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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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손 막달레나
殉敎者
出生 1796年
서울 [1]
腺腫 1839年 9月 26日
서울 西小門
敎派 로마 가톨릭교회
諡福 1925年 7月 5日 敎皇 비오 11歲
諡聖 1984年 5月 6日 敎皇 요한 바오로 2歲
祝日 9月 20日

박봉손 (朴鳳孫, 1796年 ~ 1839年 9月 26日 )은 朝鮮 天主敎 迫害 때에 殉敎 韓國 天主敎 103位 成人 中에 한 사람이다. 洗禮名 막달레나 (Magdalena)이다.

生涯 [ 編輯 ]

박봉손은 漢陽 의 한 異敎徒 집안에서 태어났고, 15歲에 異敎徒 男性과 結婚해서 두 딸을 두었다. 그女는 男便이 죽자 漢陽의 親庭으로 돌아왔다. 그 後 그女의 繼母 金 체칠리아 가 그女를 說得하여 1834年 에 박봉손은 天主敎 信者가 되었다. 그女는 西小門 밖에 있는 繼母의 오빠 집에서 살았다. 그 마을에는 十數名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박봉손은 自身을 돌볼 틈도 없이 親切하게 그들을 보살폈다. 그女에 對한 한 證言에 따르면, 그女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 과 이웃에 對한 사랑과 獻身에 感服했다고 한다.

1839年 己亥年에 迫害 가 일어나자 마을의 여러 敎友들은 避身하였지만, 그女는 집에서 홀로 조용히 逮捕 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女는 7月 初에 暫時 집에 들른 外三寸과 같이 逮捕되었다. 그女가 捕盜廳 刑曹 에 있는 내내 그女에게 激甚한 刑罰 拷問 이 繼續되었다. 그女는 背敎할 것과 敎友들을 告發하기를 강요받았지만, 거듭하여 拒絶했다. 그女의 다리는 周牢刑으로 뒤틀렸고 激甚하게 매질을 當하면서도, 그女는 하느님 을 위해 죽겠다고만 말했다.

박봉손은 結局 死刑 을 宣告 받고 1839年 9月 26日 西小門 바깥에서 여덟 名의 敎友와 함께 斬首 되었다. 그女가 영광스럽게 殉敎하던 그때 그女의 나이 44歲였다.

諡福 · 詩聖 [ 編輯 ]

박봉손 막달레나는 1925年 7月 5日 로마 聖 베드로 廣場 에서 敎皇 비오 11歲 가 집전한 79位 [2] 諡福式 을 통해 福者 품에 올랐고, [3] 1984年 5月 6日 서울特別市 汝矣島 에서 韓國 天主敎 創立 200周年을 記念하여 訪韓한 敎皇 요한 바오로 2歲 가 집전한 미사 中에 이뤄진 103位 諡聖式 을 통해 成人 품에 올랐다.

參考 文獻 [ 編輯 ]

各州 [ 編輯 ]

  1. http://newsaints.faithweb.com/martyrs/Korea1.htm
  2. 〈103位 成人 (百三位聖人)〉 . 《韓國 브리태니커 온라인》. 2014年 10月 19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4年 11月 16日에 確認함 .  
  3. 이상도 (2014年 7月 24日). “敎皇, 和解와 平和..8月의 크리스마스되길” . 평화방송. 2014年 10月 17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4年 11月 16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