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다방 (茶房)은 主로 커피, 茶, 기타 무알콜 飮料를 取扱하는 韓國의 가게이다. 茶房의 다른 말로는 다실, 大戰, 茶집, 수다집 等이 있다.

茶房이라는 單語는 스타벅스 와 같은 커피숍을 指稱할 수도 있다. 스타벅스는 별다방이라고 불리며, 별을 뜻하는 韓國語 낱말인 '별'에서 따왔다.

歷史 [ 編輯 ]

朝鮮後期와 大韓帝國期를 거치면서 韓國이 西歐文化에 接하게 되면서 茶房 같은 施設이 생겨나기 始作했다. 茶房은 茶道의 起源이었다. 茶道는 8~9世紀에 東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成立되었다고 한다. 韓國에는 庶民을 위한 茶道文化가 全無하여 中國, 日本에 비해 茶道文化가 덜 發達되어 있었다. 그러나 茶道文化는 國家的 次元에서 制度化되었다. 文獻에 따르면 統一新羅時代에는 大全員(多院)이라는 茶를 마시는 곳이 있었고, 高麗時代에는 '茶房'이라는 用語가 登場했다. 高麗時代에는 車, 술, 과일 等을 國家가 管掌하였다. 朝鮮時代에는 이러한 傳統을 包括하는 條約을 맺어 祖上에 對한 傳統儀禮와 連結시켰으며, 披露宴에서는 外國 使節을 맞이하기 위해 茶道를 使用하였다. 外國人들이 仁川에 세운 대불호텔과 스튜어드호텔 系列 카페들이 先驅的인 茶房이 됐다. 그러나 1919年 3·1運動 以後 現代的인 機能과 스타일을 갖춘 茶房이 登場했다. 서울 最初의 호텔式 茶房은 1902年 서울 정동 隣近에 建立된 손탁호텔 內에 자리잡았다. 獨逸系 러시아人 손탁 氏의 作品이다. 이 호텔은 駐韓 外國 外交官들을 위해 지어졌다.

1923年頃 現代的인 茶室이 登場하기 始作했다. 明洞의 '後타미', 충무로의 '金剛山'이라는 日本 所有의 다실 두 곳이 처음으로 設立된 것도 이때였다. 特히 後타미는 레스토랑이라기보다는 커피숍을 닮은 現代式 茶집의 形態를 取했다. 1927年 映畫監督 이경선이 관훈동 入口에 '카카두'라는 茶室을 열었다. 카카두는 韓國人이 運營하는 最初의 茶房이라고 볼 수 있다. 1929年 鍾路2가는 朝鮮YMCA會館 近處에 '멕시칸 카페'를 열었는데, 그 主人은 俳優 김용규와 시명이었다. 椅子, 테이블 等 內部 아이템의 選擇과 配置는 文化의 綜合的인 作業과 畫家, 寫眞家, 舞臺 裝置 等의 協業을 의미한다고 한다. 1930年代 소공동에 '樂浪가파라'가 登場하면서 初期 舞踊家들의 文化愛好家 雰圍氣에서 벗어나 利潤에 注目한 本格的인 茶집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明洞의 러시아式 다방 '트로이카', 音樂茶房 '에리사', 프랑스式 다방 '미모사', 獨逸式 다방 '윈', 週刊音樂會 '돌체'로 有名한 '푸가로' 서울驛 앞에서 離別의 場所로 使用된 '은 茶房文化의 先驅者들이다. 以後 커피숍은 第2次 世界大戰 말과 함께 衰退 狀態에 빠졌고, 1941年 太平洋 戰爭으로 雪糖과 커피 輸入이 遮斷된 以後 門을 닫게 됐다. 8·15 解放과 6·25 戰爭을 거치면서 以前의 다방 스타일은 漸次 사라지고 商業用 카페로 變貌했다. 1953年 韓國戰爭 直後 文化施設이 不足해지자 茶房은 綜合藝術의 空間 役割도 했다.

1950年代 茶道는 社會貢獻活動으로 高位職 失業者들의 聖地였다. 카카두 以後 한가람, 아시아, 京城, 그래머 等 文化茶房에서 明洞처럼 商業茶房으로 탈바꿈한 카페들이 많이 생겼다.

1960年代 以後 茶房은 知識人階級의 男子 師父가 아닌 女子 師傅가 面마삼, 計算臺, 料理師 等을 하는 體制로 變貌하였다. 1970年代부터 다방 客室은 華麗한 裝飾으로 꾸며져 있다. 사람들은 茶의 맛보다는 商業的인 만남의 便利함 때문에 茶房을 찾는다. 事務室이 없는 雇用主도 多房電話를 業務用으로 活用해 茶房에서 일하는 祕書와 去來를 하기도 했다. 特히 1970年代 동서식품의 인스턴트 커피 生産이 始作되면서 韓國人들이 집에서 커피를 마시기 始作하면서 커피숍은 漸次 高級化되고 專門化되기 始作했다. 1970年代는 젊은 DJ들이 모이는 音樂 專門 커피하우스가 꽃피웠던 時期이기도 했다. 1980年代에는 車 價格의 自律性과 함께 다양한 種類의 車와 높은 價格, 고급스러운 室內 裝飾을 갖춘 커피숍이 많이 생겨났다. 체인店과의 茶道는 '난다랑', '00갤러리'로 始作되었고, 夜間通禁제가 廢止되면서 大都市에는 深夜茶室이 登場하게 되었다. 1990年代 커피머신의 普及과 飮料의 高級化, 名品 茶房의 增加로 茶房은 漸次 설 자리를 잃어갔다. 一部 커피숍에서는 '茶房'이라는 이름을 繼續 使用하고 있다. 賣春婦를 運營하는 이른바 '티켓茶房'李 地方 곳곳에서 盛行하면서 茶道에 對한 否定的인 이미지가 스며들었다.

現代 [ 編輯 ]

解放 以後 1975年 茶道 制限이 解除된 以後 每年 茶道 回數가 늘어났다. 그러나 茶房의 數는 1992年 約 45,000個를 頂點으로 1997年 外換危機 以前에는 約 33,000個로 減少하기 始作했다. IMF 危機 以後 茶房의 數가 小幅 늘어났지만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는 못했다. 最近에는 커피숍의 數가 急激히 줄어들고, 國內外 브랜드 프랜차이즈 等 카페와 專門店이 그 자리를 代身하고 있다.

같이 보기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