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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記者 購讀|東亞日報
장원재

장원재 部長

東亞日報 政策社會部

購讀 9

推薦

2005年에 入社해 社會部 經濟部 政治部 等을 거쳤습니다.

取材分野

2024-04-14~2024-05-14
칼럼 82%
社說/칼럼 3%
人物 3%
南北韓 關係 3%
選擧 3%
事故 3%
企劃 3%
  • [오늘과 來日/장원재]나이지리아 4男妹의 悲劇

    4男妹의 悲劇이 始作된 곳은 玄關 앞에 있던 멀티탭이었다. 지난달 27日 午前 3時 半頃 TV와 冷藏庫가 連結돼 있던 멀티탭에서 發生한 스파크는 금세 불길로 번졌다. 아버지(55)는 煙氣 속을 뚫고 빠져나와 構造를 要請했지만 안房에서 자던 네 男妹는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지난달 31日 京畿 안산시의 한 葬禮式場에선 이들 男妹의 發靷食餌 열렸다. 脫出 過程에서 兩발에 火傷을 입은 아버지는 휠체어에 탄 채 내내 沈痛한 모습이었다. 막내딸(2)을 던진 後 本人이 뛰어내리는 過程에서 허리를 다친 어머니(41)는 補助器를 찬 채 現實이 믿기지 않는 듯 연신 아이들 이름을 불러 周圍를 안타깝게 했다. 이番 事故를 되짚어보면 韓國 社會에서 疏外된 이들이 어떤 現實에 處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事故를 當한 나이지리아人 家族 7名은 21㎡(藥 6.4坪) 크기 빌라에서 지냈다. 다섯 男妹가 2∼11歲라는 點을 勘案해도 1人當 1坪이 채 안 되는 面積이다. 서울 市內 考試院 平均이 7.2㎡(藥 2.2坪)라는 걸 勘案하면 얼마나 劣惡한지 알 수 있다. 이 家族만 特別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 빌라에는 비슷한 面積의 집에 나이지리아人, 러시아人, 우크라이나人 等 總 11家口, 41名이 居住했다. 더 안타까운 건 前兆가 여러 次例 있었음에도 悲劇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 家族은 2021年 1月에도 지내던 半地下 집 壁面 스위치에서 불이 나 집이 全燒되고 둘째 아들이 火傷을 입었다. 市民團體 等의 도움으로 艱辛히 手術費를 解決했지만 以後에도 스프링클러 없는 좁고 老朽化된 鞍山 一帶 빌라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本報 記者에게 “예전에도 멀티탭에서 불꽃이 난 적 있었지만 그냥 넘겼다”고 했다. 이들 家族은 2017年 2月부터 모든 住宅에 消化器와 火災警報器가 義務化됐다는 事實도 알지 못했고, 火災를 防止하거나 擴散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安山消防署가 火災 發生 2週 前 災難 脆弱階層에게 消化器와 火災警報器를 支援하겠다고 發表했지만 이 亦是 남의 얘기였다. 不法滯留者가 아니었지만 政府와 地方自治團體의 社會福祉網에서도 排除됐다. 15年 前 韓國에 온 아버지는 나이지리아에 中古 物品을 輸出하는 일을 했는데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等의 影響으로 最近 벌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家族 中 內國人이 적어도 1名 있어야 한다는 條件 때문에 基礎生活需給 對象에서 除外됐다. 또 2年 前 事故로 火傷을 입은 둘째는 自閉性 障礙가 甚했지만 適切한 敎育이나 福祉 支援을 받지 못했다. 學校도 못 간 채 放置됐는데, 外國人이라 義務敎育 對象도 아니었다. 이들 家族을 아는 한 知人은 “둘째가 自閉 때문에 집에 있으니 어머니가 다른 子女를 데리고 病院에 가면 큰딸(11)李 學校를 쉬고 둘째를 돌보곤 했다”고 말했다. 큰딸과 셋째 아들(5)은 移住民 共同體에서 後援金 等으로 運營하는 代案學校에 다녔다. 이番 事故를 個人의 不注意 탓으로 돌리긴 쉽다. 2年 前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럴 境遇 類似한 悲劇은 어딘가에서 反復될 수밖에 없다. 最近 政府는 移民廳을 設立한다며 한창 準備 中이다. 하지만 合計出産率 0.78名 時代에 高學歷 엘리트 移民者만 곶감 빼먹듯 받아선 人口를 保全할 수 없다. 政府 當局者 누군가는 韓國 社會의 未來와 普遍的 人權 保障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移住民들에게 最小限의 삶을 保障할 方法을 苦悶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 當局者가 나이지리아 4男妹의 悲劇을 한 番 더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늦었지만 글을 남긴다.장원재 社會部長 peacechaos@donga.com}

    •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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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來日/장원재]靑瓦臺 로고가 바뀐 理由

    朴槿惠 政府가 出帆한 2013年 筆者는 막내 記者로 大統領職引受위와 靑瓦臺 取材를 擔當했다. 새 政府 出帆 直前 한 親朴 關係者가 私席에서 “靑瓦臺 로고를 바꾼다”며 새 로고를 보여줬다. “옛날 거랑 비슷하다”고 하자 펄쩍 뛰면서 “只今까진 ‘靑瓦臺’ 아래 ‘大韓民國’ 表記가 있었는데 ‘大韓民國’을 ‘靑瓦臺’ 위로 올렸다. 새 政府 哲學을 보여주는 엄청난 變化”라고 했다. 이어 “인턴이 디자인해 돈 한 푼 안 들었다”고 덧붙였다. 結局 로고는 바뀌었지만 筆者 마음속엔 ‘正말 엄청난 變化라면 專門家 審議 等 제대로 節次를 거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疑問이 남았다. 나중에 돌아보니 다들 새 政府 出帆을 앞두고 ‘한 件 올리기’에 血眼이 돼 있던 時期였다. 政權 再創出을 해도 主要 補職이 모두 바뀌는 靑瓦臺에서 제대로 된 引受引繼란 存在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얼마 前 國家搜査本部腸 候補者로 指名됐던 정순신 辯護士의 辭退를 지켜보며 當時 생각이 났다. 政府는 鄭 辯護士가 “本人·配偶者·直系존비속이 관계된 民事·行政訴訟이 있느냐”는 檢證 質問에 “아니요”라고 答해 子女 學校暴力 內容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政府에서 이 項目의 質問은 “民事訴訟에 連累된 적 있거나, 現在 當事者로 進行 中인 裁判이 있느냐”였다. 行政訴訟을 追加한 것까진 좋았는데 過去 訴訟 經驗을 묻는 表現을 除外해 鄭 辯護士가 “進行 中인 訴訟만 묻는 줄 알았다”며 法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길을 터줬다. 政權 再創出을 해도 引受引繼가 어려운데 政權이 交替된 境遇는 오죽할까. 하지만 國民을 위해서라도 이어갈 건 이어가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잘한 일을 이어가는 것만큼이나, 잘못한 일을 反復하지 않기 위한 努力도 必要하다. 文在寅 政府는 南北 間 協力 等을 除外하면 可及的 輿論의 支持를 얻기 어려운 일에는 손대지 않았다. 年金 改革, 勞動市場 改革 等이 代表的이다. 文在寅 政府 靑瓦臺를 擔當했던 筆者가 長期 改革 課題를 言及하면 “懸案이 山더미인데 支持率 깎아 먹을 일 있나” “輿論 支持 없이는 於此彼 實現 不可能하다”는 答이 돌아왔다. 尹錫悅 政府는 出帆 첫해 勞動·年金·敎育 改革을 들고나왔다. 하나하나 政權의 命運을 左右할 敏感한 主題이고 國家的으로 꼭 풀어야 할 課題다. 그런데 年金 改革案 準備는 繼續 미뤄지고 있고, 勞動市場 改革은 與小野大 國會에 막혀 있다. 이를 보며 只今까지 안 된 理由를 充分히 스터디한 後 實行에 着手했는지 疑問이 들었다. 지난 政府에서 改革이 안 된 건 重要한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複雜하고 어렵기 때문이었다. 意欲만큼이나 緻密한 復習도 重要하다는 뜻이다. 韓日 關係도 마찬가지다. 日本軍 慰安婦 合意가 ‘無效’라던 文在寅 大統領은 就任 後 “公式 合意임을 認定한다”며 立場을 바꿨다. 하지만 後續 措置는 없었고 强制徵用 問題도 건드리지 않았다. 反面 現 政府는 意欲을 갖고 解法을 내놨다. 하지만 過去事는 더더욱 意欲만으론 解決되지 않는다. 筆者는 도쿄特派員으로 慰安婦 合意를 옆에서 지켜보며 歷史的 問題에 對한 解法은 被害者에 對한 尊重과 歷史에 對한 謙虛함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 위에서 相對를 正確히 把握하고 精巧한 戰略을 펴야 한다. 그런데 只今은 어떤가. 筆者가 經驗한 日本은 통 큰 相應 措置를 取하는 나라가 아니라 署名한 協約書의 한 單語, 한 表現의 解釋을 두고 執拗하게 매달리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를 相對로 開門發車(開門發車)한 것이 옳은 判斷이었는지, 尹 大統領의 訪日이 마무리된 只今도 疑問이 가시지 않는다. 장원재 社會部長 peacechaos@donga.com}

    •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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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來日/장원재]證據가 가리키는 곳

    더불어民主黨 李在明 代表에 對한 檢察의 拘束令狀 請求書에는 檢察의 自信感과 確信이 곳곳에 묻어난다. 20쪽假量 되는 拘束 必要 思惟에 “三尺童子도 알 수 있을 程度로 明白하다”는 대목을 包含해 ‘明白하다’는 表現만 7次例 登場한다. “다툼의 餘地가 없다”, “自明하다” 等 비슷한 表現을 합치면 그 回數는 훨씬 늘어난다. 하지만 왜 明白한지 根據는 充分히 나오지 않는다. 萬若 社會部 記者가 이렇게 記事를 써 왔다면 “明白하다는 表現을 빼고 代身 明白한 理由를 說得力 있게 羅列하기만 하면 判斷은 讀者가 할 것”이라고 助言했을 것이다. 이에 對해 檢察은 “充分한 物的 人的 證據가 있으며 하나씩 裁判에서 보여주겠다”는 立場이다. 力量을 總動員해 搜査한 만큼 아무 根據 없이 自信感을 보이진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如前히 不安한 대목은 있다. 檢察은 請求書에서 “錄音파일, 指示·報告文件, 이메일 等 客觀的 證據와 關係人들의 一貫되고 一致된 陳述”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言及한 錄音파일, 이른바 ‘정영학 錄取錄’에 依存했던 檢察이 어떤 結果를 받아들었는지 ‘郭尙道 裁判’을 지켜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곽상도 前 議員의 ‘50億 클럽’ 裁判 記錄을 보면 裁判部가 “證據能力이 附與될 것인지 未定”이라며 錄音파일의 證據能力에 疑問을 提起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 錄取錄의 特定 表現을 確認하는 方式으로 訊問하는 것에 異議를 提起해 檢事가 ‘唐慌스럽다’고도 했다. 結局 錄取錄 內容 中 相當 部分은 ‘傳聞陳述’(第3者에게서 傳해 들은 內容을 陳述한 것)로 判斷돼 證據能力을 인정받지 못했다. 裁判 記錄을 보면 檢察의 主張이 傳聞陳述에 依存하고 있다는 指摘이 初期부터 裁判部와 被告 側 辯護人으로부터 여러 次例 나왔지만 檢察이 이를 代身할 決定的 證據를 提示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反面 發言 當事者로 指目된 火天大有資産管理 大株主 김만배 氏는 錄取錄 內容을 否認하거나 ‘虛言’이라며 檢察 主張의 土臺를 무너뜨렸다. 裁判 過程에선 곽 前 議員 아들이 함께 賂物을 받은 ‘共犯’인지 第3者 賂物罪에 該當하는 ‘第3字’인지 不分明하다는 指摘도 나왔다. 判決文을 보면 裁判部는 “法的으로 直接 金品을 받은 行爲와 第3者에게 주게 한 行爲는 區分되는데 檢査는 直接 받은 賂物로 公訴를 提起했다”며 “이 境遇 받은 사람의 生活費를 負擔하고 있거나 當事者의 支出 輕減 等 事由가 있어야 直接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親分이 있는 한 判事는 “여러 次例 裁判部가 시그널을 줬을 텐데 檢察이 왜 公訴狀 變更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法曹界에선 “檢察 側이 第3者 賂物罪 立證 要件인 ‘不正한 請託’과 ‘代價性’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것 같다”는 分析이 나온다. 問題는 大庄洞 事件을 뒷받침하는 土臺가 ‘정영학 錄取錄’과 유동규 前 城南都市開發公社 社長 職務代理 및 남욱 辯護士의 陳述이란 것이다. 向後 進行될 이 代表 裁判에서도 錄取錄과 유동규 남욱 陳述에만 依存하면서 核心 被疑者 김만배 氏의 입을 열지 못하면 비슷한 樣相이 反復될 수 있다. 이원석 檢察總長은 지난해 12月 西海 公務員 被殺 事件 搜査를 두고 “오로지 證據가 가리키는 곳만을 찾아가서 眞實만을 밝혀내는 方式으로 搜査가 進行 中”이라고 했다. 檢察이 똑같이 ‘證據가 가리키는 곳’만을 찾아가는 方式으로 搜査를 進行했는지 앞으로 이어질 裁判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리고 한동훈 法務部 長官이 27日 國會에 나가 할 逮捕同意要請 理由 說明에서도 그 端緖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원재 社會部長 peacechaos@donga.com}

    • 20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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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右回轉 規制는 글로벌 스탠더드인가[오늘과 來日/장원재]

    最近 서울 市內에서 右回轉을 기다리던 中 射距離 오른쪽에 設置된 右回轉 信號燈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警察이 “右回轉 信號燈이 設置된 곳에선 綠色 화살標 信號에만 右回轉할 수 있다”고 發表한 터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綠色 화살標’ 代身 ‘綠色 원’李 나타났다. 瞬間 唐慌했다. 綠色 화살標가 아닌데 가도 되나…. 나중에 물어보니 筆者가 본 信號燈은 ‘右回轉 信號燈’이 아니라 ‘補助 信號燈’이라고 했다. 또 警察이 發表한 ‘右回轉 信號燈’은 現在 서울에 1個뿐이라고 했다. 市內 곳곳에 있는 右回轉 專用 信號燈이 右回轉 信號燈이 아니라는 게 理解가 안 갔다.(찾아보니 몇 年 前에는 警察도 ‘補助 信號燈’을 ‘右回轉 信號燈’이라고 불렀다.) 도쿄 特派員 時節 車를 運轉하면서 애를 먹었던 것 中 하나가 左回轉(韓國의 右回轉에 該當)이었다. 前方 信號燈이 赤色日 때 習慣的으로 핸들을 돌렸다가 눈총을 받곤 했다. 日本에선 前方 信號燈이 赤色인 境遇 直進은 勿論 右回轉 左回轉이 모두 禁止된다. 그런데 익숙해진 다음부턴 韓國보다 便했다. 日本의 左回轉 規制는 簡單하다. 信號燈이 赤色이면 모두 멈춰야 하고, 綠色이면 右回轉 左回轉 直進이 모두 可能하다. ‘멈춰’라는 標識板 앞에 暫時 멈춰야 하고, 綠色 화살標 信號燈이 켜지면 그 方向에 따라 運轉하면 된다. 警察은 지난달 報道資料를 내고 强化된 右回轉 規制를 適用하겠다고 밝혔다. 前方 信號가 赤色인 境遇 右回轉하기 前 義務的으로 一時 停止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右回轉 信號燈이 設置된 곳에선 綠色 화살標 信號에만 右回轉할 수 있다고 했다. 發表를 보고 疑問이 생겼다. 前方이 赤色이고 綠色 화살標 信號가 들어온 境遇 一時 停止해야 하나, 前方이 綠色이고 綠色 화살標 信號가 안 켜진 境遇 右回轉이 可能한가 等. 여기에 ‘右回轉 信號燈’과 ‘補助 信號燈’의 差異까지 알게 되면서 새로 생긴 規制를 제대로 理解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또 現實을 充分히 考慮하지 않고 意欲이 앞서 섣불리 새 規制를 導入한 것 아닌가 疑問이 들었다.(참고로 警察이 말하는 ‘右回轉 信號燈’이 設置된 곳은 全國 15곳뿐이다.) 警察은 지난해에도 右回轉 規制를 强化했다. 右回轉 後 마주치는 橫斷步道에 ‘건너는 사람’이 있을 때는 勿論 ‘건너려는 사람’이 있을 때도 一時 停止해야 한다는 內容이었다. ‘건너려는 사람’의 基準으로는 ‘橫斷步道 隣近에서 周圍를 살피는 境遇’ 等을 提示했다. 運轉者들 사이에선 “讀心術이라도 배우라는 말이냐”는 批判이 쏟아졌고 今方이라도 大大的 團束을 實施할 것 같았던 警察은 조용해졌다. 警察의 善意를 모르는 건 아니다. 2020年 基準으로 全體 交通事故 步行 死傷者 中 10.4%가 右回轉 關聯 死傷者였다. 韓國은 美國 캐나다와 함께 前方 赤色 信號 時 右回轉을 許容하는 몇 안 되는 나라 中 하나여서 右回轉 時 事故 危險이 높은 것도 맞다. 그렇다고 國民들이 理解하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規制를 濫發해선 안 된다. 筆者 周邊에도 “右回轉 規制가 너무 複雜해 理解를 抛棄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여럿 있다. 實效性 없는 規制를 濫發하는 것보다 꼭 必要한 規制를 定해 施行하고 徹底히 團束해야 國家 政策에 信賴가 생긴다. 尹錫悅 大統領은 지난달 法務部 等의 業務報告를 받고 “先進國 水準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規制를 果敢하게 바꿔 달라”고 注文했다. 只今의 右回轉 規制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지 警察 스스로 自問自答해 보면 答은 어렵지 않게 나올 것 같다.장원재 社會部長 peacechaos@donga.com}

    • 20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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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來日/장원재]免罪符는 없다

    警察廳 特別搜査本部(特搜本)가 13日 搜査 結果 發表를 며칠 앞두고 “서울市와 行政安全部에 梨泰院 핼러윈 慘事의 責任을 묻기 어렵다”고 밝혔을 때 딱히 놀라진 않았다. 지난해 11月 2日 出帆 後 上級機關으로 갈수록 消極的이었던 特搜本의 모습을 봐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災難 및 安全管理 基本法(災難安全法)을 根據로 내세운 건 多少 意外였다. 特搜本은 災難安全法上으로 볼 때 이태원 慘事의 境遇 梨泰院洞에 限定된 事故라 對比와 對應 責任이 基礎自治團體인 龍山區와 용산警察署, 龍山消防署에 있다고 밝혔다. 反面 廣域自治團體(서울市)와 中央行政機關(行安部)의 境遇 “具體的 注意 義務가 附與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理由로 責任을 묻기 힘들다고 했다. 이런 法理 解釋이 特搜本 出帆 直後 나왔다면 그나마 理解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出帆 때는 “聖域 없이 搜査하겠다”고 하더니 73日 동안의 活動을 마무리하면서 法理的 限界를 指摘한 걸 어떻게 理解해야 할까. 처음부터 限界를 알고도 聖域 운운하며 國民을 欺瞞했거나, 結論을 내 놓고 막판에 法理를 動員한 것 아니냐는 疑心을 사기에 充分하다. 災難安全法에 對한 特搜本의 解釋에도 論難의 餘地가 있다. 災難安全法 施行令은 ‘人名이나 財産의 被害가 매우 크고 影響이 廣範圍한 境遇’ 廣域團體長이 災難 應急措置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特搜本은 梨泰院 慘事가 여기에 該當하지 않는다고 봤다. 影響이 廣範圍하다는 게 어느 程度까지를 말하는지 모르지만 이태원 事故는 2000年 以後 3番째로 많은 死亡者를 낸 慘事다. 筆者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筆者가 通話한 災難安全法 專門家들은 모두 “特搜本이 法 規定을 消極的으로 解釋했다”고 입을 모았다. 2011年 牛眠山 山事態 때 서초구를 相對로 賠償을 이끌어낸 김영희 辯護士는 “핼러윈 이벤트처럼 每年 人波가 몰릴 것으로 豫想되는 行事에서 豫防 措置를 取할 法的 責任은 當然히 서울市와 行安部에도 있다”고 指摘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이태원 慘事 被害者 支援을 맡고 있는 洪之백 辯護士는 ‘個人的 見解’임을 前提로 “서울市의 境遇 이태원驛과 서울交通公社 等을 통해 事態를 充分히 把握할 수 있는 狀況이었던 걸로 보인다. 서울市에도 一部 指揮 監督 責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또 “特搜本 搜査 結果가 被害者들의 國家賠償 訴訟에 影響을 미칠 수 있다”고 憂慮했다. 2017年 69名의 死傷者를 낸 堤川 스포츠센터 火災 때도 檢察이 關聯者에게 不起訴 處分을 내린 後 遺族들이 忠北道를 對象으로 한 損害賠償 訴訟에서 졌다. 또 다른 辯護士도 “災難安全法은 災難을 豫防하고 被害를 復舊하기 위한 法人 만큼 趣旨를 생각하면 消極的으로 解釋하기보다 폭넓게 解釋하는 게 맞다”고 했다. 多幸인지 不幸인지 몰라도 特搜本의 免責 試圖가 成功할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먼저 檢察이 强制搜査에 着手했다. 遺族들도 끝까지 責任을 묻겠다는 뜻이 確固하다. 해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責任의 程度는 두 손으로 致命的 殺害 道具를 使用한 사람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增加한다”고 했다. 人命이 犧牲되는 構造와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 더 큰 責任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結局 마지막에 免罪符를 줄 수 있는 건 國民들이다. 特搜本이 줄 수 있는 건 免罪符가 아니라 잠깐의 安堵感에 不過할 可能性이 높아 보인다.장원재 社會部長 peacechaos@donga.com}

    •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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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單獨]吳世勳 “서울 집값 훨씬 더 떨어져야… 再建築 規制 緩和 政府와 共感”

    吳世勳 서울市長(寫眞)이 서울市 傘下 公共機關 26곳 中 最少 3, 4곳을 統廢合하겠다는 構想을 밝혔다. 吳 市長은 11日 서울 中區 執務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前任 市長이) 公共機關을 많이 늘렸다. 現在 26곳이고 人員도 (10年 동안) 2萬 名에서 3萬 名까지 늘었다”며 “機能이 비슷하거나 重複된 곳을 中心으로 最小 3, 4個는 統廢合할 것”이라고 밝혔다. 吳 市場이 具體的인 統廢合 目標를 밝힌 건 처음이다. 傘下 機關 中 120茶山콜財團 等 10個가 朴元淳 前 市場 在任 때 생겼다. 다만 “雇傭安定性 次元에서 人員을 줄이긴 쉽지 않다”며 人員 減縮에는 線을 그었다. TBS교통방송에 對해선 “獨立財團을 追求한다면 財政的으로도 獨立하는 게 맞다”며 財政 支援 中斷 意志를 分明히 했다. 吳 市場은 “市民 稅金으로 運營되는 公營放送이면 政治的으로 客觀的·中立的이어야 하는데 放送을 어떻게 했는지 돌아보라. 아무도 TBS 便을 안 든다”며 “偏向性을 自制하는 幾微조차 안 보인 채 끊임없이 不平만 한다”고 批判했다. 與黨 狀況에 對한 言及도 있었다. 吳 市場은 “李俊錫 國民의힘 代表와 오늘(11日) 아침 通話하면서 ‘黨 中央倫理委員會 決定은 났고, 只今은 참고 忍耐해야 할 때’라고 했다”고 傳했다. 동아일보는 吳 市場을 始作으로 이달 1日 任期를 始作한 廣域 自治團體長 릴레이 인터뷰를 進行한다.“서울 집값 훨씬 더 떨어져야… 再建築 規制 緩和 政府와 共感” “光化門廣場에 나무 5000그루… 都心속 鬱蒼한 숲으로 만들 것서울 새 슬로건 年末까지 選定… 市民-公務員 아이디어 함께 收斂産業銀行 全部 移轉은 어려워… 汝矣島, 핀테크 金融허브로” 吳世勳 서울市長(61)은 11日 東亞日報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달 再開場을 앞둔 光化門廣場에 對해 “5∼10年 뒤에는 (都心 속에) 鬱蒼한 숲이 생긴다”며 “世宗文化會館 等 隣近 建物 1層에 카페와 食堂 等 休憩施設을 만들어 사랑받는 公園 같은 廣場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最近 下落勢로 돌아선 집값에 對해선 “훨씬 더 떨어져야 한다”며 “新規 住宅 供給에 모든 에너지를 投入하겠다는 政策 基調에 變化가 없다”고 强調했다. 또 TBS交通放送을 包含한 公共機關 改革과 時 슬로건 ‘아이 서울 有(I·SEOUL·U)’ 交替 等에 對한 剛한 意志를 내비쳤다. 다음은 一問一答.○ “選擧 結果,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選擧에서 426個 서울 모든 棟에서 이겼다. “426個 全體 棟에서 勝利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瞬間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저한테 期待하는 바가 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4年 동안 期待에 副應해 서울市民이 願하는 서울市를 만들어야 한다는 크고 嚴重한 責任感을 느낀다.” ―與黨이 市議會 112席 中 78席을 차지했다. “國民의힘 所屬 市議員이 全體의 3分의 2를 若干 넘었다. 區廳長도 17名이 國民의힘 所屬이고 8名이 더불어民主黨 所屬이다. 이 程度면 서울市 비전을 設定한 대로 제가 일하는 데 全혀 支障이 없을 것으로 본다.”○ “光化門廣場, 都心 속 鬱蒼한 숲으로”―다음 달 光化門廣場이 再開場한다. “다음 달 6日 再開場 豫定인데, 休息空間을 갖춘 公園 같은 廣場을 만들 거다. 旣存 廣場엔 그늘이 없어 많은 批判을 받았다. 키 큰 나무 300그루를 包含한 水木 5000그루를 심었다. 5∼10年이 지나면 (都心 속에) 鬱蒼한 숲이 생겨 햇빛을 避할 수 있게 된다. 또 隣接 建物에 食飮料 販賣店 等 休憩施設이 있어야 사랑받는 廣場이 된다. 世宗文化會館을 始作으로 隣近 建物에 協助를 求해 적어도 1層에는 카페나 飮食店이 자리 잡도록 할 거다. 一部 建物과는 이미 協議를 進行하고 있다.” ―開放된 靑瓦臺와 連繫 計劃이 있나. “靑瓦臺에는 이미 많은 國民이 訪問하고 있다. 또 이달 ‘宗廟∼昌慶宮 原形 復元事業’李 마무리되면 景福宮, 昌德宮, 昌慶宮, 宗廟가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靑瓦臺와 光化門廣場, 各種 博物館과 美術館, 松峴洞 綠地廣場과 向後 들어설 ‘李健熙 寄贈館’까지 이어지면서 文化·藝術·歷史가 어우러지는 서울의 代表 名所가 될 거다.”○ “집값 훨씬 더 떨어져야, 新規住宅 供給 繼續” ―서울 집값이 下落勢로 돌아섰다. “只今까지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훨씬 더 떨어져야 한다. 新規 住宅 供給에 모든 에너지를 投入하겠다고 했던 旣存 政策 基調에 變化가 없다. 元來 計劃대로 新規 住宅을 最大限 빠르게 供給하겠다는 目標下에 迅速統合企劃, 再建築·再開發, 모아타운 等을 繼續 推進할 것이다.” ―國土交通部와 再建築 規制 緩和 等 協議하나. “꾸준히 疏通하고 있다. 가장 큰 關鍵은 再建築 超過利益 還收制와 分讓價 上限制다. 어떻게든 住宅 供給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現 制度를) 바꾸자는 것에 (國土部와) 共感帶를 이뤘다. 具體的인 方案에 對해선 協議를 進行하고 있어서 只今 밝히긴 어렵다.” ―屯村住公아파트 再建築 事業이 두 달 넘게 中斷 狀態다. “참 답답하다. (協商이) 될 듯 될 듯하면서 한 달 가까이 지났다. 하지만 곧 妥結이 될 것으로 보이긴 한다.”○ “올해 末까지 새 슬로건 選定”―서울市 슬로건 ‘아이 서울 有(I·SEOUL·U)’를 바꾸겠다고 했다. “祝祭처럼 市民 參與를 거쳐 選定될 수 있게 할 것이다. 市民 아이디어를 收斂하면서, 公務員 아이디어도 받는 ‘투트랙’으로 進行한다. 意見이 모아지면 브랜드 專門家들이 經驗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深度 있게 關與해 世界人을 감동시킬 슬로건을 만들 豫定이다. 서두르지 않고 年末까지 ‘最高 中의 最高’를 選定할 것이다.” ―어떤 要件을 갖춘 슬로건이 바람직한가. “一旦 目標가 뚜렷해야 한다. 國際社會에 선보였을 때 서울에 꼭 와 보고 싶게 할 수 있는 슬로건이 必要하다. 브랜딩 原則에 따르면 메시지가 있으면서도 魅力 있고, 好奇心을 刺戟하고, 재미있고, 쉬우면서, 짧아야 한다. 只今 슬로건은 짧다는 것 外에는 브랜딩 原則에 안 맞는다.”○ “産業銀行 移轉 代身 핀테크 育成”―縣 政府 方針인 KDB産業銀行 以前에 反對한다고 밝혔다. “政府에 여러 次例 서울市 立場을 傳達했다. 그런데 大統領職引受委員會에서 이미 方針을 定했고 釜山市라는 相對가 있어서 서울市 뜻대로만 하긴 어려울 것 같다. 代案을 찾아야 한다.” ―어떤 代案이 있나. “핀테크(Fintech·金融과 技術의 合成語)다. 只今은 핀테크가 金融産業의 中心 機能을 한다. 이런 機能을 汝矣島에 誘致하고 발전시키는 게 金融허브 造成의 關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산은이 全部 以前夏祈禱 어렵다. 産銀의 本質的 機能은 企業과의 協業이다. 企業 本社가 다 서울에 있는데 어떻게 釜山으로 모두 移轉할 수 있겠나. 本店이 내려가도 많은 人力이 서울에 남지 않겠나.” ―次期 大選走者로 꼽히는데 任期 後 構想을 말해 달라. “서울市 챙기기에도 餘力이 없다. 現在에 忠實하지 않고 어떻게 未來가 있겠나. 壓倒的 支持를 보내주신 市民들께 報答하기 위해 粉骨碎身하는 마음으로 是正에 最善을 다하겠다.”오세훈 서울市長 프로필△서울 出生(61) △대일고, 高麗大 法學科 卒業 △司法硏修院 17期 △第16代 國會議員(2000∼2004年) △第33·34代 서울市長(2006年 7月∼2011年 8月) △第38·39代 서울市長(2021年 4月∼現在) 강승현 記者 byhuman@donga.com社支援 記者 4g1@donga.com인터뷰=장원재 社會部長 peacechaos@donga.com 整理=강승현 記者 byhuman@donga.com}

    •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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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單獨]이상민 “지난 政權서 搜査 안된 것 꽤 있어”

    李尙玟 行政安全部 長官(寫眞)이 4日 “지난 政權에서 搜査가 됐어야 할 것들 中 搜査가 안 된 것들이 事實 꽤 있다”며 “(政治報復으로) 볼 素地도 없지 않지만 뻔한 잘못을 가만 놔두는 것은 正말 不公正한 것”이라고 밝혔다. 西海 公務員 被殺 事件 等 文在寅 政府에서 묻혔던 事件들에 對한 搜査의 必要性을 처음 言及한 것이다. 李 長官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東亞日報와의 인터뷰에서 “搜査의 政治的 中立에 對해서는 疑問의 餘地가 없고 누가 搜査에 關與하는 것도 생각하기 힘들다”고 前提한 後 “宏壯히 銳敏한 問題지만, 政治報復이란 프레임을 씌워서 源泉的으로 搜査를 못 하게 하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李 長官은 “이것(搜査가 안 된 것)이 可能했던 건 (文在寅 政府) 靑瓦臺가 警察을 直接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잘못하면 處罰받는 게 마땅하다. 處罰을 어떻게 할 거냐에 對해선 政治的 考慮를 하더라도 國民 立場에서 드러나야 하는 팩트 自體는 搜査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고 强調했다. 李 長官은 5日 發表되는 次期 警察廳長에 對해 “(지난週) 候補들을 個別 面談했다”며 “人事提請을 하면 責任도 제가 져야 한다. (尹錫悅) 大統領께서 ‘이 사람 어떠냐’고 했을 때 書類만 보고 말할 수 없으니 안 만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野黨은 李 長官이 지난달 治安正監 內定者 6名을 面談한 事實이 알려지자 “警察 길들이기를 中斷하라”고 批判한 바 있다. 李 長官은 面談한 候補들이 行安部 내 警察局 新設 等을 勸告한 警察制度改善諮問委員會의 勸告案에 對해 “다들 共感하는 態度였다”고 傳했다. “靑이 警察 掌握한 代表的 事件이 西海 公務員 被殺… 팩트 밝혀야” 李尙玟 行安部 長官 本報 인터뷰 “警察職協 ‘警察局 反對’ 削髮… 活動 限도 넘어선 政治的 行爲至難週 警察廳長 候補들 面談… 警察制度改善案에 모두 共感警察, 人事飜覆 잘못 大統領에 미뤄… 懲戒나 適切한 人事措置 있을 것” 李尙玟 行政安全部 長官은 4日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東亞日報와의 인터뷰에서 “歷代 政府에선 靑瓦臺가 警察 首腦部와 密室에서 去來해온 것이 公公然한 祕密이었다”며 “大統領이 大統領民政首席祕書官室이나 治安祕書官 또는 靑瓦臺 國政狀況室을 통해 警察을 掌握하는 것이 가장 效果的인데 그 代表的 事例가 ‘西海 公務員 被殺 事件’”이라고 指摘했다. 西海 公務員 被殺 事件을 둘러싼 論難이 文在寅 政府 靑瓦臺가 海洋警察을 掌握해 빚어진 事件이란 뜻이다. 이른바 ‘治安監 人事 飜覆’ 論難을 두고 尹錫悅 大統領이 ‘重大한 國紀紊亂’이라고 밝힌 것에 對해선 “警察이 自身들의 잘못을 大統領에게 미루는 건 있을 수 없는 日”이라며 事實關係 調査 後 懲戒 및 人事 措置를 하겠다는 方針을 밝혔다. 다음은 一問一答.○ “西海 公務員 被殺, 靑 行政官이 海警과 ‘直去來’”―全國警察職場協議會(職協)가 削髮과 單式에 나섰다. “職協은 現 政府가 警察을 掌握하려는 것 아니냐는 疑懼心을 갖고 있다. (하지만) 現 政府는 警察에 對한 直接 統制를 내려놓고, 大統領室에서 이른바 ‘警察 掌握’을 위한 組織을 完全히 없앴다. 大統領이 直接 (權限을) 行使하면 警察 掌握이 아니고, 法에 따라 行安部 長官이 指揮하면 警察 掌握이라는 論理는 도무지 世上에 없는 論理다. 野黨의 政治的 攻勢에 便乘하려는 듯한 態度는 職協議 限度를 넘어선 政治的 行爲다.” ―‘警察局’ 規模와 構成은 어떻게 할 건가. “總人員은 15∼20名으로 3個 科를 두려 하고 있다. 局長은 當然히 警察 出身으로 임명할 것이고, 全體의 80∼90%는 警察로 充員할 생각이다. 주된 業務가 人事일 텐데, 行安部 公務員이 警察 組織을 알 수 없기 때문에 人事課는 100% 警察로 채울 생각이다. 나머지 2個 過度 行安部 公務員은 한두 名만 둘 計劃이다.” ―警察國을 통해 警察을 統制하려 한다는 指摘이 있다. “歷代 政府에서 ‘BH(靑瓦臺)’와 警察 首腦部가 密室에서 (人士 等을) 去來해온 것이 公公然한 祕密이었다. 行安部 長官은 法에 規定된 權限을 行使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番 政府는 警察에 對한 大統領의 直接 統制를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文書로 모든 根據가 남도록 行安部 長官을 거쳐서 警察을 指揮한다면 오히려 (警察을) 掌握할 수 없다. 代表的인 게 西海 公務員 被殺 事件이다. 一名 ‘海警王’으로 불리는 大統領民政首席祕書官室 行政官이 海洋水産部 長官을 제치고 (海警과) ‘直去來’한 걸로 보인다. 不法인 만큼 아무 根據도 안 남아 國民 立場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搜査 獨立’은 어떤 式으로 지킬 것인가. “‘獨立’이라기보다는 ‘政治的 中立’이 맞다. 搜査의 政治的 中立에 對해선 疑問의 餘地가 없고, 누군가 搜査에 關與한다는 것도 생각하기 힘들다. 다만 지난 政權에서 搜査되어야 할 것들 中 搜査가 안 된 게 꽤 있다. 그런 게 可能했던 것은 (文在寅 政府) 靑瓦臺가 警察을 直接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野黨은 文在寅 政府 搜査를 ‘政治報復’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뻔한 잘못을 가만 놔두는 것도 正말 不公正한 것 아니겠나. 잘못을 밝혀내고 處罰을 어떻게 할 거냐에 對해선 政治的 考慮를 하더라도 팩트 自體는 搜査해서 밝혀내야 한다.”○ “警察廳長 候補 個別 面談 했다”―경찰청장 候補를 個別的으로 만났나. “(지난週) 個別 面談을 했다. (人事 提請을 할 때) 大統領께 報告를 드리는데, 書類만 보고 ‘이 사람에 對해 이렇게 쓰여 있다’고 이야기할 순 없지 않겠나. 안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點을 重點的으로 봤나. “14萬 警察을 이끌 만한 리더십이 있는지와 組織을 이끌어본 專門性, 透徹한 國家觀, 使命感 等이 基礎 체크事項 아닌가 싶다. (警察制度改善諮問委員會 勸告案에 對해서도) 다들 共感하는 態度였다.” ―大統領과도 새 廳長에 對해 이야기를 나눴나. “뵐 機會가 있을 때마다 여러 次例 尹錫悅 政府 初代 警察廳長이 갖춰야 될 人性, 人品, 리더십 等에 對해 大統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들었다.”○ 人事 飜覆 論難에 “懲戒 等 人事 措置”―‘人事 飜覆’ 論難 調査를 進行 中이라고 했다. “警察廳 等에서 調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調査가 그렇게 複雜하지 않으니 곧 結果가 나올 거라 豫想하고 있다. (잘못이 드러나면) 懲戒라든지 그 밖의 適切한 人事 措置가 있지 않을까 싶다.” ―尹 大統領은 ‘重大한 國紀紊亂’이라고 했다. “事案은 심플하다. 지난달 15日 海外 出張 갈 때 人事案은 確定돼 있었다. 다만 地方警察廳長은 自治警察委員會 同意가 必要해 發表를 미룬 것이다. 節次가 마무리돼 歸國 後 提請하고 大統領이 決裁하셨다. 그런데 人事 飜覆이 있었다고 해서 狀況을 把握해 보니 實務者들 失手가 있었던 거 같더라. 一部 言論에서 大統領 裁可 前 人事案을 公開한 걸 두고 ‘國紀紊亂’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論難 以後) 警察 內部에서 大統領이 두 番 (人事案을) 決裁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브리핑이 있었다. 大統領 또는 行安部 長官이 뭔가 잘못했거나, 有力 政治人 입김이 作用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記者會見이 繼續됐다. 그래서 國紀紊亂이란 表現을 쓴 거다. 自身들의 잘못을 大統領에게 미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尹 大統領은 巡警 出身 高位職 比率 擴大를 公約했다. “尹 大統領께서 北大西洋條約機構(NATO·나토) 頂上會議를 마치고 歸國한 直後 ‘警察 關聯 公約을 지키겠다’고 다시 한 番 確認해 줬다. 複數職級制 導入, 警察의 公安職 轉換, 昇進構造 改善 等은 警察 (혼자) 힘으로 絶對 못 한다. 行安部 長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豫算을 確保하려면 企劃財政部와의 協商이 가장 重要한데 行安部 長官과 警察廳長 中 누가 協商 파트너일 때 더 役割을 하겠나.”인터뷰=장원재 社會部長李尙玟 行政安全部 長官 略歷△全北 益山 出生(57) △冲岩高, 서울대 法學科 卒業 △司法硏修院 18期 △春川地法 原州 支院長 △大法院 裁判硏究官 △朴槿惠 政府 國民權益委 副委員長 △法務法人 金長利 代表 △行政安全部 長官(2022年 5月∼現在)整理=社支援 記者 4g1@donga.com 인터뷰=장원재 社會部長 peacechaos@donga.com}

    • 202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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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單獨]吳世勳 “尹 執務室 移轉, 용산 開發 影響 없을것”

    “大統領 執務室 龍山 移轉이 龍山國際業務地區 開發 等 推進 中인 整備事業에 影響을 주진 않을 겁니다.” 就任 1年을 앞둔 吳世勳 서울市長(寫眞)은 22日 東亞日報와의 인터뷰에서 “大統領 執務室 豫定地 半徑 1km 안에 三角맨션 等 整備事業 豫定地가 있고, 2km 안에 龍山 國際業務地區 開發地와 漢江邊 再建築 豫定地가 있다”며 “19日 午後 尹錫悅 大統領 當選人을 만나 警護 때문에 이들 事業에 制限이 加해질 일은 없다는 立場을 確認했다”고 했다. 吳 市長에 따르면 19日 午前 류훈 서울市 行政2副市長 等과 만난 大統領職引受委員會(引受위) 警護責任者 亦是 “이미 國防部 때문에 保護가 이뤄지고 있어 그 以上의 建築 制限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다만 吳 市場은 “尹 當選人에게 6個月∼1年 程度 熟成 期間을 거쳐 옮기는 게 安全하지 않겠냐는 輿論을 傳達했다”고 傳했다. 尹 當選人이 5月 10日 靑瓦臺 開放을 約束한 것에 對해선 “7月에 光化門 廣場이 달라진 모습으로 再開場한다. (光化門 廣場과) 靑瓦臺가 시너지 效果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期待感을 나타냈다.“시의회 非協調로 是正運營 限界… 再選 땐 未來志向的 수도 만들 것”吳世勳 서울市長 인터뷰 正體不明 ‘I SEOUL YOU’ 슬로건條例로 規定해 놓아 바꿀 수 없고…관변 團體 委託事業度 折半만 高쳐市議員-區廳長 等 特定黨 掌握 땐…대등한 協助안돼 消耗的 葛藤 誘發 “1年 동안 아쉬움이 많았다. 더불어民主黨이 市議會의 壓倒的 多數인 90%(110席 中 99席)를 차지하고 있어 議會 同意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지난해 4月 就任 後 1年 가까이 서울施政을 이끌어 온 吳世勳 서울市長(61)은 22日 東亞日報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次例 아쉬움을 드러냈다. 吳 市場은 現在 서울 슬로건인 ‘아이 서울 有(I SEOUL U)’를 例로 들며 “初期부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剛한 批判이 있었다. 바꾸고 싶었는데 條例로 돼 있어 바꾸려면 市議會 過半數 贊成이 必要하다 보니 始作도 못 했다”고 돌이켰다. 6月 地方選擧에서 再選되고 市議會 構成이 바뀌면 “當然히 바꾸겠다”고도 했다. 다음은 一問一答. ―지난 1年을 어떻게 評價하나. “보람도 있고 아쉬움도 있는데 아쉬움이 크다. (지난 10年 동안) 서울市는 過去 志向的 是正을 펼쳤다. 市民團體를 標榜하는 官邊 旣得權 團體가 委託事業을 獨占하며 相當한 豫算을 썼다. 잘못된 慣行을 고치는 ‘서울市 바로세우기’ 作業을 했는데 市議會에서 다시 (該當 團體) 豫算 折半을 復元시켜 折半의 成功에 그쳤다. 反面 서울비전 2030 等 都市 競爭力을 끌어올리기 爲해 座標를 設定하고 具體的 方法을 設計한 것은 意味가 있다.” ―再選에 挑戰하는데 서울市民이 왜 다시 吳 市場을 뽑아야 하나. “이제 막 未來 志向的 是正으로 座標 設定을 했다. 市議會 等이 민주당 一色이어서 펼쳐보지 못한 비전과 政策이 많다. (地方選擧 後) 마음껏 한番 펼쳐보고 싶다.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려면 都市 競爭力을 끌어올려 持續 可能한 良質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제가 세운 ‘서울비전2030’이라는 中長期 計劃이 切實하게 必要하다. 이 計劃이 차근차근 實行돼 나가는 모습이 (再選될 境遇) 앞으로 4年間 이뤄질 變化다.” ―이番 地方選擧에서 市議會 構成에 變化가 있을까. “市議員·區廳長·區議員의 80∼100%가 한 糖으로 돼 있는 건 事實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對等한 權限을 가져야 協助도 이뤄지는 거다. 只今 狀況은 자칫 잘못하면 消耗的 葛藤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걸 市民 여러분이 勘案해주시면 좋겠다. 이番에 大選 得票率을 보면 (地方選擧 當選 比率이) 折半 程度나 되려나…. 過半數는 넘겼으면 좋겠는데.” ―지난해 市長選擧와 比較할 때 大選에서 서울 地域 票 差異가 줄었다. 民心을 어떻게 보나. “得票 數字를 한두 가지 原因으로 分析하는 건 意味가 없다. 다만 市民들이 只今도 가장 切實하게 願하는 건 ‘不動産 市場 安定’이라고 생각한다. 1年 동안 不動産 價格을 刺戟하지 않는 範圍 內에서 迅速統合企劃 導入 等 여러 規制 緩和를 했다. 再建築·再開發 活性化에도 相當 部分 進度가 나가고 있다.” ―大統領職引受委員會(引受위)에 不動産 擔當 市 公務員을 派遣했다. 어떤 意見을 傳達하나. “再建築·再開發 活性化를 위해 서울市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國土交通部가 固執스럽게 維持하는 强化된 安全診斷 基準이나 超過利益還收 等에 對해 實效性 있는 變化가 必要하다. 綜合不動産稅 廢止 等 不動産 稅制에 對해서도 意見을 引受委에 傳達하기 위해 整理를 마쳤다.” ―不動産 外에 引受委에 傳達할 意見은…. “뉴욕 런던 도쿄(東京) 베이징(北京) 等 라이벌 都市와 比較하면 서울은 制約이 많다. 法人稅·所得稅 等이 過度하고 首都圈 規制가 많아 外國 企業이 오지 않는다. 首都圈 規制 緩和에 對해서도 建議할 豫定이다. 國內 다른 都市와의 均衡發展度 重要하지만 海外 都市와의 競爭에서 뒤처지게 만드는 規制는 안 된다.” ―以前 在任 期間 推進했던 세빛섬에 對한 評價가 엇갈린다. “前任 市長께서 節次的 瑕疵 等을 問題 삼아 3年 동안 門을 닫아 놨다. 民間投資事業이기 때문에 收益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投資者 立場에서 宏壯히 抑鬱한 일을 當한 것이다. 最近에 다시 注目을 받으며 핫 플레이스가 된 건 多幸이다.” ―새 政府와 어떻게 步調를 맞출 건가. “서울市長은 國務會議 陪席者이고 必要할 때 參席한다. 規制 緩和 等 앞서 引受위에 傳達하겠다고 한 것들을 비롯해 事案別로 政府와 圓滑하게 協助하길 期待하고 있다.”오세훈 서울市長 略歷△서울 出生(61) △대일고, 高麗大 法學科 卒業 △第26回 司法試驗 合格 △第16代 國會議員(2000∼2004年) △第33·34代 서울市長(2006年 7月∼2011年 8月) △第38代 서울市長(2021年 4月∼現在) 인터뷰=장원재 社會部長 peacechaos@donga.com 整理=강승현 記者 byhuman@donga.com}

    •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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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發見 31時間 만에 救助했지만…붕괴 現場 失踪者 1名 死亡

    消防當局은 光州 西區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崩壞 事故 搜索 나흘째인 14日 前날 地下 1層에서 發見했던 失踪者(60代 男性)를 建物 殘骸 속에서 꺼냈지만 死亡한 狀態로 確認됐다. 나머지 失踪者 5名의 生死는 아직 確認되지 않고 있다.● 發見 後 31時間 만에 꺼냈지만 死亡消防當局은 이날 午後 6時 49分 前날 午前 11時 14分 建物 地下 1層 階段 欄干에서 發見됐던 60代 男性을 콘크리트 殘骸와 흙더미 속에서 꺼내 病院으로 移送했지만 이미 死亡한 狀態였던 것으로 確認됐다. 文熙俊 光州 西部消防署長은 “接近을 위하여 重裝備를 動員해 進入路를 確保하고 隊員 80餘 名을 投入해 救助했다”고 說明했다. 消防當局은 이틀 前 救助犬이 微細 反應을 보였던 22層과 26~28層에는 아직 救助隊員의 接近이 어려운 狀況을 勘案해 救助犬 8마리와 ‘핸들러’(救助犬 管理師)를 投入해 나머지 失踪者 5名의 行方을 찾는 데 注力했다. 또 事故 現場 隣近에 1200t까지 들어올릴 수 있는 大型 크레인을 解體된 狀態로 대기시켰다. 崩壞 憂慮가 있는 타워크레인 解體를 위해 가져온 裝備지만 現場 地盤이 不安定해 아직 解體 作業에는 投入하지 못했다. 地盤 補强 및 組立 過程을 거친 後 投入할 豫定인데 組立 作業에만 40時間 以上 걸려 當初 豫定했던 16日부터 解體 作業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타워 크레인 支持臺가 먼저 떨어져 나갔다”사고 當時 現場 職員들로부터 狀況을 報告받은 콘크리트 打設業體 關係者 A 氏는 14日 동아일보 記者와 만나 “建物 崩壞 前 타워크레인을 固定하는 支持代價 建物에서 먼저 떨어져 나가는 ‘1次 崩壞’가 있었다”고 傳했다. A 氏의 陳述과 동아일보 取材를 綜合하면 이날 이 業體 人夫 8名은 사고 建物 39層 바닥 打設(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붓는 作業)을 마친 後 그中 一部가 남아 養生(콘크리트가 完全히 굳을 때까지 保護하는 作業)을 위해 열기 保存用 天幕을 덮고 있었다. 이때 ‘쾅’ 하는 소리가 들렸고 타워크레인 隣近에 있던 펌프茶 위로 建物의 殘骸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現場 作業者들은 “펌프茶 技士의 無電이 들린 直後 39層 바닥이 움푹 가라앉은 映像을 찍었다”고 說明했다. 前날 言論에 提報된 該當 映像은 當初 事故 10分 前에 찍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A 氏의 主張대로라면 失踪者들이 埋沒되기 3, 4分 前에 撮影된 것이다. 崩壞 當時 39層을 監視하고 있어야 할 監理者는 現場에 없었다. 이원호 광운대 建築學科 敎授는 “事故 當時 映像을 보면 建物 中間層(25~30層)에서 落下物이 먼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타워크레인을 固定하는 支持代價 强風에 먼저 뜯겨 나간 것으로 推定된다”고 했다.● “支持臺 없었다” 主張度不實 施工 疑惑도 提起됐다. 事故가 發生한 아파트는 水平 기둥인 洑가 없는 無量판 構造라 打設 作業을 할 때 콘크리트를 支撐하도록 作業層 아래 5, 6個 層에 支持臺를 充分히 設置해야 한다. 하지만 人夫들이 作業을 하고 있던 39層의 아래 一部 層에 支持臺를 하지 않았다는 主張이 나오고 있다. 警察 關係者는 “支持臺가 充分치 않은 狀態에서 人夫들이 作業을 하고 있었다는 主張이 있어 搜査 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業體 關係者는 警察調査에서 “支持臺를 充分히 設置했다”는 趣旨로 陳述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창영 光州大 建築學科 敎授는 “洑가 없는 構造에서 支持代價 充分하지 않았다면 崩壞 原因이 될 수 있다”고 指摘했다. 警察은 光州雇傭奴僮廳과 함께 이날 HDC현대산업개발과 監理業體, 下請業體 等 現場事務所 3곳을 押收搜索했다. 光州=박종민 記者 blick@donga.com장원재 記者 peacechaos@donga.com光州=이형주 記者 peneye09@donga.com}

    • 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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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時代 밝힌 勇氣와 挑戰 찾아간 파랑새, 더나은 來日 向해 날다

    서울 銅雀區 덕봉빌딩 4層 오연상內科에선 7月부터 길이 20cm의 透明한 파랑새가 患者를 맞고 있다. 새와 함께 患者를 맞는 醫師는 1987年 박종철 烈士를 檢案한 後 동아일보에 警察의 물拷問 痕跡을 傳해 民主化의 起爆劑를 마련한 오연상 院長(63)이다. 새 옆엔 33年 前 중앙대용산병원 專門醫 時節 吳 院長의 寫眞과 그가 중앙고 在學 時節(1975年) 동아일보에 냈던 白紙廣告 紙面이 담긴 額子가 있다. 파랑새와 額子는 올해 創刊 100周年을 맞은 동아일보가 所重한 因緣을 기리는 ‘同感_百年因緣’ 캠페인의 一環으로 膳物한 것이다. 吳 院長은 “단골 患者들은 額子 寫眞을 보고 ‘院長님이 저렇게 젊었던 時節도 있었네’라면서 놀란다”며 웃었다. 파랑새는 11月 末 서울 麻浦區 오피스텔 16層으로 날아갔다. 男性 化粧品을 파는 스타트업 터치컴퍼니의 최준호 代表(40)는 “世界에서 딱 300名만 가지는 특별한 파랑새라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한다”고 했다. 崔 代表에게 파랑새만큼 記念할 일은 平生所願을 이룬 것이다. 그는 동아일보 創刊 60周年 記念事業의 一環으로 1980年 韓國人 첫 太平洋 橫斷을 成功한 竹馬故友 요트맨 李在雄(68) 노영문(68) 氏를 지난달 24日 一民美術館(옛 동아일보 社屋)에서 만났다. 崔 氏는 태어난 날(1980年 8月 7日) 發行된 東亞日報 新聞에서 파랑새號 太平洋 橫斷 成功 消息을 읽고 刺戟을 받아 櫓를 저어 바다를 건너는 ‘오션 로잉’ 方式으로 太平洋을 건넜다. 崔 氏는 “두 英雄과 찍은 寫眞도 額子에 넣어 展示할 것”이라며 “東亞日報 德分에 다시 가슴이 뛰게 됐고 生計 때문에 미뤄놨던 새로운 冒險을 생각하게 됐다”며 웃었다.○ 對外 行使 代身 素朴하고 따뜻한 感謝 金在鎬 동아일보 社長은 올해 初 新年辭에서 外部 人士를 招請한 誇示性 創刊 記念行事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正말로 因緣이 깊은 분들을 모시고 素朴하지만 따뜻한 고마움을 傳하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3月 東亞日報 平生 讀者이자 白紙廣告를 냈던 아버지를 素材로 演劇을 만들어 東亞演劇賞을 탄 김재엽 한국예술종합학교 敎授(47)를 始作으로 總 8次例 感謝 行事가 進行됐다. 캠페인은 ‘同感_百年因緣’으로 명명했다. 同感(東感·동아가 感謝한다)과 ‘讀者와 共感한다’는 同感(同感)의 意味를 담았다. 동아일보는 眞心을 傳하기 위해 특별한 場所로 이들을 招請했다. 100周年 記念 오브제로 300個만 만든 東亞百年 파랑새와 마음을 담은 記念品을 傳했다. 金 敎授는 過去 동아일보 社屋이었던 新聞博物館으로 招請했다. 그리고 展示 코너 마지막에 아버지 實名이 包含된 白紙廣告 感謝狀을 展示했다. 大邱에서 敎員 生活을 한 金 敎授의 아버지(김태용·1930∼2004)는 1975年 匿名으로 白紙廣告를 냈다. 感慨無量한 表情의 金 敎授 앞에 金在鎬 社長이 ‘깜짝 登場’해 本社가 特別 製作한 失明 感謝狀과 記念메달, 아버지 이름이 唯一하게 登場한 新聞 紙面을 膳物했다. 金 敎授는 “태어나 이런 待接을 받는 건 처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金 敎授는 行事 後 家族 모임에서 當時 行事와 記念品을 素材로 兄과 아버지에 對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1920年 4月生으로 東亞日報와 同甲내기인 김형석 연세대 名譽敎授(100)는 6月 中旬 서울 中央學校 歷史觀으로 招請했다. 冊에서 중앙고 敎師 在職 時節(1947∼1954年)을 두고 “平生에서 가장 學生들과 사랑을 나눈 期間”이라고 쓴 것에 着眼했다. 金 敎授는 중앙고에서 東亞日報 創立者이자 中央學院 設立者인 인촌 金性洙 先生과 因緣을 맺었다. “동아일보와 함께 100年을 살았다”는 金 敎授는 年歲가 無色하게 行事 半時間 前 到着해 校庭을 둘러봤다. 歷史觀에선 高等學生들을 만나 “平壤 숭실중 寄宿舍에서 동아일보를 봤는데 神社 參拜를 하라고 해 尹東柱 詩人은 故鄕에 돌아가고 나는 休學했다” 等의 이야기를 傳했다. 중앙고 3學年 이시현 君은 “敎科書에 나오는 尹 詩人과 對話했다니 神奇하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함께 歷史觀을 둘러본 金在鎬 社長은 午餐을 하며 金 敎授의 本報 칼럼과 인터뷰, 寫眞 等을 모아 製作한 冊子 ‘百年의 同伴者’와 파랑새를 傳했다. 이와 함께 寫眞이 包含된 첫 칼럼(1964年 5月 18日)과 가장 最近 칼럼(2020年 6月 5日)을 額子에 담아 贈呈했다. 當時 傳한 파랑새는 只今도 ‘100歲 哲學者’의 書齋를 裝飾 中이다. 金 敎授 側은 “더 많은 이들이 보도록 來年이나 後年에 江原 楊口 人文學博物館(김형석 안병욱 哲學의 집)에 寄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虛禮虛飾 뒤로… 眞情性 느껴져” 故 박재표 氏(1932∼2017)는 1956年 警察의 票 바꿔치기를 동아일보에 提報했다. 24歲 靑年 巡警이었던 그는 韓國 첫 不正選擧 告發者로 記錄됐지만 警察에서 쫓겨났고 造作된 證言으로 10個月 동안 獄살이까지 했다. 義人의 處地를 안타깝게 여긴 동아일보의 提案으로 1963年 本報 社屋 警備員으로 入社해 1990年 정년퇴직할 때까지 資材部 等에서 일했다. 동아일보는 5月 朴 氏 遺族 自宅(忠南 天安)을 찾아 48年 前 동아放送(DBS) 政界野花에 出演했던 故人의 育成을 傳했다. 아카이브에서 復元한 故人의 목소리를 듣던 夫人 김선월 氏(82)는 “예전 苦生했던 생각이 난다”며 눈가를 훔쳤다. 박제균 論說主幹은 “故人은 韓國 民主主義 發展에 크게 이바지했다”며 育成 錄取를 寫眞 紙面과 함께 編輯해 만든 小冊子 等의 記念品을 遺族들에게 傳達했다. 孫女인 朴善英 CBS PD는 行事 後 동아일보에 便紙를 보내 “새벽 東亞日報 오는 소리로 하루를 始作하는 게 樂”이라던 할아버지와의 追憶을 털어놨다. 이어 “100周年에 虛禮虛飾을 뒤로하고 동아일보에 새겨진 歷史的 瞬間을 되돌아보며 人物들을 記憶하는 作業을 한 것이 같은 言論 從事者로서 意味가 깊다고 느꼈다. 깊이 感謝드린다”고 썼다. 1995年 삼풍백화점 慘事 當時 동아일보 取材車輛을 타고 出動했던 경광숙 前 消防官(63·當時 서울 道峰消防署 救助隊長)은 洋服을 입은 채 現場에 뛰어들어 數十 名을 救했다. 以後 인터뷰 기고 等으로 因緣을 이어가며 ‘더 安全한 大韓民國’을 만들기 위해 함께 努力해 왔다. 警 前 消防官은 慘事 25周年을 맞아 7月 中旬 서울 양재市民의숲 삼풍慘事慰靈碑를 찾았다. 朴 主幹과 當時 慘事를 取材했던 박중현 論說委員 等이 함께 獻花하고 犧牲者의 넋을 기렸다. 警 前 消防官은 慰靈碑 앞 毁損된 바닥을 보며 “單一 事故로 가장 많은 人命 被害(死亡者 502名)를 냈던 慘事가 잊혀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一行은 慘事 直前 待避해 목숨을 건진 뒤 寄附王으로 變身한 주종평 氏(51)가 運營하는 食堂으로 자리를 옮겨 午餐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朴 主幹은 本報 寄稿와 인터뷰 紙面 等으로 만든 小冊子와 파랑새를 贈呈했다. 그는 6日 東亞日報와의 通話에서 “파랑새 얘기를 하면 周邊에서 저보다 더 좋아한다. ‘(假稱)國民安全運動本部’ 設立을 推進 中인데 事務室을 내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가져다 놓을 것”이라고 했다.○ 挑戰과 冒險, 꿈꾸는 靑年精神 本社는 또 동아일보와 특별한 因緣을 가진 靑年들을 招請해 꿈을 應援했다. 소프트테니스(庭球) 選手인 문대용(27·聞慶市廳) 문혜경(23·NH農協銀行) 男妹는 오빠가 2007年 第85回 東亞日報機 全國소프트테니스大會 中等部에서 優勝한 後 只今까지 大會에 번갈아 가며 出戰해 좋은 成跡을 내고 있다. 1923年 始作된 이 大會는 國內에서 가장 오래된 單一 種目 大會다. 幼年 時節 아버지를 잃고 오빠가 7歲 때 왼쪽 눈을 失明하는 等 迂餘曲折이 많았지만 逆境을 딛고 庭球 첫 國家代表 男妹가 됐다. 두 男妹의 慶北 聞慶 故鄕집에는 東亞日報 스크랩이 壁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동아일보는 第98回 大會 開幕에 맞춰 10月 末 두 選手에게 파랑새와 아카이브에서 찾은 寫眞 紙面 等으로 構成한 小冊子를 傳했다. 박현진 文化事業本部腸은 “동아일보는 지나온 한 世紀처럼 스포츠 精神을 鼓吹하고 庭球를 應援할 것”이라고 激勵했다. 이 자리에서 “東亞日報氣는 每年 가장 重要하게 생각하는 大會”라며 覺悟를 다진 문혜경 選手는 一週日 後 女子 一般部 單式에서 優勝했다. 2年 連續 챔피언이 된 그는 “동아일보에서 意味 있는 膳物을 주셨는데 優勝까지 해 기쁘다”는 所感을 밝혔다. 現在 社會服務要員(옛 公益勤務要員)으로 勤務 中인 문대용 選手는 “파랑새를 家寶로 간직하겠다”고 했다. ‘그림자 아이’(未登錄 移住 兒童)였던 페버 氏(21)는 2017年 忠北 淸州 外國人保護所에 拘禁돼 있다가 동아일보 報道 後 풀려났다. 韓國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父母가 不法 滯留者라는 理由만으로 追放하는 것은 殘忍하다는 指摘이 쏟아지자 出入國管理事務所가 態度를 바꾼 것. 以後 留學生 비자를 받아 꿈에 그리던 大學 進學에 成功했고 8月 卒業 後 自動車 部品 工場에 就業했다. 本社는 8月 末 코로나19 擴散으로 페버 氏를 行事에 招請하지 못하고 代身 社會 進出을 祝賀하는 意味에서 卒業 洋服을 膳物했다. 이어 11月 光州에서 만나 인터넷 英語 受講權과 파랑새를 贈呈했다. “韓國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자꾸 英語로 말을 걸어 困難하다. 英語를 잘하고 싶다”는 페버 氏의 꿈을 應援하기 爲한 것이다. 그는 “마음에 꼭 든다”며 카카오톡 프로필 寫眞을 파랑새 寫眞으로 바꿨다. 12月 初엔 “韓國 社會가 그림자 아이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그의 寄稿가 동아일보 紙面에 실렸다. 東亞百年 마지막 行事로 11月 末 파랑새號 요트맨 두 名(李在雄 노영문)과 뒤를 이어 太平洋을 건넌 최준호 氏를 招請했다. 李 氏와 盧 氏는 “40年 만에 와 본다”며 過去 그대로 保存된 佚民 先生 記念室에서 太平洋 橫斷을 꿈꾸던 28歲 靑年 時節을 回想했다. 임채청 副社長은 東亞日報를 代表해 이들에게 太平洋 橫斷 當時 寫眞과 紙面 等으로 만든 小冊子와 憲政 티셔츠, 파랑새 等을 贈呈했다. 歲 冒險家들은 “앞으로도 동아일보가 靑年의 冒險과 挑戰을 紹介하고 激勵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장원재 記者 peacechaos@donga.com}

    • 20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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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取材次 타고 삼풍 現場 間 25年前 記憶 생생”

    “單一 事故로 가장 많은 人命 被害(死亡者 502名)를 낸 삼풍백화점 慘事가 어느새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16日 午前 11時 半, 서울 서초구 양재市民의숲 삼풍慘事慰靈碑 앞에 선 경광숙 前 消防官(63·縣 CJ그룹 安全監督館)은 바닥이 毁損돼 흙바닥이 드러난 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警 前 消防官은 꽃바구니를 바치고 默念한 後 떨리는 목소리로 “눈을 감으면 只今도 25年 前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함께 獻花한 本報 박제균 論說主幹은 記念碑 뒤에 새겨진 死亡者 名單을 보며 “時間이 지나도 遺族들에게는 思考가 現在進行形日 것”이라며 哀悼했다. 獻花에 使用된 꽃다발과 꽃바구니는 삼풍백화점 崩壞 30分 前 建物을 떠나 事故를 避한 플로리스트 양재희 氏(52)가 追慕의 意味를 담아 特別히 製作했다. 동아일보는 100周年을 맞아 所重한 因緣을 기리는 ‘同感_百年因緣’의 一環으로 警 前 消防官과 함께 慰靈碑를 찾았다. 警 前 消防官은 道峰消防署 救助隊長이던 1995年 6月 29日 光化門 교보문고에서 百貨店이 무너졌다는 消息을 接하고 無酌定 道路로 뛰어나갔다. 마침 지나가던 本報 取材 車輛을 세워 타고 7分 만에 現場에 出動했다. 그는 “景況이 없어 人事도 제대로 못했는데 빨리 가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現場에서 數十 名을 救한 警 前 消防官은 慘事 11日 만에 최명석 氏를 求하며 言論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救助隊를 돕기 爲해 全國에서 自願奉仕者들이 몰려왔던 게 기억난다. 當時 事故는 國內에 緊急救助 體系를 確立하는 契機가 됐다”고 回想했다. 警 前 消防官은 以後 寄稿, 인터뷰 等을 통해 本報와 因緣을 맺으며 安全에 對한 國民的 關心을 높이기 위해 努力했다. 그는 “個人的으로는 삼풍 事故 트라우마로 한동안 精神과 診療를 받았다. 救助隊員 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當時 現場을 取材한 本報 박중현 論說委員은 “建物 中間이 무너지고 兩 끝이 危殆롭게 기운 狀況에서 生存者를 救하기 위해 勇敢하게 現場에 들어가던 消防隊員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參拜를 마친 一行은 午餐을 爲해 서울 구로구에 位置한 한 食堂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食堂은 삼풍백화점 食堂街에서 일하다 建物 崩壞 30分 前 待避해 九死一生으로 生命을 救한 주종평 氏(51)가 運營하는 곳이다. 每달 障礙人施設 等에 寄附하며 地域社會의 寄附王으로 變身한 朱 氏는 “數十 名의 목숨을 代身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베푸는 것이 全혀 아깝지 않다. 最善을 다해 베풀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朴 論說主幹은 警 前 消防官에게 本報 寄稿와 인터뷰 紙面 等으로 만든 小冊子와 創刊 100周年을 맞아 동아일보가 製作한 記念 오브제인 ‘東亞百年 파랑새’를 贈呈했다. 警 前 消防官은 “安全한 大韓民國을 위해 앞으로 ‘國民安全運動本部’(假稱)를 만들어 經驗과 知識을 더 積極的으로 나누고 싶다”는 抱負를 밝혔다. 장원재 記者 peacechaos@donga.com}

    •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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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不正選擧 告發 48年前 男便 목소리에 울컥”

    “예전 생각이 나서 울컥하네요. 얼마나 苦生을 많이 했던지….” 20日 午後 3時. 忠南 天安의 한 아파트에서 스피커 앞에 앉은 김선월 氏(82)는 연신 눈가를 훔쳤다. 스피커에선 1972年 동아放送(DBS) 다큐멘터리 政界野花에 出演했던 男便 育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목소리의 主人公은 1956年 동아일보에 警察의 票 바꿔치기를 告發했던 大韓民國 첫 不正選擧 提報者 박재표 氏(1932∼2017). 24歲 靑年 巡警이었던 朴 氏는 ‘井邑 換票 事件’으로 알려진 當時 事件으로 警察을 그만뒀고 造作된 證言으로 10個月 동안 獄살이까지 했다. 동아일보는 100周年을 맞아 所重한 因緣을 맺은 이들에게 感謝를 표하는 ‘同感_百年因緣’의 一環으로 이날 遺族을 찾아 復元한 48年 前 放送 錄音파일을 傳했다. 當時 DBS는 43回에 걸쳐 井邑 換票 事件을 다뤘는데 故人이 中間中間 出演해 當時 事件을 說明했다. 故人의 育成 錄取를 아카이브에 保管된 寫眞 紙面과 함께 編輯해 만든 小冊子 ‘東亞義人’도 遺族들에게 傳達했다. 故人은 當時 放送에서 自身의 告發이 기사화된 동아일보 紙面을 본 心境에 對해 “(더 以上) 苦悶은 없고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 (警察을 그만두면) 軍隊라도 가서 奉仕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夫人 金 氏는 “告發로 因해 兄弟 親戚까지 職場에서 쫓겨났다. 無罪로 나온 後에도 어디 가든 警察이 따라다녀 국수가게 等을 하며 不安定한 生活을 해야 했다”고 當時 狀況을 돌이켰다. 故人은 義人의 處地를 안타깝게 여긴 本報의 提案으로 1963年 동아일보 社屋 警備員으로 入社해 1990年 정년퇴직할 때까지 資材部 等에서 勤務했다. 아들 朴海鎭 氏(61)는 “政權의 서슬이 퍼랬을 때인데 아버지를 職員으로 받아준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아버지를 記憶하며 所重하게 保管하고 있다”며 居室에 있는 동아일보 50周年 記念 거울을 보여줬다. 本報 박제균 論說主幹은 “故人은 동아일보를 통해 韓國의 民主主義 發展에 크게 이바지했다. 앞으로도 동아일보가 記憶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더 나은 社會를 만들기 위해 努力하겠다는 覺悟를 담아 핀란드 브랜드 이딸라(Iittala)와 함께 만든 東亞百年 파랑새를 記念品으로 傳達했다. 할아버지의 젊은 時節 목소리를 듣고 新奇해하던 孫女 朴善英 CBS PD(32)는 “저한테는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할아버지지만 한때 뜨거운 心臟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事實을 알게 되면서 그런 숨은 이야기를 發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言論社에 入社했다”고 했다. 遺族들을 깜짝 놀라게 한 消息도 있었다. 이날 함께 訪問한 本報 社會部의 박훈상 事件팀長은 “故人과 東亞의 因緣을 紹介한 3月 本報 記事를 보고 警察廳에서 故人을 ‘警察 英雄’ 候補로 積極 檢討하고 있다”고 알렸다. 警察은 2017年부터 참된 警察 精神을 象徵하는 이들을 選定해 對內外에 알리는 ‘警察 英雄’ 選定 作業을 進行해 왔다. 천안=장원재 記者 peacechaos@donga.com}

    •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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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트업 文化를 뉴스룸에 移植… ‘즐거운 實驗’의 저널리즘 追求

    동아일보는 創刊 100周年을 맞아 동아미디어그룹(DAMG) 뉴스룸의 向後 方向性을 담은 革新 戰略 報告書 ‘레거시 플러스(Legacy Plus·寫眞)’를 1日 發刊했다. ‘저널리즘&디지털’이라는 部制의 이 戰略 報告書는 동아미디어그룹이 미디어 消費者들에게 差別的 價値를 持續的으로 提供하고 새 百年에도 社會의 空氣(公器) 役割을 이어나갈 土臺가 될 豫定이다. 民族 代辯紙를 自處하며 創刊號에 ‘檀君’을 明示했던 동아일보는 日帝 治下에서 4次例 停刊당한 끝에 廢刊됐다. 獨裁 政權下에선 廣告 彈壓으로 白紙廣告 事態를 맞았지만 끝까지 저널리즘의 價値를 지켰다. 國內 言論 中 3代 言論賞(관훈言論賞 韓國祈子床 三星言論上 取材報道 部門)을 가장 많이 받은 곳도 東亞日報다.○ 東亞다운 ‘히어로 콘텐츠’에 集中 한 世紀 동안 지켜 온 이 같은 레거시를 未來志向的으로 업그레이드하자는 것이 報告書의 骨子다. 題目에도 물려받은 ‘流産(레거시)’에 時代가 要求하는 ‘새로움(변화와 挑戰)’을 더한다는 覺悟를 담았다. 報告書는 가장 먼저 뉴스룸 取材 人力의 20∼30%를 常時的으로 東亞의 代表 商品이 될 콘텐츠 生産에 投入하자는 原則을 提示했다. 部署 記者가 10名이라면 그中 2, 3名은 ‘어디서 본 듯한 뉴스’ 代身 미디어 消費者가 ‘東亞’라는 브랜드를 認知할 程度의 ‘卓越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選擇과 集中’을 强化하려면 일하는 方式 亦是 달라져야 한다. 業務上 肥效率을 除去하고 어떤 行動을 바람직한 것으로 看做할지에 對한 가이드라인을 洑텀業(Bottom-up) 方式으로 만들고, 構成員들이 遵守할 ‘共有된 規則’으로 活用하자고 提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콘텐츠 製作 過程에선 젊은 構成員의 목소리를 果敢히 反映하고 外部와의 協業을 通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强化해야 한다고 提案했다. 이를 통해 미디어 消費者들에게 젊은 感性으로 만든 콘텐츠, 外部의 專門性과 異質的 DNA를 더한 ‘콜라보’ 콘텐츠를 더 많이 선보이게 될 것이다.○ 즐겁고 破格的인 디지털 實驗 뉴스 콘텐츠 生産과 消費의 主 舞臺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PC에서 모바일로 移動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世界的 趨勢다. 레거시 미디어의 代表 格인 東亞日報 亦是 100周年을 契機로 디지털에서의 影響力과 브랜드 價値를 只今보다 한 段階 높여야 한다. 報告書는 뉴스룸 外部에 新聞 放送 共通의 뉴스 實驗室인 ‘D-Light(디라이트) 앨리’(假稱)를 新設하자고 提案했다. 名稱에는 ‘디지털’, ‘東亞’의 未來를 밝힌다는 意味와 함께 ‘즐거운’ 實驗을 追求한다는 意味를 담았다. 新設 組織을 活用해 只今까지 韓國 言論에서 試圖되지 않던 破格的이고 다양한 포맷의 저널리즘 콘텐츠를 선보이며 새로운 뉴스 消費者層을 開拓하려 한다. 報告書는 “미디어 消費者들로부터 ‘동아가 이런 것도 하느냐’는 말을 듣는 것이 目標”라고 적었다. 權力 監視, 眞實 追求, 疏外 階層에 對한 휴머니즘 같은 東亞 DNA를 時代에 맞게 업그레이드해 다양한 人材가 創意性을 發揮하는 柔軟하고 열린 組織 文化를 만들어 가자는 提案도 들어 있다. 이 밖에 內部에 ‘밋업(Meet-up)’과 ‘개라지(Garage)’를 만드는 等 스타트업 文化를 뉴스룸에 移植하기 위한 裝置들을 提案했다. 동아일보는 創刊 當時 인촌 金性洙 先生이 29歲였고 編輯局 記者 大部分이 30歲 前後여서 ‘靑年 新聞’으로 불렸다. 挑戰과 革新을 멈추지 않는 靑年精神으로 돌아가 急變하는 미디어 環境 속에서 새 可能性을 開拓하는 것이 只今의 東亞 뉴스룸에 주어진 使命이다. ○ 2年餘間 社內外 200名 목소리 들어 2018年 初 出帆한 東亞日報 뉴센테니얼본부는 2年餘 동안 사내 構成員은 勿論 外部 最高經營者(CEO) 및 저널리즘·미디어 分野 碩學부터 大學生까지 各界 人士를 두루 만나 미디어와 저널리즘의 未來, 동아가 나아가야 할 길 等에 對한 見解를 들었다. 報告書 作成 過程에서 만나거나 意見을 들은 이는 모두 200餘 名에 達한다. 지난해 初부터는 全社的인 100周年 태스크포스(TF)를 運營하면서 동아 저널리즘이 直面한 課題를 100個의 質問나무(Question Tree) 形態로 整理했다. 또 동아 뉴스룸이 只今 꼭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判斷한 實行課題(To Do List)들을 發掘해 報告書에 담았다. 동아미디어그룹은 앞으로 報告書 內容을 基盤으로 뉴스룸 革新 作業에 着手한다. ‘더 나은 社會’를 만들겠다는 創刊 때부터의 꿈과 意志가 미디어 消費者가 實感할 水準의 革新的 콘텐츠로 實現될 때까지 東亞 뉴스룸의 挑戰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김성규 sunggyu@donga.com·장원재 記者}

    •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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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世界的 미디어 企業들, 創刊行使 代身 奉仕活動

    創刊記念日에 對外 誇示性 行事를 여는 代身 社會 寄與 活動을 하는 글로벌 미디어 企業이 적지 않다. 2017年 創刊 100周年을 맞은 美國 經濟專門誌 포브스는 ‘글로벌 임팩트 데이’를 進行해 職員 260餘 名이 全 世界에서 自願奉仕 活動을 했다. 美國 本社 職員들은 知的障礙人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도왔다. 一部는 뉴욕의 公共 定員을 整備했고, 一部는 學校에 찾아가 太陽光 自動車를 만들며 學生들과 時間을 보냈다. 홍콩에서는 低所得層을 위한 飮食 配達을 돕는 프로그램을 펼쳤다. 포브스는 當時 記事에서 “行事를 통해 (職員들이) 커뮤니티와의 共通點을 發見했다”고 했다. 日本 아사히신문은 100周年이던 1979年 市價(滋賀)縣에 面積 150ha의 ‘아사히의 숲’을 造成했다. 종이를 使用하는 新聞社인 만큼 ‘숲에 돌려준다’는 意味를 담아 사람과 숲이 만나는 空間을 만든 것이다. 2003年 門을 닫고 地方自治團體에 返還할 때까지 山林浴 페스티벌 等 山林 保全 캠페인 行事와 各種 심포지엄 및 硏究가 이 숲에서 進行됐다. 아사히新聞은 지난해 140周年을 전후해서는 癌, 癡呆 같은 高齡化社會의 苦悶에 對한 解法을 찾는 심포지엄과 캠페인 等을 展開했다. 요미우리新聞은 140周年을 맞은 2014年 ‘요미우리 敎育 네트워크’를 만들고 企業과 學校 間의 交流를 통해 敎育 發展을 支援하는 프로젝트를 始作했다. 提携 企業과 大學의 專門家, 요미우리新聞 記者가 學校를 찾아가 授業을 하고 함께 講演會와 심포지엄 等을 열고 있다. 美 뉴욕타임스는 創刊 60周年을 맞은 1911年부터 基金을 造成해 現在까지 3億 달러(藥 3670億 원)를 모았다. 非營利團體 等을 통해 疏外階層에 傳達하는데, 募金한 費用은 全額 寄附하고 行政 費用 等은 뉴욕타임스에서 負擔한다. 英國 言論社들은 ‘미디어 社會的 責任(CSR) 포럼’을 여는 等 共同體에 對한 寄與에 일찍부터 앞장서 왔다. 特히 1922年 設立된 世界 最初의 公營放送 BBC는 最近까지 每年 CSR 리포트를 내고 環境, 慈善 等 分野의 活動을 整理해 發表했다.장원재 記者 peacechaos@donga.com}

    • 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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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波濤-바람과 싸우며 목숨 건 75日 航海 “挑戰하라, 靑春”

    “太平洋에서 밀려오는 波濤가 마치 山 같더라고요.” “거기에 바람까지 불면 正말 무섭지.” 서울 鍾路區 新聞博物館에서 19日 만난 李在雄 氏(68)와 최준호 氏(40)는 서로를 ‘英雄’이라고 불렀다. 李 氏는 中高校 同窓 노영문 氏(68)와 함께 1980年 國産 요트 1號인 ‘파랑새號’를 타고 韓國人 最初로 太平洋 요트 橫斷에 成功했다. 동아일보 創刊 60周年 記念事業이었다. 太平洋 요트 橫斷은 韓國 海洋人의 오랜 꿈이었다. 동아일보가 後援한 東亞갈매기號가 1977年, 78年 試圖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大學 時節부터 合板으로 요트를 만들며 함께 꿈을 키운 李 氏와 盧 氏는 國産 요트 1號로 太平洋을 건너기 위해 美國 바이어에게 ‘無料로 配達해주겠다’고 提案했다. 航海 費用은 私財를 털고 父母님께 빌려 마련했다. 李 氏는 “살아 돌아올 確率이 折半이라고 생각했다”고 回想했다. 33피트(藥 10m)의 一葉片舟에 몸을 싣고 始作한 冒險은 迂餘曲折의 連續이었다. 돛 一部가 破損되는 바람에 航海는 豫定보다 20日假量 길어졌다. 보름 만에 無線裝備가 故障 나 故國에 消息을 傳할 수 없었다. 李 氏는 “돈이 없어 陸上用 無線裝備를 샀는데 防水 機能이 不足했다”며 웃었다. 두 靑年은 바람과 波濤, 鄕愁病과 싸우며 生死의 고비를 넘나든 끝에 75日 만에 美國 로스앤젤레스에 到着했다. 李 氏와 盧 氏는 國民的 英雄이 됐고 1980年 本報 選定 ‘올해의 人物’로 뽑혔다. 榮光이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다. 全斗煥 政權은 5·18民主化運動 等 懸案에서 國民의 눈을 돌리기 위해 둘을 活用했다. 李 氏는 “當時 만나는 분들이 光州 얘기를 하며 ‘그래도 자네들 德分에 慰安이 됐다’고 할 때마다 政權이 괘씸했다. 大統領 就任 祝賀 行事에 招請받고도 안 갔다”고 돌이켰다. 盧 氏는 “(榮光을) 도둑맞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冒險은 後輩들에게 많은 靈感을 줬다. 事業 不振과 知人의 연이은 죽음으로 苦悶에 빠졌던 崔 氏는 2014年 初 ‘내가 태어난 날(1980年 8月 7日)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며 옛날 新聞을 뒤지다가 파랑새號 到着 消息(8月 6日)을 接했다. 崔 氏는 “마치 感電된 것 같았다”고 當時를 回想했다. 崔 氏는 櫓를 저어 大洋을 건너는 ‘오션 로잉’에 挑戰한 韓國人이 없다는 事實을 알고 그해 6月 美國 캘리포니아州 몬터레이를 出發해 하와이에 到着하는 ‘1回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에 參加했다. 外國人 3名과 함께 43日 동안 櫓를 저어 13팀 中 1位로 完走했다. 歸國 後 스타트업을 始作한 崔 氏는 “힘들어도 꾸준히 努力하면 結局 이룰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고 했다. 歸國 後 인터뷰에서 파랑새號 英雄을 만나고 싶다고 했던 崔 氏는 이날 所願을 이뤘다. 上氣된 表情으로 對話하던 崔 氏는 “韓國에 이런 대단한 분이 있다는 걸 잘 모른다. 冒險家를 더 尊重하는 社會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李 氏는 “靑年들의 挑戰 없이 韓國은 生存할 수 없다. 挑戰은 젊음의 特權”이라고 强調했다. 둘은 “앞으로도 동아일보가 靑年의 冒險과 挑戰을 紹介하고 激勵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美國에 滯留 中인 盧 氏는 e메일 인터뷰에서 “人生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當時 挑戰을 생각하며 克服할 수 있었다”며 “後輩들이 새로운 海洋 挑戰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當付했다.장원재 記者 peacechaos@donga.com}

    •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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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警察 內部告發 뒤 逮捕돼 집안 風飛雹散… 法廷서 “옳은 것은 옳은 것”

    “男便은 입버릇처럼 ‘月給쟁이는 한 달 먹을 걸 버는 거지, 두 달 먹을 거 벌겠다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警察 때도, 新聞社 다닐 때도 堂堂하고 剛直했죠. 虛風을 떨면 그대로 믿어 버려 弄談도 못 했어요.” 10日 忠南 天安 自宅에서 만난 김선월 氏(82)는 3年 前 世上을 떠난 男便을 떠올리면 답답할 만큼 고지식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크지 않은 키에 조용한 性格. ‘正直’李 座右銘이었던 男便은 1956年 동아일보에 警察의 票 바꿔치기를 告發했던 大韓民國 첫 不正選擧 暴露者 박재표 氏(1932∼2017·寫眞)다. 그의 삶을 1972年 동아放送(DBS) 다큐멘터리에 出演해 남긴 育成과 家族 인터뷰 等을 통해 再構成했다. 24歲 巡警으로 全北 井邑에서 勤務하던 朴 氏는 1956年 8月 道議員 選擧 때 投票函을 開票所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任務 中 同僚 警察이 自由黨 候補를 당선시키기 위해 野黨 票를 大擧 與黨 票로 바꾸는 걸 目擊했다. 苦悶 끝에 辭表를 쓰고 서울로 上京해 東亞日報를 찾았다. “社會部장님을 만나 換票(換票) 經緯를 말씀드렸습니다. 틀림없냐고 해서 只今 辭表를 내고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點心을 먹고 나오니 新聞에 크게 나와 있었어요. (더 以上) 苦悶은 없고 시원한 마음이 들더군요.”(DBS 다큐멘터리 證言) 8月 29日 記事가 실리자 警察엔 非常이 걸렸다. 勤務地 離脫 等을 理由로 逮捕令을 내리고 懸賞金 30萬 환과 1階級 特進을 내걸었다. 朴 氏가 붙잡히자 警察은 證言을 造作해 1審에서 實刑을 받게 했다. 當時 그는 最後 陳述에서 “父母와 先輩로부터 거짓말을 하라는 말은 못 들었다. 제가 犧牲되는 건 좋다. 그러나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말했다. 2審에서 無罪 判決로 10個月 만에 釋放됐지만 內部告發의 代價는 苛酷했다. 警察과 農林部에서 일하던 兄弟들은 罷免됐고 조카들은 學費를 내기 어려운 處地가 됐다. 朴 氏는 어딜 가나 監視 對象이 됐다. “1959年 初 結婚했는데 選擧 때만 되면 兵役法 違反이라며 잡아가 軍隊 訓鍊을 시켰다. 두 番이나 사라져서 아들을 親庭에 맡기고 警察署 等을 돌아다녔다.”(부인 金 氏) 暫時 민주당에 몸담았던 朴 氏는 4·19革命 後 警察에 復職했다가 5·16軍事政變으로 다시 民間人이 됐다. 국수가게를 차리는 等 여러 일을 轉轉하다 義人(義人)의 處地를 안쓰럽게 여긴 동아일보의 提案을 받아들여 警備員으로 入社했다. 以後 1990年 停年退任할 때까지 資材部 等에서 勤務했다. “會社에서 가끔 마주쳤는데 ‘勇敢한 巡警이었다’고 하더라. 사내에서도 每事 誠實하고 틀림없다는 評價를 받았다. 退職 後 天安에서 텃밭을 일군다는 消息을 듣고 찾아가 寫眞을 찍었는데 나중에 影幀寫眞이 됐다.”(전민조 前 동아일보 出版寫眞部腸) “누구보다 일찍 出勤하셨고 休暇 간 同僚 代身 勤務했다는 얘기를 자랑 삼아 하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가장 信賴하는 新聞’이라며 동아일보를 보셨다.”(손녀 朴善英 CBS PD) 朴 氏는 DBS 다큐멘터리에서 當時 事件에 對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質問에 이같이 答했다. “옛날 回顧라는 건 없습니다. 未練도 없고 (다만) 앞으로 내가 맡은 일을 充實히 할 作定입니다.”천안=장원재 記者 peacechaos@donga.com}

    •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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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풍 慘事 날, 取材次 타고 構造現場 뛰어든 記憶 생생”

    “한時가 急한데 東亞日報 마크를 단 車輛이 눈에 띄었습니다. 無作定 道路로 나가 車를 세웠죠.” 경광숙 前 消防官(63·縣 CJ 그룹安全監督官)은 12日 서울 鍾路區 세종로四거리에서 1995年 6月 삼풍백화점 崩壞 事故 날을 돌이켰다. 當時 道峰消防署 救助隊長이었던 그는 서울消防本部 會議 參席 後 교보문고에서 資料를 찾다가 事故 消息을 接했다. 警 前 消防官은 “當場 出動하라는 말에 地下道를 달려 올라갔다. 택시가 안 잡혀 발을 구르던 次에 동아일보 取材車輛이 보였다. 身分證을 보이며 事情을 說明하자 取材記者는 두 말 없이 타라고 했다”고 記憶했다. 車는 한 番도 안 멈추고 7, 8分 만에 到着했다. 그는 “車에서 緊迫하게 本社와 通話하던 記者와는 人事도 못 나눈 채 現場에 뛰어들었다”고 回想했다. 事故 後 한 時間이 채 안 된 現場은 먼지가 자욱했다. 그는 洋服 위에 簡單한 裝備만 걸치고 構造에 나섰다. “밤낮없이 救助하느라 배가 고픈지도 몰랐어요. 물만 마시며 救助하는데 사흘째부터 食事가 들어오더군요.” 當時 數十 名을 求했지만 只今도 못 잊는 場面이 있다. 나흘째 젊은 女性의 목소리가 들리는 方向으로 殘骸를 해치며 가던 中이었다. 正確한 方向을 찾느라 피가 마르던 그의 귀에 “더 以上 못살 것 같아요”라는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家族들 생각해 마음을 굳게 먹으라 하고 作業에 速度를 냈는데 한두 時間 後 다시 말을 걸어 보니 答이 없더라고요.”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以後엔 構造 代身 屍身 發掘이 主 業務가 됐다. 그러다 慘事 11日 만에 최명석 氏를 求하며 그와 隊員들은 國民的 關心을 받았다. 그는 “高等學校 때 ‘時代의 흐름을 알려면 社說을 보라’는 先生님의 말을 듣고 집에서 보던 동아일보를 熱心히 봤다”고 했다. 海兵隊 除隊 後 34年 7個月 동안 消防官의 길을 걸었다. 7層 欄干에서 墜落해 生死의 岐路에 놓이는 危機를 겪으며 人命救助 매뉴얼을 만들었고 敎官으로 後輩를 길러냈다. 特殊救助隊에서 일할 때는 遭難 登山客을 救하느라 하루에 7番 山을 올랐다. 그는 “登山을 좋아했는데 當時 無理를 해서 무릎이 안 좋아졌다”며 웃었다. 災害 現場을 생생하게 담으려는 取材陣과 실랑이를 벌인 적도 적지 않다. 그는 “公共 部門은 事實을 감추려는 屬性이 있어 言論의 監視가 꼭 必要하다. 다만 現場 安全라인은 지켜 달라”고 强調했다. 聖水大橋 崩壞 等 수많은 現場을 經驗했지만 삼풍 慘事는 유난히 記憶에 남는다. 記者와 함께 양재 市民의 숲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삼풍 慰靈碑 앞에서 “색소폰을 배워 慰靈碑 앞에서 가끔 佛語드린다. 그러면 마음속 답답함도 달랠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14年 民間 部門으로 옮긴 後에도 新聞 인터뷰와 放送 出演을 하며 國民 安全意識을 높이려 努力했다. 지난해 末엔 다뉴브江 遊覽船 沈沒 事故 後 現場이 바뀌었는지 直接 確認하러 헝가리도 다녀왔다. 그 經驗을 올해 初 동아일보에 寄稿했다. 그는 “비슷한 事故가 反復되는 것이 안타깝다. 安全은 스스로 챙긴다는 國民意識 改善과 老朽 建物의 安全性을 높이는 政府의 責任 있는 措置가 必要하다”고 强調했다. 동아일보에 바라는 點을 묻자 “저는 ‘더 安全한 大韓民國’을 만들기 위해 努力할 테니 동아일보는 우리 社會의 方向 提示를 제대로 해 달라”고 當付했다.장원재 記者 peacechaos@donga.com}

    •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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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아사히신문 와타나베 社長 本社 訪問

    日本 아사히신문 와타나베 마사타카(渡邊雅隆) 社長이 5日 서울 鍾路區 淸溪川路 동아미디어센터를 訪問해 金在鎬 동아일보 社長과 韓日 間 懸案을 論議하고 兩社의 傳統的인 友好 協力 活動을 持續해 나가기로 했다. 兩社는 韓日 兩國 間 交流 및 來年 日本 도쿄(東京)에서 열리는 여름올림픽의 取材 報道 活動에 積極 協力하기로 했다. 와타나베 社長은 “政治의 世界에는 좋아졌다가 나빠지는 일이 反復되지만 民間 文化 交流는 한番 始作된 것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며 “交流를 이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周邊 視線을 의식하지 않도록 雰圍氣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重要하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社長의 이番 訪問은 提携社인 東亞日報와 아사히신문의 協力 프로그램에 따른 年例行事로 나카무라 詩로(中村史郞) 編輯擔當 任員, 사사키 마나부(佐¤木學) 社長 祕書가 同行했다.장원재 記者 peacechaos@donga.com}

    •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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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訂正報道 無條件 1面에 실으라는 與… 世界에서 類例없는 法案

    與黨인 더불어民主黨이 言論 訂正報道를 義務的으로 新聞 1面과 放送 프로그램 始作 때 露出시키고 이를 어길 境遇 最大 3000萬 원의 過怠料를 賦課하는 法案을 發議했다. ‘假짜뉴스’에 對한 恣意的 判斷 論難에 휩싸였던 민주당이 이番에는 自由國家에선 類例를 찾아보기 어려운 法案으로 言論의 自律性과 編輯權을 毁損하려 한다는 批判이 일고 있다. 民主黨 虛僞造作情報對策特別委員會 委員長인 박광온 議員은 27日 報道資料를 내고 最近 媒體別로 訂正報道文의 位置를 强制하는 言論仲裁 및 被害救濟法(言論仲裁法) 改正案을 代表 發議했다고 밝혔다. 이 法案은 아무리 些少한 訂正報道라도 新聞은 1面에, 放送은 報道가 이뤄진 프로그램 始作 時에, 雜誌는 本文이 始作하는 첫 페이지에 싣도록 强制하고 있다. 이 法案은 노무현 政府 때 論難 끝에 導入됐던 言論仲裁法上의 訂正報道 請求權을 大幅 擴大, 强化한 것이다. 노무현 政府에서 만들어져 2005年 7月 實施된 言論仲裁法은 訂正報道 請求權을 導入하면서 訂正報道를 할 境遇 ‘同一한 채널, 지면 또는 場所에 同一한 效果를 發生시킬 수 있는 方法’으로 하게 했다. 當時 言論社들은 自體的인 故意나 過失이 없더라도 訂正報道 請求權을 認定한 部分에 對해 “言論 自由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反撥하며 憲法裁判所에 憲法訴願審判 等을 提起했다. 實際로 美國 等에서는 民事訴訟을 통해 損害賠償을 받는 方式으로 被害를 救濟하고 있으며 韓國과 같은 訂正報道 請求權을 法的으로 制度化하지 않고 있다. 訂正報道度 言論이 必要하다고 判斷할 境遇 自體的으로 適切한 紙面에 하는 境遇가 많다. 하지만 熾烈한 論難 끝에 憲裁는 2006年 6月 訂正報道 請求權 條項에 對해 合憲 決定을 내리면서 “新聞社의 故意나 過失이 없다는 等의 理由로 法的인 措置를 받지 못할 境遇 報道가 虛僞임을 同一한 媒體에서 同一한 比重으로 報道 傳播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說明했다. 또 “訂正報道의 方法도 元來 報道 以上의 負擔을 지우고 있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番에 發議된 言論仲裁法 改正案은 ‘同一한 比重’을 넘어 아무리 些少한 誤報라도 新聞 1面과 放送뉴스 첫 꼭지로 訂正報道를 하게 하는 內容을 담고 있는 것이다. 言論人 出身으로 地上波 報道局長과 앵커를 지낸 朴 議員이 言論 自由를 確然하게 制約할 수 있는 法案을 發議한 것을 두고 또 다른 政治的 理由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自由韓國黨의 한 關係者는 “靑瓦臺와 與黨에 對한 批判 報道가 쏟아지고 있는데 미리 言論에 怯을 주고 取材活動을 위축시키겠다는 意圖 아니겠느냐”고 主張했다. 朴 議員은 最近 민주당 虛僞造作情報對策特別委員會 委員長을 맡아 假짜뉴스 團束에 앞장서기도 했다. 안재형 辯護士는 “只今도 充分한 取材를 했지만 誤報를 낸 境遇 過失이 없어도 訂正報道를 할 수밖에 없는데 더 過한 措置로 인해 言論 自由가 크게 萎縮될 것”이라고 指摘했다. 韓國言論學會長을 지낸 양승목 서울大 言論情報學科 敎授는 “事案의 輕重을 나누지 않고 一括的으로 1面에 訂正報道를 强制하면 言論의 編輯權을 過度하게 侵害하는 것”이라고 指摘했다.장원재 peacechaos@donga.com·신규진 記者}

    • 20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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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保存’ 指針 어기고 GP 鐵條網 與黨 議員들에 膳物한 師團長

    9月 南北 軍事合意에 따라 非武裝地帶(DMZ) 내 南北 近接 監視哨所(GP) 示範철수가 完了된 가운데 前方의 한 師團이 撤收 殘骸物人 GP 鐵條網 一部를 政治權 等에 膳物用으로 使用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 論難이 일고 있다. 26日 國防部와 陸軍 等에 따르면 江原道 華川에 있는 陸軍 7師團은 18日 師團을 찾은 더불어民主黨 議員 7名에게 GP 鐵條網 一部를 넣어 만든 額子를 膳物했다. 額子는 韓半島 地圖, 將兵들의 警戒 勤務 모습 等을 背景으로 7cm 길이의 鐵條網을 附着해 製作됐다. “이 鐵條網은 GP 撤去 作戰 時 7師團 GP에서 使用하던 것이다. 7師團을 訪問하신 ○○○ 議員님을 永遠히 記憶하겠다”는 글도 있었다. 박원호 7師團長은 이 額子를 部隊를 찾은 民主黨 尹昊重 事務總長, 金斗官 참좋은地方政府 委員長, 권미혁 김정우 金漢正 朴釘 沈基俊 議員 等 민주당 關係者 9名에게 膳物했다. 앞서 12日에는 部隊를 訪問한 軍人共濟會 幹部에게, 17日엔 大型銀行 幹部에게 鐵條網 額子를 膳物했다. 額子는 이달 初 赴任한 朴 師團長의 아이디어로 製作됐다. 지난달 末 7師團 地域 GP가 撤去되면서 생긴 鐵條網 等 各種 殘骸物은 部隊 歷史觀 隣近에 積載돼 있었다. 이를 본 朴 師團長이 一部는 歷史觀에 保存하되 一部는 再活用해 部隊 訪問客에게 膳物하자고 提案했다는 것. 問題는 國防部가 4日 GP 殘骸물의 임의 使用을 禁止하는 指針을 陸軍에 下達했다는 것. GP 殘骸物 活用 方案을 檢討 中이니 別途 指針이 있을 때까지 毁損하지 말라는 內容이었다. 7師團 側은 陸軍 規定에 依據해 再活用했을 뿐이라고 解明했다. 陸軍 規定의 ‘廢棄物 管理 및 處理 規定’은 廢棄物이 發生할 境遇 該當 部隊는 適法한 施設에 이를 保管하고 自體 再活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陸軍 關係者는 “4日 내려온 國防部 指針은 師團長에게까지 報告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論難이 일자 陸軍은 “國民 여러분께 心慮를 끼쳐 罪悚하다”며 “該當 部隊가 錯誤로 製作해 贈呈한 것으로 殘骸物 活用을 卽刻 中止시켰다”라는 公式 立場을 냈다. 그럼에도 인터넷에는 “政治軍人이 進級을 念頭에 두고 與黨 政治人들에게 膳物을 준 것”이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民主黨 議員들도 卽刻 返還하겠다고 밝혔다. 尹 事務總長이 먼저 返納 意思를 밝히며 “다른 議員들에게도 返納하라고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바른未來黨 河泰慶 議員은 이날 最高委員會議에서 “國家安保 紀綱이 總體的으로 解弛해지고 있다”며 “解體된 GP는 베를린 障壁과 같은 것이고 우리나라 安保를 象徵하는 것인데 軍 師團長은 膳物額子를 만들고 民主黨은 덜컥 받아서 자랑하고 있다”고 批判했다.손효주 hjson@donga.com·장원재 記者}

    • 201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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