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8일)을 앞둔 지난달 29日 慶南 梁山 通度寺. 境內 庵子인 서운癌 옆 한 空間은 大韓佛敎曹溪宗 宗正(宗正) 盛波 스님(83)의 作業室이다. 車와 옻漆을 배우러 온 이들이 드나들었다. 外部人 出入을 嚴格하게 制限했던 以前 宗正의 周邊과는 確實히 다르다. 3倍(三拜)의 例를 請했지만 “한 番만 하라”며 限死코 손을 저어 結局 맞절이 됐다. 盛波 스님은 올해 3月 서울 曹溪寺에서 열린 推戴法會를 통해 曹溪宗 第15代 宗正으로 公式 就任했다. 그는 이 法會에서 “法文은 많이 準備했는데 梁山 通度寺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싹 잊어버렸다”며 알기 쉬운 生活法文으로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며 拍手까지 받았다. 曹溪宗 헌法人 終獻에 따르면 宗正은 宗團의 神聖(神性)을 象徵하며, 宗統을 承繼하는 最高 權威와 地位를 갖는다. 參禪 爲主로 遂行하는 禪僧(禪僧)들의 宗正 系譜에서 盛波 스님의 存在 自體가 破格이다. 그는 修行에 힘쓰는 한便 옻과 韓紙 等을 利用한 書畫 展示會, 16萬 陶瓷大藏經의 佛事를 이뤄냈으며 土種 먹을거리 保存을 위해 ‘서운癌 된醬’을 내놓기도 했다.》 ―推戴 法會 以後 어떤 變化가 있나. “就任하나 안 하나 日課는 如前하다. 찾아오는 분들이 늘긴 했다. 내게 特別히 30時間을 주는 게 아니니까, 定해진 時間을 쪼개 쓰려고 努力한다. 다른 일 없으면 作業室에서 지낸다.” ―“本來 지닌 如來(如來·部處)의 德性(德性)으로 世上을 밝혀야 한다”는 부처님오신날 法語를 發表했다. 첫 法語라 特別히 考慮한 것이 있나. “첫 法語라고 해서 안 나오는 法文이 나올 理 없다. 平素 늘 생각하는 것이다.” ―宗團에서는 最初로 스승(월하 스님)과 弟子 모두 宗正에 올랐다. 平常心을 强調하던 월하 스님의 影響이 궁금하다. “어떠냐 하면, 안갯속에서 걷는 것과 같다. 소나기를 맞지 않아도 옷이 꿉꿉해지는 것처럼 그 느낌이나 마음이 배어 있다. ‘스승으로부터 어떤 法을 받았느냐’는 質問들을 하지만 특별한 法보다는 그분의 影響이 안개처럼 배어 있을 뿐이다.” ―宗團 最高 어른으로 推戴됐는데 달라진 게 있나. “宗正이라는 이름이 붙은 뒤나 아닐 때나 나는 그냥 같다. 公式的인 行事가 있을 때는 宗正에 어울리는 言行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 外에는 宗正이라는 ‘소고삐’에 얽매이기 싫다. 宗正이라고 格式 차리며 살고 싶지 않고 平素 生活을 그대로 꾸려갈 뿐이다.” ―월하 스님 等 많은 이들이 ‘중노릇 하나만 옳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日帝强占期를 經驗했다. 日本 巡査 記憶도 나고, 6·25戰爭 中 人民軍 占領地에서도 살아봤고, 戰爭 中 銃알과 砲彈이 날아다니는 것을 봤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알까? 같은 時代에 살고 있지만 80臺의 내가 요즘 20代, 30代 思考方式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남들에게 될 수 있는 限, 말 안 한다. 그냥 내가 할 뿐이다. 그들이 따라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지.” ―어린 時節 海印寺 隣近에서 살았는데 出嫁는 通度寺에서 했다. “海印寺까지 걸어서 逍風을 다녔다. 그런데 거기서 出家하면 아는 사람이 많아 疲困할 것 같아 좀 떨어진 곳이 좋겠더라(웃음). 내가 出家하면서 通度寺 住持, 曹溪宗 宗正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個人이 選擇했지만 모든 게 因緣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새 宗正에 對한 期待感이 적지 않다. “무엇이 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季節이 여름인데 겨울, 봄인데 가을 타령을 해서야 일이 되겠나. 무엇보다 歷史를 많이 工夫해야 한다. 歷史에서 只今이 어떤 時點인지 잘 把握해야 한다. 그래야 未來를 設計할 수 있다. 1600年, 1900年, 2000年代 宗正은 다르다. 只今은 2022年이다. 眞理는 같지만 現象은 變化가 있기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이다. 佛敎도 一般 歷史와 같이 간다.” ―向後 佛敎의 役割은 무엇인가. “僧侶들이 政治, 軍事, 事業을 하겠나? 하지만 傳統文化를 硏究하고 지키는 것, 未來志向的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다. 손에 잡히지 않으면 公傷밖에 되지 않는다. ‘盛波 스님은 왜 傳統文化에 關心 많냐’고들 묻는다. 내가 傳統文化의 房에서 태어나 살고 한 게 全部인데 다른 것을 할 수 있겠나. 僧侶들이야 傳統文化의 報告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 물이 들어야 한다. 그게 ‘中물’이다.” ―單色畫로 잘 알려진 朴栖甫 畫伯은 作業이 修行이라고 했다. “그림뿐 아니라 밭을 매는 것, 나아가 움직이는 것 모두 遂行이다. 出家 初期부터 그런 精神으로 살았다. ‘初發心自警文’을 배울 때 ‘뱀이 물을 먹으면 毒이 되고, 소가 먹으면 牛乳가 된다’는 句節이 눈에 들어오더라. 名色이 修行者라고 해도 제대로 못 하면 修行者가 아니다.” ―過去에는 參禪 爲主의 修行者를 높이 評價하는 傾向이 있었다. “過去가 아니라 只今도 그렇다. 參禪 爲主의 遂行이 쉬운 게 아니다. 하루도 앉아 있기 힘든데 平生 參禪 工夫를 했다면, 그걸로 높이 評價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全部라고 생각하면 誤算이다. 우리는 그를 稱頌할 수 있다. 하지만 自身이 稱讚받을 만할지는 그 사람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文在寅 大統領이 退任 뒤 通度寺 隣近 이웃四寸으로 온다. 德談 한마디 주시면…. “원수불구근화 遠親불여近隣(遠水不救近火 遠親不如近隣),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하고, 먼 데 있는 親戚이 이웃에 사는 남보다 못하다고 했다. 큰 政治를 하다 왔으니, 생각이 많을 수 있다. 五六月 겻불도 쬐다 안 쬐면 섭섭하다더라. 심심하면 나와 茶라도 한잔하면 된다. 政治를 잘했나, 못했나는 내가 關心 없으니까.” ―지난달 22日 尹錫悅 當選人이 非公開로 通度寺를 찾아 茶啖을 나눴다. “(尹 當選人은) 歷史意識이 剛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앞으로 政治, 經濟, 軍事는 大統領께서 하실 일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大韓民國이 文化强國이 되는 것이다. 요즘 韓流 얘기를 많이 하는데 노래와 춤 等 現在의 것이 中心이고, 傳統 韓流는 開發이 안 된 것 같다, 韓紙와 金屬活字 等 우리가 西洋을 앞선 것이 많다고 했다. 當選人은 우리나라에 歷史 敎育이 많이 不足하다며 共感했다. 그래서 우리 佛敎界가 傳統 韓流 保存과 紹介를 國民文化運動 次元에서 展開하고, 大統領은 바쁘니까 도움을 받을 일 있으면 (옆의) 金起炫 前 院內代表에게 말하겠다고 했다.” ―우리 社會의 葛藤과 對立이 深刻하다. 어떻게 統合해야 하나. “마음은 꿀떡이라고 했다. 마음은 懇切한데 쉽지 않다는 게다. 누구 便을 드는 게 아니라 歷代 大統領들이 監獄에 가 있는 것은 猖披한 일이다. 政治權 葛藤도 너무 深刻하다. 나라 全體로 볼 때는 自中之亂(自中之亂)이고, 이것 때문에 큰 危機에 빠질 수 있다. 어떡하면 좋은가. 아무리 큰일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宏壯히 어려울 수도 쉬울 수도 있다.” ―곧 부처님오신날이다.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은…. “부처님 時節에도 弟子들이 葛藤하고 많이 싸웠다. 부처님이야 이를 어렵지 않게 克服하셨겠지만…. (葛藤의 問題는) 次元을 달리하면 된다. 숲에서 나무들이 서로 크니 작니 다투지만 空中에서 바라보면 다르다. 宇宙 次元의 넓고 높은 次元에서 바라봐야 한다. 넓고 튼튼한 倍가 많은 짐을 堪當하듯, 指導者는 自己 力量을 넓게 가져야 한다.” ―말처럼 쉽게 가기는 어려운 길 아닌가. “갑자기 갈 수 있다. 여래지(如來地)까지 한 番에.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마음먹으면 瞬息間에, 그게 안 되면 1年 걸려도 안 된다.” ―平生 遂行하며 담아온 話頭나 經句 한마디를 들려 달라. “한마디밖에 없는데 말하면 되겠나, 아껴 놔야지, 하하. 부딪히는 것을 避해 왔고, 싸울 일이 많았지만 안 싸웠다. 避하면 卑怯하다고 하는데, 衝突하면서 그럴 것까지는 없더라. 孫悟空이 아무리 뛰고 날아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政治와 言論이야 自己 役割을 한다고 하겠지만 싸우고만 있는 것 아닌가. 어린아이와 學生들에게 그 影響이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自中之亂, 그 結果는 歷史가 보여준다.”성파 曹溪宗 宗正△ 1939年 慶南 陜川 出生△ 1960年 월하 스님을 恩師로 出家△ 大韓佛敎曹溪宗 總務院 社會部長·敎務部長, 通度寺 住持△ 1991∼2012年 16萬 陶瓷大藏經 完成 및 藏經閣 建立△ 1997年 以後 天然染色과 옻漆 利用한 民畫, 佛畫展 開催△ 2014年 最高 法階(法階)인 大宗師 品數△ 2018年 通度寺 方丈 推戴△ 2022年 3月 曹溪宗 第15代 宗正 推戴法會量産=김갑식 文化專門記者 dunanworld@donga.com}
PDF紙綿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