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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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
原이름: 飛揚島
地圖

지리

位置 南海

面積 0.52㎢

行政 區域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特別自治度 濟州特別自治道
濟州市
翰林邑

人口 統計
人口 166名 (2019年 基準)

民族 韓民族

비양도 (飛揚島)는 濟州特別自治道 濟州市 翰林邑 에 있는 섬이다. 面積은 0.52㎢, 人口는 166名( 2019年 )이다. 《 新增東國輿地勝覽 》에서는 이 섬이 火山 活動에 依해 만들어졌다고 記錄하고 있다. 傳해오는 이야기에는 高麗 穆宗 5年( 1002年 )에 山이 바다에서 솟아 섬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地質 分析 結果로는 約 2萬 7千年 前 當時 氷河期 로 因해 海水面이 내려가 濟州島의 海岸線이 크게 擴張되어 있던 時期에 火山이 爆發하여 形成 된 것이다. 그 뒤 氷河期가 끝나고 海水面이 올라가면서 只今과 같이 섬이 되었다. [1]

位置와 特徵 [ 編輯 ]

濟州特別自治道 濟州市 翰林邑에서 北西쪽 海岸에 있는 섬이다. 섬 模樣은 全體的으로 圓形이다. 最高地點은 114m의 噴火口로 섬의 北쪽에 솟아 있으며, 南쪽은 大體로 平坦하다. 海岸線의 드나듦은 단조로우며 大部分 巖石海岸이다.

비양도는 模樣이 楕圓形의 섬이다. 中央에는 非양봉이 位置해 있다. 그外에도 奇巖怪石들이 海岸 周邊에 여기저기 形成되었다. "애기 업은 돌"이라는 돌도 있다. 非양봉정上에는 燈臺 基準點 그리고 非養蜂 바로 옆에는 雙둥이 크리에이터 (噴火口)가 있다. 비양도 噴火口에는 비양도가 原産地인 비양나무 群落 이 形成돼있다. [2]

비양도는 原始狀態의 火山活動과 關聯한 火山 地質層 火山碎屑物 , 好泥土 等을 비롯해 火山의 痕跡들이 잘 保存돼 있어 火山地質學的으로 價値가 높다.

비양도 東쪽에는 펄랑못 이 자리잡고있다. 펄랑못은 우리나라 唯一의 鹽濕地 로 밀물 때는 海水가 밀려들고 썰물이 되면 다시 淡水湖가 되는 얕은 이다. [3]

現況 [ 編輯 ]

비양도에는 비양나무自生地로 有名하다. 下楸子島 에서 南쪽으로 58.1km에 있으며, 협재리에서 2km 떨어져 있다. 東經 126°14′, 北緯 33°24′에 位置하며, 面積 0.58km 2 , 海岸線길이 3.15km, 人口 205名(1994年 基準)이다. 작은 火山섬으로 섬 全體가 圓形을 이루고 있다.

北쪽으로 높이 114m의 噴石丘(噴石丘)가 솟아 있고, 南쪽의 平坦面에 聚落이 形成되어 있다. 1月平均氣溫 2.9℃, 8月平均氣溫 27.3℃, 年降水量 1,371mm, 年降雪量 215mm이다.

비양도는 漁業을 主로 하고 그外에도 農業을 한다. 特히 80餘種의 魚族이 비양도 周邊에 豐富하다. 논은 없으나 밭 7㏊, 林野 32㏊이다. 主要 農産物은 油菜(油菜)와 고구마·보리·들깨 等을 栽培하고 있다. 主産業은 漁業으로, 主要 漁獲物은 멸치·갈치·防禦이며, 소라·全鰒·海蔘·天草採取 等의 養殖業도 活潑하다.

隣近 本섬의 挾才海水浴場, 협재리의 鎔巖洞窟地帶, 그리고 한림港(翰林港)과의 連結이 容易하여 여름철에는 낚시꾼으로 붐빈다. 敎育機關으로는 한림초등학교 비양分校가 있다. [4]

傳해오는 이야기 [ 編輯 ]

世宗實錄地理志 》(濟州)와 《 新增東國輿地勝覽 》 等에 '비양도(飛揚島)'라 했다. 特히 《 新增東國輿地勝覽 》 濟州목 ‘山川’條에는 “비양섬은 濟州목 西쪽 80里에 있다. 물길은 5里이고, 羊牧場이 있다”라고 記錄되어 있다. 『여지도서』 等의 옛 記錄 속에 ‘상서로운 山’이라는 뜻으로 瑞山(瑞山)이라고도 불리는 山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瑞山, 高麗 穆宗 5年 6月에 山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나왔다. 山에 네 구멍이 뚫리어 붉은 물이 솟아나와 닷새 만에 그쳤는데, 그 물이 모두 엉기어 기와 돌이 되었다. 穆宗 10年에 상서스러운 山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나왔다. 太學博士 전공지를 보내어 가서 보았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山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 地動이 우레 소리 같아 무릇 일곱 날 아침과 밤 만에 비로소 個였다. 山의 높이가 百餘 길이나 되고 周圍가 40餘 里나 되는데 草木이 없고 煙氣가 그 위에 덮이고 바라보기에 石硫黃 演技 같아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敢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公知가 親히 山 밑에 이르러 그 模樣을 그리어 바치었다” 하니 只今 대정현에 屬한다.

『탐라지』(濟州)에도 '비양도(飛揚島)'라 表記했는데, "제주성 西쪽 10里에 있다. 바닷길로 5里에 있고, 둘레는 10里이다. 화살대가 많이 있다."라고 했다. 『古地圖첩』의 「耽羅顚倒」에 '비양도(飛揚島)'라 했고, 西쪽에는 高麗 時代 火山 爆發로 생겼다는 '瑞山(瑞山)'李 그려져 있다.

『濟州三邑度總指導』에는 '비양도(飛揚島)'라 表記했고, '一名 瑞山(一名瑞山)'이라 하여 西山을 비양도에 比定하였다. 『해冬至도』(제주삼현)에는 '비양도(飛陽島)'라 했다. 『瀛州山大塚도』에도 '비양도(飛陽島)'라 했는데, 오름 봉우리를 붉은色으로 漆해 火山碎屑物人 스코리아(송이)를 表現했다. 『大東輿地圖』에는 '비양(飛揚)', 『朝鮮地形度』에는 '비양도(飛陽島)'라했다. 一部 地圖에도 高麗 時代 火山爆發로 形成된 '瑞山'이라 했다고 傳한다.

『남환博物』에서는 瑞山을 더바섬으로 推定했는데, 1707年의 『탐라지刀兵서』나 18世紀 中盤에 編纂된 『濟州三邑度總指導』에는 瑞山이 비양도로 表記되어 있다. 그러나 一部에서는 ‘瑞山이 대정현에 있다’고 했으므로 群山이나 加波島로 보는 境遇도 있다. 1,000年 前 濟州島에는 99個의 봉우리밖에 없어서 100棒을 채우지 못해 對局을 形成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中國 쪽에서 1個의 봉우리가 濟州島를 向해 날아오고 있었는데 한림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한 女人이 轟音에 놀라 집밖으로 나갔다가 이를 보고 가만히 있으면 마을과 부딪칠 것 같아서 멈추라고 소리쳤으며 이로 인해 只今의 位置에 떨어져 섬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傳한다. 《 新增東國輿地勝覽 》에는, 1002年(穆宗 5)에 火山爆發에 依하여 이 섬이 形成된 것으로 記錄되어 있다. [5]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千年의 섬’이 아니라 2萬7000年前 生成 - 강순석 博士의 濟州 地質 이야기, ⑫비양도 , 濟州메일, 2015年 5月 24日
  2. 강순석 博士의 濟州 地質 이야기, ⑫비양도, 濟州메일
  3. 오마이뉴스
  4. 《韓國民族文化大百科》, 비양도(飛楊島) 韓國學中央硏究院
  5. 《韓國地名由來집》 全羅 · 濟州篇, 비양도(飛陽島), 國土地理情報院(2010年)

參考 資料 [ 編輯 ]

  • 「올레 濟州旅行 바이블」, 비양도, 바앤다이닝 저, 想像出版(2010年, 204~205p)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