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錫悅 大統領 當選人이 20日 大統領 執務室을 靑瓦臺에서 서울 龍山區 國防部 新廳舍로 옮기겠다면서 ‘龍山 執務室 移轉’을 宣言했다. 이에 따라 朝鮮 景福宮 創建 以後 600餘 年, 高麗 南京(南京) 行宮(行宮) 時節부터 치면 1000年 가까이 持續된 ‘光化門 權力’은 歷史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史學者인 홍순민 명지대 記錄情報大學院 招聘敎授, 都市工學者人 이희정 서울市立大 敎授, 建築家인 김원 廣場建築環境硏究所 代表 等 專門家 3名에게 龍山 執務室 移轉의 妥當性과 歷史的 社會的 意味를 물었다.》‘사학자’ 홍순민 명지대 敎授“靑은 接近 어려운 곳… 용산도 疏通 어려워”“청와대는 애初 여러모로 따져 大統領 執務室이 된 곳이 아니어서 以前 必要性이 있습니다. 그러나 용산 國防部 新廳舍는 좋은 자리가 아닙니다.” 朝鮮 宮闕, 都城 硏究의 權威者로 꼽히는 홍순민 명지대 招聘敎授(66)는 “靑瓦臺는 百姓과 疏通할 必要가 全혀 없던 朝鮮 總督이 官邸로 쓰던 자리”라면서도 “執務室 移轉 豫定地 亦是 國民과의 接觸面이 넓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20日 電話로 만난 洪 敎授는 “景福宮은 王朝國家의 宮으로 最適의 場所였다”고 强調했다. 그는 “漢江과 北韓産까지 考慮해 漢陽의 터를 잡고 宗廟와 社稷을 左右로 配置한 後 뒤로 白岳山이 막아주고 앞으로 平地가 열리는 完璧한 場所에 景福宮을 지었다”고 說明했다. 洪 敎授는 著書 ‘漢陽읽기 宮闕’에서도 500年을 持續한 朝鮮의 首都 漢陽의 뛰어난 立地를 强調했다. 하지만 靑瓦臺 자리는 出發부터 國民과의 疏通과는 距離가 멀었다는 게 洪 敎授의 指摘이다. 景福宮 後援이던 景武臺가 權力의 心臟이 된 건 日帝强占期 總督 官邸가 들어서면서부터다. 洪 敎授는 “日帝는 總督府 廳舍를 지어 景福宮의 象徵性과 統治의 이點을 앗아갔고, 別途로 保安課 警護에 有利한 景武臺 자리에 最高 植民統治者의 집을 지었던 것”이라고 說明했다. 李承晩 大統領이 景武臺를 官邸 兼 執務室로 使用하면서 以後 大統領들은 景福宮 뒤에 숨는 模樣새가 됐다. 洪 敎授는 “4·19 當時 學生들이 景武臺로 進出하려다 銃에 맞아 犧牲됐다. 이처럼 靑瓦臺 자리는 帝王的 獨裁者에게 맞는 외진 場所로, 國民과의 疏通과는 距離가 멀다”고 評價했다. 民主化 以後 이에 關한 反省이 나오면서 단골 大選 公約으로 ‘光化門 執務室’이 登場했지만 實現되지 않았다. 洪 敎授는 용산 國防部 新廳舍에 對해 “靑瓦臺와 마찬가지로 國民이 接近하기 어렵고, 大統領이 國民과 接觸하기도 어려운 場所라고 본다”라며 “尹 當選人이 就任 前까지 執務室을 옮기려다 當初 趣旨를 잃은 채 無理數를 둔 것 같다”라고 評價했다. 그 代身 용산으로 온다면 “現 龍山區廳 건너便 駐韓美軍 司令官低價 있던 자리가 適當할 것”이라고 助言했다. 이어 朝鮮 太祖의 漢陽 遷都 推進 當時 逸話를 言及하며 意見收斂의 必要性을 强調했다. “太祖는 自身이 고른 새 都邑地에 對해 臣僚들의 意見이 엇갈리자 無學大師의 意見을 請합니다. 無學은 ‘여러 사람의 뜻을 좇으라’고 하지요. 王이 政治的 負擔을 홀로 堪當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結局 天道는 以後 高位 官僚들의 建議로 이뤄지게 됩니다.”(홍 敎授)‘都市工學者’ 이희정 서울市立大 敎授“서울의 南北 잇는 龍山 選擇 肯定的”“용산은 그동안 서울 한가운데에서 東西南北을 遮斷하며 交通網 連結 및 統合 發展을 沮害해 왔습니다. 大統領 執務室 移轉은 ‘龍山 時代’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選擇이라고 봅니다.” 21日 서울 東大門區 서울市立大에서 만난 이희정 都市工學科 敎授(58)는 尹錫悅 當選人의 執務室 龍山 移轉 計劃을 肯定的으로 評價했다. 그는 國內 都市設計 및 都市整備 分野의 손꼽히는 專門家다. 李 敎授는 “美軍基地 敷地가 서울의 東西와 南北을 가르고, 京釜線 鐵道가 다시 東西를 遮斷하면서 龍山은 하나의 巨大한 壁과 같았다. 市民 大部分이 接近할 수 없는, 한마디로 ‘잊혀진 땅’이었다”고 했다. 李 敎授는 “執務室 移轉을 契機로 美軍基地 敷地 返還이 加速化되면 市民들의 새 休息空間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며 “오랜 期間 遲滯됐던 開發도 彈力을 받아 용산이 서울의 中心이 되는 時代가 올 것”이라고 展望했다. 當選人이 내건 ‘國民과의 疏通’을 위해서도 龍山 執務室은 ‘나쁘지 않은 選擇’이라고 했다. 現在 靑瓦臺는 市民 接近性이 떨어지지만 龍山 執務室의 境遇 周邊 公園化와 맞물리며 大統領과 市民 사이의 接點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李 敎授는 “執務室과 가까운 空間이 市民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自然스럽게 接點이 늘어날 것”이라며 “美國 白堊館 모델이 不可能한 얘기만은 아니다”라고 强調했다. 交通 停滯나 市民 不便을 惹起한 集會·示威의 樣相도 變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白堊館 앞에선 每日 集會가 열리는데 平和的 方式으로 充分히 意思를 表示한다”며 “執務室 앞 公園 設置를 통해 市民과 執務室이 가까워지고 接觸面이 넓어지면 韓國에서도 日常的이고 平和로운 集會 文化가 定着할 수 있을 것”이라고 期待했다. 李 敎授는 執務室 移轉이 中長期的으로 景福宮, 光化門 一帶 舊都心과 용산을 모두 살리는 方向이라고 評價했다. 歷史 및 文化가 깃든 舊都心과 새 開發地人 新都心을 分離하고 舊都心을 步行者 中心의 ‘歷史 都心’으로 바꾸는 것이 都市 開發의 世界的 趨勢라는 것이다. 李 敎授는 “旣存 舊都心을 歷史的 文化的 名所로 活性化하고 文化財的 價値를 保護한다는 次元에서도 執務室 移轉은 肯定的”이라고 强調했다. 다만 이 敎授는 執務室 移轉 費用과 용산 一帶 交通滯症 深化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李 敎授는 “憂慮를 解消하고 住民을 說得할 靑寫眞이 必要하다”며 “現在 推算되는 移轉 費用을 뛰어넘는, 용산 開發과 開放이 가져올 實益과 비전이 提示돼야 한다”고 했다.김원 廣場建築環境硏 代表“時間 들여 公論化… 意見 모을 問題”“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時間을 들여 公論化하고 意見을 모을 問題입니다.” 21日 서울 大學路 廣場建築環境硏究所에서 만난 建築家 김원 代表(79)는 “執務室 移轉은 國民的 共感帶가 가장 重要하다”면서 “衆論을 모으는 게 먼저”라고 强調했다. 金 代表는 1960年代 金壽根建築硏究所에서 일할 當時 國會議事堂 터를 包含해 汝矣島 開發 마스터플랜을 짰다. 天安 獨立記念館과 果川 국립현대미술관 等의 터를 잡은 것도 金 代表다. 最近에는 光化門市民委員長으로 光化門廣場 造成 意見 收斂을 이끌어왔다. 金 代表는 “當選人이 一旦 靑瓦臺에 들어가 必要한 部分은 고치고 지내면서 執務室 移轉에 對한 共感帶를 形成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强調했다. 只今의 靑瓦臺에 問題가 있다는 것에는 金 代表도 同意한다. 그는 “靑瓦臺는 本館의 (巨大한) 規模, 左右對稱 디자인 等에서 볼 수 있듯 大統領의 權威를 내세우는 데 焦點이 맞춰진 建築物”이라며 “祕書室과의 疏通, 外賓 接待 等을 비롯해 機能 面에서 不便한 點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指摘했다. 反面 國防部 新廳舍는 大統領 執務室로서의 品格이 떨어진다고 評價했다. 金 代表는 “國防部 廳舍는 100% 機能 爲主로 設計된 建物”이라며 “尹錫悅 當選人의 發表처럼 執務室과 祕書室, 記者室 等이 가까이 配置되면 大統領 亦是 機能的으로는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評價했다. 그러나 建物의 藝術性, 象徵性은 매우 떨어져 國家元首의 執務室로서는 “文化的으로 촌스럽다”는 게 金 代表의 意見이다. 그는 “太極旗와 같은 國家의 심벌(象徵)로서의 印象을 國民들에게 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憂慮했다. 金 代表는 地形과 建物, 道路와 廣場 等이 어우러져 만드는 都市의 象徵性 側面에서도 용산이 大統領 執務室 터로는 不足하다고 봤다. 그는 “漢陽의 主山으로 北쪽에서 保護하는 北岳山과 같은 强力한 象徵的 地形이 없는 것도 용산의 弱點”이라며 “땅의 歷史를 봐도 安定되고 차분한 곳이라기보다 搖動치는 곳”이라고 했다. 金 代表는 美軍基地 返還 後 용산을 美術館과 博物館, 圖書館 等 文化複合施設이 들어선 公園으로 만드는 方案을 提示한 바 있다. 金 代表는 앞으로도 社會的 論議를 繼續하는 것이 重要하다고 强調했다. “國民들 사이에 大統領 執務室은 곧 靑瓦臺라는 認識이 뿌리 깊은 것이 現實입니다. 勿論 選出된 大統領이 願하는 곳에서 氣分 좋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必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社會的 合意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다음에 또다시 再以前 問題가 擧論될 수 있다는 點도 考慮했으면 합니다.”조종엽 記者 jjj@donga.com김기윤 記者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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