滿堂
(卍黨)은
日帝强占期
동안 組織되었던
佛敎
系列의 祕密 組織이다. 抗日 性向의 團體로 評價된다.
[1]
結成과 活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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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運動
以後
1920年代
에 活潑히 展開되었던 靑年 僧侶들의 움직임이 여러 가지 限界로 인해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祕密結社 組織인 滿堂이 胎動되었다.
1924年
以後 자주 交流하던
이용조
,
兆學諭
,
김상호
,
김법린
이 뜻을 모아
1930年
5月에 1次 結社가 組織되었다. 以後 2次 結社, 3次 結社로 晩唐에 共感하는 僧侶들이 次例로 合流하였다.
滿堂의 黨首로는
한용운
이 推戴되었다. 그러나 晩唐에서의 韓龍雲의 役割에 對해서는 相反되는 證言이 있다. 이용조는 韓龍雲을 黨首로 推戴했을 뿐 韓龍雲에게는 이 事實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證言했으며,
박영희
는 韓龍雲의 直接 指示로 滿堂이 組織되었다는 證言을 남겼다.
祕密結社인 晩唐의 組織이나 活動에 對해서는 仔細한 內容이 알려지지 않았다.
최범술
은 回顧錄에서 自身이 住持로 있던
다솔사
에 黨員들이 모여들어 一種의 集合處 役割을 했다고 主張했으며, 韓龍雲은 精神的 支柱 役割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綱領에 따르면 活動 目標는 佛敎의 大衆化와 敎團 革新에 力點을 두었다.
沈滯와 解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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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唐은
朝鮮佛敎靑年總同盟
이라는 團體를 組織하여 公開 活動으로 轉換하였다. 滿堂 黨員들이 朝鮮佛敎靑年總同盟에서 核心的인 役割을 맡았다.
1932年
에
朝鮮佛敎中央敎務員
增資 問題로 內紛이 發生하면서 沈滯되기 始作했다. 黨員 김상호는 晩唐 組織의 反對에도 中央敎務院 幹部 자리에 올랐다. 一部 黨員들을 除去하자는 强勁論과 이를 反對하는 穩健論이 맞서면서
1933年
에 解體되었다.
中日 戰爭
勃發 後인
1938年
무렵부터 晩唐 黨員들이 續續 逮捕되는 일이 發生했다는 證言이 여럿 있으나, 審問調書나 裁判 記錄은 傳하지 않는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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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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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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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희승 (1999年 12月 1日). 《이제 僧侶의 入城을 虛함이 어떨는지요》. 서울: 들녘. 273쪽쪽.
ISBN
8975271463
.
日帝 强占期의 佛敎 團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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