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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西洋 文明이 만나는 魅惑의 都市 ‘이스탄불’①|週刊東亞

週刊東亞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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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西洋 文明이 만나는 魅惑의 都市 ‘이스탄불’①

[災異의 旅行블루스] 基督敎와 이슬람 文明 交叉하는 歷史의 古都… 世界 8大 不可思議 ‘아야소피아 大聖堂’

  • 災異 旅行作家

    入力 2024-01-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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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로 旅行하는 것이 좋은지’에 對한 말과 情報는 넘치지만, ‘왜 旅行을 떠나야 하는가?’에 對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旅行과 關聯한 거의 모든 情報가 ‘어디’에 焦點을 두고 있지만, 정작 重要한 것은 旅行의 ‘理由’와 ‘價値’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게 아닐까. 그런 理解가 깊으면 깊을수록 旅行했던 瞬間들이 나의 日常과 앞으로 살아갈 人生에 連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不確實性으로 가득 차 있는 旅行은 익숙한 것을 벗어나 未知의 世界로 떠나는 旅程이다. 다음 目的地를 決定하거나, 計劃대로 移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繼續 머무를 것인지 떠날 것인지, 豫測대로 되지 않는 瞬間마다 내려야 하는 크고 작은 決定이 모두 旅行者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다보면 自己 人生을 얼마나 確實하게 掌握하고 있는지 스스로 느끼게 된다. 나의 外面과 內面을 깊이 있게 探險하면서 日常에서는 꿈꾸지 못했을 變化를 꿈꾸며 ‘새로운 삶을 向한 눈부신 挑戰을 멈추지 말아야지’ 하는 삶의 意志를 다지게 된다. 旅行 前에 들었던 모든 걱정은 旅行이 始作되자마자 어느 샌가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單 며칠뿐인 旅行의 瞬間들은 우리 마음과 日常을 魔法처럼 바꿔버린다. 이 때문에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旅行을 期待하며 오늘 하루를 버티어내는지도 모른다. 旅行을 통해 幸福한 ‘변신’을 그려볼 수 있기에 우리는 그토록 旅行을 떠나려 하는 것은 아닐까?

    유럽과 아시아 文明 共存

    골든혼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자리 잡은 이스탄불. [GettyImages]

    골든혼을 사이에 두고 舊市街地와 新市街地가 자리 잡은 이스탄불. [GettyImages]

    오늘 함께 떠나볼 튀르키예 最大의 都市 ‘이스탄불’도 마음의 빗장이 열리는 旅行의 瞬間을 經驗하기에 充分한 곳이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國號를 旣存 터키에서 ‘터키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키예(Tu‥rkiye)’로 바꿨다. 튀르크는 ‘勇猛한 者’에서 由來됐는데 ‘터키’라는 國名은 英語의 七面鳥와 發音이 같은데다가 怯쟁이, 敗北者 等을 뜻하는 俗語로도 使用되는 것에 對한 反感이 있었다. 이에 政府는 以前부터 자국을 튀르키예로 불러왔고 터키어로 表記한 正式 國號 亦是 튀르키예 共和國임을 根據로 國號 變更을 유엔에 要求했고 유엔은 이를 받아들여 國號 變更을 承認했다. 國號에 담긴 勇猛한 이름처럼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이스탄불은 길이 30㎞의 ‘보스포러스 海峽’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뉜다. 이런 地理的 位置 때문에 이스탄불은 東로마帝國(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에 걸쳐 1600餘 年 동안 陸上 실크로드의 終着地이자 東西洋의 文化와 宗敎가 만나는 通路의 役割을 해왔다. 또한 새로운 海上 실크로드의 出發地이기도 했던 이스탄불은 地中海를 거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제노바로 가는 連結地로 四通八達의 要衝地였다. 都市가 形成된 그리스 時代에는 ‘비잔티움’으로 불렸고, 書記 330年 콘스탄티누스 大帝가 東로마帝國의 首都로 삼으면서는 都市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꿨다. 以後 1453年 오스만제국의 이슬람이 支配하기 始作하면서 只今의 이스탄불로 다시 改名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貫通하는 都市였기에 文明 間 對立과 和解의 反復 속에 數千 年 동안 興亡盛衰를 되풀이했다. 이스탄불이 갖고 있는 獨特한 情緖와 아름다움 속에는 이런 時代的 背景이 있다.

    이스탄불은 ‘골든혼(golden horn: 陸地를 파고든 萬)’을 사이에 두고 舊市街地와 新市街地로 나뉜다. 1985年 世界文化遺産으로 指定된 舊市街地는 며칠을 머물더라도 지겹지 않다. 主要 볼거리들은 舊市街地에 集中돼 있으니 旅行의 起點을 舊都心에 두고 出發하는 게 좋다. 골든혼과 마르마라海, 테오도시우스 城壁에 둘러싸인 舊市街地엔 그랜드 바자르와 톱카프 宮殿, 아야소피아 大聖堂, 술탄 아흐메트 寺院(블루 모스크) 等 歷史的 建築物이 櫛比하다. 이곳들만 돌아보아도 世界史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이스탄불의 富貴榮華를 充分히 느끼고도 남는다. 舊都心 中心에 자리限 이스탄불 傳統 市長인 ‘그랜드 바자르’는 1461年 開場한 現存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市場이다. 現地人들은 ‘덮여 있는 市場’이란 뜻을 가진 ‘카파르 차르쉬’(Kapali Carsi)라고도 한다. 市長은 中世 이슬람 建築樣式으로 지어졌는데 元來는 衣類 市場으로 出發했다. 以後 오스만제국의 蕃盛과 함께 中世 時代에는 東南아시아의 香辛料, 페르시아의 洋탄자, 유럽 裝身具와 그릇 等 東西洋 文物이 流通되며 世界 最高(最古)·最大를 自處하는 國際市場으로 成長했다.

    現地 日常 엿볼 수 있는 그랜드 바자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장 그랜드 바자르. [GettyImages]

    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市場 그랜드 바자르. [GettyImages]

    그랜드 바자르는 名稱에 걸맞게 規模가 엄청나다. 크고 작은 出入口가 無慮 20餘 곳에 達하며 迷路처럼 複雜하게 얽히고설킨 60餘 個 골목을 따라 約 4500個의 商店이 늘어서 있다. 出口 番號를 잘 記憶해두지 않으면 迷路 같은 市場 안을 헤매다 길을 잃기 十常이다. 또한 어느 出入口를 利用하든 넓은 通路를 中心으로 작은 골목들이 퍼져 있는 構造理氣에 골목에 들어설 때는 반드시 돌아 나오는 길을 記憶해 두어야 한다. 어느 入口로 나오느냐에 따라 位置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市場에는 細工品, 陶瓷器, 手工藝品, 寶石類, 카펫 等을 비롯해 튀르키예 傳統 特産品과 記念品까지 모든 것이 豐富해 보고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같은 製品을 取扱하는 商店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으니 흥정은 必須다. 主人과 옥신각신 價格을 깎는 재미가 쏠쏠하니 반드시 挑戰해보자. 쇼핑에 關心이 없다면 그랜드 바자르 周邊 食堂과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餘裕를 누리는 것도 좋다. 火덕에서 구운 各種 케밥과 길거리 間食인 참깨빵 ‘時미트(Simit)’, 떡, 젤리, 꿀, 堅果類 等으로 만들어 쫄깃하고 달콤한 傳統 디저트 ‘로쿰(Lokum)’, 體즈베(Cezve)라는 구리로 만든 酒煎子에 곱게 간 원두와 雪糖을 함께 넣어 끓여낸 튀르키예式 커피나 現地人들이 물처럼 마시는 紅茶 差異까지 맛볼 수 있는 메뉴도 다채롭다. 그랜드 바자르 周邊을 한참 돌다 보면 ‘이집션 바자르(Egyptian Bazaar)’에 到着한다. 비잔틴제국 時代에 지어진 由緖 깊은 市場으로 過去 이집트와 東洋의 다양한 香辛料를 팔았다 하여 이집션 바자르라 이름 붙었다. 只今도 ‘스파이스 바자르’라는 別稱으로 불릴 만큼 100餘 個의 香辛料 商家가 健在하며 乾魚物과 치즈 等 食料品, 生必品을 取扱하는 在來市場이기도 하여 現地人들의 日常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苦難의 歷史 간직한 아야소피아 大聖堂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야소피아 대성당. [GettyImages]

    비잔틴 建築의 傑作으로 꼽히는 아야소피아 大聖堂. [GettyImages]

    舊都心 探訪은 餘裕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을 推薦한다. 다만 옛길들이 좁고 울퉁불퉁하거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反復되기도 하니 신발은 可及的 가장 便한 것을 選擇해보자. 그랜드 바자르 東쪽에 位置한 ‘아야소피아 大聖堂’(Aya Sofya)은 世界 8大 不可思議로 꼽힐 程度로 獨特한 構造와 建築樣式을 자랑한다. ‘성스러운 智慧’를 뜻하는 아야소피아 大聖堂은 스페인 세비야 大聖堂이 세워지기 前까지 世界 最大(最大) 規模를 자랑했다. 中央 돔은 直徑이 31.87m로 로마의 建築物인 판테온 다음가는 크기였으며 피렌체 두오모 以前까지 世界 最大의 돔이기도 했다. 이처럼 비잔틴 建築의 傑作으로 손꼽히는 아야소피아 大聖堂은 콘스탄티누스 2世가 로마帝國의 榮光을 되살리려는 念願을 담아 지은 建物이다. 數千 名이 同時에 禮拜드리기 좋도록 巨大한 돔 지붕을 만들고 아름다운 모자이크 壁畫로 壁을 메웠다. 아르테미스, 아폴로 神殿에서 가져온 기둥과 石材를 動員해 骨格을 세워 5年 11個月 만에 完成했다. 以後 콘스탄티노블(현재 이스탄불)을 占領한 오스만帝國 皇帝 메흐메트 2世는 아야소피아 大聖堂을 허무는 代身 이곳을 이슬람 寺院으로 活用한다.



    아야소피아 聖堂은 916年間 東로마帝國의 敎會, 481年間 오스만제국의 이슬람 寺院으로 使用된다. 以後 ‘터키 建國의 아버지’ 케말 파샤(아타튀르크)에 依해 博物館으로 使用되다가 最近 篤實한 수니派 信者인 에르도안 大統領에 依해 이슬람 寺院으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아야소피아 大聖堂 苦難의 時代는 如前히 現在 進行 中인 셈이다. 아야소피아 大聖堂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술탄 아흐메트 社員은 미나렛(尖塔)李 6個인 이슬람 最大 寺院이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아흐메트 1歲의 指示로 1609年부터 1616年까지 建築되었는데 2萬餘 張에 이르는 푸른 타일로 寺院 內部의 壁과 기둥을 裝飾해 一名 ‘블루 모스크’라고 불린다.

    이어지는 ‘東西洋의 文明이 만나는 魅惑의 都市, 이스탄불’ 두 番째 이야기에서는 신비스러운 雰圍氣를 자아내는 ‘술탄 아흐메트 寺院’과 비잔틴帝國 時節 電車 競走場이 있었던 ‘히포드럼 廣場’, 오스만帝國 술탄들의 王宮이었던 ‘톱카프 宮殿’과 舊市街地와 新市街地를 連結하는 ‘갈라打 다리’를 건너 金融과 生活의 中心地 이스탄불의 新市街地로 떠나볼 豫定이다. 유럽과 아시아 文化를 同時에 간직한 2500年 歷史의 古都(古都) 이스탄불을 만나보자.

    ※週刊東亞 1426號에서 ‘東西洋의 文明이 만나는 魅惑의 都市, 이스탄불’ 두 番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災異 旅行作家는… 
    世界 100餘 個國을 旅行하며 世上을 向한 視線을 넓히기 始作했다. 只今은 삶의 大部分을 보낸 都市 生活을 마감하고 濟州로 移住해 글을 쓰고 寫眞을 찍으며 다양한 旅行 콘텐츠를 生産하는 노마드 人生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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