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兗 京畿道知事가 꽤 좋게 나왔던데 細部 데이터 좀 求할 수 있을까요?” 동아일보가 來年 4·10總選을 300日 앞두고 實施한 首都圈 輿論調査 結果가 報道된 뒤, 한 野圈 人士는 通話에서 “首都圈 廣域自治團體長 職務遂行 評價 結果가 눈에 띄더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番 調査에서 吳世勳 서울市長, 金東兗 京畿道知事, 유정복 仁川市長 모두 肯定 評價가 40%臺를 記錄했지만, 細部 內容을 뜯어보면 金 知事의 成績表가 唯獨 괜찮았다는 意味다. 여기에 金 知事는 京畿道民을 對象으로 한 次期 大選 走者 評價에서도 躍進했다. 只今 汝矣島의 關心은 채 1年도 남지 않은 22代 總選에 쏠려 있지만, 물밑에서는 2027年 大選을 向한 競爭도 이미 始作된 狀況. 自然히 人口 約 1361萬 名(5月 末 基準)으로 全國 最大 廣域自治團體인 京畿道의 道程을 管轄하는 金 知事의 行步를 두고 政治權의 關心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金 知事는 現在 더불어民主黨의 主軸 勢力인 親命(親李在明)도, 親文(親文在寅)도, 86그룹(80年代 學番, 60年代生)도 아닌 獨特한 政治的 位置를 갖고 있다.● 金東兗, 中道-保守 有權者層에서도 ‘肯定’이 높아동아일보가 實施한 首都圈 廣域自治團體長 職務遂行 評價에서 金 知事는 肯定 評價 48.5%, 不定 評價 19.5%를 記錄했다. 吳 市長은 肯定 評價(44.2%)와 不定 評價(41.4%)가 誤差範圍 內를 記錄했고, 유정복 仁川市長은 肯定 評價(41.9%)가 不定 評價(33.9%)보다 誤差範圍 밖에서 앞섰다(표본오차는 95% 信賴 水準에 ±3.5%포인트. 응답률은 서울 京畿 9.0%, 仁川 9.6%. 仔細한 內容은 中央選擧輿論調査審議委員會 홈페이지 參考). 唯一한 野黨 所屬 首都圈 廣域團體長인 金 知事가 가장 낮은 不定 評價를 記錄한 것. 特히 金 知事는 進步 性向의 有權者는 勿論이고 中道, 保守 性向의 有權者들로부터도 厚한 評價를 받았다. 自身의 理念 性向이 ‘中道’라고 答한 京畿道民의 50.3%는 金 支社의 道政 運營에 對해 肯定 評價를 내렸다. 保守 性向의 京畿道民을 對象으로 한 調査에서도 肯定(39%)李 否定(32.4%)보다 높았다. 次期 大選 候補 支持度 調査에서도 金 知事는 안房인 京畿道에서 가장 宣傳했다. 京畿道民 802名을 對象으로 한 調査에서 次期 大選 候補 支持率은 민주당 李在明 代表(31.3%), 한동훈 法務部 長官(15.3%), 吳 市長(12.1%), 洪準杓 大邱市長(7.2%) 順이었다. 그리고 5位 金 知事(6.0%), 6位 민주당 이낙연 前 代表(5.1%)로 集計됐다. 서울, 仁川, 京畿 地域 調査에서 金 知事가 5位圈 內에 入城한 건 競技가 唯一했다. 이에 對해 野圈 關係者는 “큰 隔差는 아니지만 競技 地域 有權者들이 金 知事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는 意味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 民主黨 入黨 1年 만에 ‘代案’ 浮上 이런 調査 結果에 對해 京畿道 關係者는 “民生이 어려운 狀況에서 次期 大選 輿論調査 推移 等에 對해서 큰 神經을 쓸 狀況은 아니다”라면서도 “金 知事의 投資 誘致 等 成果나 安定的 道政 運營, 公職社會 革新 努力에 對한 評價와 期待値가 反映된 結果라고 본다”고 말했다. 金 知事 周邊에서는 “各種 輿論調査의 推移를 보면 金 知事가 野圈 政治人으로 本格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實際로 輿論調査機關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16日부터 17日까지 實施한 調査 結果 ‘李 代表의 代案은 누구인가’를 묻는 質問에 金 知事는 李 前 代表, 金富謙 前 國務總理 等과 角逐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文在寅 政府의 招待 經濟部總理 兼 企劃財政部 長官인 金 知事는 事實 민주당 所屬이 된 지 1年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다. 政治權에 발을 들인 지도 채 2年이 안 됐다. 反面 行政 官僚로 살아온 歲月은 훨씬 길다. 덕수상고를 卒業한 그는 1982年 行政考試에 合格하며 公職 生活을 始作했다. 經濟企劃院(現 企財部) 事務官부터 經濟副總理까지 오른 正統 經濟 官僚 出身이다. 補修, 進步 政權이 交叉하는 동안에도 그는 乘勝長驅했다. 京畿道知事 就任 1年을 맞아 進行된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金 知事는 公職 生活에 對해 이같이 說明했다.“제가 大統領을 여섯 分 모셨다. 김영삼 大統領부터 김대중 李明博 大統領도 靑瓦臺에서 모셨다. 노무현 政府 때는 企財部 局長을 하면서 ‘비전2030’을 만들었고, 朴槿惠 政府 때는 長官級 國務調整室長을 하면서 2週에 한 番씩 大統領에게?보고를 했다. 文在寅 政府 때는 제가 經濟副總理를 했으니 (大統領) 여섯 분을 모신 셈이다.” 經濟副總理를 끝으로 公職을 떠났지만, 選擧 때마다 汝矣島에서는 ‘金東兗’이라는 이름이 膾炙됐다. 민주당의 한 議員은 “經濟 專門家도 찾기 어렵지만, 淸溪川 無許可 板子村 出身으로 副總理까지 오른 사람이 只今 大韓民國에 몇 名이나 있겠나”라고 했다. 민주당에서는 2020年 總選, 2021年 서울市長 補闕選擧를 앞두고 金 知事 出馬說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第3의 길을 擇했다. 2021年 9月 ‘새로운물결’을 만들어 大選 挑戰을 宣言한 것. 다만 讀者 路線은 오래가지 못했다. 金 知事는 지난해 3·9大選 直前 이 代表와 單一化를 宣言했다. 以後 새로운물결은 민주당과 合黨했고, 그는 지난해 6·1地方選擧에서 民主黨 京畿道知事 候補로 나가 當選됐다. 京畿道를 選擇한 理由에 對해 金 知事는 지난해 3月 道知事 出馬 宣言에서 “제 人生의 折半을 光州, 城南, 果川, 安養, 儀旺에서 살았다. 公職과 大學 總長을 하며 20年을 京畿道에서 일했다. 누구보다 京畿道를 잘 알고, 깊은 愛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出馬 宣言을 京畿 城南市 단대동에서 한 것도 幼年 時節 청계천 板子집이 撤去되면서 城南으로 强制 이주돼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金東兗, ‘징크스’와 ‘禁忌’ 깰 수 있을까“말 그대로 血鬪 끝에 當選됐지만, 金 知事가 京畿道를 擇한 건 결론적으로 좋은 選擇이 됐다. 민주당 李在明 代表가 스스로 景氣를 떠나 仁川으로 向하면서 京畿道가 無主空山이 됐기 때문이다.” 한 政治權 人事는 京畿 地域 狀況에 對해 이렇게 評價했다. 59席(21代 總選 基準)으로 全國 市道 中 가장 規模가 큰 京畿道의 盟主가 없는 狀況에서 金 知事가 道政을 이끌게 됐다는 意味다. 當初 政治權에서는 國民의힘 出身인 南景弼 前 京畿道知事가 京畿 出身의 次世代 走者軍으로 꼽혀 왔다. 南 前 知事는 경기도청이 있는 水原에서만 내리 5線에 成功했고, 京畿道知事까지 지냈다. 하지만 그는 2019年 政界 隱退를 宣言했다. 以後 景氣를 代表하는 政治人은 李 代表의 몫이 됐다. 李 代表는 1989年 성남에서 辯護士 生活을 始作했고, 2018年 南 前 知事를 꺾고 京畿道知事가 될 때까지 城南을 떠나지 않았다. 李 代表는 道知事 在任 期間 동안 水原에 있는 경기도청과 京畿道知事 公館을 基盤으로 大選 挑戰을 위한 支持 基盤을 構築했다. 이를 土臺로 執權 與黨의 大選 候補 자리까지는 거머쥐었지만, 이 代表도 ‘京畿知事 징크스’를 넘지 못했다. 1995年 民選 道知事 時代 開幕 以後 任期 1年 만에 拘束된 임창렬 前 知事를 除外한 모든 京畿道知事는 大權에 挑戰했지만 勝利하지 못했다. 李仁濟 孫鶴圭 金文洙 南景弼 前 知事에 이 代表까지 더해 5名이 苦杯를 들었다.‘경기지사 징크스’ 克服을 위한 또 다른 課題로는 黨內 支持 基盤 構築이 꼽힌다. 文在寅 政府 靑瓦臺에서 일했던 한 人士는 “事實 金 知事가 經濟副總理로 일할 때도 靑瓦臺, 민주당 사람들과 活潑히 交流한 건 아니었다”며 “來年 總選에서 京畿 地域 當選者들을 中心으로 ‘親金東兗’ 勢力 構築에 나서려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汝矣島 經驗이 없었던 이 代表도 京畿 地域 議員들이 主軸이 된 ‘7湮晦’를 통해 세 擴張에 나서고 大選 候補 자리까지 차지했다. 다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金 知事가 旣存의 政治 文法과 다른 方式을 苦悶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實際로 金 知事는 大選 挑戰을 宣言하며 ‘政治改革’을 앞세웠다. 李 代表와의 單一化 發表 當時에도 “經濟副總理까지 하면서 아무리 올바른 經濟政策을 만들어도 政治가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體驗했고 그게 政治에 뛰어든 契機였다”고 했다. 또 그는 就任 1周年을 맞아 進行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年의 成果로 가장 먼저 “돈 버는 道知事”를 꼽았다. 그間 민주당을 包含한 進步 陣營 政治人들과는 完全히 다른 接近이다. 金 知事는 “進步는 經濟 成長에 有能하지 않다는 觀念을 깨려고 했는데, 實際로 市場 原理에 맞게 經濟를 活性化시키기 위해 國內外 投資를 많이 誘致했다. 約束한 대로 (任期) 4年 동안 100兆 원 以上의 投資 成果를 내겠다”고 했다. 通常 退任한 經濟副總理들은 政黨의 公薦을 받아 國會議員이 되거나 經濟團體長을 지내는 것이 一般的이었지만 金 知事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政治에 뛰어들기 전 ‘大韓民國 禁忌 깨기’라는 題目의 冊을 냈던 金 知事는 實際로 旣成 政治人들과 다른 行步를 꿈꾸고 있다. 金 知事가 징크스와 各種 禁忌를 깨뜨릴 수 있을지, 아니면 挑戰 끝에 挫折을 겪게 될지는 3年 後엔 어느 程度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상준 記者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