느리고 高麗를 攻擊하여 火山, 同舟, 春酒, 三角山, 양근, 天龍 等의 城을 陷落시켰으며, 移懸을 錦貝로 꼬셔서 길案內와 함께 여러 誠意 投降을 받았다. 8月 12日(9月 6日), 高麗 朝廷에 '여섯 가지 問題에 對해 追窮하며, 警告의 內容이 담긴 皇帝의 調書'를 보내고, 高麗를 繼續 攻擊했다. 13日(9月 7日)에는 高麗 朝廷에서 派遣한 郎將 최동식이 善處를 비는 書信을 傳하자 出六環刀를 하지 않는 것에 對해 追窮하면서 최동식을 抑留했다. 9月 3日(9月 26日)에 高麗 朝廷에서 大將軍 高熱을 보내 撤軍을 要請하는 便紙를 傳했을 때 膳物을 받으면서도 高熱을 抑留하고, 이송무를 보내면서 모든 고을의 降伏文書를 받아 가지고 오라는 命令을 했다. 9月 29日(10月 22日)에 高熱을 高麗 調整에 보내서 降伏을 要求했다. 10月에는 忠州城을 包圍하면서 함께 從軍한 왕준을 忠州性 攻擊에 參加시켰으며, 11月 3日(11月 25日)에 高麗 朝廷에서 보낸 永安백 王姬, 僕射 김복정으로부터 便紙와 함께 土産物을 받았다. 12月이 되기 前에 忠州에서 病에 걸리면서 占쟁이로부터 오랫동안 滯留하면 돌아가기 어렵다는 말을 듣자 아무間 , 홍복원 等을 忠州에 남겨두어 忠州를 지키게 했으며, 自身은 精銳 起兵 1,000名을 거느리고 北쪽으로 돌아갔다. 高麗 朝廷에서 보낸 永安백 王姬 等이 開京의 補正門 바깥까지 따라와 國家 禮物을 주며 撤兵을 要求했으나, 그 얘기를 들은 後 出六環刀를 하면 軍士를 撤收한다고 責望하면서 몽케다이(蒙古大) 等 10名의 使臣을 보냈다. 22日(12月 14日)에 使節을 보내서 다루가치를 配置하고, 性을 헐어버리겠다는 傳言을 보냈으며, 23日(12月 15日)에 高麗 朝廷으로부터 다루가치 設置 撤回와 性을 허물지 말아달라는 回答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