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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奧地吏吐게 戰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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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奧地吏吐게 戰鬪 ( 日本語 : ?尻峠の?い )는 센고쿠 時代 에 치러졌던 戰鬪 中의 하나로, '갓쓰루土게 戰鬪(勝弦峠の?い)'라고도 한다.

1548年 ( 덴分 17年)에 일어난 우에다하라 戰鬪 에서 다케다 하루老父 무라카미 요시키요 에게 大敗한 事件은, 시나노 豪族 에게 큰 衝擊을 주었다. 特히 스와 군다이(諏訪郡代) 이타가키 老父카打 의 戰士로 因한 스와 脂肪 에서의 混亂은 深刻했다.

經過 [ 編輯 ]

同年 8月 13日 ( 陰曆 7月 10日 ), 하나오카 氏 (花岡氏), 야지마 씨 (矢島氏) 等의 스와 니시카打슈(西方衆)는 오가사와라 나가토키 와 손잡고, 다케다(武田)에의 反共을 일으킨다. 어쩔 수 없이 다케다의 스와 星州代理는, 시나노의 據點 우에하라性 으로 撤退한다.

하루老父는 14日에 軍을 이끌고 出陣하지만, 21日까지 本國 가이 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오가사와라 君의 눈을 속이는 作戰으로, 21日부터 隱密하게 進軍을 서둘러 22日에는 우에하라城에 入城했다. 그리고 같은 날, 시나노 時奧地吏吐게 에 布陣한 오가사와라 軍 5000名을 急襲했다. 放心하고 있던 오가사와라 軍은 虛를 찔려 大混亂에 빠지고, 1000名이 넘는 死亡者를 내고 敗走한다. 하루老父는 部中(府中)을 모조리 태워버리고 가이로 歸還했다.

그런데 實際로 作戰을 指揮한 것은 다케다 노부시게 이며, 하루老父는 最後까지 가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는 說도 있다.

前後 [ 編輯 ]

하루老父는 領地의 基盤을 鞏固히 한 後, 시나노의 오가사와라 領地에 再次 侵攻을 開始했다. 이 때, 다케다에 두려움을 느껴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者가 續出했다. 1550年 (덴分 20年)에는 窮地에 몰린 나가토키가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依支해 멀리 달아난다. 그리고 叛亂을 일으켰던 스와 니시카타슈는 領地를 빼앗기고 추방당한다.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