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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記者 購讀|東亞日報
변영욱

변영욱 記者

동아일보 寫眞部

購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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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寧하세요. 변영욱 記者입니다.

cut@donga.com

取材分野

2024-04-15~20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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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사람들은 언제부터 圖章을 使用했을까?[청계천 옆 寫眞館]

    ▶서울歷史博物館長(최병구)은 29日 2023年 서울未來遺産 記錄 事業의 結果를 묶은 調査報告書 『서울의 印章舖』를 發刊했다고 밝혔다. 서울未來遺産記錄 事業은 2020年부터 近現代 市民들의 生活史를 主題別로 整理하는 作業이다. 이番에 發刊된 『서울의 印章舖』는 네 番째 作業이며 그 前에 發刊된 報告書는 ?낙원떡집 ?서울의 대장間 ?서울의 이용원이었다. 서울驛沙鉢물館에서 作成한 報道資料와 參考이미지를 바탕으로 하되, 東亞日報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寫眞을 追加해 近現代史의 한 斷面을 ‘圖章 가게’라는 키워드로 살펴보았다. ▶印章舖는 말 그대로 印章을 製作하는 가게이다. 只今은 ‘컴퓨터 圖章’이라고 불리는 機械 조각 印章이 登場했지만 그 前에는 사람이 直接 手作業으로 깍아서 圖章을 만들었었는데 그 作業을 했던 가게에 對한 記錄이다. ▶朝鮮時代 韓國의 印章은 크게 璽寶(璽寶), 관인(官印), 死因(私印)으로 區分된다. 個人이 使用하던 人丈人 死因(私印)은 書畫(書?)의 樂觀(落款)이나 書籍의 藏書印(藏書印) 程度에 그쳤다.인장이 普遍的으로 使用된 것은 日帝强占期 以後의 일이다. 朝鮮總督府가 朝鮮에서 日本人의 經濟活動을 合法的으로 保護하고, 朝鮮人들의 經濟活動을 統制하기 위한 手段으로 1914年에 「人間證明規則」을 頒布하며 强制 導入됐다. 國家次元에서 印鑑 使用을 强制하면서 印鑑 圖章을 만드는 가게도 成業하게 된 것이다. ▶ 1974年에는 「國家技術資格法」의 施行으로 引張工藝機能社(1級· 級·技能士補)資格試驗 制度가 導入됐다. 하지만 凝視 需要 減少로 인해 2004年에 廢止됐다. 2000年代 들어 컴퓨터 印章 製作과 署名 去來價 一般化되고, 公認認證書 導入 等을 거치며 印章業은 줄곧 斜陽産業의 길을 걷고 있다. 한便, 2000年代 以後 印章은 文化商品으로서의 價値를 擴張하고 있다. ‘胎줄 圖章’이나 ‘水制 圖章’이라 불리는 캘리그래피 디자인 한글 印章이 代表的이다.▶ 이番 서울역사박물관의 調査 結果, 서울에서 1950年代부터 活動해 온 오래된 印章舖 5곳과 印章 名將들이 새삼 照明을 받았다. 朴人當(博印堂), 거인당(巨印堂), 玉璽當(玉璽堂),餘原電人幇(如原篆印房), 인예랑(印藝廊) 等 5곳이다. ▶報告書는 서울 印章舖의 特性으로 첫째, 都市化 過程에서 손재주 있는 地方 사람이 서울에 定着하면서 擇한 業種 中에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6.25 戰爭이 끝나고 生計 手段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모였는데 이 中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社長님’이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業種이 印章業이었던 것이다. 冊床만 있으면 創業할 수 있는 業種이기 때문이다. 이番에 調査한 서울의 引上抛 5곳 모두 1950年代 以後 上京한 志望民이 運營한다는 共通點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漢字를 工夫했고 손재주를 武器로 서울에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서울에서 印章舖 하는 사람들은 5·16 以後에 다 地方에서 온 거예요. 그때부터 서울에 會社가 많이 생기고 일이 많았으니까요. 반도호텔 近方이 다 會社였어요. 옛날에는 官公署에서 文書를 處理하는 데 使用하는 印章이 300~400種에 달했어요. 그래서 技術을 가진 사람들이 좋았죠. 印章을 다 손으로 새길 때니까 印刷 技術者보다 印章 技術者가 훨씬 벌이가 좋았어요.” 유태흥(남, 1941年生, 거인당) 인터뷰.▶서울 印章舖의 두 番째 特性으로는 類似 業種과 空間을 共有한다는 點이다. 서울의 높은 賃貸料를 堪當하며 내 店鋪를 마련하기 어려운 狀況에서 印章舖는 다른 業種과 空間을 共有하는 方式을 積極的으로 活用해왔다. 引張 作業에는 넓은 空間이 必要하지 않기 때문에 可能했는 데 印章業에서는 이를 ‘겹살이’라 부른다. 特히 類似 業種인 印刷所, 文具店 等의 한쪽 空間을 利用해 營業하는 境遇가 많았다. 都心에 있는 大型 文具店이나 창신동과 인현동의 印刷所에는 ‘人帳簿’가 있었다.“1964년에 乙支路5街에 있는 印刷 가게 門 앞에 冊床 하나 빌려서 獨立을 했어요.”박호영(남, 1938年生, 朴人當) 인터뷰“가게에 冊床 하나씩 빌려주고 자릿貰를 받았어요. 우리 집에 많을 때는 彫刻社加한 5~6名 있었어요. 그래서 1970年代부터는 圖章은 안 새기고 그냥 세 받으면서재료만 取扱했죠.“ 박순옥(남, 1930年生, 靈光인재사) 인터뷰▶서울 印章舖의 세 番째 特徵은 都市 發展에 따라 浮沈을 겪었다는 點이다. 서울은 1960年代부터 1980年代까지 30年 동안 壓縮成長을 했다. 1970年代 江南開發이 本格化하기 以前 서울의 主要 施設과 企業體는 四大門 안쪽 地域에 密集했다.당연히 그 時期 서울의 印章舖는 代表的인 商店街인 鍾路와 충무로 一帶에 자리했다. 以後歐露工團, 汝矣島 開發 等 굵직한 都市 開發을 쫓아 印章舖度 移動해 營業을 이어갔다.“내가 印章 배우면서 처음 했던 곳은 다棟 58番地였어요. 거기서 先生님하고 같이 일하다가 그 옆으로 옮기고, 또 옮기고 그랬죠. 또 구로工團 韓日銀行 바로 옆에 있다가 軍隊 갔다 와서 1977年에 대일사를 開業했어요. 거기서 2年 있다가 汝矣島 국민은행 本店이 있는 中央빌딩으로 옮겼죠. 1980年에 汝矣島 처음 갔을 때만 해도 풀밭이었어요.” 조규호(남, 1957年生, 韓國人場協會 會長) 인터뷰 1960年代 後半부터 서울에서는 現代式 高層 建物과 넓은 道路를 建設하고,주차장과 公園을 만들어 都心을 現代化·高度化하는 ‘都心再開發’ 事業이 展開됐다.이에 따라 都心의 底層 苦蜜 建物의 商家를 賃借한 印章舖들은 都心再開發과 함께잦은 移轉을 하며 浮沈을 겪었다.“지금 영풍문고 짓기 前에 그 앞에 가게들이 쭉 있었어요. 그中 하나를 保證金 50萬 원에 얻었어요. 空間은 한 坪도 안 됐어요. 손님 하나 들어오면 꽉 車는 가게였어요. 그렇게 1年 半쯤 했는데 빌딩 짓는다고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더라고요. 保證金 50萬 원에 위로비 150萬 원을 받아서 구몬빌딩에 480萬 원짜리 가게를 얻었어요. 거기서 한 10年 했죠. 그런데 또 빌딩 짓는다고 비워달라는 거예요.” 박호영(남, 1938年生, 朴人當) 인터뷰▶ 서울歷史博物館 최병구 館長은 “印章은 우리나라와 日本, 臺灣 等 東아시아 一部 國家의 특수한 文化임에도 不拘하고, 獨創性과 藝術性을 지닌 수조각(手彫刻) 印章의 戰勝 斷絶이 憂慮되는 狀況이다. 이番 調査를 통해 印章 細工 技術과 道具를 現場 調査 方式으로 생생하게 記錄해냈다는 點에서 앞으로 貴重한 資料가 될 것으로 期待한다.”라고 傳했다. 『 서 울 의 人 腸 抛 』 兆 사 步 故 서 는 서 울 驛 사 박 물 管 누 리 집(http://museum.seoul.go.kr)에서 閱覽할 수 있다. 購入은 서울冊房(https://store.seoul.go.kr) 또는 서울歷史博物館 내 記念品店에서 可能하다. (價格 14,000원, 問議 02-739-7033).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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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肺종이팩 다오, 새 化粧紙 줄게

    25日 서울 永登浦區 新吉5棟 住民센터에서 廢종이팩을 返納한 住民이 두루마리 化粧紙를 받아 가고 있다. 영등포구는 再活用 活性化를 위해 廢乾電池 20個를 모아 오면 새 乾電池 2個로, 牛乳팩 等을 헹궈서 乾燥해 가져오면 3kg當 두루마리 化粧紙 1個로 交換해주는 事業을 한다고 밝혔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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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유는 나를 봤으면 좋겠고, 그는 다른 곳을 보았으면…권력이 나를 본다는 것[淸溪川 옆 寫眞館]

    ▶100年 前 新聞에 실린 寫眞을 통해 오늘을 생각해보는 [百年寫眞]입니다. 오늘은 두 張의 人物 寫眞을 準備했습니다. 于先 女性 두 名이 카메라를 向해 환하게 웃고 있는 寫眞입니다. 題目은 ‘社會奉仕하는 두 女子’입니다.기사를 읽어보니 幼兒死亡率이 높은 朝鮮의 狀況을 걱정해 美國 監理敎가 派遣한 美國人 女醫師 ‘로船腹’(왼쪽)氏와 朝鮮人 産婆 ‘阪神狂’氏가 無料 診療 奉仕를 이어가고 있다는 스토리입니다.다음 寫眞을 보겠습니다. 콧鬚髥의 白人 男性이 카메라를 凝視하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題目을 보니 ‘英國 內閣 組織의 大名을 受諾한 勞動黨 樹齡 맥도날드氏’입니다. 英國 런던 발 記事인데, 勞動黨 總裁 濫製 맥도날드氏가 次期 英國 內閣의 首長이 되었다는 뉴스입니다. ▶優先, 寫眞 속 모델들이 모두 正面을 바라보고 있지만 느낌이 完全히 다릅니다. 한 張은 奉仕의 따뜻한 溫度가 傳達되는 反面, 男性의 寫眞은 지난주 韓半島를 强打했던 寒波만큼 서늘한 느낌을 줍니다. 當時 카메라 技術로도 充分히 웃는 모습을 撮影할 수 있었지만 차가운 表情으로 포즈를 醉했었네요. 저 男性이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좀 따뜻했을까요?▶100년이 지난 요즈음 出勤하는 地下鐵驛에는 4月에 치러지는 國會議員 選擧에 나갈 豫備候補들이 名銜을 들고 市民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빠듯한 出勤 時間이라 一旦 名銜을 건성으로 받은 後 地下鐵 플랫폼에서 列車를 기다리며 들여다보게 됩니다. 候補者들 視線의 方向이 어떤가요? 여러분을 正面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아니면 虛空이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나요? ▶正面을 바라보는 寫眞은 强한 感情을 傳達합니다. 웃음도 차가운 表情도 모두 正面일 境遇 强하게 腦裏에 남습니다. 몇 年 前 시리아 爆擊으로 傷處를 입었던 어린아이가 앰블란스 椅子에 앉아 茫然自失한 表情으로 正面을 보고 있는 寫眞이 地球人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프리카 救護 團體의 포스터에 登場하는 어린아이들도 우리의 눈을 正面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입니다. 國會議員에 나오려는 候補들은 거의 正面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新人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感情을 건드리는 正面 샷은 때로는 보는 사람을 거북하게 하기도 합니다. 特히 廣告에서 視線을 끌기 때문에 效果가 있다는 ‘3B’(Beauty, Baby, Beast ? 美人, 아기, 愛玩動物)가 아닐 境遇 보는 사람이 不便할 可能性이 높습니다. 新聞에 실리는 人物 寫眞 中에서 正面을 바로 보는 寫眞은 할 얘기가 分明한 인터뷰 對象者이거나 本人이 만든 製品을 廣告하거나 자랑거리가 있는 사람들 모습입니다. 政治人이나 權力者가 正面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 人事를 하러 世上에 나왔거나 아니면 權威를 强調하기 위한 裝置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잘 생각해보시면 낯설고 나이 많은 男性이 우리를 바라본다면 때로는 威脅을 느끼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茶筅 議員이나 認知度가 높은 人物들의 境遇, 名銜이나 포스터 속에서 理想鄕을 바라보듯이 視線 處理를 하는 境遇도 있습니다. 이때는 카메라 밖을 바라봅니다. ▶꼭 正面을 보는 寫眞을 名銜이나 포스터에 使用해야 할 境遇 或은, 그리고 本人이 3B의 要素가 주는 魅力과 멀다고 느낄 境遇 어떻게 해야할까요? 最小限 2024年 大韓民國에서는 웃어야 할 것 같습니다. 100年 前 英國 勞動黨 黨首 같은 無表情한 表情은 選擧 必敗의 要素가 되기 十常이니까요. 아무래도 只今은 有權者 優勢 市場 아니겠습니까?▶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至極히 個人的인 생각입니다. 老鍊한 政治人들은 新聞에 실리는 寫眞이 찍힐 때도 視線 處理를 잘합니다. 얼굴은 正面이지만 妙하게 눈은 讀者를 正面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잘 보면, 카메라를 凝視하는 視線이 아닙니다. 어쩌다 카메라를 본다고 하더라도 正面에 있는 司會者를 보거나 누군가와 疏通하는 視線이지 카메라 記者들을 向해 포즈를 取하는 視線이 아닌 境遇가 大部分입니다. 勿論, 正面을 凝視하는 寫眞은 보는 사람에게 ‘나는 숨기는 게 없다, 正直한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준다는 主張도 있습니다. 1960年度 美國 大統領 討論會에서 케네디는 닉슨에 비해 카메라를 直接的으로 凝視하는 時間이 훨씬 길었고 젊은 外貌와 함께 視聽者들에게 强烈한 印象을 줌으로써 勝利했다는 古典的 證據도 있습니다. 하지만 理論과 實際는 差異가 있을 수 있습니다. 時代도 다르고 文化 背景이 다르다면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지난週 한동훈 國民의힘 非對委員長과 김경율 非對委員 寫眞을 보면서 저는 語塞함을 느꼈습니다. 當時 寫眞에 붙은 說明은 이랬습니다. “한동훈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이 17日 午前 서울 麻浦區 케이터틀에서 열린 國民의힘 서울市黨 新年人事會에서 김경율 非對委員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다”. 팔을 든 채 正面을 凝視하고 있는 두 名의 中年 男性들. 두 사람의 視線은 뭔가를 剛하게 말하고 있을 때의 視線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向한 두 팔은 全黨大會에서 黨代表로 選出되었을 때처럼 勝利의 瞬間에 어울립니다. 一般的인 行事 寫眞과는 距離가 있어 좀 더 로우키(low key)로 設定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100年 前 新聞에서 讀者를 바라보던 세 사람의 視線을 主題로 只今의 政治 寫眞을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댓글로 意見을 確認하고 싶습니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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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눈고양이

    요 며칠 寒波 德에 ‘눈고양이’가 長壽하고 있네요. 오늘부터 추위가 누그러진다는데, 來日 또 볼 수 있을까요? ―서울 城東區 한양대 앞에서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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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三 드시고 힘내세요”

    22日 午前 서울 中區의 傳統文化 複合空間人 ‘韓國의 집’에서 KGC人蔘公社 正官庄 모델들이 ‘힘내라는 말 代身 正官庄’ 行事를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鄭館長은 28日까지 購買 金額帶別로 ‘에브리타임 필름’ ‘靑果세트’ ‘長壽율지’ ‘韓牛세트’ 等을 提供하는 이벤트를 進行한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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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主人)님은 먼 곳에

    橫斷步道 옆 電報대에 主人 잃은 銅錢 紙匣이 걸려 있습니다. 信號燈이 여러 番 바뀌는데도 主人은 오질 않네요.―서울 성동구 聖水洞에서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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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내린 탑골 公園, 風景인가 抵抗인가[청계천 옆 寫眞館]

    ▶100年 前 新聞에 실린 寫眞을 통해 오늘을 생각해보는 [百年寫眞]입니다. 1924年 1月 20日子 동아일보 紙面에 실린 寫眞을 紹介합니다. 거북 模樣의 받침돌 위에 碑石이 크게 서 있고 그 뒤로 樓閣이 보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風景입니다. 서울 鍾路에 있는 탑골 公園입니다. ▶ 100年 前 서울에 눈이 내리자 寫眞記者가 탑골 公園에 가서 寫眞을 찍어 온 模樣입니다. 關聯된 記事는 別途로 없습니다. 가볍게 찍은 스케치 寫眞인가 봅니다. 說明은 아주 簡潔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雪景- 어제 塔골公園에서▶100년 前이나 只今이나 寫眞記者들은 눈이 내리면 周邊 風景 좋은 곳을 찾아가 寫眞을 찍습니다. 於此彼 그 時代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펑펑 내리는 눈을 보았을 텐데 굳이 寫眞을 찍어 紙面에 揭載합니다. 或是 못 본 讀者들을 위한 配慮일까요? 아니면 아름다운 風景이 펼쳐진 時間을 記錄하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요? 寫眞記者들이 눈 스케치를 가는 場所는 다양합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大體로 會社 近處에서 寫眞을 찍습니다. 아주 잠깐 내리다 말 可能性이 높으니까요. 江原道에 暴雪이 내린다는 豫報가 있으면 미리 자작나무 숲이나 大關嶺을 찾아가 기다립니다. 봄을 앞두고 눈이 내린다면 冬柏꽃이 피어 있는 곳을 찾아보기도 합니다.▶저도 얼마 前 눈이 내린 다음 날 서울 南山에 다녀왔습니다. 정작 눈이 내리는 時間에는 寫眞이 別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래서 比較的 큰 눈이 서울에 내리더라도 風景 寫眞은 눈이 完全히 그친 後에 제대로 찍을 수 있습니다. 南山 循環路와 서울 타워를 오르내리며 風景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왜 南山을 擇했을까요? 여러 가지 理由가 있겠지만 서울의 象徵 같은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우거진 나무 숲 사이로 길이 나 있어 雪景을 즐기는 市民들도 같이 寫眞에 담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風景은 쓸쓸해 보이고 리얼리티도 떨어지기 때문에 人跡이 있을 만한 곳을 選擇합니다. 景福宮이나 德壽宮도 雪景 스케치에 잘 어울리는데 그런 곳들 亦是 고풍스런 建物들이 많기도 하고 觀覽客도 寫眞에 包含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눈風景에 어울리는 곳이 古宮이나 公園이라면, 暴雪로 서울 市民들에게 不便이 招來된다면 江邊北路 出勤길이나 江南大路 退勤길이 寫眞의 素材가 됩니다. 엉금엉금 눈을 뚫고 出退勤해야 하는 하루가 그날의 뉴스 포인트이기 때문일 겁니다. 勿論 寫眞의 撮影 場所는 流行이 있습니다. 只今은 當然하게 新聞과 放送 카메라가 자주 비추는 곳이 예전에는 그다지 자주 다뤄지지 않던 場所일 수도 있고, 反對로 예전에는 자주 登場했던 場所가 只今은 뜸한 境遇도 있습니다. 제가 寫眞記者를 처음 始作했던 1990年代 末. 추운 날씨에 出勤하는 市民들의 表情을 스케치하기 위해서 寫眞記者들이 모였던 곳은 서울 地下鐵 1號線 대방역에서 汝矣島로 넘어가는 다리였습니다. 그 撮影 포인트가 只今은 서울 光化門 四거리로 바뀌었습니다. 特別히 理由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의교를 걸어서 出勤하는 市民이 急激히 줄어 ‘그림이 안되는’ 風景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寫眞記者들이 새로운 로케이션을 찾았을 可能性이 있습니다. ▶ 100年 前 탑골 公園 雪景 寫眞은 여러분이 보시기에 너무나 平凡한 寫眞일 겁니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只今 基準으로는 理解할 수 없는 水準이지만 當時에는 뭔가 理由가 있었을 겁니다. 于先 時間的인 促迫함이 理由가 아닐까 싶습니다. 新聞 編輯을 總括하는 部長이, 너무 답답하고 속 터지는 뉴스만 가득한 社會面에, 가슴이 시원한 寫眞이라도 한 張 넣자고 갑자기 決定했던 것은 아닐까요? 갑자기 取材 指示를 받은 寫眞記者가 마감時間에 臨迫해 撮影했던 것은 아닐까요? 두 番째 理由로 想像할 만한 點은, 只今이야 탑골 公園이 老人들의 休息處 또는 老人 問題의 象徵처럼 認識되지만 100年 前 新聞을 만들던 사람들 立場에서는 특별한 場所였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탑골 公園은 高麗時代에는 興福寺라는 절이, 朝鮮王朝 때에는 世祖가 建立한 圓覺寺가 있던 곳을 1897年에 大韓帝國 最初의 近代公園으로 造成한 곳입니다. 많은 文化公演行事와 集會 場所로 活用되었다는 記錄이 있습니다. 서울의 中心, 近代化의 可能性 그런 느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寫眞이 찍히기 5年 남짓 前인 1919年 3月 1日. 이곳 탑골 公園에서 한 男性이 獨立宣言書를 朗讀한 뒤, 5千名의 市民들과 學生들이 獨立을 외쳤었다고 합니다. 3.1萬歲運動의 發祥地인 것입니다. 單純한 雪景이 아니라 時代와 歷史의 正體性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 서울에 갑자기 눈이 내린 17日 午後에 100年 前 저 寫眞 속 탑골 公園에 가봤습니다. 鬼斧 위의 碑石과 樓閣이 그대로 보입니다. 神奇했습니다. 다만 碑石 周邊에 樓閣이 하나 더 생겨 寫眞으로는 같은 模樣은 아니었습니다. ▶문득, 韓國 戰爭의 砲火를 잘 견뎌내 준 文化財와 그 옆 아름드리나무들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多幸히 탑골 公園은 하늘에서 쏟아졌던 戰爭의 砲彈에서 벗어났었나 봅니다.탑골 公園이라는 이름이 그 때나 只今이나 똑같다는 것도 神奇했습니다. 元來 파고다 公園을 1990年代에 탑골 公園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常識과는 좀 다른 資料입니다.오늘은 100年 前 서울의 象徵 中 한 곳이었던 탑골 公園의 雪景 寫眞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댓글에서 確認하고 싶습니다.?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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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맞으며… 無料 給食 기다리는 老人들

    17日 午後 서울 地域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 가운데 鍾路區 탑골公園 隣近에서 無料 給食을 받으려는 老人들이 줄을 서고 있다. 이날 京畿 포천시와 講院 鐵原郡, 華川郡에는 大雪注意報가 내려졌다. 氣象廳은 江原 嶺東 地域에 18日 午後부터 19日까지 最高 15cm 以上 눈이 내릴 것으로 豫報했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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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지만 剛한 消火器로 電氣車 火災 豫防해요”

    15日 서울 영등포구 堂山公園 公營駐車場의 電氣車 充電所 앞에서 永登浦區 關係者가 이곳에 備置된 消火器를 들어 보였다. 영등포구는 電氣車 充電施設 26곳에 消火器 48臺를 配置해 迅速하게 車輛 火災에 對應하겠다고 밝혔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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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年 前 서울에서 火災를 鎭壓했던 方法 - 消防隊 出草式 寫眞 [淸溪川 옆 寫眞館]

    ▶ 龍의 해가 始作되었습니다. 100年 前 新聞에 실린 寫眞을 통해 오늘의 寫眞을 생각해보는 [百年寫眞]입니다. 오늘은 1924年 1月 7日 者에 실린 寫眞을 골랐습니다. ▶ 사람 키의 3倍쯤 되는 긴 사다리 네 個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 아래에서 유니폼을 입은 數十 名의 사람들이 支持臺를 잡은 채 空中에 매달린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커스 動作처럼 苦難도의 몸動作이 視線을 끕니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어떤 모습을 撮影한 寫眞일까요? 寫眞과 조금 떨어진 紙面에 關聯 記事가 있었습니다. 옮겨봅니다. 京城消防出初式- 昨日 아침 大漢門 앞에서년년히 行하는 京城常備消防隊(京城常備消防隊) 龍産消防隊(龍山消防隊)의 出草式(出初式)은 어제 6日 午前 9時頃에 市內 大漢門 앞에서 擧行하였다. 이미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집에 불을 질렀는데 마침 불어오는 西北風에 形勢를 맞춰 염염히 타오르는 形勢는 果然 큰 火災나 난 듯이 宏壯하였으며 그와 同時에 消防隊員들이 “뽐뿌”를 들이대고 進化하는 光景은 그야말로 참 宏壯하였다. 大漢門 넓은 마당에는 구경꾼이 山 같이 모여 매우 複雜을 이루었고, 其他 京畿道 警察部를 爲始하여 市內 各 警察署長과 關係 人士가 다수히 來參하였으며 9時 半에 出草食을 마친 後 京畿道 摩耶警察部長(馬野警察部長)과 京畿道 坐燈內務部長(佐藤內務部長)의 訓示가 있었더라. 東亞日報 1924年 1月 7日子▶ 記事를 보니 새해를 맞아 消防隊員들이 訓鍊을 하는 모습입니다. 德壽宮 大漢門 앞은 그 때나 只今이나 市民들을 對象으로 한 行事들이 進行된 핫플레이스였군요. 出草式이라는 生疏한 이름의 行事인데 처음 나선다는 뜻인가 봅니다. 東亞日報 內部의 記事畫像 檢索網에 들어가 ‘出草式’이라는 키워드로 檢索하니 1920~30年代에 關聯 記事가 꽤 많이 있었습니다. 1940年이 마지막으로 檢索되는 거로 봐선 그때까지만 쓰였던 用語 같습니다. 只今도 消防 關係者분들께서 이 用語를 쓰는지 궁금합니다. ▶假想의 住宅을 만들고 거기에 불을 붙인 後 消防隊員들이 平素 갈고 닦은 消防 實力을 高位 公職者들과 市民들 앞에서 試演하는 行事입니다. 寫眞 속 사다리는 只今의 사다리에 비하면 그리 높은 便은 아닙니다만 當時 大部分의 建物이 1層짜리였다는 걸 考慮한다면 불을 끄는 데는 그나마 適切한 높이였을 겁니다. 받침臺가 있는 사다리에 올라가 火災 現場을 向해 호스를 臺는 消防手와 그 아래에서 물을 供給하는 펌프(뽐뿌)를 運用하는 消防手가 팀을 이루는 方式이었을 것으로 推定됩니다. 1920年代에는 木造 建物과 草家집 等이 火災事故의 大部分이고 市民들의 삶과 直接 連結된 것이었습니다. 當時 新聞에는 겨울철마다 서울 市內 火災 事故 現場에 對한 報道가 꽤 많습니다. 木造 建物이다보니 한 채가 타면 그 옆으로 불이 霎時間에 번져서 被害가 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消防隊員들에 對한 市民들의 期待가 컸을 겁니다. 새해 劈頭에 市內 한가운데 假想의 火災 現場을 만들고 불을 끄는 訓鍊을 했던 理由일 겁니다. ▶요즘 이뤄지는 消防訓鍊을 잠깐 떠올려 봅니다. 사다리도 金屬 材質에다 높이도 아주 높아졌습니다. ‘뽐뿌’의 性能도 比較할 수 없을 만큼 强力해졌구요.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假想의 火災 現場 모습입니다. 2008年 南大門이 放火犯에 依해 불탄 後 古宮 等 文化財에서 假想의 火災가 發生한 狀況을 假定해 訓鍊을 하기도 하고, 日本 地震이 發生한 後에는 地震待避 訓鍊을 합니다. 게다가 롯데타워 等 超高層 빌딩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市民들의 걱정이 생기자 요즘에는 高層 建物 火災 待避 訓鍊 等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消防訓鍊도 時代에 맞게 演出되어 왔습니다. 그걸 찍은 寫眞도 時代別로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구요. 當然한 얘기지만 寫眞을 찍는 立場에서는 아주 興味롭습니다. ▶寫眞의 構圖 自體에 對한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只今도 寫眞記者들이 選好하는 構圖입니다. 私選(射線)構圖인데요, 一列로 서 있는 사다리들이 겹쳐 보이도록 側面에서 撮影했습니다. 萬若 나란히 서 있는 사다리들을 正面에서 보면서 寫眞을 撮影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다리의 形態는 더 잘 보일 수 있겠지만 問題는 寫眞을 크게 써야지만 제대로 보이게 될겁니다. 側面에서 寫眞을 찍으면 좁은 紙面에 많은 被寫體와 內容을 包含시킬 수 있는 長點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인터넷으로 新聞을 보는 것이 一般化되지 않았던 2000年代 以前까지 新聞 寫眞에서 正말 選好되고 거의 正答처럼 認識되었던 構圖가 私船 構圖였습니다. 인터넷은 紙面의 制約이 없다 보니 ‘平平한’ 寫眞도 새로운 視角을 讀者에게 提供한다는 次元에서 많이 試圖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새해를 맞아 한 해의 火災 事故를 對備하던 100年 前 우리 社會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댓글에서 確認하고 싶습니다.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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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벅스 鍾路R點 “上品 한 個當 300원씩 積立해 靑年 就業 支援”

    스타벅스코리아가 9日 午前 서울 종로타워에 있는 스타벅스 鍾路R點에서 靑年 就業 活性化를 위한 커뮤니티 스토어 8號店을 열었다. 스타벅스 손정현 代表理事(가운데)가 參席해 靑年 就業 活性化 活動을 위한 業務 協約式과 基金 傳達式을 가졌다. 스타벅스는 커뮤니티 스토어 8號店에서 販賣되는 商品 한 個當 300원씩 積立해 年間 1億 원의 靑年 就業 活性化 基金을 造成할 計劃이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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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찾아가세요

    散策路에 누가 信用카드를 떨어뜨렸나 봅니다. 習得한 사람이 잘 찾아가라고 電燈 아래에 예쁘게 꽂아 놨네요. ―서울 鍾路區 청계천에서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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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눈]손님맞이

    까치 한 마리가 門 위에 앉아 行人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요.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서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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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小商工人大會에 登場한 스마트 商店[淸溪川 옆 寫眞館]

    消費·流通 環境이 急變하면서 非對面·디지털 技術 導入을 서두르는 小商工人이 늘어나고 있다. 中小벤처企業部(長官 이영)와 小商工人市場振興公團(理事長 박성효)은 2020年부터 小商工人 事業場에 스마트技術 導入을 支援하고 店鋪 經營과 서비스를 革新해 競爭力을 높이는 데 集中하고 있다.스마트상점 技術普及事業은 小商工人에게 서빙로봇, 調理로봇, 테이블오더, 키오스크, 사이니지, 經營管理 프로그램 等 스마트技術 導入 費用을 支援하는 事業이다. 디지털 轉換의 必要性은 切感하지만 많게는 1000萬 원이 넘는 投資費用에 負擔을 느끼는 小商工人에게는 반가운 支援制度다. 經營·서비스 革新을 위해 核心 스마트技術 1個 以上 導入을 支援(最大 500萬 원)하는 △一般型과 協同로봇 1個 以上을 支援(最大 1500萬 원)하는 △未來形, 技術패키지를 支援(最大 1250萬 원)하는 △相生型, 오프라인 經驗要素와 스마트 機器 導入을 支援(最大 2000萬 원)하는 △經驗型으로 나누어 支援한다. 中企部와 小振公은 스마트技術 利用率을 높이기 위해 ‘스마트技術 피칭大會’를 開催해 事業場에 椄木 可能한 技術을 發掘하고, 小商工人 店鋪 맞춤型 一對一 技術選擇 專門 컨설팅을 推進하여 스마트 技術에 對한 門턱을 낮췄다. 또 簡易課稅者, 1인 事業場, 障礙人 等 零細한 脆弱階層의 者負擔率을 旣存 30%에서 20%로 緩和하고, 事業 專用 提携카드를 導入해 旣存 一時 納付를 12個月 無利子 割賦로 決濟할 수 있도록 하여 小商工人의 費用 負擔을 輕減했다. 民間企業과 小商工人 間 相生으로 스마트商店을 構築한 것도 눈에 띄는 成果다. 지난 3日과 4日 고양시 킨텍스에서 開催된 ‘2023年 大韓民國 小商工人大會’에서는 優秀 小商工人 褒賞, 博覽會, 技能競進大會 等의 行事와 함께 政策弘報館, 販賣館, 體驗존 等의 부스를 運營했다.‘스마트상점 모델숍’으로 運營한 體驗館에서는 치킨로봇, 바리스타로봇 等 12種의 스마트 技術을 直接 體驗해 볼 수 있었다. 스마트商店 솔루션 企業인 넥스트페이먼츠의 돈가스 로봇은 自動化된 料理 全 過程을 보여줬고 完成된 돈가스를 試食할 수 있어 行使 期間 동안 觀覽客의 큰 사랑을 받았다.스마트상점 技術 企業인 웹플래너의 푸드3D프린터는 約 1000가지 디자인이 內藏된 초콜릿 製作 技術力을 선보여 父母와 함께 訪問한 어린이들이 즐거운 時間을 보냈다.다양한 헤어스타일링을 體驗해볼 수 있는 異色的인 거울도 볼 수 있었다. 頭皮 狀態를 精密 分析해 맞춤型 施術을 提案하고 美容 實習을 할 수 있는 機能도 더해져 1人 美容室을 運營하는 小商工人의 關心을 받았다.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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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가지 마, 가을

    부쩍 쌀쌀해진 날씨. 돌담 사이에 꿋꿋이 홀로 핀 노란 꽃이 唯獨 쓸쓸해 보입니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서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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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寫眞記者를 멀리 하지 마세요…가까이서 찍는 寫眞이 주는 느낌 [淸溪川 옆 寫眞館]

    ▶100年 前 新聞에 실린 寫眞을 통해 오늘의 寫眞을 생각해보는 [百年寫眞]입니다. 每週 土曜日에 인터넷에 올리기로 스스로 했던 約束을 오늘은 좀 늦게 지키게 됐습니다. 全國의 寫眞記者들이 모이는 寫眞記者體育大會에 아침부터 參席하느라 글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해서라는 핑계를 臺봅니다. 每年 가을 이맘때면 열리는 寫眞記者體育大會는 數十 年째 이어지고 있는데 올해는 조금 달라진 風景이 눈에 確然하게 띄었습니다. 體育大會라고 하면 運動競技가 좀 들어가야 맛인데 種目이 많이 줄었습니다. 特히, 20年 前에는 이 行事의 메인 種目이었던 蹴球 토너먼트가 없어지니 運動場 가운데가 비어 있었습니다. 運動場 사이드에 있는 排球場과 足球場에서만 競技가 치러졌습니다. 蹴球 種目을 消化할 新聞社의 寫眞部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寫眞記者들의 平均 年齡이 높아지면서(신규 人員의 流入이 最近 十 餘 年間 顯著하게 줄고 있습니다)나타나게 된 變化입니다. 나이 든 寫眞記者만이 남는 것이 아니냐 하는 自嘲 섞인 歎息이 몇 年째 있었는데 올해에는 昨年과는 다른 또 다른 現象도 한 가지 보였습니다. 2022年과 2023年에 寫眞記者를 始作한, 서울地域 寫眞記者들이 約 30名 가까이 있었습니다. 부스를 돌아다니며 同僚 寫眞記者 先輩들에게 人事를 건네는 모습이 異色的인 風景이었습니다. 1988年 서울 올림픽 前後부터 新聞社들이 增面을 하고 칼라紙面을 만들면서 寫眞記者에 對한 需要가 急增했었는데 그 때 新聞社에 入社했던 寫眞記者들이 昨年과 올해 그리고 來年에 大規模로 停年退職하면서 나타난 現象일 겁니다. 아무튼 젊은 寫眞記者들이 體系的 選拔 過程을 거쳐 現場으로 들어온 最近 狀況은 鼓舞的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만, 寫眞記者의 充員이 서울의 新聞社와 인터넷 媒體에 集中되고 地域의 境遇 다운 사이징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같이 確認할 수 있었습니다. ▶ 新聞社 寫眞部에 傳說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望遠렌즈가 없던 時節 스포츠 競技를 어떻게 찍었느냐는 質問에 옛날 先輩 中에 한분이 野球 競技를 例로 들며, 審判 옆에 붙어서 盜壘를 하는 寫眞을 찍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지금이야 取材陣들이 望遠렌즈를 갖고 選手들과 最小 10미터 멀리는 100미터 以上 떨어진 곳에서 찍는지도 모르게 찍지만 예전에는 完全히 붙어서 찍었던 것입니다.서설이 길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共有하고 싶은 100年 前 寫眞은 높이뛰기 場面입니다.여기 傳說 속에나 나올 법한 앵글의 寫眞이 한 張 있습니다. 높이 뛰기 하는 選手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撮影한 寫眞입니다. 1923年 10月 29日子 동아일보 紙面에 실린 寫眞입니다.▶그런데 妙한 느낌이 듭니다. 바로 現場감이죠.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느낌이 傳達됩니다. 아마 只今 高解像度 카메라로 저 앵글의 寫眞을 찍는다면 바를 넘는 選手의 緊張되고 애쓰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을 겁니다. 寫眞을 보는 사람은 無意識的으로, 寫眞이 어떤 條件에서 撮影된 寫眞인지 理解합니다. 바로 옆에서 작은 렌즈로 찍은 寫眞인지 멀리서 望遠렌즈로 찍은 寫眞인지를 말입니다. 짧은 렌즈로 찍은 寫眞은 現場感을 주고 親密感을 줍니다. 望遠렌즈로 찍은 寫眞은 親密하지는 않지만 客觀的인 視線이거나 훔쳐보기라는 느낌을 줍니다. ▶現場感을 주기 위해 모든 카메라 記者들은 被寫體 옆에서 寫眞을 찍고 싶어할겁니다. 하지만, 媒體가 많아진 요즘 그렇게 하다가는 아마 뉴스 人物들이 카메라에 얼굴을 다칠 수도 있고 스포츠 選手들은 競技에 集中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寫眞記者들은 現場에서 서 있을 수 있는 位置가 指定되고, 被寫體에 對한 近接 撮影은 不許되거나 아니면 極少數의 人員에게만 許容됩니다. 假令 스포츠 競技의 境遇, ‘오피셜 捕討그래퍼’가 近接 刹靈을 하게 됩니다. ▶政治 現場, 特히 大統領의 行事 取材에서도 ‘오피셜’은 近接 撮影의 ‘特權(?)’을 갖습니다. 얼마 前 朴槿惠 大統領과 尹錫悅 大統領이 朴正熙 大統領 追慕式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新聞에 실린 寫眞들의 出處를 보면 거의 大部分이 大統領室 提供이었습니다. 寫眞記者가 찍은 寫眞이라면 洪吉童 記者 또는 大統領室寫眞記者團이라고 標示되어 있었을 겁니다. 一種의 提供寫眞이 新聞들 1面에 실린 것입니다. 가까이서 찍은 寫眞은 액션이 强해서 寫眞이 强烈한 느낌을 줍니다. 大統領 專屬이 가까이서 찍는 寫眞과 出入記者들이 멀리서 望遠렌즈로 撮影하는 寫眞의 느낌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轉屬에 비해 寫眞記者들은 被寫體인 大統領을 解釋하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거나, 被寫體가 좋아하는 앵글보다는 뉴스에 적합하고 讀者들의 視線을 끌만한 瞬間을 捕捉하려고 합니다. 아무도 解釋하지 않고 被寫體의 마음에만 들면 되는 寫眞은 報道寫眞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權威主義 國家에서는 最高 指導者의 周邊에 寫眞家를 最少化해서 配置합니다. 寫眞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表情은 適切하게 捕捉됩니다만 寫眞의 소스가 하나인 現場에서 나오는 寫眞은 뭔가 不足해보입니다. 세련되지 않고 時代에 맞지 않은 느낌 같은 거 말입니다. 變化가 없기 때문이고 틀에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結婚式 寫眞을 생각해보시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結婚意識에 關聯된 當事者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除外하곤 感動을 주지 않습니다. 家族끼리는 共有하지만 남들은 關心주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寫眞만 나올 수 있게 統制하는 것으로는 좋은 寫眞이 나오기 어렵다는 點입니다. ▶오늘은 寫眞記者와 被寫體의 距離에 對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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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洋屋 한 채와 신발 두짝 ? 100年 前 하이퍼인플레이션을 表現한 寫眞[淸溪川 옆 寫眞館]

    ▶100年 前 新聞에 실린 寫眞을 통해 오늘의 寫眞을 생각해보는 [百年寫眞]입니다. 이番 週 選擇한 寫眞은 1923年 10月 26日子 동아일보 紙面에 실린 寫眞입니다. 멋진 單獨 住宅 앞에 누군가 구두 한 켤레를 들고 있는 寫眞입니다. 카메라로부터 떨어진 距離가 같은데 포커스가 둘 다 正確하게 맞아있다는 點에서 實際 찍은 寫眞이 아닌 合成 寫眞 또는 그래픽 이미지로 判斷됩니다. 內容을 한番 읽어보겠습니다.폭락 또 暴落되는 獨逸 마르크의 市勢獨逸 돈은 連日 자꾸 떨어져서 25日에 捕捉된 伯林電報에는 英國 돈 한 파운드에 (日本 돈 約 十원) 對하여 獨逸 돈 四千億 마크의 時勢를 보였다고 한다. 俗談에 號曰百萬이라더니 獨逸 마크野 말로 百萬쯤은 當初에 돈값에도 가지 못하는 慘酷한 形便이다. 이 寫眞은 戰爭 前의 物價와 戰爭 後 ‘마크’ 市勢가 暴落된 後의 物價를 比較한 그림이니 卽 只今 구쓰 한켜레 사는 돈을 가지면 戰爭 前에 이런 洋屋 한 채를 살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比較도 이제는 벌써 옛 이야기가 되었다. 只今은 구두 한 켤레 값을 가지면 戰爭 前 에는 그러한 洋屋을 두서너채나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1920年代 獨逸 마르크貨의 價値가 暴落한 것을 表現한 寫眞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19年 第 1次 世界大戰이 끝난 後 獨逸은 復舊 費用 마련을 위해 돈을 無限大로 印刷해 뿌리는 通貨 供給 政策을 폈습니다. 이로 인해 獨逸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經驗했는데 特異 1923年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가장 深刻한 事例로 歷史는 記錄하고 있습니다. 위 寫眞은 經濟 歷史冊에 나오는 100年 前 狀況을 韓國 新聞에서 어떤 方式으로 表現했는지를 보여주는 寫眞입니다. 英國 1파운드와 獨逸 4千億 마르크貨가 交換될 程度로 獨逸 마르크의 價値가 暴落했고, 그 事實을 表現하기 위해 寫眞이 利用된 것입니다. 戰爭 前 物價가 正常일 때 집 한 채를 살 수 있던 돈이 戰爭 後 구두 한 켤레 밖에 살 수 없게 되었다는 說明을 寫眞이 하고 있습니다. 只今의 華麗한 그래픽 이미지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當時로서는 꽤나 特別한 ‘視角物’이 아니었을까요?▶신문사에서 일하는 寫眞記者와 編輯者, 그래픽 디자이너 等은 讀者들에게 뉴스와 情報를 빠르고 正確하면서도 效率的으로 傳達하기 爲해 다양한 方法을 試圖하고 苦悶합니다. 뉴스 中에서 第一 視覺的으로 表現하기 어려운 分野가 金融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름값이 오르고, 아파트 傳貰去來 金額이 내리고, 證市가 暴騰하고, 基準 金利가 凍結되는 等 돈과 關聯된 뉴스는 每日 新聞의 主要 紙面에 자리 잡습니다. 우리의 삶은 左之右之 하는 뉴스이기 때문입니다. 政治와 社會, 文化, 國際뉴스 等의 分野는 表現의 方式이 具體的으로 떠오르지만 經濟 中에서 돈과 關聯된 뉴스는 寫眞으로 잘 表現되지 않습니다. 每日 비슷한 模樣의 注油所 價格表 寫眞과, 不動産 仲介業所 呼價판, 外換 딜링룸 表情 等이 反復되어 紙面에 실리는 理由가 바로 이것입니다. ▶食傷한 寫眞을 避하기 위해 努力하지만, 人類 全體를 통틀어 金融을 每日每日 새로운 方式으로 表現하는 寫眞家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美國의 證券去來所 寫眞도 仔細히 보면, 每番 비슷한 딜러의 분주한 모습이 실립니다. 現場이 없고, 그나마 記者들이 接近할 수 있는 空間이 몇 군데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韓國 新聞에서 經濟 뉴스가 注目을 받고, 紙面을 크게 割愛 받기 始作한 것은 IMF 以後입니다. 綜合 日刊紙의 境遇 그 때부터 아예 經濟 섹션을 發行해오고 있습니다. 처음 經濟 섹션이 만들어진 直後, 新聞社에서는 紙面에 실을 寫眞이 없어 아주 困惑이었습니다. 經濟 官僚들의 會議 모습과 發表 모습이라도 실었지만 中年의 男性 公務員 寫眞은 今方 食傷하다는 評價를 받았습니다. 株式 去來를 하기 위해 鳴動의 客場을 찾은 投資者들의 모습을 찍기도 했지만, 肖像權의 問題가 擡頭되면서 찍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只今의 金融 現場은, 몇몇 銀行과 證券去來所 等에서 指數版과 그래프를 크게 畵面에 띄우는 形式으로 만들어 놓아 寫眞記者들이 ‘뉴스를 視覺化’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物價 動向이나 新製品을 出市하는 業體의 弘報 擔當者들이 아이디어를 짜내어 寫眞 演出을 하고 있어 地面이 단조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른바 流通寫眞이 저널리즘이냐는 質問은 繼續 이어지고 있습니다. 實際로 韓國 新聞에 실리는 모델과 製品이 함께 登場하는 寫眞이 報道寫眞의 敎材에서는 存在하지 않는 類型의 寫眞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紙面에 登場하지 않는 形式이기도 합니다. 텍스트만 있는 紙面을 讀者에게 보일 수는 없고, 經濟라는 現象이 視覺的으로 表現하는 것이 制限的이라 不可避하게 發展된 寫眞 形態인 것이죠. ▶오늘은 100年 前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 獨逸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表現한 寫眞을 보면서 只今의 金融과 經濟 關聯 寫眞에 對해 한番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視線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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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寫眞’을 擇해야 하나, ‘고요함‘을 擇해야 하나[淸溪川 옆 寫眞館]

    ▶100年 前 新聞에 실린 寫眞을 통해 오늘의 寫眞을 생각해보는 [百年寫眞]입니다. 이番 州 제가 고른 寫眞은 1923年 10月 21日子 新聞에 실린 寫眞입니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演奏를 하고 있고 그 옆에서 피아노 伴奏者가 渾身의 힘으로 演奏를 하고 있습니다. 100年 前 서울에서 바이올린 演奏會가 열렸던 模樣입니다. 寫眞 說明을 한番 읽어보겠습니다. ▶ 公演場을 찾은 聽衆을 감동시킨 바이올린 演奏를 ‘妙技’로 表現하고 있습니다. 瀑布처럼 펼쳐지는 바이올린 旋律에 觀衆들이 極度로 感動해 聽衆과 演奏家가 沒我의 境地에 이르렀다는 式으로 現場 모습을 傳하고 있습니다. ▶ 이 寫眞을 보면서 드는 疑問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저 狀況은 實際 公演 모습까 아니면 練習 時間에 諒解를 求해 찍은 寫眞일까 하는 點입니다. 돈을 내고 들어온 紳士淑女들이 舞臺 아래에서 公演에 集中하고 있는 時間에 寫眞記者가 舞臺 위에 올라가 카메라를 들고 撮影하는 게 可能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저 寫眞은 望遠렌즈로 撮影한 게 아니니 寫眞家가 被寫體 바로 옆에서 撮影해야 했을텐데 그러면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只今 使用하고 있는 카메라에는 ‘사일런스’ 機能이 있어서 소리가 아주 작게 나도록 設定할 수 있지만 그래도 셔터幕이 열렸다 내리는 소리는 沈默 속에서는 크게 들립니다. 百 年 前 카메라는 只今보다 더 묵직한 셔터 소리가 났으니 아마 實際 公演 中에 撮影했다면 그 自體가 하나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겁니다.지금도 藝術의殿堂이나 演劇舞臺의 公演을 撮影하기 위해서는 리허설 場面을 撮影하거나 防音施設이 된 調整室 琉璃窓 너머로 찍습니다. ▶最近에 出市되고 있는 專門家用 미러리스 카메라에는 드디어 完璧한 ‘사일런스’ 機能이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數十 張의 寫眞을 찍어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셔터幕이 없이 電子信號로만 寫眞을 찍기 때문에 可能하게 된 技術 發展입니다. 只今의 미러리스 카메라와 望遠렌즈가 있다면 寫眞 속 저 場面은 멀리서 자연스럽게 捕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無騷音의 미러리스 카메라는 寫眞記者들의 일에 큰 變化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寫眞記者들은 過去에는 接近할 수 없던 現場으로 갈 수 있게 되었고 過去에는 撮影할 수 없던 瞬間을 撮影할 수도 있게 되고 있습니다. 理論的으로는 소리에 敏感한 選手들이 벌이는 바둑 大會나 골프 티샷 瞬間을 마음껏 撮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無騷音의 미러리스 카메라가 大衆化되면 或是 ‘몰래 카메라’가 日常化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몰래 카메라는 專門家用 미러리스 카메라 出市와 相關없이 始作되어 只今도 進行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寫眞記者들이 갖고 다니는 카메라는 크기가 커서 눈에 確實하게 띄기 때문에 몰래 카메라로 使用하기에는 限界가 많습니다. ▶오늘은 100年 前 바이올리니스트 公演 寫眞을 보면서, 이제 셔터 소리 때문에 못 가는 現場은 사라지고 있는 狀況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100年 寫眞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視線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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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施賞式에서 金메달 깨무는 寫眞이 거의 사라진 理由[淸溪川 옆 寫眞館]

    ▶100年 前 新聞에 실린 寫眞을 통해 오늘의 寫眞을 생각해보는 [百年寫眞]입니다. 庭球大會를 앞두고 競技場을 整理하는 모습입니다. 롤러를 가지고 사람들이 一一이 바닥을 다지는 모습이 印象的입니다. 1923年 10月 14日에 열린 ‘第 3回 前 朝鮮 庭球大會’ 消息입니다. 午前 8時부터 휘문運動場에서 열렸는데 朝鮮體育會 主催, 동아일보사 後援行事였다고 합니다. 韓國에서 庭球大會가 100年이 넘었다는게 神奇합니다. 東亞日報 庭球大會는 只今은 慶尙北道 聞慶에서 每年 봄에 開催하고 있습니다. 競技場은 平素에도 드문드문 活用되는데다 管理 擔當者가 있어서 景氣에 臨迫해 準備할 必要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競技 前에 準備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新聞에 쓸 만큼 特別한 ‘뉴스’도 아닌 場面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스포츠 關聯 寫眞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100年 前 스포츠 寫眞을 보며 只今은 사라진 스포츠寫眞은 뭐가 있을까, 새롭게 생겨난 寫眞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 前 아시안게임이 끝났죠? 생각보다 關心이 높고 人氣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愉快하면서도 感動的인 많은 競技와 施賞式 場面 中에서 저는 卓球 申裕斌 選手가 金메달을 確定지은 後 손에 든 太極旗를 바로 잡는 모습이 印象的이었습니다. 카메라에 乾坤監理가 바로 잡히도록 神經쓰는 모습 말입니다. 그리고 기쁜 感情을 카메라를 向해 드러내는 것도 印象的이었습니다. 카메라를 向해 손 하트度 積極的으로 만들고, 同僚와의 積極的인 抱擁도 主導합니다. 이미 카메라를 對할 準備가 되어 있는 世代라는 생각이 듭니다. 京畿 中間中間에 멋진 寫眞이 나오는 것도 젊은 世代답게 自己를 表現할 準備가 恒常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포토제닉이라는 表現으로는 不足한, ‘카메라 世代’가 韓國을 代表하는 時代입니다. ▶2002年 韓日월드컵 때가 생각납니다. 그 當時 韓國 選手들은 안정환의 半指 세리머니와 團體로 손을 잡고 競技場을 달리며 슬라이딩을 하는 ‘아이콘’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그 當時 韓國 記者들 全體를 唐慌하게 했던 外國 選手의 세리머니가 있었습니다. 英國의 베컴 選手가 골을 넣은 後 골대 뒤쪽 카메라記者들이 모여 있는 地域으로 달려오는 ‘무릎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韓國 寫眞機들은 눈앞으로 다가온 스타의 모습에 唐慌하고 말았습니다. 望遠렌즈를 끼고 ‘킬러’들의 咆哮를 捕捉할 準備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國會에서 國會議員들이 멱살잡이할 때 使用하는 작은 렌즈(와이드 렌즈)에나 잡힐 만한 場面이었습니다. 베컴은 카메라 記者들 앞에 와서 포즈를 取했지만 우리는 그 場面을 찍지 못했습니다. 우리 옆에 있던 英國 通信社인 게티이미지 記者의 손에 짧은 렌즈가 끼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寫眞記者를 向해 뛰어 온 스포츠 스타, 그리고 그와의 距離가 가까울 것을 미리 豫想한 寫眞記者의 合作으로 韓國 記者들은 ‘물을 먹은’ 事件이었습니다.▶어쩌면 當然하게 받아들일 세리머니에 對해 제가 意味를 附與하는 理由는 個人的인 經驗으로 보면 國代들의 感情 表現이 不過 20餘 年 만에 엄청나게 變했다는 點 때문입니다. 옛날 스포츠 選手들도 골을 성공시키거나 메달을 따면 激情的인 咆哮를 했습니다. 그러나 感情을 드러내는 對象이 팀의 監督이나 現場에 應援하러 온 家族 親舊들을 向한 境遇가 많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施賞臺에 올라가서도 感慨無量한 表情으로 太極旗를 向해 愛國歌를 따라 부르는 場面과 메달을 들고 손을 흔드는 程度였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願하는 寫眞記者들과 讀者들에게는 不足한 寫眞일 때가 種種 있었습니다. 感情이 드러나지 않을 때 메달리스트들에게 寫眞記者들이 演出狀況을 付託합니다.국민적 關心이 集中된 競技에서 메달을 딴 選手들에게 寫眞記者들이 많이 演出시켰던 포즈가 ‘金메달을 입에 물어 보시라’는 注文이었습니다. “金메달 이맛이네”라는 題目을 念頭에 둔 寫眞이 目標였을 겁니다. 그런데 10餘 年 前부터 現場에서 金메달 맛보는 세리머니를 付託하면, 食傷해 하는 젊은 選手들이 나타나기 始作했습니다. 이제 塔 클래스의 選手들은 그런 演出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합니다. 代身 젊은 世代 選手들은 카메라 앞으로 찾아와 윙크를 하고 하트를 만들고, 때로는 렌즈에 사인을 하는 等 ‘그림을 만들어 주곤’ 競技場을 떠났습니다. 自然스러운 個性 表現이 可能한 世代에게 寫眞記者들의 演出 要求는 必要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番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金메달 깨무는 寫眞이 거의 사라진 것을 저는 이런 變化의 흐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勿論, 제가 못 본 競技 中에 金메달 깨무는 세리머니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現場을 時代에 뒤떨어졌다고 보실 必要는 없습니다. 運動에 集中하느라 特別한 세미머니를 準備하지 않은 選手들도 얼마든지 훌륭한 분들이시니까요. ▶ 資源이 없던 時節이라 新聞 紙面도 아주 적었습니다. 競技는 많고 紙面은 적고 그러다보니 團體寫眞이나 全體 競技場 모습을 紙面에 실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當然히 只今의 눈으로 보면 寫眞이 임팩트도 없고 視線도 잘 못 끕니다. 集團的인 寫眞에만 익숙했는데 이제는 미니멀한 選手 個個人의 모습을 撮影해야 하는 時代가 되었습니다.지금은 뉴스를 傳達하는 立場에서 보면 資源이 많은 時代입니다. 紙面도 많아졌고 인터넷을 통해서는 無限大의 寫眞을 찍어 傳達할 수 있는 時代가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初等學校 앨범에 ‘모듬 別’ ‘個人 別’ 寫眞이 있는 時代입니다. 제가 어릴 때와는 다르네요. ▶勝利하면 기쁨을 滿喫하며 個性을 充分히 드러내고, 敗北해도 웃는 우리 젊은 選手들. 寫眞記者들의 苦悶이 始作되어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幸福한 苦悶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은 百 年 前 新聞에 실린 스포츠大會 寫眞을 보며 스포츠 寫眞의 變化를 한番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을 週末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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