芳蘭腸 主人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芳蘭腸 主人 〉(芳蘭莊 主人)은 박태원 의 短篇 小說이다. 小說 專門이 單 한 文章 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特徵이다. 藝術家의 가난과 無氣力함을 그리고 있는 小說이다.

槪要 [ 編輯 ]

朴泰遠이 1936年 3月에 具仁會 의 文藝誌 《詩와 小說》 創刊號에 發表한 短篇 小說이다. [1] 小說 專門이 單 하나의 文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特徵이다. 小說 中間中間은 全部 쉼標 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에 딱 하나의 마침標 만이 있을 뿐이다. 小說에 적힌 總 글字 數는 5,558字이며 200字 原稿紙 로 옮겨 쓸 境遇 40枚 分量으로 이효석 의 〈 메밀꽃 필 무렵 〉과 비슷한 分量이다. 卽, 文章 個數만 하나일 뿐 생각보다는 길이가 긴 小說이다. 實際로 KBS2 에서 放映한 스펀지 에서 이 小說이 紹介되었을 때 김경란 前 아나운서가 이 小說을 精讀했는데 正讀하는데 21分이 걸렸을 程度로 생각보다 길이가 긴 小說이다.

登場人物 [ 編輯 ]

  • : 이 小說의 主人公으로 小說의 背景이 된 '芳蘭腸'이란 다방 의 店長이다. 本來 그의 職業은 畫家 인데 300원의 돈을 들여 茶房을 차리고 同僚 藝術家들의 클럽 처럼 活用하고자 했다. 첫 달에는 營業이 잘 되어 利益을 보았으나 그 다음 달부터는 漸漸 營業 實績이 不振해졌고 雪上加霜으로 近處에 競爭 業體가 登場해 더욱 장사가 힘들어져 及其也는 빚만 늘고 女從業員의 月給조차 못 챙겨주게 된다. 가난하고 無氣力한 藝術家를 表現하는 人物로 實際 모델은 朴泰遠의 切親한 親舊였던 以上 이라는 見解가 있다. 實際로 異常은 是認 , 小說家인 同時에 畫家이기도 했으며 '제비'라는 이름의 카페를 차린 적도 있었다. [2]
  • 水經(水鏡) 先生 : 主人公 '그'보다 나이가 많은 親舊 [3] 職業은 小說家 이다. 茶房의 商號가 아직 定해지지 않았을 때 自身의 집 庭園에서 키우는 蘭草 한 분을 直接 運搬해 膳物하면서 相互를 '아름다운 蘭草 가게'란 뜻으로 '芳蘭腸(芳蘭莊)'이라고 지어준다. 以後 主人公이 女從業員에게 月給조차 못 주게 될 程度로 事情이 힘들어졌을 때 그에게 차라리 그 女從業員과 結婚하는 게 어떻냐는 助言을 해주기도 했다. 다른 同僚 藝術家들과 比較하면 그럭저럭 形便은 나은 듯 보이지만 히스테리가 甚한 아내가 있어 이 사람 亦是 無氣力한 藝術家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人物의 實際 모델은 박태원 本人과 以上에게 年上의 親舊였던 小說家 이태준 이라는 見解가 있다.
  • 미사에 : '芳蘭腸' 다방 의 女從業員이다. 本來 水經 先生의 집에서 일하던 下女 였는데 茶房에 젊은 女子가 하나 必要하다는 理由로 10원 月給을 定하고 雇用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茶房의 經營 狀態가 좋지 않아 처음 서너 달 동안만 겨우 10원 月給을 맞춰줬고 그 以後로는 틈 나는 대로 2원, 3원씩 쥐어줬다가 그 以後로는 아예 한 푼도 못 받을 程度로 月給이 滯拂된 狀態이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이 茶房을 떠나지 않고 熱心히 일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主人公이 未安한 마음을 느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 自作(子爵) : 이름은 爵位 自作 과 一致하지만 實際 貴族 이라기보다는 아마도 自作이라는 筆名 을 쓰는 藝術家로 推定된다. 主人公의 親舊로 主人公이 '芳蘭腸'이란 茶房을 차리자 포터블 과 自身이 2~3年 間 愛用한 手製型 蓄音機 , 20餘 張의 黑半 레코드 를 寄附하며 主人公을 돕는다. 그러나 世上 物情에 어두워서 以後 主人公의 茶房이 事情이 어려워지자 "2年 동안 茶房을 어떻게든 維持한 게 神奇하다. 이제 그대로 버티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는 別로 도움 안 되는 助言과 慰勞를 한다.
  • 慢性(晩成) : 亦是 主人公의 親舊로 主人公이 '芳蘭腸'이란 茶房을 차리자 7~8個의 재떨이 를 寄附하며 主人公을 도와준다.

줄거리 [ 編輯 ]

畫家 人 主人公 '그'는 '芳蘭腸'이란 이름의 카페를 차리게 된다. 카페를 차린 첫 달에는 장사가 잘 되는 듯했지만 그 다음 달부터는 손님이 뚝뚝 끊기며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럴 때에 近處에 1,700원 가까운 巨金을 들여 차린 '모나미'란 競爭 카페가 생겨 장사가 더 힘들어지게 된다. 그렇게 2年이란 時間이 지나자 그는 빚만 늘어가게 되었고 女從業員 미사에에게 支給할 10원 月給도 치러주지 못해 어떨 때는 2원, 3원씩 주었다가 그마저도 半 年 後엔 "새 달에 주겠다."는 말만 하면서 아예 한 푼도 못 주는 地境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미사에는 變함없이 가게에 出勤하며 主人公을 돕고 있어 그는 都大體 이 女子는 精神이 어떻게 된 것인가 反問하면서도 未安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苦悶에 빠져 있을 무렵에 어느 날 沐浴湯에서 그는 自身의 나이 많은 親舊이자 카페 이름을 '芳蘭腸'이라고 지어주었던 水經(水鏡) 先生이 "차라리 그럼 미사에와 結婚을 하는 게 어떤가?"라고 助言해 준다. 水經 先生의 助言을 들은 그는 집으로 돌아가 미사에랑 結婚을 할까 말까 苦悶을 했고 괜찮은 方法이라 생각했다. 水經 先生을 못 만난지 오래 되어 오랜만에 그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막상 그의 집으로 가보니 히스테리 에 빠져 있었던 水經 先生의 아내가 男便을 向해 온갖 辱說을 퍼붓고 살림살이를 다 때려부수고 있었으며 水經 先生은 꼼짝도 못하고 아내에게 謝過하며 鎭靜시키기에만 汲汲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水經 先生의 모습을 본 그는 같은 藝術家들의 無氣力함과 孤獨을 共感하며 쓸쓸히 차디찬 가을 바람을 느꼈다는 것이다.

各州 [ 編輯 ]

  1. 성기웅 (2018年 1月). “‘九人會’ 젊은 文人의 슬픈 友情과 사랑” . 新東亞 . 2020年 9月 27日에 確認함 .  
  2. 그 밖에 69 라는 이름의 카페를 차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3. 日帝强占期 때만 하더라도 親舊를 사귀는데 나이를 크게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